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랑 싸우다가 그랬어요.”
“네에?”
그 말에 타노리는 뛸 듯이 놀라며 도검을 책상 위에 떨어뜨렸다. 표면처리가 매끄럽게 된 책상과 부딪치면서 듣기 거북한 소리를 냈으나 오히려 그것이 더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이 계속 그의 손 안에 있었다면 그가 넘어지면서 손을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큰 실례를 보였다며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기, 아가씨. 농담이 지나칩니다. 저도 이 일은 수십 년째 하고 있지만 산 지 며칠 안 된 데얀 산 도검이 그렇게 깨지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나중에 날이 무뎌져서 부러진 건 몇 번 봤지만 말이죠.”
유리는 귀찮다는 듯이 셀로를 향해 고개를 까닥했다. 하지만 셀로는 무슨 헛수작이냐는 듯한 모욕적인 눈빛 만을 보냈을 뿐이다. 유리는 셀로의 허벅지를 한 번 꼬집으며 낮게 외쳤다.
“난 자기가 까닥까닥 하면 딱딱 알아 듣는데, 자긴 왜 내가 신호를 보내면 못 알아 먹어? 응? 응?”
원래 남자란 그런 겁니다, 라고 촌평을 늘어놓는 타노리를 무시하며 그녀가 말했다.
“검을 꺼내 보여 드리라는 거야. 내 칼을 맞았으면 네 검도 그리 무사하진 않을 테니까.”
그 말에 셀로는 귀찮다는 걸 온 몸과 얼굴로 표현하며 검을 뽑아 날을 잡고 타노리에게 건넸다. 두 손으로 정중히 검을 받은 타노리의 얼굴에 경악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수 초 후였다. 그는 셀로의 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외쳤다.
“저, 정말이군요! 남자분 검에 난 자국들이 도검의 폭과 딱 맞아 떨어져요. 이 검은 어디서 구입하셨습니까? 혹시 장인의 이름이라도…….”
셀로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우연치 않게 손에 넣은 거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타노리는 살짝 실망의 기색을 보이더니, 계속 두 개의 무기를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셀로에게 검을 다시 돌려주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셀로 씨라고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타노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검을 제가 사고 싶습니다만. 물론 가격은 최고로 쳐 드리겠습니다. 600 베라 어떠십니까?”
그 말에 유리가 화들짝 놀라며 따져 물었다.
“아니, 산지 얼마 안 되는 내 칼은 240 밖에 안 쳐주면서 저 고물 검은 600이나 쳐주는 이유가 뭐에요?”
그 말에 타노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이해가 안 가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아가씨 입장에서는 불평등하다고 생각 되시겠죠. 하지만 장인인 저로써는 이 정도 밖에 못 그리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이유를 설명 드리자면……일단 인정하긴 싫지만 데얀의 곡도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도 일겁니다. 저희가 만드는 도보다 휠씬 얇으면서 단단하고 휠씬 날카롭지요. 무기장인인 저로써는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제가 만드는 그 어떤 최고급 검도 데얀에서 만드는 중급 도검에 비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격양되며 셀로의 검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 제 눈 앞에 그 곡도를 깨뜨린 무기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엘칸엔 인사이트 주문만 넘쳐나고 무기 생산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실력 있는 검객들의 숫자도 줄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나마 사는 이들도 도를 찾을 때면 우리 공방이 아니라 데얀 산만 죽어라 찾는 게 현재 실정입니다. 하지만, 아아 이 검의 비밀만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는 셀로의 손은 덥석 잡았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화로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부탁 드립니다, 셀로 씨! 제게 검을 양도해 주시옵소서!”
유리는 촌극을 벌이는 타노리에게 그건 검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저 녀석이 무식하게 센 거라고 말하려고 했다. 아마 셀로가 그녀보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셀로는 타노리가 잡은 오른 손 위에 자신의 왼손을 얹으며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 좋습니다. 저도 엘칸의 무기 기술이 발전하길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인지라 그렇게 제안해 주시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 말에 타노리는 감격하며 거의 눈물을 떨어뜨릴 지경이 되었다. 그는 서둘러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셀로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승낙에 뛸 듯이 기뻐하던 타노리의 얼굴은 셀로가 말 끝을 흐리며 머뭇거리자 급격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셀로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 무기가 없어집니다. 물론 그에 맞는 대가를 주실 것은 압니다만, 저희가 기차 시간에 쫓기는 지라 무기상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군요. 아무래도 칼 밥을 먹고 사는 지라 검이 없으면 불안해서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타노리가 끼어들며 외쳤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새 검을 드리지요. 무기상에겐 300 베라에 넘기는 것인데, 어차피 제가 만드는 것이라 전 재료 값 밖에 손해를 볼 것이 없으니까 상관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고선 그는 거의 뛰쳐나가듯 사무실을 나갔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봐서는 셀로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이 일을 마무리 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그가 적당히 멀어졌을 때, 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갖고 있던 검이 그렇게 대단한 검이었어?”
“설마. 내가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 만난 산적이 갖고 있던 검이야. 그나마 괜찮은 검이라서 좀 갖고 있었을 뿐이지, 어차피 조만간 버리려고 했어.”
그 말에 유리가 혀를 내두르며 힐난했다.
“그럼 거의 고물이란 말이잖아!”
“나에겐 고물이겠지만 저 사람에겐 보물이겠지. 또 모르는 거 아니야? 저 검이 진짜로 명검일지도? 아, 오는 소리 들린다. 넌 그냥 입 닫고 있어, 알았지?”
살짝 윙크를 하는 셀로를 보며 유리는 자기 그렇게 안 봤는데 다른 사람 등 쳐먹는 남자였다, 알고 보니 기중 서방 기질이 다분하다, 등등의 망언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타노리가 검을 하나 들고 숨을 몰아 쉬며 방에 들어오자 시치미를 뚝 떼고 입을 닫아야만 했다. 셀로가 책상 밑으로 그녀의 다리를 툭 치며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가 없었던 사이에 있었던 엄청난 대화에 대해선 아무런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타노리가 셀로에게 검 집째로 건네며 숨을 골랐다.
“후우, 후우. 이겁니다. 한 번 보시죠.”
셀로가 조심스럽게 검을 뽑았다. 전체적인 모양이나 길이는 그가 가지고 있던 검과 거의 동일 했다. 대신 새 검인 것을 증명하듯, 검의 옆 면이 마치 거울과도 같이 빛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그 검을 가볍게 몇 번 휘둘러보던 그는 만족한 듯 검을 검 집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부디, 그 검을 공방의 발전을 위해 써주세요.”
승낙이나 다름없는 말에 타노리는 춤이라도 출 것 같은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오늘은 운이 좋군요!”
책상 위에 놔둔 600 베라 어 치의 지폐를 지갑에 고이 챙겨 넣는 셀로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유리가 입을 열었다.
“나만 운이 안 좋은 것 같아.”
그 말에 타노리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군요. 그나마 검을 팔았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기엔 제 양심이 좀 찔리기도 하고……대신 우리 도검을 쓰는 아가씨의 귀가 번쩍 뜨인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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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얍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