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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란 무엇인가?


중세 서유럽에서, 상인이나 수공업자 등의 자영업자(自營業者)가 기독교
우애정신에 입각하여, 여러 생활면에서 서로 위하여 결성한 신분적인 직업
단체. 초기 상인조합의 경우 상인뿐만 아니라, 각종 수공업자도 참가하였
으나, 나중에는 같은 종류의 수공업자마다 동직조합(同職組合)을 결성하였
다. 자빌적인 단체결성이 일반적이었으나 도시 영주의 영향력도 작용했다
고 한다.
〔기원〕 중세 유럽의 봉건사회가 성립되어가는 과정에서, 지연적 요소 보
다는 혈연적 요소가 짙은 공동체로서 중세도시가 성립, 발전했다. 그 공동
체의 공권력인 도시당국이 봉건영주로부터 자치권력을 서서히 획득해가는
한편,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스스로의 가부장적 가정경영(家政經營)을 물심
양면에서 지킬 목적으로, 우애적 상호부조단체를 자발적으로 결성했던 것
이다. 그것은 중세도시에서 고유한 신분적 직업단체였는데, 이미 카롤링거
시대 법령에 서약단체의 존재가 확인되어 있었다. 이러한 단체형성은 프랑
크국가에 대한 위험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길드가 결성
되어가는 것은 중세도시가 성립되기 시작되는 11세기 이후이다. 영국에서
는 11세기 전반기에 케임브리지 등 3도시의 우애단체에 관한 법령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12세기에 접어들면서 파리·루앙·샤르트르에 수공업자 길드
가 있었고, 독일에서도 11세기 말에 마인츠, 12세기에 들어와서는 보름스
·뷔르츠부르크·쾰른에 그 기록이 있다. 이 밖에 북유럽·남유럽·동유럽
에도 길드 결성을 볼 수 있으며 13세기 이후 길드 전성시대를 맞이하였다.
〔상인길드〕 중세도시는 지방 간의 교역에 자극받아 흥하였으므로, 최초
에 결성된 길드는 각 도시의 대외적 교역 독점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왕이나 제후에 의하여 보증된 상업의 독점영업권에 의해 타지방인이나
길드에 속하지 않은 자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단체였다. 여기에는 원격
지 상업을 경영하는 상인들이 가맹하였으나, 그 밖에도 소매상인이나 수공
업자도 가입하고 있었다. 다만, 후자는 차츰 독립하여 동직(同職)길드를 결
성해 가는데, 과도기에는 상인길드와 동직길드 양쪽에 가입하고 있었던 일
도 있었다. 그러던 중 도시수공업이 번영함에 따라 동직길드는 독립해 갔
으며, 상인길드는 전에 자랑했던 세력을 잃어갔다. 또 소매상인조차 독자
적 길드를 결성하게 되었다.
〔동직길드〕 14, 15세기는 도시수공업자의 황금시대로서 각 직종별 길드
(크래프트길드)가 결성되었다. 그것은 사장(師匠), 직인(職人), 도제(徒弟)
라는 신분제 수공업 경영의 경제적 이해를 지킴과 동시에, 그들의 사회생
활, 종교생활에서의 상부상조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경제
정책은 수공업자를 외부와의 경쟁에서 뿐만 아니라 동업자까지의 경쟁에서
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각 성원이 가입 때 지킬 것을 다짐하는 서약조항
에는 기술과 노동시간, 제품가격과 임금등의 규정, 작업장에서의 생산수
단과 종사자의 수적제한, 품질검사, 직인·수련공의 수업을 위한 제도 등
이 상세히 규정되어 있어 그 위반에 대해서는 재판이나 처벌 권한이 도시
당국에 의해 길드에 인정되었다. 또 도시당국과의 관계는 저마다 다르나
상인 등의 도시귀족이 유력한 세력인 고장에서는, 14세기에 동직길드의 연
대(連帶)로 춘프트혁명이 시도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당국의 교체를
가져왔다. 또 이와 병행하여, 중세 후반의 인구감소로 인한 시장축소 때문
에 동직길드의 완전성원권을 갖는 사장(師匠)층이 도제기간을 연장하고,
직인이 사장이 되는 자격을 얻기 위한 시작품(試作品;masterpiece)에 대한
요구를 강화하였으며, 사장이 될 때 지불해야 하는 길드가맹금액의 인상을
실시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직인들은 차츰 상호부조와 경제적 이해의 보호
를 목적으로 결사를 만들어 대항하였다. 이러한 직인단체를 <직인길드>라
고도 하였다. 오래 된 상인길드도 잡화상·모직물상·포목상·포도주상·
소매상·기름장수·소금장수 등으로 나누어졌고, 동직길드도 또한 여러 종
류로 세분화하였다. 그 밖에 종교적 길드와 세속적 길드로 나누는 방법도
있다.
〔조직과 사업〕 완전한 성원권을 갖는 것은 신분제 가정경영의 장인 사장
층이며, 그것도 가맹성원의 승인과 가맹희망자의 서약에 의해 효력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사장수(師匠數)가 제한되기도 하고
사장자격의 획득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다만 사장에게 고용되어 있는 직인
이나 거기서 교육받고 있는 도제는 길드제도 아래 놓여 있으므로 그들의
노동조건은 물론 사회생활, 종교생활도 길드에 규제되어 있었다. 사장·직
인·도제의 가족도 같았다. 또한 길드는 장로나 참심원(參審員)·집사 등
의 임원을 선출하고, 사업 수행을 맡겼는데, 성원권을 가진 자의 집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임원선출 외에 서약조항의 개정, 신규가맹의 승인, 관혼
상제 등의 상호부조를 심의하였다. 또 성원은 가맹금 이외에 매년 회비와
예배용 양초 등을 납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동업자의 병환·사망·불행
등에 대한 상호부조는 물론, 길드성원 이외의 사람에 대한 자선, 도시의
갖가지 시설에 대한 기부, 성원의 연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근세 이후 역사〕 모든 도시에 길드가 조직된것은 아니다. 중세 후반
이래 중세도시에 대항하여 성립해간, 농촌의 소도시나 시장거리에서는 상
인이나 수공업자나 길드를 결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길드가
도시당국에 주변농촌에서의 상공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독점정책을 취
하도록 한 데 반대하고, 오히려 자유롭게 경쟁하는 형태로, 보다 새로운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6세기 이후에는 절대왕정의
중상주의정책이 실시되는 가운데 보다 자유로운, 길드규제 밖에 선수공업
경영을 중세적 시장이나 길드 제도에 도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17,
18세기에 도시길드의 영향력은 쇠퇴하여 갔으며 이 과정은 나라에 따라 달
랐다. 농촌 쪽의 자유로운 경제가 일찍부터 압도해간 영국에 대하여, 프랑
스에서는 절대왕정의 정책이 어느 정도 효력을 가져와, 18세기 말의 프랑
스혁명으로 영업의 자유와 길드제의 폐지가 결정되었다. 독일은 중세도시
의 영향력이 가장 강해서, 1869년 겨우 전국적인 영업자유를 확립함으로써
길드제의 오랜 역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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