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씨. 침대에서 주무세요."
누군가 날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브리, 정신을 차렸군. 하지만 아직 브리의 날개는 여전히 희미한 그대로였다. 아직 신성력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 신전을 빨리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여관에 와서 쓰러진 브리를 침대에 눕혀놓은 뒤에 그냥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냥 잠이들어버리다니. 쩝, 인간의 신체에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수천년간 악마로써 살아왔는데 이 정도면 속도면 그런데로 빠르게 적응하는 편라고 할 수 있겠지만.
"브리, 몸은 괜찮은 거냐? 신성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 보이는군. 하긴, 위키, 그 년의 흑마력이 보통이 아니니."
위키한테도 그렇게 쩔쩔맬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한 내 신세를 머릿 속에 떠올리며 브리를 향해 말을 했다. 뭐, 1500년전의 위키가 아니긴 아니니까 위키에게 못 이긴다는 사실이 그렇게 망신스럽다거나 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인 상태로 위키와 같은 고위 악마를 도망칠 정도로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고 하는게 객관적인 분석이겠지.
"베른씨, 절 걱정해 주신 거에요?"
브리는 내 쪽을 보며 눈을 크게 뜨며 말을 했다. 걱정은 무슨. 앞날이 창창한 천사가 쓸데없이 나 때문에 소멸해 버리는게 싫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왠지 기뻐하는 듯한 브리의 표정을 보니,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악마였을 때와는 다르게 왠지 그런 짓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화제를 돌리는게 났겠군
"브리, 다른 사람들 눈에도 네가 보이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된 일이지?"
피린이란 그 꼬마 말고도 다른 사람들 눈에도 브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여관방을 빌리려고 하는데 여관 주인도 역시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를 물었었다. 이번엔 동생이라고 했었지만...뭐, 그다지 자랑은 아니지만 전직 악마다보니, 거짓말이나 연기같은 부분에는 능숙했기 때문에 여관주인도 별로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브리는 천사인 까닭에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무척이나 뛰어난 외모에다 복장마저 특이하니, 사람들의 관심을 저절로 끌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에요? 훙...신성력이 약해져서 그런가?...잠시만요."
브리는 다시 공중에서 전에 보았던 그 큰 책을 꺼내서, 또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책에 어떤 것들이 적혀 있는 것인지. 기회가 되면 브리에게 보여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소디암의 멸망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책을 뒤지던 브리가 한 곳을 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훗, 세상에 천사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게 되다니 정말...인간이 된 보람을 별 것 아닌 것에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려도 브리, 이 천사는 귀엽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 세계에서 천사의 신성력이 급격히 고갈되었을 경우 물질화과 되는 경우가 있다고 적혀 있어요.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신전에 들리기 전까지는 인간과 비슷한 제약을 받는다고 적혀 있는데. 어떻게 하죠? 베른씨."
브리는 짧게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했다. 인간과 비슷한 제약을 받는게 어때서? 하긴, 수호천사 학교에서 인간 생활을 하는법 따위를 교육시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하려하는 천사가....물론, 예전에 내가 항상 보았던 전투천사들의 경우 그렇지 않았기에 사실이 아닌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간 브리하고 지내보니 사실인 것 같다...인상을 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신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인간처럼 지내면 되는 것 아니야? 내 생각에는 그다지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말을 듣자 브리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또, 내가 무슨 잘못을...말투나 어조,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그다지 누구를 울릴만한 것은 내 분석에 의하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내 앞에 있는 이 골치아픈 천사가 울려고 한다는 사실...
"..신성력을 쓰지 못하고 인간처럼 지내면 베른씨가 위험할 때, 도와드릴 수 없잖아요."
그...그런 것인가?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 모자란 것인지 모를 청은발의 천사를 보며 난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브리, 걱정하지마, 신전이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잠시동안 설마 무슨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브리는 여전히 불만스러운듯한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하긴 솔직히 브리가 신성력을 쓰지 못한다면 여러가지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밤에 등불 역할이나...그리고 귀찮은 하급마물들을 상대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을테니...그다지 필요가 없을줄 알았던 수호천사 브리란 존재로부터 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이 것 역시 신의 배려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나저나 그 옷차림으로 인간 흉내를 내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다른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할 것 같다. 브리."
브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옷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수천년간의 체질 때문인지...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하긴 내가 그녀 이외에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특이하다고 해야하겠지만...
"이 옷차림이 이상해요? 훙.. 그럼 다른 옷으로 바꿔입어야지."
꼭 말투가 지금 옷을 갈아 입으려 하는 말투라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브리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순간 브리의 몸이 그 브리의 독특한 푸른색이 썪인 흰색빛에 감싸이더니 브리의 옷이 바꼈다. 신성력이 약해도 원래 정신체인 까닭에 저런 능력은 사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브리의 빛이 사라지며 나타나는 브리의 옷, 그..그런데 연파랑색의 원피스! 저 옷차림....왜 하필!
왠지모를 배신감, 난 칼을 뽑아 브리의 목에 대었다. 그리고 이성으로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의 살기가 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이지? 브리. 그 옷차림. 어떻게 알았지?"
브리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듯, 처음 만났을 때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니엘, 그녀가 즐겨 입던 옷차림...브리가 그 옷차림을 한다는 사실이 왠지 화가 났다. 이런 것이 집착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어떻게 브리가 그녀가 좋아하던 옷차림을...만약 장난 이라면 너무 악날하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척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그..냥, 어..제 옷가게에서...제일...예뻐보이는....흑흑...."
브리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공포에 온몸을 떨며 울고 있는 모습...화가났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꼈다. 그리고 돌아오는 이성..내가 왜 브리에게...이 옷차림을 그녀만 하고 있을 것이란 법은 없었는데. 위키 때문에 예민해 졌기 때문일까....난 칼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칼이 목에서 떨어지자 브리역시 바닥에 주저 앉아 큰소리를 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브리, 내가 잠시착각을 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아...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브리가 그녀가 그 옷차림을 즐겨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리가 없는데... 도대체 내가...왜 그랬을까? 브리는 내가 말한 후에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지낸지 이틀 밖에 안되었지만 브리가 나를 향해 나쁜 의도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는데... 아직 악마였을 때의 성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에...내가...
난 그렇게 한참동안 울고 있는 브리를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달래야한다. 내 잘못이 아니라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서 였으니...브리의 마음을 아무래도 내가 풀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브리는 자기가 소멸될 것을 각오하고 나를 향해 와줬었는데...난 그런 천사를 울리고나 있고...내 자신이 한심해 지는 것 같다. 미안함이란...인간의 감정, 전에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인간에 적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는 나에게 인간의 마음까지 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 맛있는 것 사줄께. 계속 울면 못난 천사가 되버린단다."
목소리를 되도록 부드럽게 해서 이 상황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말투를 사용했다. 갈수록 보모역할을 하게 되는 듯한...보통 인간을 유혹할 때도 이런 말투를 사용한일이 거의 없는데, 모두 오해를 한 내 잘못이니...내말을 들은 브리가 자신의 반짝거리는 눈물로 얼굴가득 범벅이 되어, 날 쳐다보았다.
"정말 맛있는거 사주실꺼에요? 베른씨."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린애들을 달래는 방법이 브리에게는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는지...하긴 천사들의 나이로 볼 때, 아직 브리는 어린 나이일 테니까..
난 옷자락의 깨끗한 부분으로 브리의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별로 체질에 맞지는 않았지만, 왠지 브리에게서 그녀의 모습이 생각이 나, 마음아파 하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그녀역시 쉽게 상처를 받고 했었는데...브리는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브리의 주위에 흰빛 기운이 감싸더니, 브리의 옷차림이 연녹빛의 여행복으로 바꼈다. 내가 그 옷차림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싫어하지는 않는데...너무나도 좋아하던 옷차림이 었기 때문에...그랬었는데..하지만 난 말을 하지 않았다. 또다른 안도감과 미안함 때문에.. 수호천사라고해도 내 마음 속까지 읽지는 못하는 것이구나. 휴...역시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했던 것 같다.
"식당에 가자. 브리. 인간들에게도 네 모습일 보일테니, 식당에서 먹어도 별 문제는 없겠지."
그런데 내가 밖으로 나온 뒤에 갑자기 쿵 소리가 난 후 한참동안 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난 혹시나 해서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니, 브리가 벽 근처에서 뒤로 넘어져 있었다. 역시...평소처럼 벽을 그냥 통과하려고 하다가 벽에 충돌을 한 것 같다. 브리는 이마를 벽에박은 듯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난 이번에도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브리, 인간들의 제약을 받으면 문으로 지나가야지, 평소처럼 그냥 통과할 수는 없어."
"네..."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일어나는 브리, 난 브리의 한손을 잡은 뒤에 걸어갔다. 왠지 안심이 되지 않아서...정말 이런 천사가 어떻게 수석졸업을 할 수 있었는지, 수호천사학교라는 곳을 한번 들려보고 싶은 생각이 다시한번 간절히 들었다. 브리는 여전히 한 손으로 이마를 비비고 있었다. 아프긴 아팠나보군, 보통 천사들은 인간들이 느끼는 통증과 같은 것을 느끼지 않지만, 브리가 인간과 비슷한 제약을 받는 다면, 통증을 느낄만도 했다.
"그런식으로 아파보는 것은 처음이겠군. 브리."
이마를 열심히 문지르고 있던 브리는 나를 쳐다보더니 이마를 문지르는 것을 멈추고 말을 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베른씨? 그런데 이 느낌이 사람들이 아프다고하는 느낌인가요? 훙..."
확실히 힘을 잃은 타락천사들이 인간으로 사는 경우보다는 악마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들에게는 인간처럼 힘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높았다. 대부분의 타락 천사들이 벌을 받아 천사의 권능을 잃게 되므로...그리고 어떻게 보면 악마들보다 인간들의 생활을 잘 모를테니까...내가 며칠간 느끼고 있는 점이었지만 인간으로써의 삶에선 좋은쪽보다 안좋은 쪽의 느낌이 마음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와는 반대로 천사들은 부정적인 성향의 느낌에 대해서는 그다지 않고 있지 못했을테니까...그들에게 찾아오는 그런 감정들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긴, 악마왕 사탄도 예전엔 천사였다고 했었지...그의 검은빛 깃털 날개, 천사들의 그것과 색깔만 다를 뿐, 같았었다.
브리의 손을 잡고 여관 아래층의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는 브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브리도 계단에서는 날아서 움직였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기 때문에...역시 예상했던 대로 내려 오는 도중에 브리는 몇번이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내손에 잡혀 넘어지지 않은 뒤, 날 향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브리. 이 천사에 대해서 느껴지는 감정은 정말 무엇이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짐이라 생각했던 처음의 브리에 대한 감정과는 다르게 미안함과 고마움이란 느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잠이 들었던 동안 벌써 저녁 무렵이 된 것일까? 여관의 1층으로 내려가니, 음식냄새와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음식, 맛있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지만 며칠간 먹다보니, 그런데로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하긴, 악마였었을 때도 그다지 좋아하던 악마의 음식은 없었다. 죽지 않기 위해 먹었던 것 뿐이었으니. 인육...타락한 영혼...그리고 피들
어떤 악마 녀석들은 광적으로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먹는데 집착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위키가 이 마을에 저질렀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난 왠지 몸에 피를 묻히는게 싫었다. 그리고 그렇게 피를 뒤집어쓰는 악마들이 추하게 느껴졌다면 내가 비정상인 것인지...하긴 그러니까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난 브리를 데리고 북적북적한 식당 한구석에 빈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조금 무리를 해서 그런지 익숙치 않은 배고프다는 느낌 때문에 참기가 힘들었다. 휴...인간이란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제약을 많이 받는지...수면욕, 식욕...성적 쾌락이야 악마였을 때 질리도록 경험한 까닭에 그다지 집착은 없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자 이십대 중반쯤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누군가 날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브리, 정신을 차렸군. 하지만 아직 브리의 날개는 여전히 희미한 그대로였다. 아직 신성력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 신전을 빨리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여관에 와서 쓰러진 브리를 침대에 눕혀놓은 뒤에 그냥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냥 잠이들어버리다니. 쩝, 인간의 신체에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수천년간 악마로써 살아왔는데 이 정도면 속도면 그런데로 빠르게 적응하는 편라고 할 수 있겠지만.
"브리, 몸은 괜찮은 거냐? 신성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 보이는군. 하긴, 위키, 그 년의 흑마력이 보통이 아니니."
위키한테도 그렇게 쩔쩔맬 수 밖에 없었던 비참한 내 신세를 머릿 속에 떠올리며 브리를 향해 말을 했다. 뭐, 1500년전의 위키가 아니긴 아니니까 위키에게 못 이긴다는 사실이 그렇게 망신스럽다거나 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인 상태로 위키와 같은 고위 악마를 도망칠 정도로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고 하는게 객관적인 분석이겠지.
"베른씨, 절 걱정해 주신 거에요?"
브리는 내 쪽을 보며 눈을 크게 뜨며 말을 했다. 걱정은 무슨. 앞날이 창창한 천사가 쓸데없이 나 때문에 소멸해 버리는게 싫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왠지 기뻐하는 듯한 브리의 표정을 보니,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악마였을 때와는 다르게 왠지 그런 짓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화제를 돌리는게 났겠군
"브리, 다른 사람들 눈에도 네가 보이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된 일이지?"
피린이란 그 꼬마 말고도 다른 사람들 눈에도 브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여관방을 빌리려고 하는데 여관 주인도 역시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를 물었었다. 이번엔 동생이라고 했었지만...뭐, 그다지 자랑은 아니지만 전직 악마다보니, 거짓말이나 연기같은 부분에는 능숙했기 때문에 여관주인도 별로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브리는 천사인 까닭에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무척이나 뛰어난 외모에다 복장마저 특이하니, 사람들의 관심을 저절로 끌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에요? 훙...신성력이 약해져서 그런가?...잠시만요."
브리는 다시 공중에서 전에 보았던 그 큰 책을 꺼내서, 또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책에 어떤 것들이 적혀 있는 것인지. 기회가 되면 브리에게 보여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소디암의 멸망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책을 뒤지던 브리가 한 곳을 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훗, 세상에 천사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게 되다니 정말...인간이 된 보람을 별 것 아닌 것에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려도 브리, 이 천사는 귀엽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 세계에서 천사의 신성력이 급격히 고갈되었을 경우 물질화과 되는 경우가 있다고 적혀 있어요.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신전에 들리기 전까지는 인간과 비슷한 제약을 받는다고 적혀 있는데. 어떻게 하죠? 베른씨."
브리는 짧게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했다. 인간과 비슷한 제약을 받는게 어때서? 하긴, 수호천사 학교에서 인간 생활을 하는법 따위를 교육시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하려하는 천사가....물론, 예전에 내가 항상 보았던 전투천사들의 경우 그렇지 않았기에 사실이 아닌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간 브리하고 지내보니 사실인 것 같다...인상을 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신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인간처럼 지내면 되는 것 아니야? 내 생각에는 그다지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말을 듣자 브리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또, 내가 무슨 잘못을...말투나 어조,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그다지 누구를 울릴만한 것은 내 분석에 의하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내 앞에 있는 이 골치아픈 천사가 울려고 한다는 사실...
"..신성력을 쓰지 못하고 인간처럼 지내면 베른씨가 위험할 때, 도와드릴 수 없잖아요."
그...그런 것인가?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 모자란 것인지 모를 청은발의 천사를 보며 난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브리, 걱정하지마, 신전이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잠시동안 설마 무슨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브리는 여전히 불만스러운듯한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하긴 솔직히 브리가 신성력을 쓰지 못한다면 여러가지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밤에 등불 역할이나...그리고 귀찮은 하급마물들을 상대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없을테니...그다지 필요가 없을줄 알았던 수호천사 브리란 존재로부터 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이 것 역시 신의 배려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나저나 그 옷차림으로 인간 흉내를 내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다른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할 것 같다. 브리."
브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옷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수천년간의 체질 때문인지...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하긴 내가 그녀 이외에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특이하다고 해야하겠지만...
"이 옷차림이 이상해요? 훙.. 그럼 다른 옷으로 바꿔입어야지."
꼭 말투가 지금 옷을 갈아 입으려 하는 말투라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브리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순간 브리의 몸이 그 브리의 독특한 푸른색이 썪인 흰색빛에 감싸이더니 브리의 옷이 바꼈다. 신성력이 약해도 원래 정신체인 까닭에 저런 능력은 사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브리의 빛이 사라지며 나타나는 브리의 옷, 그..그런데 연파랑색의 원피스! 저 옷차림....왜 하필!
왠지모를 배신감, 난 칼을 뽑아 브리의 목에 대었다. 그리고 이성으로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의 살기가 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이지? 브리. 그 옷차림. 어떻게 알았지?"
브리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듯, 처음 만났을 때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니엘, 그녀가 즐겨 입던 옷차림...브리가 그 옷차림을 한다는 사실이 왠지 화가 났다. 이런 것이 집착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어떻게 브리가 그녀가 좋아하던 옷차림을...만약 장난 이라면 너무 악날하다.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척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그..냥, 어..제 옷가게에서...제일...예뻐보이는....흑흑...."
브리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공포에 온몸을 떨며 울고 있는 모습...화가났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꼈다. 그리고 돌아오는 이성..내가 왜 브리에게...이 옷차림을 그녀만 하고 있을 것이란 법은 없었는데. 위키 때문에 예민해 졌기 때문일까....난 칼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칼이 목에서 떨어지자 브리역시 바닥에 주저 앉아 큰소리를 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브리, 내가 잠시착각을 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아...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브리가 그녀가 그 옷차림을 즐겨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리가 없는데... 도대체 내가...왜 그랬을까? 브리는 내가 말한 후에도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지낸지 이틀 밖에 안되었지만 브리가 나를 향해 나쁜 의도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는데... 아직 악마였을 때의 성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에...내가...
난 그렇게 한참동안 울고 있는 브리를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달래야한다. 내 잘못이 아니라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서 였으니...브리의 마음을 아무래도 내가 풀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브리는 자기가 소멸될 것을 각오하고 나를 향해 와줬었는데...난 그런 천사를 울리고나 있고...내 자신이 한심해 지는 것 같다. 미안함이란...인간의 감정, 전에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인간에 적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는 나에게 인간의 마음까지 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 맛있는 것 사줄께. 계속 울면 못난 천사가 되버린단다."
목소리를 되도록 부드럽게 해서 이 상황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말투를 사용했다. 갈수록 보모역할을 하게 되는 듯한...보통 인간을 유혹할 때도 이런 말투를 사용한일이 거의 없는데, 모두 오해를 한 내 잘못이니...내말을 들은 브리가 자신의 반짝거리는 눈물로 얼굴가득 범벅이 되어, 날 쳐다보았다.
"정말 맛있는거 사주실꺼에요? 베른씨."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린애들을 달래는 방법이 브리에게는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는지...하긴 천사들의 나이로 볼 때, 아직 브리는 어린 나이일 테니까..
난 옷자락의 깨끗한 부분으로 브리의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별로 체질에 맞지는 않았지만, 왠지 브리에게서 그녀의 모습이 생각이 나, 마음아파 하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그녀역시 쉽게 상처를 받고 했었는데...브리는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브리의 주위에 흰빛 기운이 감싸더니, 브리의 옷차림이 연녹빛의 여행복으로 바꼈다. 내가 그 옷차림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싫어하지는 않는데...너무나도 좋아하던 옷차림이 었기 때문에...그랬었는데..하지만 난 말을 하지 않았다. 또다른 안도감과 미안함 때문에.. 수호천사라고해도 내 마음 속까지 읽지는 못하는 것이구나. 휴...역시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했던 것 같다.
"식당에 가자. 브리. 인간들에게도 네 모습일 보일테니, 식당에서 먹어도 별 문제는 없겠지."
그런데 내가 밖으로 나온 뒤에 갑자기 쿵 소리가 난 후 한참동안 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난 혹시나 해서 방안으로 다시 들어가니, 브리가 벽 근처에서 뒤로 넘어져 있었다. 역시...평소처럼 벽을 그냥 통과하려고 하다가 벽에 충돌을 한 것 같다. 브리는 이마를 벽에박은 듯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난 이번에도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브리, 인간들의 제약을 받으면 문으로 지나가야지, 평소처럼 그냥 통과할 수는 없어."
"네..."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일어나는 브리, 난 브리의 한손을 잡은 뒤에 걸어갔다. 왠지 안심이 되지 않아서...정말 이런 천사가 어떻게 수석졸업을 할 수 있었는지, 수호천사학교라는 곳을 한번 들려보고 싶은 생각이 다시한번 간절히 들었다. 브리는 여전히 한 손으로 이마를 비비고 있었다. 아프긴 아팠나보군, 보통 천사들은 인간들이 느끼는 통증과 같은 것을 느끼지 않지만, 브리가 인간과 비슷한 제약을 받는 다면, 통증을 느낄만도 했다.
"그런식으로 아파보는 것은 처음이겠군. 브리."
이마를 열심히 문지르고 있던 브리는 나를 쳐다보더니 이마를 문지르는 것을 멈추고 말을 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베른씨? 그런데 이 느낌이 사람들이 아프다고하는 느낌인가요? 훙..."
확실히 힘을 잃은 타락천사들이 인간으로 사는 경우보다는 악마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들에게는 인간처럼 힘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높았다. 대부분의 타락 천사들이 벌을 받아 천사의 권능을 잃게 되므로...그리고 어떻게 보면 악마들보다 인간들의 생활을 잘 모를테니까...내가 며칠간 느끼고 있는 점이었지만 인간으로써의 삶에선 좋은쪽보다 안좋은 쪽의 느낌이 마음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와는 반대로 천사들은 부정적인 성향의 느낌에 대해서는 그다지 않고 있지 못했을테니까...그들에게 찾아오는 그런 감정들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긴, 악마왕 사탄도 예전엔 천사였다고 했었지...그의 검은빛 깃털 날개, 천사들의 그것과 색깔만 다를 뿐, 같았었다.
브리의 손을 잡고 여관 아래층의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는 브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브리도 계단에서는 날아서 움직였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기 때문에...역시 예상했던 대로 내려 오는 도중에 브리는 몇번이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내손에 잡혀 넘어지지 않은 뒤, 날 향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브리. 이 천사에 대해서 느껴지는 감정은 정말 무엇이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짐이라 생각했던 처음의 브리에 대한 감정과는 다르게 미안함과 고마움이란 느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잠이 들었던 동안 벌써 저녁 무렵이 된 것일까? 여관의 1층으로 내려가니, 음식냄새와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음식, 맛있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지만 며칠간 먹다보니, 그런데로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하긴, 악마였었을 때도 그다지 좋아하던 악마의 음식은 없었다. 죽지 않기 위해 먹었던 것 뿐이었으니. 인육...타락한 영혼...그리고 피들
어떤 악마 녀석들은 광적으로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먹는데 집착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위키가 이 마을에 저질렀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난 왠지 몸에 피를 묻히는게 싫었다. 그리고 그렇게 피를 뒤집어쓰는 악마들이 추하게 느껴졌다면 내가 비정상인 것인지...하긴 그러니까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난 브리를 데리고 북적북적한 식당 한구석에 빈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조금 무리를 해서 그런지 익숙치 않은 배고프다는 느낌 때문에 참기가 힘들었다. 휴...인간이란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제약을 많이 받는지...수면욕, 식욕...성적 쾌락이야 악마였을 때 질리도록 경험한 까닭에 그다지 집착은 없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자 이십대 중반쯤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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