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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지름을 2m라고 할 때 이 원기둥의 넓이는……"

한때 꿈을 따라 거리를 달리던 소년은 이제는 다 큰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소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불과 10여년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뜨거운 증기가 고작 찜질방공기 용도만이 아닌 마력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과학의 이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옌디스와 근접 주들간의 철도가 연결되어 성대한 개통식이 열리기도 했다. 열차개통식의 개막식에서 현 국왕 '라오'가 실실거리며 세계 최초를 들먹이는 것이 좀 흠이었지만.

"선생님, 내일 '하늘'이 와요."

40여명의 학생 중 한명이 뜬금없이 소리쳤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하늘에 관한 아이들의 토론이 벌어졌다. '하늘'은 무엇인가, '하늘'에 무엇이 있는가, '하늘'이 떨어지진 않을까 등등. 다소 어른스럽고 쏘쿨하게 보이고 싶은 아이들이지만 아직 꿈에 대한 열정도 무시할 수 없는 듯, 열광적으로 소리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제는 선생님이 된 랍은 자신이 어릴 때를 떠올리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시끄럽구나.'

말이 좋아서 토론이지 지금 교실의 상황은 아수라장과 다를 바 없었다. 서로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주장만을 맹목적으로 소리치는 아이들, 그저 귀찮다는 듯이 멍 때리는 아이들, 어서 선생이 이 상황을 종료하고 수업도 같이 종료했으면 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 등등. 어쩜 이리 학회의 회의장과 비슷한 분위기일까.

"자자, 조용. 이제 기초교육반 아이들도 아니니, '하늘'에 관해서는 알만큼 알지 않나요? '하늘'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위에 무엇도 있지 않아요. 하늘의 태양이나 달과 같은 겁니다. 그리고 '하늘'은 '아탄시아'라고 합니다. 기억해두세요. 자 그럼 이 문제는 요셉이 풀어볼까?"

내일 하늘이 온다고 제일 처음 소리쳤던 요셉은 당황했다.

* * *

초급 학생들 과제 채점 완료. 내일 중급 b반 검사하기 체크. 중간평가 성적 입력 완료. 책상 정리 완료. 의자 밀어 넣고 퇴근!

고딕성당과도 같은(30여년 전만해도 전부 성당으로 쓰였지만 이러저러한 일로 지금은 일부분만이 성당이다) 뾰족뾰족한 외형을 가진 거대한 학교 건물을 등지고 교문으로 향하던 랍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교문 앞에 서있는 사람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어이~ 랍 맞지? 빨리 와!"

그런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그 사람이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랍을 불렀다.

"다웨냐?"

랍은 흔들거리는 가방을 꽉 움켜쥐고 교문으로 달려갔다. 다웨는 꽤 눈에 띄는 형색으로 교문에 기대어 있었다. 초라한 가죽 모자에 약간 개조를 한 듯 한 오른쪽 외눈 안경, 너덜거리는 가디건과 여기저기 흙이 묻어있는 롱스테일 가죽부츠 이러한 것들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짊어진 꽤 무거워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가방이었다. 다웨와 랍은 꽤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었다. 기초교육반 시절, '하늘날'만 되면 학교에서 사라지는 랍을 다웨가 미행했고 그렇게 중등교육반 시절까지 '하늘'에 관해 서로 토론을 벌이다가 불현듯 다웨는 고급교육반에 진학하지 않고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랍은 고급교육반에서 과학과 산수학, 기하학을 전공해서 학교의 2급 선생이 되었다. 다웨는 매년 하늘날이 되면 랍이 이제껏 보지도 못한 기괴한 물건들과 나름 엄청난 정보들을 수집해서 옌디스로 돌아오곤 하는 생활이 오늘까지 계속 되었던 것이다. 랍과는 다르게 외국어에 상당히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다웨는 세계 어디를 가도 단기간에 자국민이라고 착각할 만큼 훌륭한 발음을 내곤 했다. 그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하늘라인의 도시, 마을에서 여러 정보를 모아오곤 했었다. 랍은 과학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손재주도 좋아서 다웨가 가본 어느 마을의 신기한 물시계라던가, 한창 유행하고 있다는 증기기관 등도 혼자서 뚝딱 만들어 버리곤 했다.

둘은 랍의 집으로 향하며 그간 새로운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 이번 여행에서 새로 건진 건 있냐?"

"아니. 뭐 똑같지. 그저 하늘은 라인 위를 지날 뿐이었어."

"그 타루라는 분은 잘 계시고?"

"어, 아직 정정 하시더라고. 100년은 더 살겠던 걸~. 넌 뭐 소식 없냐?"

"어 보자. 아, 최근에 아작 뉴런이 학설을 발표했더라고."

"엥? 그 또라이가?"

"그래. 그 미친 과학선생이 '만류인력'이라는 걸 주절거렸더라고."

"흠… 반응은 어때?"

"나름 타당한 가설이라면서 흥미를 모으고 있어. 뭐 아탄시아가 가장 큰 맹점이긴 하다만."

"허, 그 또라이가 하는 말이 그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는 걸?"

"동감이야. 들리는 이야기로는 학회에서 '만류인력'에 대해 추가 설명을 부탁했는데 자기는 영생을 얻는 법을 연구한다고 바빠서 못 나간다고 했더라고. 그래서 데콥이 대신 설명 했던가? 아무튼 그래."

"오, 데콥! 오랜만이네. 그 놈은 잘 있나?"

"최근 옌디스 대학에서 데콥 강의 안 들으면 대학 다니는 게 아니라는 소리가 있지."

"크크큭. 그 놈이 대학 강사를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냐?"

"그런 걸로 따지면 중등교육반 1등인 니 놈이 고급교육반에 안 가고 여행을 떠난 게 더 충격이었지."

"뭐 그런 건 넘어가고. 이번에 찾아낸 물건이 있는데 끝내준다. 집에 가면 보여줄게."

이런 저런 잡답을 하는 사이에 마을에서 동떨어져 산기슭에 홀로 있는 랍의 집에 도착했다. 사실상 집이 아니라 랍의 창고 같은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니 집이라 해도 무방했다. 비단 무역업을 하는 랍의 부모는 랍이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지 알고 있지만……. 다웨는 어느 몰락한 백작가 하녀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지만, 그 백작이 문란한 사교 생활로 매장 된 걸로 봐서 아버지가 누군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 랍은 과학과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 보충 시험을 2번씩 쳤었다. 반면 다웨는 모든 과목에서 1등이었고 그 중 언어 관련 과목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경지를 선보였다. 허나 불현듯 중등교육을 마친 다웨는 홀연히 사라졌고,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랍뿐이었던 것이다.

"우와! 이걸 진짜 만든 거야? 엄청난데?"

다웨가 창고로 들어서고 창고 가운데 있는 양철 원기둥을 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창고는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창문은 문 맞은 편 벽에 사람 몸통만한 창문 하나가 전부였고 나머지 벽들에는 여러 원과 삼각형과 사각형과 수식들이 쓰인 알 수 없는 도면들로 도배가 돼있었다. 바닥에는 망치, 톱, 줄, 절단기 등의 각종 공구들이 아무데서나 뒹굴고 있었고 문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탁자 위에는 이제껏 다웨가 모아온 잡동사니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그 중 대부분, 아니 사실상 전부가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창고 중심에는 다웨가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속이 빈 양철 원기둥이 4개의 지지대에 의해 똑바로 서있었다. 그 원기둥의 제일 위는 원뿔 모양이었고 내부는 원기둥의 아랫부분에는 어른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크기의 날개들이 8개쯤 붙어 있었다.

"만들기야 만들었지."

랍은 친구의 반응에 흐뭇해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대 실패야. 화약의 폭발력이 너무 적어. 10m정도 올라가는 게 전부더군. 18kg의 고급화약을 사용했는데 그 모양이면 현재 이 '로켓'을 날릴 수 있는 화약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그러면 로켓의 무게를 줄여야하는데 다른 금속은 화약의 폭발력을 이길만한 내구력이 없더군. 그냥 폭탄을 만들어 버렸었어. 계속 연구를 하고 있기는 한데, 답이 없다."

"크~ 진짜 아깝다. 그래도 이건 내가 본 그 로켓보다 더 잘 만든 것 같은데… 그리고 10m라니. 그 사람도 8m 정도가 한계였다고 했었어."

다웨는 연신 로켓 주변을 서성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랍은 탁자 위의 물건을 적당히 밀고 탁자위에 앉았다.

"뭐 언젠가는 될 수도 있겠지. 자, 보여줄 물건이란 게 뭐야?"

"아, 잠깐만"

다웨는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 밑을 잡은 뒤 그대로 뒤집었다. 가방 안에 있던 건포, 속옷, 상하의 몇 벌, 칼, 부싯돌, 종이뭉치, 펜, 잉크 등등의 잡동사니들이 안 그래도 난잡한 창고바닥으로 쏟아졌다. 다웨는 잡동사니들을 몇 번 들춰보더니 이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이상한 모양의 '총'을 꺼냈다.

"사실 이번 여행 중 반 정도는 이거에 매달렸어. 너무 흥미로운 물건이라 잠깐 하늘을 잊었었지."

다웨는 입이 찢어질 듯한 웃음을 지으며 '이게 뭔지 빨리 물어봐줘!'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혹시 총이냐?"

"빙고! 총이야."

랍은 '철문점에가서 4kg철과 목공점의 손바닥만한 나무를 얻어오면 3시간 만에 만들 수 있는 걸 좋다고 들고 있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이걸 한 번 봐봐."

다웨는 도면 대신 랍의 옷가지 몇 벌이 걸려있는 벽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열고 밖에 보이는 나무들을 향해 총을 쐈다.

탕-탕-탕-탕-탕-탕-

"어때?"

랍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혀 재장전도 없이 순식간에 6발을 발사하는 총이라니!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획기적인 총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재장전은 없는 총인가?"

"음핫핫핫핫! 역시 너도 놀라는 구나! 나도 처음 봤을 때 그랬지."

현재 군에서 사용되는 최고의 총도 한 번에 한발을 쏠 수 있는 게 전부다. 그리고 그들은 빠른 시간에 성공적으로 재장전 할 수 있는 훈련을 받는다. 한 발이라도 더 쏘는 것이 전장의 승리를 결정하고, 재장전이 잘못되면 총이 폭발하여 오히려 자신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웨는 랍에게 자신이 가진 총의 원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이 총의 탄환은 따로 재작된다는 것. 화약, 막힘쇄, 탄환 순으로 넣어 재장전하는 것이 아니라 화약, 막힘쇄, 탄환을 하나로 붙여서 만들어낸 새로운 탄환을 쓴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부싯돌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 현재 총의 공이치기 끝에 붙어있는 부싯돌 역시 탄환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저 공이치기의 때리는 힘으로 탄환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총알이 발사된다는 원리라는 소리였다. 세 번째로 6발 장전 시스템을 설명했다. 총을 쏘고 방아쇠 위에 위치한 원통을 돌려서 새로운 총알이 장전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난 뒤 랍은 경탄을 금치 못하고 넋 놓아 박수를 치고 말았다. 가희 획기에 획기를 더해 획기적인 발명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 속에는 기인들이 많은 것 같아. 이걸 준 사람도 상당히 괴짜였어. 일단 너도 그렇고 말이지."

다웨는 아직까지 어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랍을 보며 웃었다.

* * *





















하늘이야기인데 대륙이야기 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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