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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올라가는 비탈길 옆에는 엄청 낡은 저택하나가 서 있다. 대략 지어진지 100년이 지났다고 알려진 이 저택은 겉만 봐도 귀신이 나오는 곳인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황폐하고 낡아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옛날 이 땅은 공동묘지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주인이 그 위에 집을 지었다가 저주로 인해 집안이 폭삭 망했다는 전설까지 가지고 있어 마을 사람들이 꺼려하는 곳 제 1호였다.

그 1호 근처까지 다다른 카므샤와 다른 두 사람. 카므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덩굴과 기묘한 생명체들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저택. 물론 예전에 담력시험이나 사고 친 뒤 자주 이곳으로 도망쳐 왔었기 때문에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이런 곳에 대규모 상단을 재우다니 우리 마을 사람들 얼마나 욕을 들어먹으려고 그러는 건가요!”  

여기서 재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그래도 손님들이 묵을 곳인데 말끔히 외형이라도 정리를 해놓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먼 곳에서 온 상단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재운다는 생각에 카므샤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만약 여기서 자게 된 상단의 사람들이 이 마을은 손님들을 푸대접한다고 생각하곤 대도시나 다른 마을 들려서 ‘에텔루시아 가는 길에 헤티카튜라는 마을에 들렸는데 거의 폐허가 되기 직전의, 귀신 나올법한 집을 자라고 빌려주더라.’라고 소문을 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헤티카튜의 평판은 떨어질 것이고 그 마을 출신들은 대도시에 나가 일자리 알아보려고 해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공무원 시험이 머지않아 있는 카므샤에게 있어 그것은 치명적인 손상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 세상은 출신지의 명성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므샤의 걱정은 랏신의 말 덕분에 사라졌다.

“그 사람들이 여기 한다고 했어.”
“에? 왜요?”
“상단 사람들 모두 푸룬 작렬의 주기다보니 담력시험 하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잡은 모양이더라고. 분위기 살린다고 하나도 정리 못하게 하고.”
“......”

카므샤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때 카므샤의 옷깃이 당겨졌다. 카므샤는 흠짓 놀라며 고개를 내려다보자 아르카가 보였다. 아르카는 저택의 섬뜩한 모습에 약간 겁먹은 모양인지 움츠려드는 모습을 보였다.

“카므샤님! 무슨 일이 생기면 나 지켜주실 거죠? 네?”
“너... 동년배들 중에선 가장 강하잖아. 그런데 뭘 그리 겁먹어?”
“하, 하지만! 무, 무서운 곳에 가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달라붙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이 들어서...”
“......”

카므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중증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들어가려고요?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아직 묵을 사람들도 안 왔는데.”

질문에 동의하는지 랏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들어가도 사람들이 없으면 무단침입이 되어버려 범죄가 되고 말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오기 전에 중요한 정보를 들었지. 후후.”
“정보?”
“그래. 지금 저 멀리서 여기로 오고 있는 자들은 전부 밑의 부하들뿐! 진정한 오너. 즉, 상단의 주인은 이미 이 저택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정보를 말이야!”

자신감 넘칠 정도로 힘차게 외치는 랏신의 말에 카므샤와 아르카는 오오! 하고 굉장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솔직히 속으로는 정보 하나 말하는데 저렇게 불타오르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게다가 귀중한 물건들은 이미 저택 안에 운송되어있다더군. 밑의 부하들이 들고 오는 막대한 양의 물건들은 그다지 비싼 물건들이 아니야. 그러므로 진정 비싼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밑의 부하에게 졸라봤자 헛수고란 말이지. 상단의 주인을 공략해야 우리의 목적은 달성한다는 거지!”
“누굴 공략한다고요?”
“...에?”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카므샤 일동은 아연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웨이브 진 머리에 검은 정장, 검청색 나비 넥타이와 중절모자를 쓴, 신사의 표본과 같은 20대 후반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객관적인 입장으로 봤을 때 꽤나 미남이었다. 특히 의미심정하게 웃는 얼굴이.  

카므샤와 일행은 토끼 눈처럼 동그랗게 눈을 뜨며 뒷걸음질 쳤다. 갑작스러운 등장도 그렇지만 왠지 풍기는 분위기에 상단 사람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이 마을에 사시는 분들 같군요. 하하. 그렇게 두려워하지 마세요. 전 별로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스스로를 수상하지 않다고 단정 짓는 자체부터 별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초면부터 비아냥거릴 수는 없는 법임으로 다들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세 사람 중 먼저 입을 연건 랏신이었다.

“혹시 르코프디네 상단의 사람입니까?”

그 말에 레하드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은 그렇죠. 그런데 여러분은 누구시기에 이 저택 근처에 오신 건가요? 마을 사람들에게 이 저택은 접근금지 지역이라 들었는데말이죠.”

남자의 질문을 받자 카므샤와 일행의 대표로 랏신이 앞서 자신들을 소개하였다.

“저희는 이 마을 사람으로 전 랏신, 뒤의 애는 카므샤, 그 옆의 애는 아르카라고 합니다. 확실히 이 저택은 접근 금지 지역이긴 하지만 이번에 르코프디네 상단에서 머문다는 소리를 듣고 궁금해서 한번 놀러온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이거 참. 호기심이 왕성한 분들이군요. 하하하.”  

레하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다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레하드입니다. 성이 있긴 하지만 좀 길어서 생략하도록 하지요.”

레하드라 자기소개한 남자는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 정중한 인사에 카므샤와 일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건 그렇고 호기심으로 이 저택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물건 구경이시라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아직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거든요.”
“아... 아. 제가 이 동네 해결사를 하는데 우연찮게 귀중한 물건들은 이미 이 저택에 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 온 겁니다.”
“.....!”
“.....!”
랏신의 말에 카므샤와 아르카는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자기 말로 상단 주인을 공략한다 해놓고서 르코프디네 상단 말단일지도 모를 사람에게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게다가 비싼 물건을 대놓고 보여 달라고 하면 어쩌자는 건가. 비싼 물건일수록 보여주기 싫어할 게 틀림없는데. 저렇게 융통성이 없다니!

카므샤와 아르카가 오만 표정을 지으며 저 비유법의 비자도 모르는 사람을 속으로 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올백머리의 안경을 낀, 집사의 정석을 보여주는 정장의 남자가 나타났다. 눈매가 날카로워 매우 차가운 사람이란 분위기가 풍겼는데 그 날카로운 눈매로 레하드를 째려보자 정말 무섭게 보인다.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의 눈빛이라고나 할까.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눈빛 하나만으로도 그의 기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상단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착 했을 때 아무도 없는 것보다 한명이라도 나와 마중해주는 편이 더 보기 좋지 않습니까?‘

능청맞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자 남자는 눈썹을 까딱거렸다. 표정은 얼마 변하지 않았지만 대답에 화가 난 게 틀림 없어보였다.

“오는 걸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에 쌓인 서류들 쪽이 더 중요하다는 걸 모르십니까? 제가 중간정도 처리해 놓는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최종 결제는 레하드님의 몫입니다. 기다리는 건 저택 내의 부하들을 시켜 내보낼 터이니 들어가서 일 하십시오.”

질책어린 남자의 말에 레하드는 여전히 능글맞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알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째려보지 마십시오. 베로히임.”
“...알았으면 얼른 돌아가시지요.”

눈가를 부르르 떨며 성질 죽이듯 낮은 톤으로 베로히임이라 불린 남자가 대답하자 레하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려 카므샤와 일행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베로히임의 출현에 의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바라보았던 그들은 레하드가 자신들을 바라보자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 금방 전의 대화만으로도 레하드가 르코프디네 상단에서 꽤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임을 유추해냈기 때문이다.

베로히임은 레하드가 자신을 따라 들어가지 않고 굼뜬 기색을 보이자 인상을 찌푸리려다 레하드가 뒤에 꼬마들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꼬마들은 누구죠? 레하드님. 이 마을 아이들인가요?”
“그렇다는군요.”

짧게 대답한 레하드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유롭고 생기 찬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택에 놀러와 주시겠습니까?”
“레하드님!”

  돌발적인 초대에 베로히임은 드디어 인상을 심히 일그러트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레하드는 생각을 바꿀 맘이 없는지 여전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최종 결제는 나오기 전에 이미 끝내 놓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마을을 돌고 들어오는 상단 일원들이 들어오는 걸 맞이하여 물건 운반과 수량 확인을 하려 하였는데 부하들이 대신 해주신다 하니 저는 그냥 들어가서 티타임이나 즐기려고 합니다. 혼자서 티타임을 즐기기엔 너무 쓸쓸하니 여러분을 초대하는 겁니다. 어때요?”  
“아...”
“으음...”
“헤헤...”

레하드의 초대에 카므샤와 일행은 저마다 확실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확실히 끌리는 조건이긴 하지만 레하드의 정확한 신분도 모르는데다 옆에서 이를 갈며 허락하기만 하면 죽여 버릴 듯 사납게 노려보는 베로히임이 보였기 때문이다.

쉽게 대답을 못하는 카므샤와 일행에게 레하드는 몇 마디 덧붙였다.

“초대에 응해주시면 르코프디네 총수의 이름을 걸고 상단이 따로 보유하고 있는 귀중한 물건들을 보여주도록 하죠. 그거 보려고 상단 주인 노리신다면서요? 하핫!”
“가요!!”
“갑니다!”
“갈께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므샤와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레하드가 총수라는 말보다 귀중한 물건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넘어간 것이다. 다들 눈에서 초롱초롱한 빛이 감도는 게 정말 어린애처럼 보였다. 뭐 19살이나 먹은 랏신이 있지만 그리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그와 반대로 베로히임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재고를 바라는 마음으로 레하드에게 외쳤다.

“레하드님! 에텔루시아의 높은 귀족들에게 팔 물건을 저런 아이들에게 보여주다니요!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뭐 어떤가. 좀 보여준다고 닳을 물건들도 아닌데.”
“하지만 저 아이들이 물건을 훔쳐갈 가능성도...!”
“저 아이들이 들어와서 무슨 문제가 생길 시엔 내가 다 책임지도록 하죠. 그럼 되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상큼한 반론에 베로하임은 입을 다물었다. 책임이란 말까지 꺼낸 이상 그를 말릴 방도가 없다는 걸 베로하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진 뒤 베로하임은 냉정성을 되찾았는지 냉랭한 눈빛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니 저도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전부 레하드님이 지시게 되는 겁니다. 그 점을 명심해 주십시오.”
“그럼요. 명심, 또 명심하죠. 하하.”

베로하임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레하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카므샤와 일행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랏신은 당초의 계획이 성공했다며 콧대를 세우며 레하드의 뒤로 갔고 카므샤와 아르카는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좋은지 박수를 치며 그 뒤를 따랐다.

무심한 표정으로 레하드와 카므샤 일행을 바라보던 베로하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 거기만큼은 보지 못하게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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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진전. 와이와이! 오랜만에 올리네요.

휴우... 이 장면이 안 적어져서 어찌나 막막하던지.

어찌되었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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