녀석은 허탈한 표정으로 내칼이 자신의 목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건지 없는건지, 그냥 테이블의 의자를 꺼내서 주저 앉아 버렸다. 마음같아서는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아무리 인간의 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 역시 칼을 내려 놓았다. 지금 느껴지는 분위기를 보니, 저 타락천사 녀석이 최소한 우리에게 적대감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미안해요. 수계열 천사. 제가 오해를 한 것 같군요."
이 녀석은 아까와는 다른 상당히 정중한 말투로 브리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브리는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이틀동안 브리에게서 흘러나온 눈물만 가지고도 며칠동안 식수 걱정은 안해도 될 정도일 것같다.
"타락천사, 다시 묻지. 위키와 무슨 사이인가?"
울고있는 브리를 향해 곤란한 표정으로 있는 녀석을 향해 적대감을 잔뜩 담아 이야기를 했다. 주의를 풀면 안되겠지만 타락 천사란 존재는 악마들에 비해서는 감정적인 면에서 솔직하기 때문에 인간만큼 마음을 읽기가 쉬웠다. 지금 이 녀석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곤 혼란스러움과 황당함...미안함 등등인 것 같은데...
"그 악마년의 이름이 위키였습니까? 그 위키란 악마가 제 친구를 죽였습니다. 당신과 같은 검은머리를 가지고 있었죠. 같이 여행을하고 있었는데...이 마을에서 그런 일을 당할줄은...이상한 기운은 느꼈지만, 방심을 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결국 친구를 구하지도 못하고 저만 간신히 그 악마한테 도망쳐서...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위키란 이름을 말할 때 살기를 뿜어내던 타락천사 녀석은 말을 잠시 멈추고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악마의 기운이 갑자기 사라져서, 마을에서 가장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에 오니, 여기 이 천사가 있어서...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인 당신이 고위악마를 물리칠 수 있었죠? 그리고 제가 타락천사인 것은 어떻게..."
신께서도 나를 확실하게 인간으로 만들긴 만들어 주신 것 같다. 천사들까지 날 인간으로 느낄 정도면, 최소한 악마를 만나도 안면이 있지 않는 이상 날 전직 악마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말하자면 길어. 그리고 네 녀석이 그 사실을 말해줘도 괜찮을 만한 녀석인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다짜고짜 처음 보는 존재에게 위협이나 하는 녀석을 어떻게 믿어? 그것도 천사도 아닌 타락천사에게.."
분홍빛 머리의 타락천사는 내말을 들은 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다. 타락천사들 대부분은 죄를 지어 천계에서 쫓겨나는 식이기 때문에 능력을 거의다 빼앗기는데 이 타락천사는 자신의 능력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들에게는 보이진 않겠지만 날개까지도 가지고 있으니...그렇다면 스스로 천사임을 포기했단 말인데...지금은 내가 이렇게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솔직히 저 녀석과 정식으로 싸운다면 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과일 전체 요리 나왔습니다."
그 여자 종업원이 접시 두개를 테이블 위애 내려놓았다. 한참 과일들이 나올 계절이라 그런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싱싱한 과일들의 모습이 접시위에서 많이 보였다. 그런데 계속 날 향해 생글생을 웃으며 쳐다보는 여자 종업원의 눈길...휴...
"브리, 음식 나왔어. 계속 울면 내가 다 먹어버린다."
난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어휴...정말...내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원흉은 다 저 타락 천사녀석 때문이다. 내 말을 들었는지 브리는 테이블위에 엎드려 있던 고개를 살며시 들어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는 음식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이 방법이 효과가 제일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어린애를 달랠 때 쓰는 방법인지...정말.
"베른씨, 이 음식 정말 맛있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과일이라...악마였을 때도 입에서 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종종 먹곤 했었다. 그리고 인간여자들이 과일 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향수 대신으로 사용할 때도 있었고...그 때 먹었을 때도 그다지 맛이 나쁘지 않았었다. 브리가 과일을 어색하게 포크를 잡고 찍으려하는 순간, 갑자기 그 타락 천사 녀석이 날 유심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베른...잠깐, 설마 당신이 그 베른 메피스토펠레스는 아니죠?"
그 타락 천사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브리가 포크로 엉뚱한 곳을 찍어 과일 하나가 미끌어져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아까운 듯 그 과일을 쳐다보는 브리...그런데 내 이름이 그렇게 유명했었나? 하긴 내가 소멸시켜버린 천사만 해도 한둘이 아니니...솔직히 천사들이 때로 몰려와서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하긴 천사란 존재들이 원래 복수란 것과 인연이 뭐니까...
"그 설마가 맞아. 지금은 성을 바꿨지만."
다시 한번 놀란듯한 표정으로 날쳐다보는 타락천사, 악마녀석이라면 내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에 놀랄만도 하지만...저녀석이 왜 저렇게 놀라는 걸까?
"그런데 어떻게 당신에게서 인간의 기운이...?"
"인간이 됐으니까."
내 말을 들은 타락 천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녀석이 이해하든 말든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솔직히 적만 아니라면야...정말 상관이 없다. 하지만 천사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타락 천사란 존재에 대해 왠지 흥미가 갔다. 호기심...악마였을 때도 조금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역시 인간이 된 까닭인지 왠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 너는 어떻게 타락천사 녀석이 천사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거지? 스스로 자처해서 천사임을 포기했다는 것인가?"
결국 참지 못하고 타락천사 녀석을 향해 입을 열어 버렸다. 수상하다는 듯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솔직히 저 녀석이 우리를 없애려고 마음만 먹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냥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네, 베른씨.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제 이름은 에이프리 컷, 천계서열 538위의 하급 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사랑해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천계로 한동안 돌아가지 않았더니, 어느 순간에 날개가 회색빛으로 변해버렸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백년넘는 시간동안 계속 인간행세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만났었는데...그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제자신이 너무 무력하더군요. 제가 그렇게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 녀석도 나와 비슷한 사정인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천사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큰 죄가 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다만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사랑에 빠져든 천사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있었지만...에이프리란 저 천사의 경우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세상에 너무 오래 지내며 인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에 날개가 회색으로 변해버려 졸지에 타락천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사의 능력을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언젠가 한번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저 천사...에이프리 컷이면...살구란 뜻...과일 이름을 가진 토계열의 천사라...그리고보니, 예전의 내 기억속에서 저 비슷한 머리색의 천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천사치고는 특이한 머리색이라...유심히 봤었는데... 하지만 그 때는 여자의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에이프리 컷, 너 원래 여성형 천사가 아니었나?"
"절 기억하십니까? 베른씨. 예전에 성마대전 때 베른씨를 한번 뵈었었는데...기억해 주시는 군요. 그리고 남자가 된것은 제가 사랑하는 인간이 여자였기 때문에...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쩐지 날 알고 있다고 했더니...피터지게 서로 죽이고 죽이던 전투중에 만난 존재가 뭐가 반가운 것인지...녀석은 내가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운듯 했다. 처음부터 성이 결정되어 있는 인간과 악마들과는 다르게 천사들은 중성으로 있다가 그 때 그 때, 자신이 필요한 성으로 변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변하는 것을 직접 본적이 없어서 확실히 몰랐었는데 저 녀석을 보니...아무튼 천사란 존재들은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다.
"네 녀석도 인간을 사랑했군. 훗."
에이프리는 내말에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인간이 된 이유를 내말을 듣고 알아차린 것일까? 잠시 이어지는 침묵, 테이블에는 처음에 비해 많이 나아진 브리의 포크질 소리만 들렸다.
"베른씨, 이 과일 정말 맛있어요!"
브리는 과일하나를 꿀꺽하고 난 뒤에 기분이 풀어진 듯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나를 향해 말을 했다. 정말 어린애라니까. 감정의 기복이 이렇게 심한 것을 보면...
브리가 먹지 않는 닭요리를 녀석에게 밀어주고 대충 음식을 다 먹은 뒤에 난 브리를 데리고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위키, 아마도 곧 인간세계로 다시 올 것일테니... 친구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힘을 더 키워라. 에이프리 컷. 고작 하급 천사장의 실력으로는 위키 그 녀석을 절대로 소멸시킬 수 없을테니..."
우리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다 내가 준 닭요리를 열심히 먹고 있던 녀석은 내가 일어서자 뭔가 아쉬운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녀석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브리의 손을 잡고 여관의 방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깐...그럼 오늘은 브리하고 같은 침대에서 자야한단 말인데...어떻게 하지? 휴...아무래도 내가 밑에서 자야할 것 같다. 잠제되어 있던 욕망이 솟구쳐서 인간도 아닌 천사를 더럽히게 된다면 곤란하니...그런데 왠지 저 타락 천사와의 인연이 이번이 끝일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그럴리는 없겠지..
"미안해요. 수계열 천사. 제가 오해를 한 것 같군요."
이 녀석은 아까와는 다른 상당히 정중한 말투로 브리에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브리는 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이틀동안 브리에게서 흘러나온 눈물만 가지고도 며칠동안 식수 걱정은 안해도 될 정도일 것같다.
"타락천사, 다시 묻지. 위키와 무슨 사이인가?"
울고있는 브리를 향해 곤란한 표정으로 있는 녀석을 향해 적대감을 잔뜩 담아 이야기를 했다. 주의를 풀면 안되겠지만 타락 천사란 존재는 악마들에 비해서는 감정적인 면에서 솔직하기 때문에 인간만큼 마음을 읽기가 쉬웠다. 지금 이 녀석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곤 혼란스러움과 황당함...미안함 등등인 것 같은데...
"그 악마년의 이름이 위키였습니까? 그 위키란 악마가 제 친구를 죽였습니다. 당신과 같은 검은머리를 가지고 있었죠. 같이 여행을하고 있었는데...이 마을에서 그런 일을 당할줄은...이상한 기운은 느꼈지만, 방심을 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결국 친구를 구하지도 못하고 저만 간신히 그 악마한테 도망쳐서...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위키란 이름을 말할 때 살기를 뿜어내던 타락천사 녀석은 말을 잠시 멈추고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악마의 기운이 갑자기 사라져서, 마을에서 가장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에 오니, 여기 이 천사가 있어서...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인 당신이 고위악마를 물리칠 수 있었죠? 그리고 제가 타락천사인 것은 어떻게..."
신께서도 나를 확실하게 인간으로 만들긴 만들어 주신 것 같다. 천사들까지 날 인간으로 느낄 정도면, 최소한 악마를 만나도 안면이 있지 않는 이상 날 전직 악마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말하자면 길어. 그리고 네 녀석이 그 사실을 말해줘도 괜찮을 만한 녀석인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다짜고짜 처음 보는 존재에게 위협이나 하는 녀석을 어떻게 믿어? 그것도 천사도 아닌 타락천사에게.."
분홍빛 머리의 타락천사는 내말을 들은 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다. 타락천사들 대부분은 죄를 지어 천계에서 쫓겨나는 식이기 때문에 능력을 거의다 빼앗기는데 이 타락천사는 자신의 능력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들에게는 보이진 않겠지만 날개까지도 가지고 있으니...그렇다면 스스로 천사임을 포기했단 말인데...지금은 내가 이렇게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솔직히 저 녀석과 정식으로 싸운다면 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과일 전체 요리 나왔습니다."
그 여자 종업원이 접시 두개를 테이블 위애 내려놓았다. 한참 과일들이 나올 계절이라 그런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싱싱한 과일들의 모습이 접시위에서 많이 보였다. 그런데 계속 날 향해 생글생을 웃으며 쳐다보는 여자 종업원의 눈길...휴...
"브리, 음식 나왔어. 계속 울면 내가 다 먹어버린다."
난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어휴...정말...내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원흉은 다 저 타락 천사녀석 때문이다. 내 말을 들었는지 브리는 테이블위에 엎드려 있던 고개를 살며시 들어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는 음식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이 방법이 효과가 제일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어린애를 달랠 때 쓰는 방법인지...정말.
"베른씨, 이 음식 정말 맛있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과일이라...악마였을 때도 입에서 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종종 먹곤 했었다. 그리고 인간여자들이 과일 향을 좋아하기 때문에 향수 대신으로 사용할 때도 있었고...그 때 먹었을 때도 그다지 맛이 나쁘지 않았었다. 브리가 과일을 어색하게 포크를 잡고 찍으려하는 순간, 갑자기 그 타락 천사 녀석이 날 유심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베른...잠깐, 설마 당신이 그 베른 메피스토펠레스는 아니죠?"
그 타락 천사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브리가 포크로 엉뚱한 곳을 찍어 과일 하나가 미끌어져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아까운 듯 그 과일을 쳐다보는 브리...그런데 내 이름이 그렇게 유명했었나? 하긴 내가 소멸시켜버린 천사만 해도 한둘이 아니니...솔직히 천사들이 때로 몰려와서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하긴 천사란 존재들이 원래 복수란 것과 인연이 뭐니까...
"그 설마가 맞아. 지금은 성을 바꿨지만."
다시 한번 놀란듯한 표정으로 날쳐다보는 타락천사, 악마녀석이라면 내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에 놀랄만도 하지만...저녀석이 왜 저렇게 놀라는 걸까?
"그런데 어떻게 당신에게서 인간의 기운이...?"
"인간이 됐으니까."
내 말을 들은 타락 천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녀석이 이해하든 말든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 솔직히 적만 아니라면야...정말 상관이 없다. 하지만 천사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타락 천사란 존재에 대해 왠지 흥미가 갔다. 호기심...악마였을 때도 조금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역시 인간이 된 까닭인지 왠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 너는 어떻게 타락천사 녀석이 천사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거지? 스스로 자처해서 천사임을 포기했다는 것인가?"
결국 참지 못하고 타락천사 녀석을 향해 입을 열어 버렸다. 수상하다는 듯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솔직히 저 녀석이 우리를 없애려고 마음만 먹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냥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네, 베른씨.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제 이름은 에이프리 컷, 천계서열 538위의 하급 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사랑해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천계로 한동안 돌아가지 않았더니, 어느 순간에 날개가 회색빛으로 변해버렸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백년넘는 시간동안 계속 인간행세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만났었는데...그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제자신이 너무 무력하더군요. 제가 그렇게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 녀석도 나와 비슷한 사정인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천사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큰 죄가 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다만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사랑에 빠져든 천사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있었지만...에이프리란 저 천사의 경우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세상에 너무 오래 지내며 인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에 날개가 회색으로 변해버려 졸지에 타락천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사의 능력을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언젠가 한번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저 천사...에이프리 컷이면...살구란 뜻...과일 이름을 가진 토계열의 천사라...그리고보니, 예전의 내 기억속에서 저 비슷한 머리색의 천사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천사치고는 특이한 머리색이라...유심히 봤었는데... 하지만 그 때는 여자의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에이프리 컷, 너 원래 여성형 천사가 아니었나?"
"절 기억하십니까? 베른씨. 예전에 성마대전 때 베른씨를 한번 뵈었었는데...기억해 주시는 군요. 그리고 남자가 된것은 제가 사랑하는 인간이 여자였기 때문에...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쩐지 날 알고 있다고 했더니...피터지게 서로 죽이고 죽이던 전투중에 만난 존재가 뭐가 반가운 것인지...녀석은 내가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운듯 했다. 처음부터 성이 결정되어 있는 인간과 악마들과는 다르게 천사들은 중성으로 있다가 그 때 그 때, 자신이 필요한 성으로 변해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변하는 것을 직접 본적이 없어서 확실히 몰랐었는데 저 녀석을 보니...아무튼 천사란 존재들은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다.
"네 녀석도 인간을 사랑했군. 훗."
에이프리는 내말에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인간이 된 이유를 내말을 듣고 알아차린 것일까? 잠시 이어지는 침묵, 테이블에는 처음에 비해 많이 나아진 브리의 포크질 소리만 들렸다.
"베른씨, 이 과일 정말 맛있어요!"
브리는 과일하나를 꿀꺽하고 난 뒤에 기분이 풀어진 듯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나를 향해 말을 했다. 정말 어린애라니까. 감정의 기복이 이렇게 심한 것을 보면...
브리가 먹지 않는 닭요리를 녀석에게 밀어주고 대충 음식을 다 먹은 뒤에 난 브리를 데리고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위키, 아마도 곧 인간세계로 다시 올 것일테니... 친구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힘을 더 키워라. 에이프리 컷. 고작 하급 천사장의 실력으로는 위키 그 녀석을 절대로 소멸시킬 수 없을테니..."
우리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다 내가 준 닭요리를 열심히 먹고 있던 녀석은 내가 일어서자 뭔가 아쉬운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녀석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브리의 손을 잡고 여관의 방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깐...그럼 오늘은 브리하고 같은 침대에서 자야한단 말인데...어떻게 하지? 휴...아무래도 내가 밑에서 자야할 것 같다. 잠제되어 있던 욕망이 솟구쳐서 인간도 아닌 천사를 더럽히게 된다면 곤란하니...그런데 왠지 저 타락 천사와의 인연이 이번이 끝일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그럴리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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