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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년, 5월



다시 한 번, 알스터가 들썩였다.
엘베 반 에델슈타인에 가려있던 존재, 사샤 폰 케즈만은 오랜 침묵을 깨고 그 존재를 알려왔다.
“…잘 하고 있군.”
베니토 데 솔토의 함대가 엘베에 의해 괴멸된 이후 종적을 감춘 제 1함대가 거둔 승전 소식이 들어왔다. 물론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해적으로 몰린 그들의 움직임이 정식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늦게 도착하더라도 비 공식적인 루트로 밖에 들을 수 없는 소식이지만, 아론은 의회보다 하루 빨리 그 소식을 접했고, 역시 비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아른헴의 시민들에게 그것을 알렸다.
그 결과, 알스터는 다시 한번 들썩였다.
트로이메라이의 도시 스베트라나에서 출발한 상선대의 괴멸.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던 전함대마저도 바닷속으로 가라앉혔다는 소식은, 엘베의 반란 이후 완전히 죽어있던 국립 해군의 창설 요구에 다시 불을 붙였다.
꺼져버린 파이프를 털어낸 후, 다시 담뱃잎을 채워넣는 아론의 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도록.”
문이 열렸다.
“의장께서 부르십니다.”
“흐음.”
무슨 속셈일까. 아론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짧은 시간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정리했다.
법무관 퇴임 요구는 아닐 것이다. 이미 엘베 건이 터졌을 때 시도되었고, 실패했던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커다란 충격이었다 한들 네본의 영웅이라 불렸던 자신을 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스터 내의 여론이 어쨌건 간에, 외교 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소국이라 해도, 카탈리아는 알스터에게 있어 중요한 우방국이다.
“디아만트 군.”
“예, 법무관님.”
“혹시, 에더 문제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군.”
어찌 되었건 별 상관은 없지만, 그나마 조금은 편안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법무관님.”
“무슨 일인가, 디아만트 군.”
“이번 일은 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응?”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아론을 향해, 디아만트는 가지고 온 한 장의 보고서를 내밀었다.
“…골치 아프게 됐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디아만트를 향해 손을 내저으며 발을 뗀 아론은, 걷는 도중에도 살짝 훑어 본 보고서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카이저팔츠, 슈베린과 함께 알스터의 3대 영토로 분류되는 에더. 그러나 그곳은 카이저팔츠나 슈베린과 달리 언제나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알스터의 영토이되 알스터의 영역이 아닌 곳. 그곳이 바로 에더, 사회주의자들의 영역이다.
카이저팔츠와 슈베린이라는 섬에서 밀려난 그들은 에더라는 섬에 틀어박힌 채 저항을 계속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항이 계속되었고, 결국 알스터 정부는 정규군을 보내 저항 단체를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번에 잡은 건 잔챙이였나.”
아니다.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의 현상은 그런 당연한 사실마저도 부정하고 싶게 하고 있었다.
어느새 회의장 앞까지 왔다는 것을 인식한 아론은 경비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늦었습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에델슈타인 경.”
발언대에 올라가고 있는 의원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조금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삼는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번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일라이어스 감찰관, 발언해도 좋습니다.”
발언대에 오른 의원은 의장의 허락을 받자마자 입을 열었다.
사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이미 에더의 중심도시인 에더 시(市) 마저 점령당했다는 말을 하면서, 일라이어스 감찰관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질문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에델슈타인 법무관.”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며, 아론은 입을 열었다.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소요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에더의 사회주의자들을 격파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의 수괴인 윌른을 처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어떻게 겨우 몇 년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자료를 보냈습니다만, 아직 받지 못하신 겁니까?”
“그 정도의 자료로 알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아론의 뒤에 있던 사내가 열 장 정도의 서류를 건넸다. 몇 번이나 본 것인지 벌써 너덜거리는 양피지를 뒤적이면서, 아론은 그 내용을 빠르게 읽었다.


어두운 밤중이었다. 횃불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에더의 수비병은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횃불을 들고 있는 부랑자를 발견한 그들이 부랑자를 잡아 성안으로 끌고 들어갈 때, 갑작스럽게 수십명의 사내가 갈대숲에서 튀어나왔다. 당황한 수비병들이 잡고 있던 부랑자를 놓아 둔 채 성안으로 들어가려 했디. 그러나, 이번엔 그들에게 붙잡혀 있던 부랑자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며 달려들었다.
문을 닫을 시간도 없었다. 수 십명의 사내가 달려들어 성문을 점령한다. 성벽 위에서 횃불이 오르는 것을 신호로 수 백명의 무장한 사내가 도시로 달려든다. 그들이 지른 불로 도시는 불타고, 불이 붙지 않은 건물은 약탈자들에게 침탈당했다.
항구에 몰려있던 수비군들이 성문을 향해 달려간다. 그들을 향해 돌이 날아든다. 당황한 수비군들이 멈춰 있는 사이, 항구로 들어온 몇 척의 선박에서 불꽃이 튀어오른다.
허공을 격하고 날아든 횡포에 수비군들은 전의를 잃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무장한 사내들이 달려든다. 불이 붙은 건물이 주변을 환히 밝혀, 이미 도시는 대낮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도시에서, 수비군이 숨을 수 있는 곳은 단 하나도 없다.
침입을 경고하는 종은 울리지 않는다. 이미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흩어져 있던 수비군들의 대응은 늦어졌고, 그것은 수비군의 전멸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양피지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에더가 점령당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이미 그것을 몇 차례 경험해 본 아론마저도 당황케 하고 있었다.
“전함을?”
“그렇소, 법무관.”
그제야, 아론은 회의장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에더에 처박힌 사회주의자들의 시위는 숲에서 이어지는, 그리고 간혹 도시를 공격, 점령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가끔 도시를 점령당하는 일도 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머스킷과 대포를 동원해 본격적인 공성전을 벌인 일고 있었고, 에더 전체가 점령당한 일도 있었다. 심지어 정예군을 투입하고서도 밀려나는 경우도 있었기에, 정부는 정공법이 아닌 봉쇄를 통해 에더를 되찾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긴 투쟁의 시간 동안 사회주의자들이 전함을 동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전함이라는 것은 상당한 고가의 물건이다. 그 구입 가격도 가격이지만 유지비만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꾸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선과는 달리, 적 선박의 나포가 아니면 수익을 얻을 수 없다. 설령 적 선박을 나포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 규모가 더 큰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전함이라는 것은 확실한 재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운용할 수 없다.
‘해적을 끌어들인 건가.’
그러나 해적이 사회주의자들과 손을 잡을 이유는 없다. 상하 관계를 엄격하게 따져야만 하는 해적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손을 잡기가 어렵다. 아니, 그것 자체가 서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기에, 그 두 집단이 손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걸까.
“이해 하셨습니까, 에델슈타인 경?”
반대편에 앉아있는 의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한 아론은 의자에 몸을 묻었다.
회의가 다시 진행되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아있기 때문인지 과격한 태도를 보이는 의원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무거웠다. 아마도, 처음 접하는 사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정확한 수는 예측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두 척 이상의 프리깃이 포함 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슬루프나 무장을 갖춘 브리그(brig : 상선 용도의 횡범장치의 2본 마스트선.) 들은 적어도 열 척은 넘는다고 봐야 할 겁니다.”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다. 프리깃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보조할 선박이 항상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드문 예지만, 전열함이나 프리깃만으로 이루어진 함대도 있다.
그러나 그런 예측이 잘못 된 것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의 전력을 최대한으로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항구 봉쇄도 불가능하다는 뜻입니까.”
“의미가 없지요. 30년 전엔 그들에게 함대가 없었잖습니까.”
그렇다.
척박한 땅인 에더는 자급자족마저 벅차다. 아니, 딱히 척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 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은 간신히 자급이 가능할 정도다.
개척을 하면 된다는 말은, 그 지역의 생태를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land of Oenothera odorata. 통칭 달맞이꽃의 땅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대륙 최고의 금지(禁地)라면, 에더는 알스터 최고의 금지(禁地)다.
초기 시대엔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란 인(人)들이 알스터에 발을 들여놓은지 300년이 지나도록 인간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던 땅이 비로소 그 문을 연 것은 영웅왕 ‘에를’ 의 시대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러나 그 이후 4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알스터가 차지한 에더의 땅은 그 시대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들의 유입으로 인구는 계속 늘었지만 인간의 영역이 늘어나는 것은 허용하지 않은 에더의 자연은, 에더의 주민이 기아에 빠지는 것을 조장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식량을 조달할 수 있다면 곤란해집니다.”
“하지만, 함대를 동원하려 해도 요청에 응할 가문이 몇이나 있을 것 같습니까.”
“이러다 에더가 넘어가는 거 아닙니까?”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소!”
“하지만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렇다 해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막혔던 말문이 열렸는지 곳곳에서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곤란하다. 해상봉쇄를 하려 해도 함선을 잃을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함을 지원할 가문은 없다. 설령 국가에서 피해액 전부를 보상해준다고 해도 거절할 것이다. 그 전함들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들의 호위가 필요한 상선대 역시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알스터의 재정은 그 손실까지 보충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사설 전함대를 움직인다는 것은 단순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자, 모두 정숙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의장!”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앉아 주십시오.”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는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소란스럽던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간혹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내는 의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들 모두 의장이 헛소리나 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더를 포기하자는 의견은 없을 것으로 알겠습니다.”
혹시 반대 의견이 있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한 번 둘러 본 의장은 반대 의견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이번 역시 해상 봉쇄를 제안합니다.”
조용하던 회의장이 다시 웅성거렸다. 그 소란 속에서 의장을 향해 입을 열려 하던 의원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본 의장은 다시 탁자를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물론 각 가문에 함대를 부탁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아니면 함대를 편성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랬다면 제가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지요, 에넬 감찰관.”
잠시 조용해졌던 회의장이 다시 웅성거렸다.
“아아, 지금 당장 함대를 새로 만들자는 건 아닙니다. 함대를 새로 만들 때 쯤엔 이미 에더엔 독립된 정부가 세워져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함대가 준비되어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회의장은 웅성거리는 낮은 소음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번엔 의장의 제지는 없었다.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본 아론은 의혹에 휩싸였지만, 의장의 그 자신감에 찬 표정은 섣불리 입을 열 수 없게 하고 있었다.
의장의 침묵 속에 회의장의 웅성거림은 잦아들었다. 그것을 확인한 의장의 입에 물린 미소는 한층 더 짙어졌다. 왠지 모를 불안을 느낀 아론이 막 입을 열려 했을 때, 의장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열었다.
“소개하지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말입니다.”
닫혀있던 쪽문이 열렸다.
“……!”
회의장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본 의원들의 얼굴엔 경악이 감돌았다.
‘당했다!’
아무 표정도 떠올리지 않은 아론조차 속으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회의장 안으로 들어온 것은, 엘베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1함대의 제독 사샤 폰 케즈만과, 그에게 포로로 잡혀있다고 알려진 2함대의 제독 베네딕트 아를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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