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꽃피는 사막]
7. 희생
리온이 손을 들자 다른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분노한 화룡을 앞에 두고, 리온
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말했다.
“헉헉. 진짜 비싸게 구네. 이봐요 비만 도마뱀. 감량에는 성공했습니까? 이번에
는 세 사람이 올라탈 생각인데.”
툭, 연랑이 쓰러졌다. “어. 의외로 소심하네요. 왜 쓰러지지. 이봐요 자. 얼
굴에 핏기가 없는 게 곧 죽을 거 같은데.” 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
이면서도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화룡은 거대한 머리를 가로저었다.
『네 녀석은 목숨을 창고에 쟁여놓고 사는 것도 아닐 텐데. 그리고 이미 알고 있
지 않나. 네놈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를 부를 때마다 1년, 한 번의 부탁
에 또 다시 1년의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터. 그렇게 빨리 죽고
싶은 건가?』
화룡의 진지한 얼굴을 멀뚱한 눈동자로 바라본 리온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말
했다.
“저기, 이건 순수하게 궁금해서 하는 말인데. 댁은 어째서 내 목숨에 그리 연연
하는 겁니까?”
『…….』
“호의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모두가 자기 수명을 맞춰서 사는 사람
은 없다고 봅니다. 사람에게는 갖자 소중한 게 있기 마련이고, 그 소중한 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마저 버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에게 비교를
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룡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알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태초부터 내려온 오랜 맹약에 따라 나는 소환자
의 수명을 받고,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소환자의 부탁은 무엇인가?』
연랑은 화룡의 머리 위에서 다시 깨어났다.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다는 사실
에 다시 기절할 뻔 했지만 리온은 그녀가 기절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자에게는 이미 말했지만, 내가 화룡을 소환했다는 사실은 절대 비델에게 말하
지 마세요. 알았죠? 말했다간 난 잡아먹힙니다.”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여 약속한 그녀를 보며 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는 조금 전부터 리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자신의 수명을 바치
면서까지 생판 모르는 남을 구하려는 사람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소중한 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그 역시 라이컨슬로프
로부터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전사로써 당연히 목숨을 바칠 것이다. 허
나, 리온은?
“이제 곧 내릴 겁니다. 그러니 준비하세요.”
“알았다.”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연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를 보며 피식 웃
은 리온은 “고소공포증인가”를 중얼거린 다음 화룡의 두꺼운 두피를 툭툭 두들
겼다. 화룡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리온은 꽃이 보이는 곳에 내려주라는 말을 전
했다.
생전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의 수명을 내준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도 얼마 살지도 못하는 자가.
황제는 백성을 위해 개인의 안락한 생활을 버린다. 황제는 황제의 의무를 다하
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는 황제가 아니다. 그저 여행자일 뿐이다. 철저한 외부
인. 철저한 관찰자. 철저한 1인칭. 여행자는 절대로 다른 이들의 관습이나 전통
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리온은, 여행자이면서도 뭔가 다르다.
“꽉 잡아요!”
리온의 외침과 함께 자는 연랑의 팔을 강하게 붙잡은 다음 다른 손으로는 잡
을 만한 곳을 찾았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화룡의 뿔이 있었고 그는 별 문제없
이 착지할 때의 충격에 떨어지지 않을 수가 있었다.
화룡이 바닥에 착지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대기해요!”를 외친 리온은 곧장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뒤이어 연랑이 뛰어내렸고 자도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화룡이 머리를 숙여준 탓인지 높이가 상당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달빛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꽃밭 위에 화룡과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연랑이 급
히 꽃을 꺾으려하자 리온이 그것을 제지했다.
“바로 꺾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주변에서 경계
를 서주십시오. 라이컨슬로프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알았어. 자는 저쪽으로 가. 나는 이쪽을 맡겠다.”
“알았다.”
리온의 안전은 화룡에게 맡기기로 한 두 사람은 경계를 하기 위해 그에게서 멀
리 떨어져 주변을 살폈다. 멀리 라이컨슬로프의 마을이 보이긴 했지만 그들도 눈
이 있다면 화룡의 존재를 깨닫고 오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경계하던 연랑은 떨리는 마음으로 화룡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왠지 등 뒤에서 화룡이 혀를 날름거
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맙소사. 내가 화룡의 머리 위에
올라타다니. 이런저런 생각이 혼란스럽게 머릿속을 돌아다니자 연랑은 머리를 흔
들어 제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그러던 와중, 리온은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달맞이꽃을 그대로 사용하면 아무런 효력이 없다. 달의 영향을 받는 라이컨슬
로프의 마성을 제대로 잠재우기 위해서는 달빛의 정기를 달맞이꽃에 정제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바로 마법이다.
주문의 영창이 계속됨에 따라 리온의 몸 주변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화룡
을 소환했을 때와는 달리 마법진이 허공에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에서 시작된 마법진은 시간이 갈수록 확장되면서 이윽고 꽃밭을 뒤덮었
다.
“아 델토 디 페카!”
리온의 외침을 들은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뒤를 쳐다봤다. 그리고 입에서 나
오는 탄성을 막아내지 못했다.
마법진이 뒤덮고 있는 노란 달맞이꽃이 이곳저곳에서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
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드럽던 꽃잎은 점차 고체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란
꽃밭은 순식간에 보랏빛 보석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습격이 있었다.
머리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가 나를 부르는 거 같다. 하루에 너무 많
은 양의 아케인을 소모한 리온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자는 고개를 돌려 라이컨슬
로프의 마을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았지만 시력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
자 지평선에 뿌연 먼지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라이컨슬로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랑은 곧장 쓰러진 리온을 향해 뛰어갔다. 화룡
의 발치에서 쓰러진 리온은 거친 숨을 내쉴 뿐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
다.
“이봐! 정신 차려!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라이컨슬로프가 몰려오고 있어!”
머리가 울리는 지 리온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달맞이꽃을… 따서 가져가요. 나머지는 비델이 해… 해줄 겁니다.”
위급한 상황이기에 주변에 있는 달맞이꽃을 모조리 따서 가져온 가방에 쑤셔
넣은 연랑은 굳어있는 자의 얼굴을 보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어서 가라.”
그의 얼굴에 털이 돋아나고 있는 것을 본 연랑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를 물었
던 라이컨슬로프와 공명을 하고 있다. 이대로 있다면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라이
컨슬로프로 변해버릴 것이다.
“어서. 그를 데리고 가!”
“하지만 너는!”
“어서 가란 말이다! 저놈들은 내가 막겠다! 내가 아직 이성이 남아있을 때 어
서 가!”
“하지만 너도 살고 싶…….”
연랑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그
의 눈동자가 죽어있다. 아니, 죽으려 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죽을 생각이다.
“저놈들은 화룡에게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공격하는 거야. 검은 꽃의 마성
때문에 겁을 상실한 거지. 내 모습이 변해도 나는 이성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느
낌이다. 그러니, 그러니 어서 가서 네 동생을 구해라.”
“어째서……”
몸이 찢겨지는 고통 속에서 자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죽는 게 무슨 대수냐.”
자가 죽었다. 그러나 가족을 제외한 부족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
다. 그는 랑의 이름을 받지 않은 추방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연랑과 리온은 그가 죽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수를 비롯한 다른 세 사람은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평생 보랏빛 색깔을 띤
은제 팔찌를 차고 있어야하지만 일단 사람으로 돌아왔다.
아케인을 너무 많이 소비한 리온은 삼일 밤낮 고열에 시달리며 누워있어야만
했고 그 와중 연랑은 사람들을 시켜 불시착한 천공을 마을로 가져와 비델의 지
휘 하에 부러진 날개를 수리하고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3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폐를 끼쳤군요.”
연랑이 빙긋 웃었다.
“아니야. 수를 구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녀의 말에 리온은 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수는 얼굴을 붉히며 연랑의
뒤로 숨었다. 빙긋 웃은 그는 자신을 배웅하러 온 다른 남자들과 악수를 하며 작
별 인사를 나눴다.
“라이컨슬로프의 습격은 계속 될 겁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죠?”
“싸워야지.”
“그렇습니까?”
“그래. 그 수밖에 없으니까. 푸른 이리들은 적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아.”
그녀의 말에 리온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랬죠. 자도 그랬으니까요.”
“맞아. 그야말로 정녕 랑(狼)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전사였어.”
천공에 올라탄 리온은 시동을 걸었다. 연료는 충분하고, 날개도 고쳤고, 모래
도 털어냈다. 엔진의 경쾌한 울음소리와 함께 천공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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