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후.
“휴우... 이 정도까지만 하도록 하지.”
오랜만에 땀이 날 정도로 운동한 게 기분이 좋은지 카므샤는 한결 나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비해 아르카는 바닥에 널부러진 체 거칠게 숨을 물아 쉬고 있었다. 카므샤에게 어떤 짓을 당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아르카의 생각과는 달리 몸은 금방 전 카므샤가 보여준 화려한 기술에 멋지게 당해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옆에서 아들이 당하는 모습에 환호하며 ‘처벌! 처벌! 처벌!’ 하고 외치던 틱테오는 모든 것이 종결되고 나서야 은근히 자식 걱정이 되는지 조심스럽게 아르카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주었다.
카므샤는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정신이 멍한 아르카에게 다시 한 번 주위를 주었다.
“다음부터 그런 짓 하지 마. 그럼 이거보다 더 무서운 카므샤류 특별 고문 코스 30가지를 직접 시연해주도록 하지.”
“에... 에헤헤~ 정말요? 기대할게요.”
“......”
이렇게 혼쭐이 나고도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 짓는 아르카를 보며, 이 녀석 M의 기질이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카므샤는 언짢은 듯 중얼거렸다.
이제 볼 일도 다 봤겠다. 점심시간도 가까워졌겠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판단한 카므샤는 수건을 도장 구석에 놓인 탁자에 던져놓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슬쩍 다음에 보자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머릿!”
기합 소리와 함께 카므샤에게 날아오는 목검 한자루. 카므샤는 겨우 눈치 채고 몸을 피했다. 덕분에 목검은 바닥을 치는 소리를 낼 뿐 목표한 자에게 상처 입히지 못했다.
갑자기 왠 공격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틱테오가 한 자루의 목검을 카므샤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받아든 카므샤가 의문어린 표정을 짓자 틱테오는 목검을 어깨로 끌어올리곤 입을 열었다.
“가기 전에 한판. 어떠냐.”
갑작스러운 제안에 카므샤는 좋아요. 라고 말하려다 생각을 고쳤다. 금방 전의 일로 힘을 많이 써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내일부터 기차를 타고 시험을 치러 가야했다. 더 이상 체력 낭비는 사양하고 싶기에 카므샤는 그 제안을 거절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3일 뒤에는 기차타고 시험 치러......”
“3일 뒤에 시험 치는 거랑 지금이랑 무슨 상관이냐.”
“아, 아니... 남은 시간동안 복습을 철저히 해볼까 하고...”
“...어제 아튜샤 아주머니께서 도장에 와서 한탄하시더라. 너 시험 코앞인데 공부 안하고 산에 가서 논다고.”
“......”
“다른 말은 하지 않으마. 그냥 한판만 대련하도록 하자. 아르카에게 시범 보일만한 놈이 너 밖에 없어서 그래.”
“.....”
“그만두긴 했지만 사부였던 날 봐서라도 한번만 들어주렴.”
“하아... 알았어요. 딱 한판이에요.”
틱테오의 대련신청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한 카므샤는 손에 든 목검을 바로 잡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틱테오에게 목검의 끝을 향했다. 틱테오는 이걸로 되었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똑같이 카므샤에게 목검의 끝을 향했다.
“이 도장의 주인인 틱테오 비앙트.”
“...카므샤 아르드리아.”
서로 형식적인 통명을 마친 후 두 사람의 기세는 사나워졌다. 겨우 한판의 대련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죽일 만큼의 살의를 표출한다.
자신 안의 영웅인 카므샤와 검술의 달인인 아버지. 아르카는 이 두 사람의 대련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위치에 앉아 정좌를 했다.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지났다.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는 두 사람.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침묵을 먼저 깨고 움직인 사람
은 카므샤였다.
카므샤는 틱테오의 허점을 날카롭게 찔러 들어갔다.
“좋은 공격이다! 카므샤!”
상상이상의 공격에 놀람을 금치 않으면서도 척척 막아내는 틱테오. 쏟아 붓는 장대비처럼 맹렬히 공격한 카므샤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는 얼른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순간 밑에서부터 치고 들어오는 틱테오의 목검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얼굴을 스쳤다.
“칫......!”
목검임에도 불구하고 카므샤의 뺨엔 날카로운 것에 찢긴 것 같은 상처가 생겼다.
카므샤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어 날아오는 틱테오의 목검에 숨 돌릴 틈도 없이 몸을 움직여 피했다.
틱테오의 무차별적인 공격. 그러나 그것 하나하나가 카므샤에겐 버겁기만 했다. 전력을 다해 쳐내고 반격해보지만 어깨, 팔목, 허벅지, 허리 등등 틱테오의 목검은 사나운 사자의 발톱처럼 카므샤의 전신에 상처를 입혔다.
“크으윽!”
카므샤는 신음소리를 내며 더욱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봤자 이 상황만 계속 될 뿐이었다.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은 없는 건가. 대련이란 안이한 이름의 대결이라며 외쳐 이대로 이 상황을 끝내려고 해봐도 절대 틱테오에게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삼아 시작한 사소한 대결조차 그에게 있어선 기사들이 명예를 걸고 싸우는 전쟁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이 있는 법!
카므샤가 방어에만 치중하자 틱테오는 인상을 찌푸렸다.
“4년 동안 논 티가 나는구나!”
틱테오의 호통에도 카므샤는 목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 검을 막으면서도 틱테오의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더 이상 상처가 남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저 틱테오의 어딘가에 빈틈이 생기는 것만을 기다리며 이를 악 물었다.
그렇게 얼마 지났을까? 위로 목도를 내려치기 위해 손을 위로 쳐든 틱테오의 왼쪽 허리가 비어 빈틈을 만들어진 것을 발견한 카므샤는 눈을 반짝였다.
“타핫!”
빈틈을 찾자 카므샤는 기합을 넣고는 있는 힘껏 틱테오의 목검을 쳐냈다. 그리고 바로 몸을 숙여 틱테오의 왼쪽허리에 목검을 찔러 넣었다. 그야말로 회심의 일격!
순간의 반격임에도 불구하고 틱테오는 아르카처럼 가뿐히 피했다. 그러나 카므샤는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손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목도에서 스쳤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만.”
그대로 대련은 끝이 났다. 카므샤는 갑작스럽게 끝난 대련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틱테오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카므샤를 바라보다 어느 순간 밝은 표정을 지으며 카므샤의 머리를 헝클었다.
“논 것 치고는 실력이 녹슬지 않았구나. 꽤 날카로운 일격이었어.”
마을 안에서 가장 강한 이의 칭찬에 카므샤의 표정을 밝아졌다. 그러나 이윽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틱테오는 그런 카므샤의 기분을 읽었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저 소년에게는 그 사건이 악몽처럼 느껴지는 건가...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다 얼른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애써 밝게 미소 지으며 카므샤의 등을 팡팡 소리가 날 정도로 두들겨주었다.
“자자. 잡설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어이 아르카! 이 아빠와 카므샤의 대결 어떻더냐! 굉장하지 않더냐?”
틱테오의 외침에 아르카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들고 카므샤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카므샤님! 굉장했어요! 허점을 찾아 공격하다니! 전 아빠가 한 눈 팔지 않거나 일부로가 아니면 허점도 못 찼는데! 역시 카므샤님이셔!”
자신은 무시하고 카므샤에게 꼬리치는 아들을 보고 틱테오는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카므샤에겐 수건을 준비해뒀다가 헌납하면서 아비에겐 건넬 생각도 안하는 거냐! 이 불효자식 놈! 역시 사내놈은 키워봤자 헛장 말 것이라니까. 아아... 내 인생 최고의 실패 중 하나는 아들을 낳은 걸 거다!”
“그런 걸로 삐지지 마세요!”
“하아? 내가 언제 삐졌다는 거냐? 난 그저 하나뿐인 자식이 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해본 것뿐이다. 삐졌다는 단어는 기사에겐 존재하지 않아!”
아르카의 심한 항의에 틱테오는 콧구멍을 휘비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겨우겨우 막다가 한방 스친 거 가지고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 전쟁터에서 이런 자잘한 상처로는 절대 대결의 흐름을 바꾸지 못해. 적어도 허리를 깊숙이 베었다면 몰라도. 너나 카므샤나 내가 보기엔 전부 거기서 거기야. 흥.”
“......”
“......”
이 얼마나 속 좁은 남자란 말인가. 삐졌다는 걸 온 몸으로 뿜어대며 째째한 소리를 내뱉는 틱테오의 모습에 카므샤와 아르카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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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테오를 찌질하게 만들려고 작정했습니다 ㅡ,ㅡ
고친 분량은 이 정도군요. 얼른 써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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