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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와 같은 하루였다.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는 학교. '알스터에 강림한 지옥' 이라 불리는 이곳 사관학교는, 그 날씨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다.
그 속에 찾아온 일탈.
그것은 나름대로 신선한 일이었다.
"카얀 에스카르고?"
"……?"
알아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말을 건넸다고 생각할 때, 그의 입에선 당황이 가득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 엘베 선배님?"
"…그렇게 당황할 건 없을텐데."
"죄, 죄송합니다."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처음엔 실감을 하지 못했던 건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당시의 그는 단순히 발을 내딛는 것마저 실수할 정도로 당황했었다.
계속 걷다간 그가 쓰러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발을 멈췄다.
"자퇴한다고 했나?"
당황만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예."
"이유는?"
"예?"
"처음에……."
오래 된 일이다. 그때 보다 더 오래 된 일. 그것을 생각하느라, 난 잠시 말을 멈추었던 것 같다.
"처음 너희들이 입학했을 때, 너희 선배들은 너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자퇴 신청서를 낼 사람으로 카얀 에스카르고라는 이름을 꼽더군."
"그랬습니까?"
"나야 일년 후에 졸업할 예정이었으니 신경쓸 필요는 없었지. 그 이야기를 들은 건 교관이 된 이후의 일이기도 했고."
대답은 없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에, 난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널 본 후엔 나도 그런 생각이 들더군."
"그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얼굴."
"예?"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얼굴을 한 녀석들 중에서 두 달 이상을 버틴 건 네가 처음이야."
"그, 그랬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3년 씩이나 버티더군. 솔직히 의외였어. 너보다 실력도 좋고 체력도 뛰어난 녀석들이 하나 둘씩 탈락해 가는데도 남아있다는 건 기적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씁쓸한 표정이 감돌고 있다. 추억을 더듬는 듯한 얼굴임에도 그런 빛이 감돈다는 것. 그걸 본 순간, 그가 학교를 떠나는 이유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만 두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선배님은 그런 적이 없었습니까?"
"없었어. 단 한번도."
"역시. 천재는 다르군요."
내가 천재인 것은 아니다. 단지 남들과 다를 뿐. 그러나 그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나는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다니고 싶어서 다닌 게 아닙니다. 단지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뿐이니까요."
"그래?"
"예."
씁쓸한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실례가 될 것 같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예, 선배님."
"비록 자퇴를 했다 해도, 넌 사관학교 학생이다."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배님?"
"나중에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왜 말을 꺼냈던 걸까.
"한 번 겨뤄봤으면 좋겠군."
"…전 별로 죽고 싶지 않은데요."


그게, 알스터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그 후로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원하던 일도, 원하지 않은 일도 겪어야 했던 시간들. 원래대로라면, 난 모든 일을 무작정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해 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했고,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그 예상에 따르지 않아도 당황하거나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단지 그 반응에 맞춰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해 그것을 실행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것일까.
'다니고 싶어서 다닌 게 아닙니다. 단지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뿐이니까요.'
그래,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에 순응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면 그 상황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다.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을 다시 만난 건, 우연히 에리시움에 들렀을 때였다.






"선배님?"
"…카얀 에스카르고."
오랜만에 만난 그의 얼굴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컹컹!"
"무쿠. 조용히 있어."
"컹컹!"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조금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끼이잉……."
"어, 어라? 무쿠?"
"그게 개 이름인가?"
"예? 아, 예."
"순한 놈이군."
"워, 원래 이런 녀석이 아닌데… 하하."
그럴 수 밖에 없다. 라이칸슬롭들도 움츠러들게 만들었던 것을, 한낱 썰매견이 견딜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러는 선배님이야말로 왜 알스터가 아니라 이곳에… 아, 혹시 외교관으로 오신 겁니까?"
이상했다. 이 대륙의 사람이라면, 지금의 날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혹시 다른 대륙으로 넘어갔었나?"
"아닙니다. 그럴 돈도 없고요."
그렇다면 더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해안 도시는 물론, 내륙 깊숙한 곳에 사는 사람들도 내 얼굴은 모를지언정 내 이름만은 알고 있다. 날 처형하기 위해 움직인 교회의 전함 80여 척을 침몰시킨 이후, 난 교회의 적이 되어버렸으니까.
심지어 교회의 기도문에도 내가 등장한다고 하지 않는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고 싶은데."
"에……. 대륙 북부에 있었습니다."
그런 건가.
"어디 있었는지 알 것 같군."
"온통 얼음 뿐이었지요."
"화산은 아직도 활동 중인가?"
"……."
경악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난 무슨 표정을 지었던 걸까.
"그럼, 나중에 또 보지."
이야기를 계속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난 몸을 돌렸다.



그 후로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물론,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기억은 항상 내 행동을 신중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 아주 가끔…….
































내 머릿속의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주 : 엘베는 알스터 국립 과학기술원에서 일할 당시, 국립 도서관의 비밀 문서 보관소에 있는, 트로이메라이의 탐험가가 남긴 아일에 관한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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