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아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에게 이해를 시킬 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넌 역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 같다.”
“대련은 안돼요!”
거의 발악을 하듯이 뒤로 물러는 아인을 보면서 에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좀 전에 대련은 안 한다고 했잖니. 저길 보렴.”
에리아가 손을 들어 들판의 한 곳을 가리켰다. 거리는 약 10미터 정도. 그곳엔 한 사
람이 웅크리고 앉아있을 만한 크기의 바위가 하나 있었다.
“잘 봐.”
그녀가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내민 손을 손바닥이 앞을 보게 내밀었다. 그러자 손의
가장자리에 푸른 빛이 맺히기 시작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을 중심으로 하나의 완
벽한 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원의 가장자리에 누군가가 쓰는 것처럼 지렁이 같은 글
자와 숫자들이 12시, 3시, 6시, 9시 방향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져나갔다. 모든 문자들이
원을 빼곡히 채우니 그곳엔 한 마리의 새의 형태를 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새
가 날개를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자 마법진에서 동그란 구체가 쏜살같이 바
위를 향해 날아갔다.
콰과광!
구체와 바위가 충돌하면서 나는 굉음과 충격에 아인은 뒤로 나자빠졌다. 엉덩이가 쑤셔왔
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은 아인의 상상과 개념을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먼지와 모래가 충격파에 의해 날렸고 작은 파편들이 수 미터 앞까지
날아왔지만 에리아의 표정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담담했다.
“다음은 좀 멀리 있는 것.”
그녀가 가리킨 것은 들판의 끝자락에 있는, 비슷한 질량의 바위였다. 에리아와 그것의
거리는 약 40미터 정도였다. 이번에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 40미터나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가운데를 맞춘 구체는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바위 근처엔 조금 전까
진 바위였던 자갈들이 굴러다녔다.
“자, 감상이 어때?”
“자, 잘못했어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아인을 보며 에리아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뭘 잘못했는데 그러니?”
“아직은 없어요!”
“뭐, 미리 용서를 빌 정도로 네가 장난꾸러기는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일어나서 네 감
상을 한 번 말해볼래?”
“맞으면 죽겠다, 정도?”
“아니, 그런 거 말고. 관찰을 좀 더 해봐. 네 주특기잖아.”
그 말에 아인은 두 바위를 자세히 관찰했다. 마음이 좀 진정되자 두 과녁의 차이가 극명
하게 드러났다. 사실 관찰까지도 필요 없는 차이이기도 했다.
“가까운 바위는 뿌리까지 부셔졌고, 저 멀리 있는 바위는 아래 부분이 남아있네요?”
아인의 말대로였다. 가까운 곳에 있던 바위는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위 자체
와 근방 1미터 정도가 사정없이 난자 당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달걀을 벽돌로 내려찍은 형상
을 보는 느낌이었다. 반면 멀리 있던 과녁은 상단이 파괴되긴 했지만 아래 부분이 땅에 그대
로 박혀있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리아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어. 다시 한 번 부연설명을 해줄게. 아까 했던 고무줄 이야기 기억하지? 처음 바위는 고무
줄이 조금 밖에 늘어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정확도나 파괴력이 거의 100 퍼센트에 가깝
지. 반대로 저 멀리 있었던 것은 조금 전 내가 내보냈던 양의 마법력의 한계점 바로 전이라고 할
수 있어.”
그 말에 아인이 흠칫하며 놀랐다.
“이게 일부였어요? 전력을 다한 게 아니라?”
그 말이 에리아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린 모양이다. 아인을 보며 에리아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한 번 전력을 다해보련?”
순간 아인은 반 년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이 인간들은 한 마을을 순식간에 박살낼
수 있는 자들이라고. 아인 결국 두 손을 흔들며 강렬히 반대의향과 아부, 그리고 적절한 칭찬을
했고, 결국 에리아가 실력 행사를 보여주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좋아. 보여주기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기본으로 가볼까?”
에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풀밭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아인 역시 자신을 마주 보게 앉게 한 다음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네 안에 있는 영기를 활성화 시키는 작업을 할거야.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
겠지만, 영기가 폭주라도 하게 되면 귀찮아 지니까 얌전히 있으렴.”
“제 안의 영기라면……예전에 등산을 하고 나서 다 채워진 것이 아니었나요?”
에리아가 천천히 오른 손을 들어 아인의 이마에 살짝 갖다 대며 대답했다.
“마학이라는 것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야. 약간의 상상력과 계산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
침할 영기만 있다면 말이지.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영기를 얻는 것이란
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사실 이곳을 제외한 다른 곳의 공기에는 영기가 거의 섞여있지 않아.
그래서 인간들 중 마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몸 안에 영기를 모으기 위해 몇 년, 혹은 십 수
년을 투자해서야 겨우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야.”
에리아의 오른 손과 아인의 이마 사이에서 연보라색의 광채가 조금씩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너는 6개월 전부터 온 몸에 이미 영기가 가득한 상태지. 웬만큼 마학을 한다고 하면
서 목에 힘을 주는 인간들보다 강할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급속도로 얻은 영기는 안정적이지
못해. 일반인이라면 그 즉시 몸이 터져버렸어야 했을 정도니까. 약간의 안정기를 거쳐야…….그
래야 지금처럼…….자연스럽게…….꺼낼 수 있……어.”
점점 에리아가 말을 하기 힘들어하자, 아인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에리아
의 동그란 이마에 맺히던 땀방울들이 한 줄기 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려갈 때쯤, 연보라색
의 광채는 점점 커져만 가더니 이제는 그녀들을 모두 덮고도 남을 정도로 밝아졌다. 하지
만 신기하게도 눈이 부시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새털처럼 포근하고도 따뜻한 빛이었
다. 그때, 단순한 빛이기만 했던 광채가 그녀들의 머리 위에서 점점 규칙성을 갖기 시작했
다. 에리아가 마법을 보여줄 때와 같이 90도 간격을 두고 시계바늘과 같은 무늬가 화려하
게 펼쳐졌고 그것들의 사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연한 보라색 글자들이 빽빽하게 공간을 채
워나갔다. 그 글자들의 전체적인 모양은 가시나무와 같이 각지고 추상적인 모습이었지만 이
윽고 홰를 치는 한 마리의 새와 같은 문양이 되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 보랏빛의 한 송이
의 화려한 꽃이 피는 것과 같은 절경에 아인은 입을 헤 벌리고 구경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때였다. 마법진이 점점 회전을 시작했다. 아무런 물리적인 무게가 느껴지진 않았지만, 압도
적인 광경에는 틀림이 없다. 놀란 아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빛은 아인의 오른 손등으
로 압축되듯 모아졌다.
“우, 우와!”
손등에는 좀 전에 그녀의 머리 위에 있던 마법진이 축소되어 있었다. 마치 문신처럼 짧게
빛나던 마법진은 한 번 밝게 빛을 발하더니 사라져버렸다. 그것을 보던 에리아는 땀을 닦
으며 가뿐하게 말했다.
“성공.”
그리고 뒤로 벌러 덩 누우며 말을 이었다.
“축하해, 아인. 이 에리아의 문양을 이어받게 되었구나.”
문양이 사라진 손등을 신기하게 만져보던 아인이 대꾸했다.
“스승님의 문양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까 우리 위에 나타났던 것, 그게 바로 내 문양이야.”
에리아의 설명을 누운 체로 계속 되었다. 마법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문양을 갖
게 된다. 마치 서명과 같아서 마법을 쓸 때는 그 누구도 상관 없이 문양이 나타나는
데, 희귀하긴 하지만 순수 독학인 경우를 제외하면 마학을 가르친 스승의 문양과 색
을 이어 받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단순한 전통에 가까운 현상이었지만, 지금에 와
서는 마법사의 문파와 스승을 알려주는 중요한 표식으로 인정 받고 있다.
“어차피 기계의 발달로 마법사 수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나이 많은 마법사들 중
네 문장을 보고 무릎을 꿇지 않을 이는 없을 거야, 아마.”
아인의 눈에 의구심이 서리자, 에리아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쑥스러운 듯 덧붙였다.
“예전에 말했잖니. 난 이 세계에선 거의 신으로 추앙 받은 것이 있었다고. 요즘엔 기억하
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
뭔가 갑자기 생각난 듯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에리아가 말했다.
“에덴 녀석도 끝까지 따르던 무리가 있긴 했었어. 덕분에 마지막에 조금 귀찮긴 했었지, 아마.”
음, 하면서 잠깐을 고민하던 에리아가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녀석들이 지금도 에덴의 부활을 꿈꾸며 살고 있다면 아마 귀찮긴 할거야. 뭐, 그
럴 일은 없겠지만.”
“그럴 리가 없겠다는 건?”
에리아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다 박살내버렸거든?”
너무나도 당당한 대답에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서 다 늙어 죽었을 것이다, 등의 대
답을 기대했던 아인의 입이 벌어졌다.
“너무 원시적인 대답이었어요.”
“크흠흠. 자, 아무튼 오늘부터 약간의 마학 수업도 겸할 것이니 앞으로 취침 전후로 나랑 영기를 다
루는 연습을 해야 해. 아, 그런 표정 짓지마. 몸이 힘들진 않을 테니까. ”
하지만 아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에리아는 가끔씩 자신을 기준으로 이런 저런 수련을 시킨
적이 몇 번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일들의 결과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또 고생이 시작되겠구나.’
물론 그 말을 입 밖에는 내지 못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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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님이 마법전사로 전직하셨습니다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