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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크래그 쌍둥이


오른팔 뼈에 금이 갔다. 망할 새대가리들 같으니라고.
누가 그깟 새둥지 궁금해 할 줄 알아? ……사실 좀 궁금하지만,
어쨌든 평범하게 숨었다가는 금세 발견되고 말기 때문에 나무에 올라갔던
거라고. 레이첼은 숨어있는 아이는 귀신같이 찾아내니까.
그래서 다들 레이가 낀 숨바꼭질은 꺼려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술래가 실력이 있어야 숨는 보람이 있는 법이잖아.
나무 위에 숨는 건 정말 내가 생각해도 천재적이고 지능적이고
센스 넘치면서도 독창적인 발상이었다. 보통 눈높이보다 위쪽을 찾는다는
생각은 하기 어렵거든. 그런데 하필 올라간 그 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있을 줄이야. 그 때문에 한동안 밥도 왼손으로 먹어야 하고, 책장을 넘기는
것도 왼손, 가방을 드는 것도 왼손이다. 평소에 오른손이 얼마나 힘든
노동을 해 왔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미안하다, 이런 힘든 일을 너한테만
시켰구나. 앞으로는 왼손도 좀 나눠서 하자……?

하지만 가장 귀찮은 것은 시도 때도 없이 팔씨름을 걸어오는 레오닐이다.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지만 녀석이 살랑살랑 약을 올리며 도발해대는 데는
어지간히 도를 쌓은 사람도 울컥 울화가 치밀고 말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로 손을 내밀고 있지.
결과는 뻔하다. 레오닐은 의기양양하게
“이 몸이 ‘또다시’ 시레 리세트를 제압했도다!” 라고 외치며 사라지고
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으며 놈의 도발에 넘어간 나를 저주하는 거다.
바보야, 레오는 왼손잡이잖아! 그럼 레이가 다가와 내 등을 토닥이며
위로한다. 오른손이었다면 네가 이겼을 거야, 시레.
위로하지 마! 내 양손이 멀쩡했으면 레오가 팔씨름 해보자는 말 따위
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넘어간 내가 더 비참해지잖아.
이놈의 쌍둥이는 번갈아가면서 사람 속을 긁는다. 철들기 전부터 함께 놀던
불알친구만 아니었어도 한방에 날려버리는 건데.

……투덜투덜 불만을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녀석들이 기운을 되찾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삼년 전엔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한 동안
녀석들 모습이 말이 아니었지.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워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 온 동네를 주름잡던 악명높은(주로 레오가 만드는
악명이지만) 크래그 쌍둥이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기운 없이 걷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지금은 뭐, 기운이 넘쳐서 탈이지.

아, 또 왜 부르는데 레오닐? 또? 넌 지치지도 않냐.
삼십분 전에 한판 했잖아……환자좀 그만 괴롭히라구. 레이, 좀 말려봐.
야, 야! 잠깐,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뭐엇? 너, 너 말 다했지?
후회 없지?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건 절대 못 참는다! 당장 테이블 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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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입니다 ㅇㅇ..
전 밝고 명랑하게 (...)
* 현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8-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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