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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이없는 침묵은 몇 분도 가지 못해 아르카에 의해 깨졌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경쾌한 어조로 틱테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에텔루시아로 가는 상단이 도착했단 소리를 들었는데 사실이에요?”
“상단? 아아. 관동지방인 르마즈디아(Rmazdia)에서 에텔루시아로 상당수의 물건들을 팔러 가다가 잠시 들린 르...르코프디네? 아무튼 그런 이름의 거대 상단이 있긴 하지. 그건 왜 물어보냐. 아르카?”
“아하하... 르마즈디아에는 재미있는 물건이 많다고 해서 혹~시나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르카는 구경 가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가트라의 관서지방인 에텔루시아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헤티카튜에서는 관동지방에 위치한 르마즈디아의 물건은 꽤 보기 힘들다. 물론 르마즈디아에서 전 지역을 대상으로 판매하고 있는 생필품과 기타 장신구 등등은 조그마한 상단을 통해 헤티카튜에도 유입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마을을 들린 르코프디네라는 상단은 에텔루시아를 상대로 물건을 팔러가기 때문에 싸구려 장식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값지고 멋진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사지는 못하겠지만 촌구석에서 살고 있는 애가 도시의 사치스러운 물건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라고나 할까. 아르카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호기심어린 마음에 계속 틱테오에게 보러 갈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눈빛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틱테오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매몰차게 딱 잘라 말했다.

“못 간다. 아침 수련도 아직 다 못했는데 어딜 나다니려고 그러냐?  
“에에? 혹시 아까 일 때문에 삐져서 못 가게 하는 거죠! 정말 43살이나 나이 먹어놓고 치사하게 나올 거에요?”
“어허! 내가 언제 삐졌다고 그러냐. 금방 말하지 않았니. 기사에게 삐졌다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삐졌다는 걸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주제에...”
“음? 뭐라고 했냐. 아르카?”
“아하하. 그냥 혼잣말로 구경 가게...”
“안 돼.”
“...아하하하!”

웃으며 얼버무리던 아르카는 살짝 고개를 돌려 ‘칫’ 하고 혀를 찼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절대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르카는 속으로 저 고지식하고 삐짐쟁이 아빠 같으니! 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쉬더니-

한 순간 카므샤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카므샤님. 전 카므샤님께서 절 르코프디네 상단으로 데려가 줄 것이라 믿어요. 아니. 믿습니다!”

왠지 부담될 정도로 쳐다보는 눈빛에 카므샤는 엄청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틱테오가 안 되자마자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걸까. 것보다 카므샤에게 부탁해도 틱테오가 허락해줄 리가.......

“아. 카므샤가 따라가 준다면 보내주마.”
“......”

카므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언제는 절대 허락해줄 것 같지 않더니 갑자기 말을 바꿔버리는 틱테오의 말에 당황한 것이다,

“아, 아저씨! 금방 전까진 안 보내주시려고 하더니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르코프디네 상단에 가서 세상에 대한 안목을 높이는 것도 수련의 한 가지 방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말이야. 절대 보호자로서 따라가기 싫어서 못 가게 했던 건 아니다? 아하하!”
“......”

카므샤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따라가기 귀찮아서 안 보내려던 걸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오자 바로 떠넘기는 저 뻔뻔함이 드러나는 말. 명세기 귀족이자 기사라며 떠들어대는 사람이 할 말인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인상을 쓰던 카므샤는 거절할 작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 별로 그런데 가고 싶지 않.....”
“물론 잘 안다. 네가 왜 가고 싶어 하지 않는지. 하지만 지금은 그 때랑 다르지 않냐? 설마 지금도 그때처럼 사고 칠 건 아니지?”
“저, 절대 치지 않을 거죠.”
“그럼 가도 상관없지 않냐? 나쁜 기억에 얽매어 있기만 해선 안 된다. 그런 과거일수록 훌훌 털어버려야 돼.”

틱테오의 말에 카므샤는 뭔가 말하려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과거를 털어버린다. 그 말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어려운 말이었다.

잠시동안 침묵을 지키고 무언가 골돌히 생각하는 카므샤. 그러나 그 침묵은 얼마가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듯 카므샤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녀올게요.”
“역시 그렇게 나와야지! 하핫!”

틱테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카므샤의 어깨를 두들기곤 호탕하게 웃었다. 옆에서 조심스럽게 대답을 기다리던 아르카는 카므샤가 같이 가준다는 말 한마디에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러나 카므샤는 웃지 않았다.



세계는 중앙바다를 중점으로 둥글게 배열된 대륙들- 류오스 (Luoes), 타가트라(Taghatra), 윰(Yumne), 다하브(Dahav), 토몰스(Tomols)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카므샤가 살고 있는 헤티카튜와 에텔루시아는 타가트라의 관서지방에 위치해있다. 이 지역은 수많은 가파르고 험준한 산들이 많은데 그 중앙에는 특이하게 낮은 산이나 분지들이 분포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분지에 대부분 모여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었는데 특히 에텔루시아가 들어선 장소는 뒤로 둥글게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요새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가파른 산지나 낮은 산들로 인해 큰 거래를 하러가는 대상인 같은 자들은 도저히 도보로 에텔루시아에 도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규모의 물자를 흠집하나 내지 않고 약속된 시일 내에 도착하긴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상단들 대부분 다섯 대륙을 관통하여 달리는 기차인 대륙기차에 물건들을 싣고 에텔루시아로 향한다. 기차를 타고 운송하는 비용이 꽤 많이 들지만 칼 같은 신용도와 흡집 하나 없는 물건을 위해선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르코프디네 상단의 헤티카튜 마을 방문은 이례적이었다. 소규모 상단이 에텔루시아에 가려고 헤티카튜에 들리는 일은 많은 편이지만 관동 지방인 르마즈디아에서 온다고 해도 에텔루시아로 가려면 대륙기차를 타고 왔을 것임이 틀림없는 큰 상단이 그곳으로 직행하지 않고 근처 마을인 헤티카튜에 들린 것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헤티카튜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을로 들어오는 르코프디네 상단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디서든 공격이 날아와도 막아낼 수 있게 중무장 된 용병들과 검은 색의 자동차. 수많은 물품들을 싣고 있는 수레들의 끝없는 행렬 등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저게 그 귀족들만 타고 다닐 수 있다는 자동차란 거 아니야?”
“정말? 너무 신기하게 생긴 물건이야!”

특히 기차와 함께 아주 먼 옛날 이 땅에 과학을 번창시켰던 선조들이 남긴 유산들 중 하나인 자동차를 직접 보게 되자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엄청난 갑부나 1급 공무원인 귀족들이 아니면 타고 다닐 수조차 없는 고가의 물건이어서였다.

“야아~ 역시 르코프디네 상단이야!”
“대단해! 멋져! 수레에 싣고있는 물품들도 장난 아니게 멋질 거야!”

사람들은 저마다 부러움이 섞인 환호성을 내었다.

  조용했던 마을이 오랜만에 왁자지껄 시끄러워질 무렵. 카므샤와 아르카 역시 상단을 보기 위해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으로 올라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는 것도 좋지만 탁 트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더 좋다고 판단하여서였다.

“와아~! 정말 다 보여! 멋져요!”
“이야! 특히 저 검은 색이 멋진데?”
“정말요! 저 검은 색 윤곽선이 정말 황홀할 정도에요! 그런데 저건 말을 어디다 숨겨 놨을까요? 크기를 봐선 말은 아니려나? 으음. 뭐지?”

역시 카므샤와 아르카의 시선을 끄는 것은 자동차였다. 전체적으로 검은 바탕의 각진 차체와 네 개의 바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설치된 유리.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생소하기 그지 없다. 언제나 상단이 지나가거나 높은 귀족들이 지나간다고 하면 마차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이름도 알지 못한 것을 보게 되다니. 카므샤와 아르카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먼저 올라와서 보고 있는 녀석들이 있잖아.”

갑자기 뒤에서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므샤와 아르카가 고개를 돌려보니 밤색 고수머리에 파란 셔츠를 입고 있는, 익히 아는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랏신형?”
“아아. 상단 온다고 며칠 전부터 소문났을 때 혼자 보려고 여기 점찍어 놓았는데 아쉽네. 하하.”
아쉽다는 사람 말치고는 활기차게 웃어댄 랏신은 기지개를 펴고 두 사람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곤 대뜸 두 사람 사이에 파고들어선 상단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헤에.’ 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도 자동차를 본 것이다.

“자동차잖아? 이야. 저 상단 진짜 부잔가 보네?”
“형. 저 검은 게 자동차라는 거에요?”

호기심이 동한 카므샤가 물어보자 랏신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곤 ‘에헴’ 이라고 헛기침을 했다.

“그렇지! 왜 아느냐? 이 형의 직업이 뭐냐? 바로 해결사가 아니냐? 당연히 저 정도는 알아야 해먹는 직업이지.”
“...아니 그건 좀 아닌 듯 한데.”

카므샤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한편 잠시 갑작스러운 랏신의 출현에 멍해있던 아르카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리곤 보란 듯이 카므샤의 팔에 달라붙어서는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저런 거 좀 안다고 잘난 척 하기는! 흥! 카므샤님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너보다 더 공부 많이 했다. 뭐! 그렇죠?”

정말 어린 아이답게 나온다고 해야 할까. 유치한 질투심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랏신에게 반만을 하고 매롱까지 덤으로 해주는 아르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한숨만 쉬는 카므샤와 달리 랏신은 그런 아르카가 귀여워 보였는지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자기 먹이 안 빼앗기려고 발버둥치는 강아지 같아서 귀여워! 아하하하!”
“우-씨! 뭐라는 거야! 이 아저씨는!”

랏신은 강아지 머리 만지듯 아르카의 머리를 헝클어댔다. 아르카는 그게 싫은 듯 고개를 내저으며 반항했지만 마이페이스가 강한 랏신은 반항하는 모습조차 귀여워했다. 옆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지켜보는 카므샤의 입장에선 더 큰 한숨만 나올 일이었지만 말이다.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아르카의 머리를 엉망으로 헝큰 랏신은 잠시 고개를 돌려 르코프디네 상단이 움직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하얀 이를 드러내었다.

“혹시 너희들 저거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생각 없냐? 내가 저 상단 오늘 머물 숙소를 알고 있는데 말이야. 카므샤. 아르카. 어때?”
“에? 정말요? 음. 가까이 가서 보면 저희야 좋죠. 하지만 이 동네에 저런 대규모 상단을 재워줄 숙소가 있나요?”

대략 눈 여겨 보아도 100명은 가뿐히 넘어갈 법한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과연 이 좁은 마을에 존재하는가 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카므샤. 이에 아무 걱정 없다는 듯 랏신은 검지를 어느 방향으로 향했다. 카므샤와 아르카는 무심코 그 방향을 바라보다 깨달았다는 듯 ‘아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이에 힘입어 랏신은 활기차게 입을 열었다.

“예전 어느 부자가 별장 만든다고 지었다가 파산하는 바람에 남겨진 유령의 집! 그 집이 그들의 숙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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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나왔습니다. 하하하.
당연히 자동차 초기판 형태죠. 기차도 있는데 이정도는 나와줄수 있지 않을까 싶어 넣어봅니다.

덧으로 수정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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