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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경선
<국가간의 경계선은 큰 강이나 산맥, 또는 사막으로 이루어진다. 군대의 진군을 가로막는 이러한 모든 장애무들 중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사막이고, 그 다음은 산맥이며, 그리고 세 번째는 강이다.>
소견 1
나폴레옹은 군 생활 동안, 특히 공격을 하면서 온갖 종류의 난관을 극복했다.
이집트에서 그는 사막을 횡단했으며, 용맹함과 능숙한 전투 솜씨로 유명한 이집트 노예기병(마메루크)를 격파하고 정복했다. 그는 군대의 보급 수송 지원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나라에서 벌어진 해외 원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적응할 줄 아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탈리아 원정에서 그는 두 번씩이나 그것도 가장 험난한 통로를 통해, 그것도 가장 힘든 계절에 알프스를 넘었다. 그리도 다시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4개 군을 격파하고 패주시켰다. 한마디로 라인 강에서부터 보리스테네스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하는 그의 군대의 빠른 진군을 저지할 수 있는 자연 장애물은 없었다.
소견 2
나폴레옹과 금언의 편집자는 침략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국경, 즉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까다로운 해안이 있다는 것을 엄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영국에 대한 대규모 상륙작전은 1940년의 히틀러의 침공과 마찬가지로, 1797~98년과 1804~05년 당시 프랑스에게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증명했다.
두 경우에서 영국 해군은 영국이 신성 불가침한 국가임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04~05년에 아직까지도 목선으로 이루어져 있던 대영제국의 해군 함대는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긴 행렬을 이루어 나폴레옹과 세계 정복의 야욕 사이에서 꿋꿋이 버팀으로써 프랑스 육군이 감히 영국 본토를 넘볼 수 없도록 방어했다.
1940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스캐퍼 플로 항에 기지를 둔 본국 함대, 그리고 동쪽 해안과 영국 해협의 소형함대가 히틀러의 침공을 완벽하게 막는 역할을 희생적으로 수행했다. 히틀러 휘하의 일부 육군 장군들은 해협을 건너는 것이 <물웅덩이 건너뛰는>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독일 해군의 제독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1940년의 경우에는 공군력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800년대에는 일부 기술자들이 영국 남쪽 해안방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공기부양정과 기구를 상상해낸 것 외에는 아직 공중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 외에 해저터널에 대한 논의가 일부 있었다. 1940년 여름과 가을에 영국 공군과 치렀던 소위 <영국전투>에서 나치 독일공군은 대패했다. 그러나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켄트 지방과 서섹스 지방에 있던 비행장과 레이더 기지가 거의 파괴될 무렵 폭격의 목표가 런던으로 변경됐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를 평가하는 데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윈스턴 처칠은 겨우 수백 명에 불과했던 당시의 영국 조종사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인류 전쟁에 있어 이처럼 소수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했던 적은 없었다."
육지로 된 국경은 아직도 공격하는 측에서 많은 난제를 안겨주고 있다. 자신만만했던 마지도 요새도 독일군의 진공을 저지하지는 못했으나(독일군 사단은 간단하게 아르덴 숲을 통과해 요새를 우회했다.), 1945년의 <라인 강 도하작전>은 연합군이 3월 초에 레마겐의 철교를 고스란히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임무임을 보여주었다. 현대 게릴라 전쟁에서 국경은 중립국 영토의 성역화 문제(1948~60년과 1968~75년의 위기 시 태국 남부와 말레이시아 간의 국경 지역에서 제기된 바 있다.)와 병참 보급선 문제(베트남 전쟁기간중 중립국 라오스와 캄보디아 내의 이른바 [호치민 통로]가 이에 해당됨.)와 같이 간혹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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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쟁계획
<전쟁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적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전쟁계획은 주변 상황과 지휘관의 재능, 부대의 성격, 그리고 작전지역 특성에 따라 언제나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소견 1
때때로 우리는 전쟁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쟁에서이기는 매우 위험스런 경우를 본다. 그러나 이런 승리는 보통 운명의 가변성 또는 적의 실수에 의한 것으로서, 두 가지 경우 모두 지휘관이 절대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초기에 적이 방어 상태로 있다가 숙달된 행동으로 갑자기 기습으로 전환하여 주도권을 잡게 되면, 작전계획은 처음부터 실패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 1796년 뷔름저 원수의 책임 아래 추밀원에서 작성했던 전쟁계획이 바로 그런 운명에 놓여 있었다. 뷔름저는 수적 우세를 이용해 퇴각하는 프랑스군의 퇴로를 차단할 계획이었다. 그는 적이 아디제 전선에서 방어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전계획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중남부 이탈리아 지역작전 뿐만 아니라 만토바 포위전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뷔름저는 프랑스군이 만토바 부근에 고착되어 있다고 판단, 그의 부대를 3개 군단으로 분산하여 기동시킨 후 공격 장소에서 집결시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나폴레옹은 뷔름저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병참 대책도 강구되지 않은 채 3개 군단으로 나누어진 적군을 급습했을 때 어떤 이점이 있을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만토바 포위전을 서두르기 위해 병력을 집결시키고 결국 우세한 병력을 이용해 적을 격파했다. 확실한 승리를 장담했던 뷔름저는 10일간의 전투가 끝난 후에는 {25,000명의 전사자와 50,000명의 부상자, 9개의 군기, 그리고 70여 문의 대포를 잃는 등 막심한 피해를 입은 채 패잔병을 이끌고 물러나야 했다.}
이것은 지휘관이 전투기간 동안 해야 할 행동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주는 예이다. 승리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추구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휘관 자신의 의지대로 부대를 지휘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휘관의 재능을 발휘하는 기회를 제한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견 2
다음과 같은 처칠의 이야기는 현대전쟁에 관한 어떤 금언보다도 더 큰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전쟁 계획을 세울 때는 적의 계획도 당연히 계산에 넣어야 한다."
이 금언은 군사정보를 획득하고 평가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활동은 인공위성과 전자센서 등 모든 탐지기와 재래식 방법인 간첩 행위 등을 포함하는 거대하고도 복잡한 문제이다. 또한 정보의 양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오늘날 이것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매일같이 몇 톤씩이나 쏟아지는 정보 보고서를 다루어야 했다.
이 금언을 적용하는데 실패한 전형적인 예가 바로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이다. 아르헨티나는 초기에 포클랜드 섬을 기습 점령함으로써 확실한 전략적 기습에 성공했으나, 불행하게도 영국측의 반격결정을 예측하지 못했다. 역습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기동원정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섬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아르헨티나군의 효과적인 포격과 프랑스제 엑소세 대공미사일들은 취약한 영국의 프리깃함들과 보급함들을 기습적으로 침몰시켰다. 그러나 공중 우세권은 해리어 전투기가 장악했으며, 영국 공정대와 해병대의 강력한 전투력은 아르헨티나의 풋내기 징집병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 장군과 그의 보좌관들이 전혀 예상치 못하고 적절히 대응치 못했던 영국 대처 행정부의 확고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전쟁계획의 융통성은 나폴레옹이 언급했던 동일한 요인들로 인해 여전히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아랍 국가들의 다양한 능력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확하고 신축성 있는 평가야말로 <6일 전쟁>과 <욤키푸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기초가 되었다. 비록 욤키푸르 전쟁의 경우, 수에즈 운하를 건너 병력이 적게 배치된 바레브 요새를 공격했던 이집트군의 작전 형태와 시간으로 인해 초기의 기습이 달성되기는 했지만, 곧이어 이스라엘군은 강하고 과감한 반격작전을 효과적으로 성공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계획의 융통성을 강조한 나폴레옹의 금언은 19세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진리로 남아 있다. 1944년 연합군이 독일에게 감행했던 <오버로드 작전>은 그 복합성과 융통성, 그리고 보안성과 작전적 측면에서 전형전인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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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경선
<국가간의 경계선은 큰 강이나 산맥, 또는 사막으로 이루어진다. 군대의 진군을 가로막는 이러한 모든 장애무들 중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사막이고, 그 다음은 산맥이며, 그리고 세 번째는 강이다.>
소견 1
나폴레옹은 군 생활 동안, 특히 공격을 하면서 온갖 종류의 난관을 극복했다.
이집트에서 그는 사막을 횡단했으며, 용맹함과 능숙한 전투 솜씨로 유명한 이집트 노예기병(마메루크)를 격파하고 정복했다. 그는 군대의 보급 수송 지원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나라에서 벌어진 해외 원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적응할 줄 아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탈리아 원정에서 그는 두 번씩이나 그것도 가장 험난한 통로를 통해, 그것도 가장 힘든 계절에 알프스를 넘었다. 그리도 다시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4개 군을 격파하고 패주시켰다. 한마디로 라인 강에서부터 보리스테네스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하는 그의 군대의 빠른 진군을 저지할 수 있는 자연 장애물은 없었다.
소견 2
나폴레옹과 금언의 편집자는 침략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국경, 즉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까다로운 해안이 있다는 것을 엄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영국에 대한 대규모 상륙작전은 1940년의 히틀러의 침공과 마찬가지로, 1797~98년과 1804~05년 당시 프랑스에게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증명했다.
두 경우에서 영국 해군은 영국이 신성 불가침한 국가임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04~05년에 아직까지도 목선으로 이루어져 있던 대영제국의 해군 함대는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긴 행렬을 이루어 나폴레옹과 세계 정복의 야욕 사이에서 꿋꿋이 버팀으로써 프랑스 육군이 감히 영국 본토를 넘볼 수 없도록 방어했다.
1940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스캐퍼 플로 항에 기지를 둔 본국 함대, 그리고 동쪽 해안과 영국 해협의 소형함대가 히틀러의 침공을 완벽하게 막는 역할을 희생적으로 수행했다. 히틀러 휘하의 일부 육군 장군들은 해협을 건너는 것이 <물웅덩이 건너뛰는>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독일 해군의 제독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1940년의 경우에는 공군력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800년대에는 일부 기술자들이 영국 남쪽 해안방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공기부양정과 기구를 상상해낸 것 외에는 아직 공중을 이용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 외에 해저터널에 대한 논의가 일부 있었다. 1940년 여름과 가을에 영국 공군과 치렀던 소위 <영국전투>에서 나치 독일공군은 대패했다. 그러나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켄트 지방과 서섹스 지방에 있던 비행장과 레이더 기지가 거의 파괴될 무렵 폭격의 목표가 런던으로 변경됐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를 평가하는 데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윈스턴 처칠은 겨우 수백 명에 불과했던 당시의 영국 조종사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인류 전쟁에 있어 이처럼 소수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했던 적은 없었다."
육지로 된 국경은 아직도 공격하는 측에서 많은 난제를 안겨주고 있다. 자신만만했던 마지도 요새도 독일군의 진공을 저지하지는 못했으나(독일군 사단은 간단하게 아르덴 숲을 통과해 요새를 우회했다.), 1945년의 <라인 강 도하작전>은 연합군이 3월 초에 레마겐의 철교를 고스란히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임무임을 보여주었다. 현대 게릴라 전쟁에서 국경은 중립국 영토의 성역화 문제(1948~60년과 1968~75년의 위기 시 태국 남부와 말레이시아 간의 국경 지역에서 제기된 바 있다.)와 병참 보급선 문제(베트남 전쟁기간중 중립국 라오스와 캄보디아 내의 이른바 [호치민 통로]가 이에 해당됨.)와 같이 간혹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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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쟁계획
<전쟁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적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전쟁계획은 주변 상황과 지휘관의 재능, 부대의 성격, 그리고 작전지역 특성에 따라 언제나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소견 1
때때로 우리는 전쟁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쟁에서이기는 매우 위험스런 경우를 본다. 그러나 이런 승리는 보통 운명의 가변성 또는 적의 실수에 의한 것으로서, 두 가지 경우 모두 지휘관이 절대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초기에 적이 방어 상태로 있다가 숙달된 행동으로 갑자기 기습으로 전환하여 주도권을 잡게 되면, 작전계획은 처음부터 실패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 1796년 뷔름저 원수의 책임 아래 추밀원에서 작성했던 전쟁계획이 바로 그런 운명에 놓여 있었다. 뷔름저는 수적 우세를 이용해 퇴각하는 프랑스군의 퇴로를 차단할 계획이었다. 그는 적이 아디제 전선에서 방어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전계획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중남부 이탈리아 지역작전 뿐만 아니라 만토바 포위전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뷔름저는 프랑스군이 만토바 부근에 고착되어 있다고 판단, 그의 부대를 3개 군단으로 분산하여 기동시킨 후 공격 장소에서 집결시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나폴레옹은 뷔름저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병참 대책도 강구되지 않은 채 3개 군단으로 나누어진 적군을 급습했을 때 어떤 이점이 있을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만토바 포위전을 서두르기 위해 병력을 집결시키고 결국 우세한 병력을 이용해 적을 격파했다. 확실한 승리를 장담했던 뷔름저는 10일간의 전투가 끝난 후에는 {25,000명의 전사자와 50,000명의 부상자, 9개의 군기, 그리고 70여 문의 대포를 잃는 등 막심한 피해를 입은 채 패잔병을 이끌고 물러나야 했다.}
이것은 지휘관이 전투기간 동안 해야 할 행동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주는 예이다. 승리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추구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휘관 자신의 의지대로 부대를 지휘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휘관의 재능을 발휘하는 기회를 제한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견 2
다음과 같은 처칠의 이야기는 현대전쟁에 관한 어떤 금언보다도 더 큰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전쟁 계획을 세울 때는 적의 계획도 당연히 계산에 넣어야 한다."
이 금언은 군사정보를 획득하고 평가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활동은 인공위성과 전자센서 등 모든 탐지기와 재래식 방법인 간첩 행위 등을 포함하는 거대하고도 복잡한 문제이다. 또한 정보의 양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오늘날 이것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매일같이 몇 톤씩이나 쏟아지는 정보 보고서를 다루어야 했다.
이 금언을 적용하는데 실패한 전형적인 예가 바로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이다. 아르헨티나는 초기에 포클랜드 섬을 기습 점령함으로써 확실한 전략적 기습에 성공했으나, 불행하게도 영국측의 반격결정을 예측하지 못했다. 역습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기동원정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섬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아르헨티나군의 효과적인 포격과 프랑스제 엑소세 대공미사일들은 취약한 영국의 프리깃함들과 보급함들을 기습적으로 침몰시켰다. 그러나 공중 우세권은 해리어 전투기가 장악했으며, 영국 공정대와 해병대의 강력한 전투력은 아르헨티나의 풋내기 징집병들을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 장군과 그의 보좌관들이 전혀 예상치 못하고 적절히 대응치 못했던 영국 대처 행정부의 확고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전쟁계획의 융통성은 나폴레옹이 언급했던 동일한 요인들로 인해 여전히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아랍 국가들의 다양한 능력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확하고 신축성 있는 평가야말로 <6일 전쟁>과 <욤키푸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기초가 되었다. 비록 욤키푸르 전쟁의 경우, 수에즈 운하를 건너 병력이 적게 배치된 바레브 요새를 공격했던 이집트군의 작전 형태와 시간으로 인해 초기의 기습이 달성되기는 했지만, 곧이어 이스라엘군은 강하고 과감한 반격작전을 효과적으로 성공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계획의 융통성을 강조한 나폴레옹의 금언은 19세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진리로 남아 있다. 1944년 연합군이 독일에게 감행했던 <오버로드 작전>은 그 복합성과 융통성, 그리고 보안성과 작전적 측면에서 전형전인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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