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저녁시간이다. 난 우리가 직접 고안하고 만든 난로에 불을 지필 준비를 했다. 나무를 넣고 성냥을 꺼냈다. 작은 통에 들어있는 성냥은 아주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데나 긁기만 하면 불이 붙는 것이다. 대변혁 전에는 이미 사라지기 직전의 이것을 재발명하기 위해 1년이 넘게 걸렸다. 물론 지식은 있었지만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아와 리타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붙이고 있지 않았을까?
"벌써 불을 지피는 거야? 지금은 여름이라고. 아직 해가 지려면 세 시간은 있어야 할 걸?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니 마크 오빠가 한 손에 토끼 한 마리를 들고 문가에 서있었다. 토끼의 털에 묻은 핏자국을 보니 화살에 맞은 듯 하다. 자신을 죽인 사람과 같은 색의 털 옷을 입은 갈색 토끼는 이미 몸이 굳은지 오래된 것 같았다.
"사리카 언니가 저녁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약간은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사람 좋은 큰 오빠는 그냥 웃을 뿐이다. 오빠는 건장한 몸을 건들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옆 의자에 털썩 앉더니 곰 가죽으로 만든 자신의 외투를 벗어 옆에 툭 던져 놓는다. 오빠는 우람한 팔 근육을 자랑이라도 하듯,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난 또 네가 추워서 그러나 했지. 그건 그렇고 넌 맨날 사리카한테만 요리 시키냐? 너도 좀 솜씨를 발휘해 보는 건 어때?"
"난 우리 식구들을 독살시키고 싶지는 않아."
그 말에 오빠는 더 크게 웃을 뿐이었지만 난 진심이다. 무술도, 사격도 자신이 있지만 요리만은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가 않는데 어떡하라고!
"그건 그렇고 화살은 어땠어? 저번에 타카시가 사온 건데."
난 더 이상 요리에 대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말을 돌렸고 오빠도 요리로 날 놀리고 싶지는 않은지 순순히 장단을 맞춰줬다.
"아, 그거? 괜찮긴 하더라. 근데 균형이 살짝 안 맞는 것 같기도 해. 과녁에서 살짝 오른 쪽으로 치우치는 듯한 느낌도 들고. 한 번 봐줄래?"
그러면서 등에 맨 전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준다. 악! 피 냄새!
"이, 정말! 피는 닦고 주는 매너 좀!"
"그런 매너 일일이 챙기다간 사냥 못해요, 동생님아. 너 고기 먹고 싶지 않지?"
실실 쪼개는 면상에 화살을 꽂아주고 싶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 더 나은 복수 방법을 알지!
"자꾸 그러면 사리카 언니한테 이를 거야. 오빠가 언니 사진을 배게 속에 넣-"
"아, 알았어. 농담 한 번 못하냐?"
예쁜 사리카 언니랑 오빠 사이에 핑크 빛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인 나는 이렇게 큰 오빠를 마음껏 놀려줄 수 있고 말이지. 난 씩 웃으며 화살을 건네 받았다. 눈높이에 대고 자세히 보니 확실히 한 쪽이 다른 면보다 살짝 두꺼운 것 같았다. 난 화살을 오빠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거 다시 만들거나 한쪽을 갈아 내야겠어. 마린 오빠한테 가서 부탁해봐."
"넌 못하냐? 그 녀석 요즘 물건 팔고 다닌다고 집에 잘 없잖아."
"난 그런 것 못하거든? 불을 다루는 건 마린 오빠 몫, 난 연장 손질! 서로의 일은 구분하면서 살아야지."
"그 녀석은 거의 장사꾼이라니까 그러네. 너도 야금술을 배워 보는 것은 어때? 그러면 우리도 수입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싫어. 난 더운 건 질색이란 말이야!"
큰오빠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마린 오빠는 대장장이임과 동시에 타고난 장사꾼이기도 하다. 만드는 각종 연장들은 우리처럼 무리 지어 숨어사는 공동체들 사이에선 꽤 인기가 좋은 편이다. 이들과의 거래는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질 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카피탈에서 빼오는 생필품을 구입할 때는 현금이 필요하다. 나처럼 장사 쪽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마린 오빠가 자신이 만든 연장을 쌀이나 기름으로, 또 거기서 어떻게 현금을 만들어 치약이나 비누 등으로 바꿔오는지 알 도리가 없긴 했지만.
"근데 마린 오빠 요즘 좀 무리하는 것 아냐? 이러다가 카피탈에 꼬리 한 번 밟히면 우리 모두 잡혀가는 건 시간 문제란 말이야."
그 말에 오빠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어쩔 수 없다. 대변혁에서 살아남은 대다수의 인구는 카피탈에서 자유를 누리고 산다지만, 우리는 그것이 자유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하물며 그곳에서 어렵사리 탈출한 큰오빠야 더할 나위가 있을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가 물자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 뭐, 똑똑하고 날쌘 녀석이니 크게 걱정은 하지 말자. 그래도 다음에 만나면 네가 걱정을 한다고 말은 해둘게."
잘 나가다가 마지막이 뭔가 이상한 뉘앙스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거기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데?"
큰 오빠의 얼굴에 느끼한 미소가 떠올랐다.
"음? 너희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아니었어? 가만 보자, 지난 금요일 저녁에 너희 둘이서 계곡을 내려 갔다는 걸 본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분명 아까 전에 내가 놀린 것에 대한 복수일 것이다. 어린 짐작으로 나의 약점을 잡으려는 수작. 하지만 내가 이런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쉽진 않지.
"난 그때 람이랑 감자 깨러 갔었는데? 내가 알기론 마린 오빠는 사리카 언니랑 물건을 가지러 숲에 갔다고-"
"뭐시라! 그 녀석이 왜 사리카랑 그런 곳을 가? 그곳은 어둡고 음침하고, 그러니까........"
경악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얼굴을 보니 놀리는 맛은 더하다. 그러게 누가 재미로 날 떠보래? 난 일부러 더욱 심각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둘이 꽤 자주 간 걸로 알고 있어. 뭐 맨날 사냥 다니는 오빠야 모르겠지만-"
"이 놈! 잡히면 의자에 묶어서 주리를 틀어야겠다! 감히 우리 가녀린 사리카를 이상한 곳으로 데리고 나가다니!"
그러면서 잡은 토끼를 한 쪽 구석에 던져 놓고는 씩씩거리며 문을 박차고 나간다.
"흥, 바보."
난 무기 손질을 그만 두고 오빠가 두고 간 토끼를 손질하기 위해 단검을 들었다. 이건 카피탈의 군인들이 애용하는 군용 칼이다. 이것으로 그들은 우리처럼 카피탈에 들어오지 않고 숨어사는 이들을 협박하고 잡아들이겠지. 토끼 가죽을 벗기기 위해 이리저리 칼집을 내고 다리를 쑥 잡아 빼니 가죽과 몸통이 분리된다. 이미 익숙해진 일이지만 조금 전까지 살아있단 생명체를 찌를 때 불쾌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난 가죽이 완전히 벗겨진 토끼의 피를 빼며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살아야 할까?
"뭐, 큰 오빠가 마린오빠랑 사리카 언니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쯤이면 되겠지."
소소한 복수를 했다는 쾌감을 느끼며 난 토끼 손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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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