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의 얼굴이 새파랬다. 입가엔 거품이 잔뜩 쏟아져 나오고 있었
다.
“아아. 진짜 드러...”
라던 인플루, 쿠마린은 그를 째려본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그가
비굴하게 변명하듯 말했다.
“남자란 것이 더...러워 보이는 건 딱 질색입니다. 제 신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마린은 뭔가 맘에 안 드는지 한 번 더 인플
루의 낯짝을 쳐다보던 찰나, 인플루는 ‘아 참참, 알았다고요.’라는
듯 고갯짓과 함께 한 마디 더 중얼댔다.
“빡빡머리도 싫어해요! 정말로 혐오스러워요! 대체 왜 머릴 민 건
지...!”
“그게- 밀고 싶어 민 게 아닐 텐데...”
아니, 이런 말이 아니지! 인플루의 페이스에 휘말려선 안 되는
데...!
쿠마린의 고민도 모른 채, 인플루의 호기심이 발동해버린 모양이
다. 무척 밝고 명랑한 인상으로 뭔가 묘한 망상을 곁들이기 시작
하는 그였다.
“그럼, 원래부터 태초부터 민둥산이었단 겁니까!? 그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장님이셨던...가요?”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또 외모적인 결함이라도? 아, 아닙니다. 입 다물게요.”
좀 더 심오하게 그를 째려보던 쿠마린의 모습에 살짝 웃음 지으며
입을 다물려하자, 그것도 자신이 바란 상황이 아니라는 듯 쿠마린
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한다.
“그것보다 이게 무슨 일인지가 더 궁금해야하는 거 아닌가? 인.플.
루?”
“아.... 뭐 대충 보니 죽진 않았네요. 살아있어요.”
심드렁한 그의 말투 및 그의 표정에서 드러난 감정은 마치 이장이
왜 살아있는 건가에 더 의구심을 가진 듯했기에 쿠마린은 정말이
지 이 인플루라는 작자에 대해 나중에 다시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
각했다.
머리는 좋은 녀석인데 말이지... 정신 상태가 몇 %... 살짝...
“진짜..., 아니다. 말을 말자.”
\
그 후 머지않아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목 놓아 우는 이는 아
무도 없었지만 웅성웅성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어디서 그랬답띠까?”
-“언제 목격을 하신 겁니까?”
-“거긴 왜 있었죠?”
-“대체 당신들 정체가 뭡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나- 참 믿을 수가 없군요! 말도
안 됩니다! 당신들 알리바이는 전혀 없습니다. 서로 감싸줄 생각일
랑 마십시오. 착하디 착한... 이라기에 좀 약간은 약은 이장이지만
우리의 소중...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의 내기 바둑 친구입니다.
그것도 매번 지고 패배감에 젖어서 말은 좀 고약하게 하긴 했지
만...! 아 이거 전번에 나보고 한 수 물러달래면서 안 물러줬더니
쪼잔 뭐시고 그랬였는데... 아 좀 화나네 이거...! 아 뭐, 어쨌든 내
기엔 항상 제가 이기는... 그런! 아니... 그게 아니라, 어째서 당신
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겁니까?”
이런저런 궁시렁 궁시렁~ 쓸데없는 말을 한 사람에게서 듣고 있
을 뿐인 두 명이었다. 인플루와 쿠마린은 그냥 기가 찼다. 현재 이
집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꽉 차서 이것저것 자기네들이 들고 온
간식을 먹으며 이야길 듣고 있었는데, 그 말을 이어가던 한 사람
은, 의사이며 이장의 친구 ‘데릭’이었고, 이장은 그냥 이불만 대충
덮어놓은 폼이 이미 사망 선고한 이후 새하얀 천을 전신에 덮어두
는 것과 같아 보였다.
“다들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니, 결국은... 당사자가 깨어나 봐야
범인을 알 수 있겠군요.”
이렇게 사건 놀이가 더 좋은 듯 했다. 상대해봐야 귀찮았던 쿠마
린은 그렇다 치고 인플루는 언제든 데릭의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
오는 수다의 홍수 속에서 분명! 끼어들 여지가 있었음에도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때가 되었던 걸까? 잠시 시
간을 재던 그는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요. 데릭씨, 일단은 환자를 먼저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요?”
“음, 뭐- 하긴!”
척 뒤돌아서 본분을 지키려던, 데릭은 양손엔 딱 달라붙는 라텍스
반투명 장갑을 끼고 마스크 장비를 하는 등 철저한 모습을 보였지
만, 그 걸음걸이의 느릿함은 마치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는 사람
처럼 귀찮음이 마구마구 묻어나왔다. 결국엔 머지않아 이장의 곁
에 도착하긴 했다. 그는 이장의 눈을 까뒤집어 안구를 자세히 들
여다본다던가 입을 슬쩍 벌려 본다던가 손 발 목 등을 만져본다던
가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돌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심각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의 표정 무척이나 침통 그 자체였다.
“가만...! 당했군요. 그 ‘녀석’에게...”
주변을 뒤흔드는 수군거림에, 데릭 의사왈,
“바다의 괴수 ‘물탄이’...! 그 녀석이 바로 범인입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큰 요동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오오. 그 물탄이!! (2011/6/27)
-드디어 그 계절이 돌아온 건가...! 이런!
사람들의 광경은 제각각이었다. 심하게 두렵다는 부류도 있지만,
심하게 기대된다는 열망에 들뜬 모습도 보였다. 정말이지 이상한
동네가 아닐 수 없었다. 분명히 괴수라고 불리는 무엇이었고, 그렇
다면 좀 더 실망&절망에 찬 모습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 말에 흥이 겨운 것은 오랜만에 지루함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란
표정의 의욕에 찬 1인 그녀가 있었다. 쿠마린은 벌떡 일어나서 한
사람의 멱살을 움켜쥐고 말았다. 데릭, 그 한 사람을 말이다.
“당신, 이 소규모 마을에서 유일한 ‘의사’같은데, 제법 많은 걸 알
고 있는 모양이야?”(2011/6/30)
\
어제도 훔쳤고, 오늘도 훔치고, 내일도 훔칠 것이고, 모레도 훔칠
것이다.
나는 생존할 것이다. 나의 동생도 물론 생존할 것이다. 우린 살아
야 남아야 했다.
그때의 나는 가진 능력이나 재주 따위가 아무것도 없어서 멋진 미
소도 지을 여유도 없으며, 타인에게 호의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예의가 바르지도 못했다. 단지 행복한 그들이 밉고 한없이 미울
뿐이었다.
“오빠. 그럼 안 돼. 이건 나쁜 짓이잖아.”
그때의 동생은 내게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
지 못했다. 지금껏 조금씩 해왔던 거짓말이 탄로 나자, 나는 동생
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말까지 듣고 있
었다.
“이럴 작정은 아니었어. 하지만 죄송하지도 않아. 우린 단지 배가
고플 뿐이잖아?”
때마침 동생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얌전히~ 교양 있게 들여
오고 있었고, 나는 조금은 미소를 지어 동생의 무안함을 날려버리
며, 오늘 한탕 한 것 중에 제일로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하나 들
어 잘 닦아서 동생에게 건넸다.
“자아. 어서 들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야. 단지 배가
고팠던 거잖아?”
“으응. 하지만...!”
대응할 답을 찾지 못하고 또 다시 들려오는 세이토의 뱃속에서의
꼬르륵..., 이내 결심을 한 듯 세이토는 리이토의 손에 들려 있던
사과를 받아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란 심정으로 입을 열고 사과
를 베어 먹던 동생의 그 모습에 어느 때보다도 온화한 미소를 짓
는 리이토 역시 사과를 스윽 옷에 닦아내고는 입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
사각. 사각. 사각.
우물우물...
“어때? 맛있지? 세이토?”
오랜만에 먹어본 과실 맛은, 그 향기로운 달콤함은 이 세상 무엇
보다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비록 훔친 것이었지만 말이다. 오빠가 나를 위해서 죄를 짓고 있
는 것이 한편으론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오늘 이 순간만은 너
무도 달콤한 유혹이라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내심 스스
로도 합리화 하고 말았던 거다.
“으응. 최고야. 제일... 세상 최강으로... 맛있어.”
그렇게 활짝 웃음 짓는 세이토였다.
\
역시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감히 누군가의 것을 탐내다니,
감히 빼앗다니,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상황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열심히 돈을 벌려고, 심부름 삼아 일했던 식당이라든지 신문배달
술집 종업원 노릇 등등,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다들 일한 만큼 충
분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 늘 모자라도 한참은 부족한 임금과 심
할 때는 오히려 임금 대신 욕설을 실컷 듣는다든지 몰매 따위를
맞아야만 했다. 정말이지 억울하고 원통하고 참을 수가 없는 힘든
일들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고개 길 마차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그 이후 3
개월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다. 그리고 너무 심할 때는 미행을 해
서 집을 알아낸 술집 어른들 때문에 하마터면 세이토를 빼앗길 번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한다거나 내 머릿속
회상으로 되풀이해 그려내기도 생각하기도 싫다. 그럴 때마다 너
무도 고통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서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랬다. 상황은 변했다. 우연히 누군가 흘리고 간 종이봉투를 주인
을 찾아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었고,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보
이지 않고, 그 종이봉투 안엔 먹을 것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이 눈
이 띄었다.
각종 과일이랑 고기, 야채, 약간의 군것질 거리 등등이 들어 있었
다. 요즘은 통 먹어보지도 못한 고기, 세이토에게 갖다 주면 요리
해주면 정말 좋아할 텐데..., 머릿속은 그렇게 한차례 기나긴 행복
함으로 가득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현실 속에선 이런 일은 단지 우연일 뿐, 절대로 두 번 다시 일어
나지 않는다. 두 번씩이나 실수를 할 멍청한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번 맛본 것이 다음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니,
좀 더 치밀하고 계획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비롯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녀석들을 모아 한 팀을 이루었다.
그러던 와중, 다른 이들은 망을 보거나 주변에 시선을 분산시키는
등 각자 임무를 맡아서 하고 있을 때, 그 목표물인 1인의 남성에
게로 날쌘 손을 뻗쳤다.
그 남성은 꽤 삐쩍 마른 몸에 키는 보통 정도며, 검푸른 망토를
온몸에 두르고 두 손엔 묵직한 뭔가를 검은 봉투에 담은 듯 그 봉
투는 제법 추욱 늘어져 보였다. 지금 노리는 것은 그 밋밋한 옷차
림새였지만 망토 사이로 보이는 허리춤에 대롱대롱 흔들리는 금으
로 번쩍거리는 회중시계였다.
제법 돈이 나갈 듯 보이는 파란 보석마저 박혀 있어 무척 탐이 났
다. 그렇게 뻗친 손이 쉽사리 회중시계를 잡고 놀라운 나만의 기
술로 흐르듯이 그를 지나쳐 갈 때쯤, 한줄기 섬뜩한 감각이 뒤편
에서 솟아나기 시작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는 사이, 동시
에 뜀박질이 시작되었건만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느릿해졌고, 그
왜소한 사내의 제 3의 손이 손목이 팔이 이상하게 늘어나서 막 회
중시계를 회수한 내 손목을 확 낚아챘다.
소름이 순식간에 전신에 퍼졌다!
마치 그 이상한 제 3의 손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듯했다. 무
척이나 두렵고도 괴이하고 거친 음성이었다.
“이 녀석! ‘크로센’의 이름으로 널 저주해주마.”
이내 그 낌새를 눈여겨보고 있던 다른 일행들이 다가오기 시작했
고, 요런 저런 방해공작을 벌였고,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듯, 그 사
람에게서 간신히 떠나왔다. 심장이 너무 세차게 뛰었다. 곤두박질
치는 듯이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날뛰는 심장의 통증이 느껴졌
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머리까지 아찔해지고 순식간에 어지러워
졌다. 한동안 그 회중시계가 너무 너무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그 자에게서 벗어나 어느 골목에 이르렀을 때, 나를 도와줬
던 일행 몇몇 중 한 명이 나의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들어 있었다. 그가 너무 심하게 팔을 잡았... 아니다. 팔이 아니
라 잡힌 건 내 ‘손목’이었을 텐데!
“뭐- 뭐지? 왜 멍들었지?”
그렇게 인식한 순간, 그저 푸르스름하던 멍 부분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서 무슨 묘한 글귀니 문양을 그려대고 있었는데, 신기하
고 두려운 그 빠른 흐름을 지켜보던 나와 다른 이들, 내 오른쪽
팔에 동전 사이즈만한 줄이 끄어지며 살짝 따끔한 기분에 눈을 찌
푸릴 때쯤, 그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내 팔에 생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까맣던
눈동자는 나를 보며 미소 짓는 듯이 사악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통증은 없었지만, 심적으론 무척이나 심한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나, 리이토다.
\
잠깐 잠이 든 것인지 소파 위에서 잠이 깬 류마는 막 눈을 비비며
꿈속의 ‘리이토’때문인지 자신의 오른쪽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
말이지 다행이게도 그곳엔 ‘눈동자’는 없었다. 속으로 오싹해지던
그였다.
[20110715그러니까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방황하고 절망하고 또 다시 희망을 갖는 일을 반복하고 있네요.
언제쯤 원하는 뭔가를 이 손에 움켜쥘 수 있을는지, 애초에 원하는 건 뭐였는지, 전생에도 그걸 가졌는지, 어쨌는지,
이런저런 망상을... , 간만에 또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
“아아. 진짜 드러...”
라던 인플루, 쿠마린은 그를 째려본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그가
비굴하게 변명하듯 말했다.
“남자란 것이 더...러워 보이는 건 딱 질색입니다. 제 신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마린은 뭔가 맘에 안 드는지 한 번 더 인플
루의 낯짝을 쳐다보던 찰나, 인플루는 ‘아 참참, 알았다고요.’라는
듯 고갯짓과 함께 한 마디 더 중얼댔다.
“빡빡머리도 싫어해요! 정말로 혐오스러워요! 대체 왜 머릴 민 건
지...!”
“그게- 밀고 싶어 민 게 아닐 텐데...”
아니, 이런 말이 아니지! 인플루의 페이스에 휘말려선 안 되는
데...!
쿠마린의 고민도 모른 채, 인플루의 호기심이 발동해버린 모양이
다. 무척 밝고 명랑한 인상으로 뭔가 묘한 망상을 곁들이기 시작
하는 그였다.
“그럼, 원래부터 태초부터 민둥산이었단 겁니까!? 그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장님이셨던...가요?”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또 외모적인 결함이라도? 아, 아닙니다. 입 다물게요.”
좀 더 심오하게 그를 째려보던 쿠마린의 모습에 살짝 웃음 지으며
입을 다물려하자, 그것도 자신이 바란 상황이 아니라는 듯 쿠마린
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한다.
“그것보다 이게 무슨 일인지가 더 궁금해야하는 거 아닌가? 인.플.
루?”
“아.... 뭐 대충 보니 죽진 않았네요. 살아있어요.”
심드렁한 그의 말투 및 그의 표정에서 드러난 감정은 마치 이장이
왜 살아있는 건가에 더 의구심을 가진 듯했기에 쿠마린은 정말이
지 이 인플루라는 작자에 대해 나중에 다시 검토해 봐야겠다고 생
각했다.
머리는 좋은 녀석인데 말이지... 정신 상태가 몇 %... 살짝...
“진짜..., 아니다. 말을 말자.”
\
그 후 머지않아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목 놓아 우는 이는 아
무도 없었지만 웅성웅성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어디서 그랬답띠까?”
-“언제 목격을 하신 겁니까?”
-“거긴 왜 있었죠?”
-“대체 당신들 정체가 뭡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나- 참 믿을 수가 없군요! 말도
안 됩니다! 당신들 알리바이는 전혀 없습니다. 서로 감싸줄 생각일
랑 마십시오. 착하디 착한... 이라기에 좀 약간은 약은 이장이지만
우리의 소중...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의 내기 바둑 친구입니다.
그것도 매번 지고 패배감에 젖어서 말은 좀 고약하게 하긴 했지
만...! 아 이거 전번에 나보고 한 수 물러달래면서 안 물러줬더니
쪼잔 뭐시고 그랬였는데... 아 좀 화나네 이거...! 아 뭐, 어쨌든 내
기엔 항상 제가 이기는... 그런! 아니... 그게 아니라, 어째서 당신
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겁니까?”
이런저런 궁시렁 궁시렁~ 쓸데없는 말을 한 사람에게서 듣고 있
을 뿐인 두 명이었다. 인플루와 쿠마린은 그냥 기가 찼다. 현재 이
집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꽉 차서 이것저것 자기네들이 들고 온
간식을 먹으며 이야길 듣고 있었는데, 그 말을 이어가던 한 사람
은, 의사이며 이장의 친구 ‘데릭’이었고, 이장은 그냥 이불만 대충
덮어놓은 폼이 이미 사망 선고한 이후 새하얀 천을 전신에 덮어두
는 것과 같아 보였다.
“다들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니, 결국은... 당사자가 깨어나 봐야
범인을 알 수 있겠군요.”
이렇게 사건 놀이가 더 좋은 듯 했다. 상대해봐야 귀찮았던 쿠마
린은 그렇다 치고 인플루는 언제든 데릭의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
오는 수다의 홍수 속에서 분명! 끼어들 여지가 있었음에도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때가 되었던 걸까? 잠시 시
간을 재던 그는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요. 데릭씨, 일단은 환자를 먼저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요?”
“음, 뭐- 하긴!”
척 뒤돌아서 본분을 지키려던, 데릭은 양손엔 딱 달라붙는 라텍스
반투명 장갑을 끼고 마스크 장비를 하는 등 철저한 모습을 보였지
만, 그 걸음걸이의 느릿함은 마치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는 사람
처럼 귀찮음이 마구마구 묻어나왔다. 결국엔 머지않아 이장의 곁
에 도착하긴 했다. 그는 이장의 눈을 까뒤집어 안구를 자세히 들
여다본다던가 입을 슬쩍 벌려 본다던가 손 발 목 등을 만져본다던
가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돌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심각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의 표정 무척이나 침통 그 자체였다.
“가만...! 당했군요. 그 ‘녀석’에게...”
주변을 뒤흔드는 수군거림에, 데릭 의사왈,
“바다의 괴수 ‘물탄이’...! 그 녀석이 바로 범인입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큰 요동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오오. 그 물탄이!! (2011/6/27)
-드디어 그 계절이 돌아온 건가...! 이런!
사람들의 광경은 제각각이었다. 심하게 두렵다는 부류도 있지만,
심하게 기대된다는 열망에 들뜬 모습도 보였다. 정말이지 이상한
동네가 아닐 수 없었다. 분명히 괴수라고 불리는 무엇이었고, 그렇
다면 좀 더 실망&절망에 찬 모습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 말에 흥이 겨운 것은 오랜만에 지루함에서 벗어나서 다행이란
표정의 의욕에 찬 1인 그녀가 있었다. 쿠마린은 벌떡 일어나서 한
사람의 멱살을 움켜쥐고 말았다. 데릭, 그 한 사람을 말이다.
“당신, 이 소규모 마을에서 유일한 ‘의사’같은데, 제법 많은 걸 알
고 있는 모양이야?”(2011/6/30)
\
어제도 훔쳤고, 오늘도 훔치고, 내일도 훔칠 것이고, 모레도 훔칠
것이다.
나는 생존할 것이다. 나의 동생도 물론 생존할 것이다. 우린 살아
야 남아야 했다.
그때의 나는 가진 능력이나 재주 따위가 아무것도 없어서 멋진 미
소도 지을 여유도 없으며, 타인에게 호의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예의가 바르지도 못했다. 단지 행복한 그들이 밉고 한없이 미울
뿐이었다.
“오빠. 그럼 안 돼. 이건 나쁜 짓이잖아.”
그때의 동생은 내게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
지 못했다. 지금껏 조금씩 해왔던 거짓말이 탄로 나자, 나는 동생
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말까지 듣고 있
었다.
“이럴 작정은 아니었어. 하지만 죄송하지도 않아. 우린 단지 배가
고플 뿐이잖아?”
때마침 동생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얌전히~ 교양 있게 들여
오고 있었고, 나는 조금은 미소를 지어 동생의 무안함을 날려버리
며, 오늘 한탕 한 것 중에 제일로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하나 들
어 잘 닦아서 동생에게 건넸다.
“자아. 어서 들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야. 단지 배가
고팠던 거잖아?”
“으응. 하지만...!”
대응할 답을 찾지 못하고 또 다시 들려오는 세이토의 뱃속에서의
꼬르륵..., 이내 결심을 한 듯 세이토는 리이토의 손에 들려 있던
사과를 받아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란 심정으로 입을 열고 사과
를 베어 먹던 동생의 그 모습에 어느 때보다도 온화한 미소를 짓
는 리이토 역시 사과를 스윽 옷에 닦아내고는 입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
사각. 사각. 사각.
우물우물...
“어때? 맛있지? 세이토?”
오랜만에 먹어본 과실 맛은, 그 향기로운 달콤함은 이 세상 무엇
보다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비록 훔친 것이었지만 말이다. 오빠가 나를 위해서 죄를 짓고 있
는 것이 한편으론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오늘 이 순간만은 너
무도 달콤한 유혹이라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내심 스스
로도 합리화 하고 말았던 거다.
“으응. 최고야. 제일... 세상 최강으로... 맛있어.”
그렇게 활짝 웃음 짓는 세이토였다.
\
역시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감히 누군가의 것을 탐내다니,
감히 빼앗다니,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상황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열심히 돈을 벌려고, 심부름 삼아 일했던 식당이라든지 신문배달
술집 종업원 노릇 등등,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다들 일한 만큼 충
분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 늘 모자라도 한참은 부족한 임금과 심
할 때는 오히려 임금 대신 욕설을 실컷 듣는다든지 몰매 따위를
맞아야만 했다. 정말이지 억울하고 원통하고 참을 수가 없는 힘든
일들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고개 길 마차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 그 이후 3
개월에 걸쳐 일어난 일들이다. 그리고 너무 심할 때는 미행을 해
서 집을 알아낸 술집 어른들 때문에 하마터면 세이토를 빼앗길 번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한다거나 내 머릿속
회상으로 되풀이해 그려내기도 생각하기도 싫다. 그럴 때마다 너
무도 고통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서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랬다. 상황은 변했다. 우연히 누군가 흘리고 간 종이봉투를 주인
을 찾아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었고,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보
이지 않고, 그 종이봉투 안엔 먹을 것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이 눈
이 띄었다.
각종 과일이랑 고기, 야채, 약간의 군것질 거리 등등이 들어 있었
다. 요즘은 통 먹어보지도 못한 고기, 세이토에게 갖다 주면 요리
해주면 정말 좋아할 텐데..., 머릿속은 그렇게 한차례 기나긴 행복
함으로 가득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현실 속에선 이런 일은 단지 우연일 뿐, 절대로 두 번 다시 일어
나지 않는다. 두 번씩이나 실수를 할 멍청한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번 맛본 것이 다음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니,
좀 더 치밀하고 계획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비롯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녀석들을 모아 한 팀을 이루었다.
그러던 와중, 다른 이들은 망을 보거나 주변에 시선을 분산시키는
등 각자 임무를 맡아서 하고 있을 때, 그 목표물인 1인의 남성에
게로 날쌘 손을 뻗쳤다.
그 남성은 꽤 삐쩍 마른 몸에 키는 보통 정도며, 검푸른 망토를
온몸에 두르고 두 손엔 묵직한 뭔가를 검은 봉투에 담은 듯 그 봉
투는 제법 추욱 늘어져 보였다. 지금 노리는 것은 그 밋밋한 옷차
림새였지만 망토 사이로 보이는 허리춤에 대롱대롱 흔들리는 금으
로 번쩍거리는 회중시계였다.
제법 돈이 나갈 듯 보이는 파란 보석마저 박혀 있어 무척 탐이 났
다. 그렇게 뻗친 손이 쉽사리 회중시계를 잡고 놀라운 나만의 기
술로 흐르듯이 그를 지나쳐 갈 때쯤, 한줄기 섬뜩한 감각이 뒤편
에서 솟아나기 시작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는 사이, 동시
에 뜀박질이 시작되었건만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느릿해졌고, 그
왜소한 사내의 제 3의 손이 손목이 팔이 이상하게 늘어나서 막 회
중시계를 회수한 내 손목을 확 낚아챘다.
소름이 순식간에 전신에 퍼졌다!
마치 그 이상한 제 3의 손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듯했다. 무
척이나 두렵고도 괴이하고 거친 음성이었다.
“이 녀석! ‘크로센’의 이름으로 널 저주해주마.”
이내 그 낌새를 눈여겨보고 있던 다른 일행들이 다가오기 시작했
고, 요런 저런 방해공작을 벌였고, 수많은 인파에 떠밀리듯, 그 사
람에게서 간신히 떠나왔다. 심장이 너무 세차게 뛰었다. 곤두박질
치는 듯이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날뛰는 심장의 통증이 느껴졌
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머리까지 아찔해지고 순식간에 어지러워
졌다. 한동안 그 회중시계가 너무 너무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그 자에게서 벗어나 어느 골목에 이르렀을 때, 나를 도와줬
던 일행 몇몇 중 한 명이 나의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들어 있었다. 그가 너무 심하게 팔을 잡았... 아니다. 팔이 아니
라 잡힌 건 내 ‘손목’이었을 텐데!
“뭐- 뭐지? 왜 멍들었지?”
그렇게 인식한 순간, 그저 푸르스름하던 멍 부분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서 무슨 묘한 글귀니 문양을 그려대고 있었는데, 신기하
고 두려운 그 빠른 흐름을 지켜보던 나와 다른 이들, 내 오른쪽
팔에 동전 사이즈만한 줄이 끄어지며 살짝 따끔한 기분에 눈을 찌
푸릴 때쯤, 그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내 팔에 생긴,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까맣던
눈동자는 나를 보며 미소 짓는 듯이 사악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통증은 없었지만, 심적으론 무척이나 심한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나, 리이토다.
\
잠깐 잠이 든 것인지 소파 위에서 잠이 깬 류마는 막 눈을 비비며
꿈속의 ‘리이토’때문인지 자신의 오른쪽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
말이지 다행이게도 그곳엔 ‘눈동자’는 없었다. 속으로 오싹해지던
그였다.
[20110715그러니까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방황하고 절망하고 또 다시 희망을 갖는 일을 반복하고 있네요.
언제쯤 원하는 뭔가를 이 손에 움켜쥘 수 있을는지, 애초에 원하는 건 뭐였는지, 전생에도 그걸 가졌는지, 어쨌는지,
이런저런 망상을... , 간만에 또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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