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은 마법이야.”
그렇게 운을 뗀 에리아가 아인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발차기는 그만해도 돼.”
그 말에 날렵한 발 동작으로 가상의 적을 대 여섯 명 더 쓰러뜨린 아인이
숨을 몰아 쉬며 동작을 멈추었다. 이미 온 몸이 땀에 젖어 있는 아인은 아
침 식사 전부터 에리아가 가르쳐준 동작들을 하나씩 연습하고 있던 참이었
다. 아주 기본적인 타격법과 발차기 동작들이었지만 이런 것을 처음 접해보는 아
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었다. 처음에는 눈 뜨고는 보기 힘들 정도였
지만 여섯 달이 지난 지금은 에리아가 살짝 놀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많이 늘었구나. 탄력만 조금 더 보강하면 꽤 쓸만해 지겠어. 처음에 나한테 형편
없이 깨졌을 때보다 휠씬 발전했네.”
에리아가 건넨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아인이 대답했다.
“고마워요. 근데 왜 무술은 안 가르쳐 주시고 반 년 동안 기본 동작들만 가르쳐
주시는 거에요? 스승님 책장에 있는 소설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멋진 무술을 쓰
던데……”
“한두 가지 형태에 매달리면 정작 실전에선 실력발휘가 안 될 때가 있어. 내가
네게 가르쳐 주는 건 몸을 어떻게 쓰는 지, 그리고 파괴력을 최대화 할 수 있는
근력과 유연성을 길려 주는 거야. 어떤 상황에 있어도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게.
우리가 매일 하는 대련도 그것과 비슷한 이유고.”
“그래도 어깨뼈를 날려버리는 건 너무 심한 처사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에이, 뭘 그런 거 갖고 그래?”
“일주일 전에는 척추에 금이 갔었고.”
“금방 나았잖니?”
“어제는 목뼈가 부러져서 호흡곤란까지 갔었거든요?”
아인이 거기까지 이야기하자 에리아는 손뼉을 짝 치며 끼어들었다.
“아자자자자자! 아무튼 오늘은 마법 수업이란 말이지. 어차피 대련도
못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아인의 짜증게이지가 점점 오르는 것을 본 것이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자신
을 노려보는 아인을 애써 무시하며 에리아가 말을 이었다.
“자, 그럼 가장 기본부터 시작해볼까?”
그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냈다. 동그란 원 모양의 노란 색 실 같은 것이었다.
“그게 뭐에요?”
“이건 고무줄이라는 거야. 본 적 있니?”
에리아가 고무줄의 한쪽을 쭉 잡아당기자 당연하게도 고무줄은 긴 타원형의 모
양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 모습을 처음 보는 아인은 탄성을 질렀다.
“우와! 그거 어떻게 하는 거에요?”
“어떻게 하긴. 원래 이런 속성을 갖고 있는 거야. 이걸로 뭘 묶기도 하고 그런 거지. 넌 고
무를 본 적이 없니?”
“이게 고무라고요? 이런 식으로 쓰는 건 처음 봤어요.”
역시 애는 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에리아가 고무줄을 당기고 있던 손을 아인을
향해 놓았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고무줄은 현악기 줄을 튕기는 듯한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익!”
자신도 모르게 눈 앞으로 손을 뻗어 고무줄을 낚아챈 아인이 소리쳤다.
“깜짝 놀랐잖아요! 이런 걸 날리고!”
“그래도 안 맞았잖니. 수련의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 기쁘구나.”
“그래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그런 거 맞아봤자 아프지도 않을걸?”
“으윽.”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예전 같으면 아마 막을 세도 없이 이
마에 적중했을 고무줄이 자신의 손 안에 있었으니까. 아인은 그 고무줄이 에
리아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
었다. 당겨진 축이 탄성에 의해 앞으로 튕겨 나옴과 동시에 고무줄은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공기를 헤엄치며 날아오는 것을 보고, 또 자신은 그 변화
무쌍한 괘도를 정확하게 읽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뻗어 잡았다. 아인이
고무줄을 만지작거리자 고무줄은 무한궤도처럼 몸을 꼬면서 움츠려 들었다가,
손가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시 원으로 돌아왔다
.
“이거 신기하네요? 머리 묶기에 편하겠어요.”
“그걸로 머리 묶으면 좀 아플 수도 있어. 너무 가늘거든. 필요하면 다음에 다른 걸로 줄게.”
그러면서 에리아는 어느새 또 다른 고무줄 하나를 꺼내 들고 그것을 왼 손바닥 위에 놓았다.
“자, 지금부터 속성 강의를 할게. 네가 나중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솔직
하게 말하자면, 나도 사실 마학(魔學)에는 깊은 조예가 없어. 물론 다른 녀석들
한테 비교했을 때뿐이지만. 그 녀석들, 특히 쉐리안이라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겠지. 그래도……”
여기까지 말하고는 에리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주저하면서 말을 이었다.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잖니. 또 다른 이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싫고 말이야.”
‘아무래도 두 번째 이유가 진짜 이유인 것 같군.’
“아무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뭐, 기본만 튼튼하면 발전시키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절대로 스승다운 말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고무줄을 내밀며 말했다.
“이 고무줄이 보이지?”
에리아는 동그란 고무줄이 놓여진 왼 손바닥을 가리켰고, 아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에리아는 설명을 시작했다.
“자, 지금 이 상태, 즉 이 동그란 모습이 네 마법력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는 일반적
으로 마법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니?”
기억을 잃기는 했지만 쉴 때마다 틈틈이 에리아의 서재에 있는 소설책들을 읽었기에 아인
도 마법에 대해 약간의 단편적인 지식은 얻을 수 있었다.
“펑퍼짐한 로브를 입은 막 수염 기른 할아버지가 나와서 윙가디움 레비오싸라고 주문을 외
치거나 아니면 늘씬한 엘프가 나와서 정령들을 부리고 하는 것? 아니면 마법 소녀가 나와서
기가 슬레이브를……..”
그녀의 천진난만하고 당당한 대답에 에리아는 정신적으로나마 얼굴에 손을 짚어야만 했다.
역시 서재 정리를 한 번 해야겠어.
“뭐, 그렇게 말하면 틀린 것도 아니지. 하지만 우리의 마법 체계는 소설이나 만화와는 약간
달라. 일단 기본적으로 마법진이 필요해. 너도 가끔 본적이 있을 거야.”
그 말에 아인은 손을 치며 대답했다.
“아, 구루구루?”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아무튼, 마법진을 연성할 수만 있으면 절반을 왔
다고 생각하면 돼. 그게 마법력을 모으고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거든?”
“주문은요?”
“나 같은 경우엔 그냥 폼이야. 뭐 매너일 수도 있겠네. 상대편에게 어떤 공격을 할
지 알려주는 것이니까.”
아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것은 흡사 동심이 깨질 때와 비슷한 종류의 표정이었다. 그
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 에리아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즉, 굳이 주문이나 마법의 이름을 말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고위 마법사 정도만 되면
마법의 이름을 듣고 맞받아 치는 건 일도 아니거든.”
뭔가 그럴 듯한 설명에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아는 다시 손에 들 고무줄을 아인에게 보이며 말했다.
“자, 이제 마법의 원리를 설명해 줄게. 기본은 상상력이야. 머리 속에서 연성하고
싶은 물질을 생각하는 거지. 불, 물, 얼음, 번개, 흙, 철, 나무……정도가 대표적인 예
들이지. 악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피나 뼈 같은 것을 연성하기도 해.”
“으……생각만 해도 속이 이상해요.”
“쿡쿡. 맞아. 뭐, 겁을 줄 때는 꽤 탁월하긴 하지만. 아무튼 상상을 한 다음엔 마법의
위력을 계산해야 해. 이게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부분이지. 자, 다시 고무줄로 돌아가
보자. 이게 너의 마법력이라고 했지? 이 마법력을 살짝 잡아 당기면…….”
에리아가 오른 손 엄지로 한 쪽을 지탱한 채로 검지를 벌리자 고무줄을 마치 살짝 긴 달걀처럼 되었다.
“이게 마법을 쓰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 마법력이 늘어나서 구현되는 걸 상상해보렴.
마법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야. 마법의 기본적
인 순서는 마법진 연성, 영기 압축, 구현, 증폭, 투척이야. 따라 해봐.”
“마법진 연성, 영기 압축, 구현, 증폭, 투척.”
에리아가 이번엔 고무줄을 왼손 엄지와 검지에 걸고 손가락을 벌렸다. 그 다음, 오른손 검지와
엄지로 다른 쪽을 잡아 천천히 늘린다. 그러자 고무줄은 삼각형의 모양을 그리며 점차 팽팽해졌다.
“이게 네 마법력이 닿을 수 있는 한계야. 내가 당기면 당길수록 고무줄의 모양이 어떻게 변하니?”
“각이 점점 좁아져요.”
“맞아. 마법력의 모양은 변해도, 그 내용은 변하지 않아. 작은 마법력으로 구현하든, 큰 마법력으
로 구현하든 마법이 구현된 다음의 질량은 언제나 같아. 그렇기 때문에 사용하는 거리가 길어지
면 길어질수록 실행된 마법은 약해져. 돌을 던지는 것과 비슷해. 점점 멀리 던질수록 정확도나 힘
이 없어지지. 그리고 이 거리를 벗어나면…….”
팅, 하고 고무줄이 끊겼다.
“마법의 효과가 거의 없어지는 거야. 알겠니?”
아인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전혀 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스승님은 설명에는 재주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래?”
에리아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어떻게 해야 이 아이에게 이해를 시킬 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넌 역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 같다.”
---
즐거운 주말 되세요!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