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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모스는 상대방이 서로의 위치를 잘 아는 상황에서 적이 함부로 자신을 쏠 수는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급히 자신이 가진 치료약과 끈 등을 동원하여 단시간에 왼팔의 응급처치를 끝냈다.

그는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를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툭, 소리와 함께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금 제자리로 떨어졌다.

"설마……"

그는 아직 멀쩡한 오른손을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는 총에 살짝 놓았다가 재빨리 떼었다.

ㅡ탕!

건너편에서 마치 전광석화와도 같은 총알이 아구모스의 손이 있던 자리로 날아와 불똥을 튀겼다.

아구모스는 상대가 단지 '움직임'이 아니라 '적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련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총을 정확한 하나의 목표물에 발사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나 숨을 내쉬는 것까지……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을 고려하고 분석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아구모스는 상당히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총을 잡고 싸우자니 상대방을 보기 위해 머리를 내놓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계속 같은 지점을 노려보며 '대기'하고 있던 적의 총과 상대방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정확히 조준을 해야 하는 아구모스의 총이 발포하는 속도는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엄폐물에서 벗어난다면, 시간은 좀 더 벌 수 있을지 몰라도 회피할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어 위험에 처하게 됨이 불 보듯 뻔했다.

아구모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상대방이 위치를 옮겼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아보는 것 뿐이었다.

그는 재빨리 소형 거울을 들어올려 그에 비친 상을 바라보았다. 적은 아구모스의 속임수에 당한 것이었다. 적은 그 거울이 아구모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쏘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대로 있군……그러나 이 방법도 두 번 통하지는 않을 테지."

그 때 아구모스에게 희망의 빛이 비치는 듯 했다. 새. 작은 새들이었다. 그들은 떼로 모여 그로부터 약 20m 정도 떨어진 키 작은 나뭇가지에서 열심히 놀고 있었다.

"기회는 오직 이 순간이다!"

아구모스는 강하게 마음을 다잡고 거칠게 내몰던 숨을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아구모스는 조심스레 나뭇가지에서 총을 끌어내렸다. 상대의 공격이 다시 날아들어왔지만, 다행히도 손가락 위를 살짝 스쳐 지나갔다. 쓰라리기는 했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새들은 자신들의 쓰임도 모른 채 끊임 없이 재잘대고 있었고 아구모스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비 오듯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냥꾼의 총구는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인지 덜덜 떨었다. 방아쇠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총알은 주인의 운명을 싣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저만치 날아갔다.

ㅡ탕, ㅡ탕, 째째짹……

총소리에 놀란 새들이 이리저리 미친 듯이 숲 속을 날아다니며 아구모스와 적 사이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아구모스는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오른쪽으로 재빨리, 최대한 빠르게 몸을 내던졌다. 새카만 새떼 사이로 날아온 적의 총알은 아구모스에게서 완벽하게 빗나갔다.

상황의 주도권은 아구모스에게로 넘어왔다. 그는 새로운 바위 엄폐물에 몸을 가리고, 이제는 거의 자신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 적을 향해 탄환을 연속 2발 발사했다.

ㅡ탕, ㅡ탕

그것은 정확한 공격을 노린 것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공포 사격과 비슷한 종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적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검은 붕대의 적은 아구모스의 예상을 깨는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흔들림이 없는 데다가 그 즉시 대응하여 총을 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총알은 아구모스에게 직접 쏘아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금 전 아구모스가 서있던 엄폐물 근처에 있던 자그마한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바위에 직접 박히지 않고, 살짝 비껴가며 튕겨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아구모스가 숨어있던 바위에서 또 한번 미끄러지며 아구모스의 면전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다행히도 총알은 아구모스의 목 오른쪽을 거의 근접해서 지나가, 뒤에 있는 나무에 박혀버렸다.

아구모스는 입이 쩍 벌어졌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라고 해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연적인 것도 아닌데다가, 두 번씩이나 총알을 튕기도록 정확히……그리고 역공을 당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그 짧은 시간 속에 계산했다는 것은 비단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총과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숙여 신체를 바위에 완전히 가렸다.

"저런 괴물 녀석은 처음인데……꽤나 힘들어지겠군."

그렇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상황이 약 이틀 간이나 지속되었다. 간간히 서로 공격을 주고 받으며 위협을 주고 있었지만 둘 다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둘은 거의 말라비틀어져 실신할 지경이었다. 그들의 시력도 흐릿해져만 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는……"

아구모스는 말할 힘도 없을 지경이었다. 상대방의 장기는 '저격'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적어도 구석에 박혀서 몰래 쏘는 것은 누구보다 잘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게다가 총 자체를 다루는 실력 또한 아주 뛰어난 것이었다. 물론, 아구모스 또한 정신을 가다듬는 다면 그 이상의 결과도 만들어내겠지만 시가지나 넓은 지역에서의 활발한 전투와 숲에서의 소극적인 전투는 그 성향이 180도 다른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아구모스가 승리할 확률이 높았겠지만 후자는 그렇지가 못했다. 다시 말해 총을 다루는 실력은 비슷했지만 상황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아구모스가 이기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꿔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의 체력은 모르고 있다. 누가 더 강인한 힘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는지는……도박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아구모스는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뻐근하고 결리는 어깨와 허리를 두드리며 살짝 일어났다.

그는 상대방이 있는 곳을 향해 총알을 날리는 즉시 온 힘을 다해 공중으로 몸을 내던졌다. 적과 처음 조우했던 상황과 같이 총알들은 또 다시 서로 부딪치며 공중에서 흩어졌다.

아구모스가 유도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대방이 또 한 발을 장전하고 있는 시간. 적은 아구모스처럼 총에 대해서는 전문가였기 때문에 약실을 개방하고 총알을 넣는 것은 번개처럼 빨랐다. 마치 누군가가 보면 연사를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도 시간은 시간이다.

아구모스는 최대한 저격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체력을 불태우며 수많은 엄폐물 사이를 지그재그로 달렸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ㅡ탕!

달렸다. 계속, 끊임없이 달렸다.

ㅡ탕!

총알은 아구모스의 머리에서 살짝 빗나가 그의 귓불을 찢고 지나갔다. 그러나 아구모스는 무시하고 계속 전력으로 질주했다.

적이 세 번째 총알을 장전하고 있는 순간, 아구모스와 그의 거리는 약 10m. 바로 코 앞이었다.

아구모스는 힘을 담은 괴성을 지르며 도약했다. 그리고, 동시에 적의 머리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이미 적의 세 번째 총알이 아구모스의 허벅지를 꿰뚫었고, 고통 속에 쓰러지며 발사한 아구모스의 총알의 궤적은 원래의 목표를 살짝 엇나가 적의 오른쪽 가슴 부분을 꿰뚫어 버렸다. 물론 죽음을 불러올만한 충격이기는 했다.

거의 빈사상태가 된 적을 향해, 아구모스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가갔다.

"이름이 뭐냐."

적은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면서도 그의 질문에 답했다.

"프……플랑크……가니메……데. 오……올빼미……라고 불리지."

"널 죽이고 가진 않겠다. 어차피 죽을 확률이 높으니, 총알을 낭비할 것 까지야 없지. 하지만 그 이름은 꼭 기억해두겠어. 나와 거의 필적할만한 상대를 만난 것은 네 녀석이 처음이니까."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유유히 숲 속을 빠져나갔다.

…………

"혹시 그 때 싸웠던 사람이 살아남았어?"

"그래. 너에게 편지를 주었던 사람이 바로 플랑크 가니메데야. 아마 나를 찾아서 혈안이 되어있는 사이에 우연히 널 보게 된 것이겠지."

"그럼 아저씨는 그 이후에도 계속 바헤스라는 사람에게 쫓기면서 살았어?"

"음……당분간은 그랬었지. 하지만 올빼미, 그러니까 플랑크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면서부터 상황이 바뀌었어."

네플레어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계속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듯이 똘망똘망한 눈초리로 아구모스를 계속 바라보았다.

"왜냐하면……그 때부터 나는 바헤스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야. 지금 생각하면 후회할 일임에 틀림없어. 그 땐 젊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했었겠지."

"그러면 플랑크는 어떻게 되었어?"

"그 녀석……끈질기게도 살아남아서 결국 바헤스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왔어. 그리고는 고향인 윰의 얄타르 산으로 돌아가서 모스트루퍼(Mosstrooper) 라는 도적떼를 만들어 그 두목이 돼버렸지. 이제 나는 오히려 플랑크에게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바헤스의 경우처럼 심하지는 않았어."

"그랬구나……그 다음은?"

"난 현상금사냥꾼 이라는 직업에 본격적으로 종사하면서 큰 돈을 벌고, 꽤나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지. 그래서 난 다시 내 고향인 엠베르카로 돌아왔어."

"거기서 뭘 했는데요?"

"여전히 현상금사냥꾼 이기는 했지. 하지만 외국에서 떠돌 때 보다는 그다지 일을 많이 맡지 않았고 많은 돈으로 평화로운 생활을 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지. 난 엠베르카의 르티아 산맥에 있는 많은 자원들을 외국에 떠넘기려는 일에 휘말리고 말았어. 사실 그건 내가 주도한 일이 아니라 플랑크가 나를 매장시키기 위해서 꾸민 계략이었지만 결국 난 거기에 말려들고 말았지 뭐냐."

"그러면 외국으로 도주했겠네요……?"

아구모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 했다.

"그래. 내가 말했던 '10년 간의 여행'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어. 물론 그 중 '5년'은 철저히 몸을 숨기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바헤스가 나에게 찾아왔어."

네플레어는 눈을 크게 해 보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헤스가요?"

"그래. 그는 나에게 의뢰 하나를 맡겼어. 과거의 나였다면 찾아온 바헤스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겠지만 이미 나에게 복수란 건 지워져 버렸고……거액으로 유혹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어."

네플레어의 눈은 말없이 그 제안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올빼미를 제거하고, 어떤 '물건'을 가져오라는 것이었어."

"그랬군요. 그런데 바헤스는 그 동안 뭘 하고 있었죠?"

"아, 그 녀석. 그 놈은 감옥을 다녀왔어. 내가 엠베르카로 돌아왔을 즈음 녀석은 여전히 그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더라고. 그러다가 우연히 범법 행위가 포착된 거지.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도 있잖니. 놈은 감옥에서 안 그래도 꽤나 좋은 사격 실력을 더 키워왔는지, 고리대금업을 청산하고 무법자 생활을 하면서 세계를 누볐어. 녀석도 꽤나 범죄의 세상에서 명망이 높아졌지. 그런데 그가 날 찾아온 거야."

"왠지……그 다음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은데요? 호크아이, 올빼미, 외눈박이 세 명이 서로 얽혀진 구성이라……큭큭큭."

아구모스는 네플레어의 예상이 정확히 맞았다는 듯이 걸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마지막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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