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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9 20:01

[조디악] -6- 시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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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 됩니까!”

화려하게 장식 되어있는 홀 안. 원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분노를 토하는 처용을 바라보았다. 처용은 숨을 씩씩 몰아쉬면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니요? 엄연히 침입이고 마땅히 반격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요? 그냥 가만히 닥치고 있으라고!”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대사는 머리를 싸매고는 처용이 일으킨 돌발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하고 있었다. 집회장에 들어서기 전에 누누이 소란스러운 일을 일으키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기어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혼자 올 것을······내가 잘못했구먼.’

본래 이번 집회는 대사 혼자 참여할 예정이었다. 10년에 한 번씩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일본 등지에서 각각 활동하며 나라나 일정한 인물, 또는 특정한 물건을 수호하는 단체들의 집회는 원래는 각 단체의 대표 격인 인물 하나만 참석하게 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대사 혼자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처용이 이번엔 자신도 한번 가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들어야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대동하고 왔었다. 처용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대사였지만 설마하니 이런 장소에까지 막무가내로 나올 줄은 몰랐다.

“감히 어디라고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처용의 왼쪽 두 번째에 앉아 있던 사람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붉은색 도포로 된 승려복장을 한 그 인물은 60세 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정수리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여긴 앞으로의 일을 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자립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옆에 계시는 대표께 의견을 이야기 하고 수렴하도록 부탁하시길 바랍니다.”

처용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인 역시 분노로 일그러져 있는 처용을 보면서 허리에 차고 있는 붉은 칼집을 만지작거렸다.

“뭐라!”

처용의 여인의 말에 순식간에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고 그 모습을 본 대사는 기겁을 하며 처용의 손을 잡아 당겼다. 대사의 행동에 잠깐 동안 붉은 빛을 띤 처용의 눈동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는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탁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대사는 처용을 계속 앉히려 노력하면서 방금 이야기한 여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오이다. 히미코(卑彌呼)님.”

“아닙니다. 저 같아도 저런 반응을 보였을 테니까요.”

대사는 처용에게 애걸하듯 말했다.

“이보게나. 일단 진정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 보는게·······.”

“이야기요? 지금 이 땅을, 수호해야 할 한반도를 포기하라는데 더 들을 이야기가 있습니까? 전부 자기네들 땅이 아니라 그렇게 나오나본데······.”

처용은 거칠게 의자를 밀어 넣고는 자신의 파란 재킷을 집어들었다.

“전 여기서 더 이상 들을 말 없습니다. 논의인지 논란인지 마음대로 지껄이시길 바랍니다.”

“참을 수가 없군.”          

처용이 홀을 나가면서 중얼거린 말에 앉아있던 인물 중 남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얼굴에 철갑으로 된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온 몸을 강철로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마스크를 한 손으로 덮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앉아라. 부룡(剖龍).”

일어선 사내를 부룡이라 부른 노인은 하얀 도포에 긴 백발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은 것이냐?”

“······아닙니다.”

“잘못해서 죽이기라도 하면 천부문과 상당한 마찰을 빚게 된다. 그건 생각하지 못했느냐?”

“······죄송합니다.”

“계속 진행하시지요.”

대놓고 처용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대사는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빌었다. 하지만 처용은 대사의 바람을 깡그리 짓밟았다. 재킷을 입고 있던 처용은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피식 웃으면서 결정타를 날려 버렸다.

“요즘 이무기들은 인간들의 개가 된 건가? 하긴······.꼴을 보니 얼굴도 못 내놓는 반병신인 것 같은데, 그럴 만도 하지.”

“이······!”

부룡은 처용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있어났다. 이번에는 옆에 앉은 백발노인도 부룡에게 아무런 재제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집회의 주체자인 히미코에게 슬며시 눈길을 주었다. 말릴 만큼 말렸고 자신도 참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히미코는 그런 백발노인의 행동에 팔짱을 끼고는 처용과 비룡을 바라보았다.    

“듣자 하니 너무하는구나. 인간아. 피를 보아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개면 개답게 짖어라. 힘들게 사람 말 쓰지 말고.”

“감히 그따위 말을······!”

부룡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리고 처용의 바로 앞까지 걸어간 그는 가면을 천천히 벗었다. 가면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붉은 비늘 같은 것이 피부를 대신하고 있었고 세로로 찢어진 입술 사이로는 길다란 이빨이 솟아나 있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공포스러운 얼굴을 대하고 있는 처용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인간. 너희들과의 마찰은 피하라고 하셨지만, 오늘 넌 내손에 죽는다.”

  홀 안에 지독하게 날카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치 칼과 같은 그 바람은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서서히 처용에게 좁혀져 들어갔다. 백발노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천부문과의 관계악화를 예상했다. 승려복을 입은 노인과 히미코의 옆에 정좌해 있던 외눈의 남자도 히미코를 보면서 피를 보기 전에 말릴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히미코는 입에 미소를 띠운 체 아무런 말도 없이 둘을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들이 천(天) 과 지(地) 에 내릴 수 있는 세 가지 재앙 중 하나인 풍(風)의 기술이다. 여기에서 빠져나간 존재는 내 200평생 한 명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살려 줄 수도 있다. 인간.”

“······.”

처용은 자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칼바람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재킷을 등에 걸치고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웃기는군.”

처용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오른발을 들어 땅을 쿵 하고 찍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처용을 감싸며 좁혀 오던 돌풍이 사라져 버렸다. 부룡은 자신의 기술이 순식간에 저지당하자 당황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백발노인은 눈이 부릅떠졌다.

“인간의 손에 길러진, 용도 되지 못한 이무기 주제에 건방지구나.”

처용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하얀 살결이 울룩불룩해 지면서 비룡과 같은 비늘이 얼굴 위로 솟아났다. 부룡의 거무스름한 비늘과는 달리 환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처용의 변한 얼굴을 본 부룡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설마!”

“꼬마. 이게 바로 풍이다.”

처용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맹한 바람이 홀 안에 솟구쳤다. 그 바람은 무형이 아닌 뚜렷한 유형을 띠며 홀에 있는 기물들을 부서뜨리며 부룡에게 다가왔다. 백발노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처용을 가리키며 외쳤다.

“진짜, 진짜 미르! 미르다!”

유형의 칼바람이 순식간에 부룡을 덮쳤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극한으로 기를 끌어올려 바람에 대항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에는 하나 둘 씩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상처에서는 인간과는 다르게 초록색 피가 흘러나와 그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부룡은 그제야 자신이 한참을 잘못 한 것을 알았다. 상대는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한 세월을 사라온 진짜 미르였다는 것을 깨달은 부룡은 처용에게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처용은 싸늘한 얼굴로 점점 더 생체기가 늘어나는 부룡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때, 팔짱을 끼고 구경을 하고 있던 히미코가 옆구리에 차고 있는 붉은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뽑힌 칼의 날에서는 강한 열기가 물씬 풍겨져 나왔고 철이 가열된 듯 노란 태양빛을 띠고 있었다. 히미코는 그 칼을 처용이 부리고 있는 풍의 정 중앙에 던졌다. 풍을 향해 날아가는 칼에서는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그 칼이 풍에 닿는가 싶더니 큰 소리를 내면서 폭발해 버렸다.

“이제 그만 하세요.”

폭발의 영향으로 바람이 홀을 한 번 쓸어가고 난 후, 히미코는 난장판이 된 탁자위에 칼집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처용이 부리던 풍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중앙에는 부룡이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인물들은 히미코의 위용에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백발노인은 히미코 보다는 처용에게 더욱더 관심이 있는 듯 했다.

‘스스로 변이시킬 수 있는 경지, 영롱한 빛이 나는 비늘! 우리 어룡씨(御龍氏)들이 그렇게 갈구하던 진짜 미르다. 저 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백발노인은 탐욕의 눈빛으로 처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옛 중국 하 왕조 때부터 용을 키우던 권룡씨(拳龍氏)란 씨족이 있었다. 그들은 전설상으로 용을 부리고 키워 황제를 도왔다고 하는 부족이다. 그 부족은 이무기를 용으로 만드는 비술을 알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권룡씨가 사라지고 난 후 나타난 것이 바로 어룡씨다. 그들은 권룡씨에서 용을 키우는 기술을 배운 유루(劉累)라는 인물이 시초였는데 권룡씨가 사라지고 나서 권룡씨 대신 황제 곁에서 용을 부리는 씨족이 된다. 하지만 유루는 이무기를 용으로 둔갑시키는 비술을 권룡씨에게 전수 받지 못했고, 그 비술에 대해 연구를 하다 나라에서 금한 금단의 술법에 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결국 유루는 황제 곁에서 쫓겨나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유루는 비술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몽골 반도 어디쯤에 자리 잡고는 끊임없이 비술을 연구하며 제자를 받아 키웠다. 유루는 죽으면서 까지 비술을 알기 전 까지는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비술의 근처조차 다가가지 못한 유루의 제자들은 그의 말을 어기고는 가진 기술만으로 다시 세상에 나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용의 새끼를 이무기로 키워 족쇄를 채우고 부리는 일이 전부였지만 그 것 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유린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점점 유루의 당부를 잊어갔다. 그리고 비술의 발전보다는 많은 이무기의 확보에 열을 올리는 집단이 되어버렸고 결국에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다 지금처럼 이무기조차 제대로 제어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직 어리지만 적어도 500년은 묵은 미르일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천부문에 들려서 저 미르를 몰래 생포해서 빼내와야겠다.’

백발노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의 바램은 히미코의 말에 무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대가 바로 용들의 다섯 왕 중 첫 번째 왕좌에 앉아있는 해룡왕 리바이어던의 아들이군요.”

앉아있던 인물들은 경악한 얼굴로 처용을 바라보았다. 해룡왕. 그 이름은 감히 신과 맞먹을 만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바다의 제왕을 이르는 말로 단신으로도 아바돈 전체와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전해지는 존재이다. 1~2천년을 사는 일반용들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덩치에 차원이 틀린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십 만년동안 오롯이 존재해 온 일곱 용왕들은 그들의 살아온 세월 동안 인간세에 관여하지 않았다. 딱 한번, 다섯 용 왕 중 네 번째 왕좌에 앉아 있는 풍룡왕 티어맷이 등장했던 적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등장 했을 때 모든 대지가 흔들리고 해일이 일었으며 하늘이 갈라졌다고 했을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했다. 그는 어떠한 이유로 당시 지상을 다스리던 어떠한 존재의 말살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입김과 발길질 한번으로 세상을 다스리던 존재들이 모두 찢겨져 소멸되었다고 한다. 그런 용왕의 자손이 바로 처용이라니, 사람들은 처용을 다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용의 표정을 결코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히미코에게 다가가서 탁자에 손을 얹고 얼굴을 밀착시키며 소곤 거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 이름······. 다시 한 번 지껄이면 왜 용이 지상 최강의 존재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겠다.”

히미코는 처용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버릇처럼 자신의 칼집을 매만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주변 인물들은 아까 전처럼 처용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 가만히 참고 있던 대사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처용! 자네는 내가 역정을 내는 것을 꼭 보아야 되겠는가!”

앉아 있는 인물들은 감히 처용에게 소리를 지른 대사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몇 십년 동안 집회를 가졌지만 저렇게 화가 나있는 대사의 얼굴을 처음 이었다. 그리고 그의 고함소리에 처용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그는 갑자기 머쓱한 표정으로 대사를 돌아보았다.

“하, 하하하······.”

“처용!”

대사가 한 번 더 소리를 지르자 처용은 찔끔 하면서 히미코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강아지가 꼬리를 말듯이 슬며시 대사 곁으로 다가갔다. 대사는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처용을 바라보았다.

“자네 자꾸 이렇게 나올 겐가?”

“······죄송합니다.”

“휴·······.”

대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오늘 자리는 저의 불찰로 이렇게 되고 말았소이다. 정말 면목이 없소이다. 일단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대사의 말에 백발노인은 얼른 대사의 말에 수긍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처용에게 한 짓에 대해서 어떠한 보복이 돌아올지 몰라 빨리 이 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다른 인물들도 어지럽혀진 홀을 둘러보면서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히미코에게 말했다. 다들 처용의 위용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히미코 옆에 앉아있던 외눈의 사나이만은 처음과 같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집회의 주최자였던 히미코는 탁자에 놓여있는 칼집을 집어들어 허리에 찼다. 분명히 칼이 폭발했었는데 칼집에는 아까전과 똑같이 생긴 칼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차후 따로 연락을 드려 다시 한번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논의가 된 한반도에 대한 것은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이 난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처용이 눈을 부라렸다가 대사에게 꼬집힌 후 잠잠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그들, [아틸리아]의 힘은 막강합니다. 우리는 저번 아틸리아와 다른 거대 조직인 아바돈, 두 조직이 벌였던 전투에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부딪힌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 검인 [쿠사나기]도 아틸리아의 이름모를 여인에게 너무나도 힘없이 패배했었습니다. 그 때 같이 싸웠던 대사는 알 것입니다. 그들의 힘을.”

대사는 공감했다.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그의 위용도 결국 아틸리아란 이름 앞에 무릎을 꿇었었다. 처용은 당시 자신의 혈육과의 마찰로 직접적으로 그들과 부딪히지는 않아 그들의 힘을 잘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기술을 막아낸 히미코의 검이 맥없이 무너졌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히미코는 눈을 빛냈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들의 요구가 굴욕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처용님. 이번 집회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처용은 묵묵히 서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부룡도 상처를 대충 회복하고 비틀거리며 백발노인 옆에 앉았다. 노인은 부룡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지만 부룡은 그런 눈길도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 했다. 붉은 도포를 입은 노인은 히미코에게 합창을 하고는 처용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의 앙금은 다 잊었으니 다음에는 웃는 얼굴로 만나길 빕니다.”

백발노인도 비틀거리는 부룡을 대리고 나가면서 어물어물 사과를 했다. 그들이 나가고 난 후, 홀 안에는 대사와 처용, 그리고 히미코와 외눈의 사나이만이 앉아 있었다. 히미코는 처용을 보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분명 미인 중 미인이것만 처용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대사가 화를 내는 마당에 시비를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처용은 대사에게 말했다.

“우리도 갑시다. 대사.”

“그러세. 그럼 안녕히 계시오. 히미코님.”

“네, 조심히 가시길 바랍니다.”

처용과 대사마저 홀을 나가고 나자 히미코는 옆에 앉아있는 외눈의 사나이에게 말했다.

“타케루님. 어떻습니까. 처용이란 자는.”

타케루라 불린 사나이는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안대를 하고 있는 눈을 매만졌다.

“나는 백이면 백 패합니다.”

“그런 저는?”

“장담 할 수 없겠지요.”

히미코는 그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분명히 처용은 대사의 말 한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그렇게 급하고 거친 성격을 다룰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다. 힘, 아니면 포용력. 하지만 대사의 좋은 말에도 막무가내였던 처용이 대사가 화를 내자 조용해진 것을 보면 힘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타케루는 대사는 타키루 자신보다 못하다고 했었다.

“타케루님이 틀릴 확률은?”

“······히미코님도 아실텐데요.”

그렇다. 타케루의 능력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것은 함께해온 히미코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대사의 포용력에 의해서 처용을 제어한다고 결론 지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지금 한반도의 세력에서 가장 강한 자는 처용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다행입니다.”

그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조만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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