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점점 불빛이 많아지는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네 개의 거대한 대륙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동쪽의 대륙 엘칸. 그리고 엘칸이 자랑하는 항구도시 메리잔은 중앙에 위치한 11층짜리 시청을 중심으로 커다란 대로들과 그에서 파생된 골목들이 거미줄을 본 따 계산된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며 뻗어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제 1 대륙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들 중 하나답게 50만이 넘는 인구수와 체계적으로 조성된 도시시설을 자랑하는 메리잔이었다. 높이가 자그마치 30미터가 넘는 성벽과 그 안에서 빛나는 시가지는 마치 진주조개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많은 건축가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 그 도시에서 군대 다음으로 강력한 공권력의 상징에 도전한 두 남녀에 의해 평화롭던 도시는 점점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상징인 시청에 달린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밤 11시 4분. 이미 대부분의 가정집들이 소등을 시작한지 반 시간 정도가 지난 시각에 도시 곳곳에서 불이 켜지고 있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 어떤 정신 나간 2인조가 경찰청을 테러 했다는 소식으로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잠을 깨운 두 사람은 그런 크고 작은 소란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도시 외각을 향해 달렸다.
고양이가 담장 위를 뛰는 것처럼, 여자의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간간히 모습을 보였기에 뒤쫓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잠에 들었거나 경찰서에 일어난 폭발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큰 길을 제외한 다른 도로들은 상당히 한산한 상태였다. 귀한 몸을 태우고 밀회장소로 가는 마차 몇 대 정도만 눈에 띌 뿐이었다. 그들은 간간이 도시 주변을 비치는 마법사들의 서치라이트를 조심스럽게 피하며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불빛이 점점 희미해졌고, 그에 따라 그들이 뛰는 길도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때문에 도시의 중심가로부터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커다란 공터에 다다른 때는 청년이 그녀가 이대로 도망가는 것을 아닐까, 라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적당한 곳에 이르자 여자는 달리기를 멈추고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불만 없겠지?”
“거짓말을 했군.”
난데없는 대답에 그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남자는 천천히 검을 뽑으며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데이트 장소로는 꽝이잖아.”
그리고는 검을 들고 그녀를 겨냥하며 말했다.
“하지만 네가 죽을 장소로는 적당하겠지. 좋은 선택이라는 칭찬 정도는 해줄까?”
그녀 역시 두 자루의 도를 꺼내 상대를 향해 겨누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데이트 장소라는 것을 정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연애도 못 해보고 죽는 건 내 쪽에서 사양하겠어.”
“그거 안 됐군.”
“궁금해서 그러는데, 자긴 연애 경험 있어?”
남자가 의외에 질문에 살짝 당혹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있다면?”
“실망이야!”
“……우리가 실망을 느낄 사이인 줄은 몰랐는데.”
그 말에 여자가 손등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끼듯 말했다.
“3주 동안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바람둥이! 변태!”
날카롭게 소리 지른 그녀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뒤로 물러난 오른 손에 든 검은 청년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고, 비스듬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왼 손에 든 검은 그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가벼운 말투와는 달리 실력은 무시할 바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취한 자세는 공격과 방어가 절묘하게 결합된 상당히 실전적인 자세였다. 남자는 긴장을 높이며 생각했다. 함부로 뛰어든다면 바로 반격을 당할 것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빈틈을 찾아야……
쨍!
여자의 오른 손에 든 검과 청년의 검이 한 번 얽혔다가 풀렸다. 달빛에 비친 두 자루의 검은 마치 두 마리의 뱀이 똬리를 트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왼손에 든 검을 뻗으며 여자가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빈틈을 찾을 줄 알았는데, 선공을 하다니! 자기, 진짜로 자랑 사귈 마음 없어? 반할 것 같은데?”
쨍, 쨍!
몸을 회전시켜 두 번의 시간차 공격을 막은 그가 대답했다.
“그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베어주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매서운 발차기가 여자의 얼굴을 향했다. 간발의 차이로 피하자 그녀의 얼굴 앞에선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동물적인 반사능력으로 왼쪽 허리를 향해 쇄도하는 검을 쳐냈다. 그 반동으로 뒤로 살짝 물러난 그녀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공중으로 점프했다. 거의 10여 미터 정도를 점프한 그녀는 마치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떨어졌다.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기면 죽는다.’
그는 방어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뒤로 살짝 물러난 그는 그녀가 지상에 도착할 때를 계산해 반격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오산이었다. 여자와 지상과의 거리가 50센티미터 정도 되었을 때, 갑자기 급선회를 하면서 그에게 검격을 날렸기 때문이다.
깡!
한 자루는 막았지만 시간차 공격을 노린 다른 도가 어깨를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와 싸울 때 한 번 수세에 몰리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황한 모습을 보인 것은 쉴 세 없이 치명타를 노리고 있는 그녀였다.
“어어? 맞았네? 아프지 않아? 호 해줄까?”
순간 아찔함을 느낀 그는 작게 한 숨을 쉬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성격파탄자인 것 같군.’
자신의 목을 노리는 찌르기를 주저 없이 날리는 여자의 입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지금 그것을 지적할 만한 여유는 그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일격이 낳은 상처는 이미 지운 듯 사라졌지만 잠깐의 실수 이후로 그는 거의 방어만 하고 있었다. 여자는 거의 모든 방향에서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그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런 때에 그가 위기를 넘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였다.
푹!
남자가 순식간에 방어를 풀고 한발자국 다가오자 여자의 도검이 남자의 오른쪽 가슴을 관통했다. 단단한 근육을 베는 느낌을 느낌과 동시에 자욱한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자 여자의 인상이 살짝 굳었다. 물론 그가 아파할 것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폭포 같던 그녀의 연속적인 움직임이 아주 잠깐이나마 멈췄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틈타 남자의 일격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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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지 못하는 남자,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