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아무 것도 모른 체 몸만 열심히 굴리는 네 제자님이 불쌍하다, 이 말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청난 굉음이 분지를 뒤흔들었다. 대기가 흔들리고 산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충격 속에 아인과 베리아는 종이 인형처럼 밀려났다. 수양버
들처럼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해서 겨우 시야를 확보한 아인의 눈 앞에 보인
것은 정권을 날린 에리아와 그 강력한 정권을 한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쉐리안이
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조금 전, 이동 마법을 쓸 때와 비슷한 문양의 적색 마법
진이 버티고 있었다. 주먹과 마법진 사이에서는 쉴새 없이 작은 불꽃과 스파크가 터
지고 있었다. 쉐리안은 에리아가 제 2격을 날릴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역시 대단하네? 과연 우리 돌격 대장이셔.”
에리아 역시 옅은 미소로 답했다.
“이걸 상쇄시킨 너만할까?”
“하지만 이런 일격도, 내 마법도 에덴에게는 통하지 않았지.”
쉐리안은 한숨을 쉬며 마법진을 거두었다.
“일단 이 전 발언은 사과할게. 진심은 아니었어.”
“나도 알아.”
주먹을 거둔 에리아가 대답했다.
“그냥 스트레스를 한 번 풀고 싶었어. 아인한테 풀 수는 없잖아?”
뭔가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둘을 보며 두 제자는 온 몸에 오한이
드는 것 같은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 둘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강한 마법적 보호
막 때문에 뻐근해진 손목을 이리저리 풀면서 에리아가 질문했다.
“아무튼, 아까 그렇게 열을 낸 건 뭐 때문이야? 쉐리안이 그렇게까지 말을 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어서겠지?”
“그냥 해본 말이라면?”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난 더 궁금해 할 것 같아. 예를 들어 네가 이렇게 뜸을 들이는
이유라던가……”
쉐리안은 속으로 혀를 쳤다. 이 여우 같은 것. 앞에서는 모르는 척 받아주면서 뒤로는
다 꿰뚫어 보는 것 봐라. 쉐리안 역시 충격이 상당했는지 공격을 받아낸 오른 쪽 어깨
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대답했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아인 말이야, 네 제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어느새 땅바닥에 앉아있던 아인이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쉐리안은 정작 아인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항상 따분한 표정이던 쉐리안의 얼
굴에 긴장과 진지함이 보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어느새 관중으로 밀려난 베
리아 역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인이 방금 네 정권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있어?”
“글쎄.”
잠깐의 생각 끝에 에리아가 대답했다.
“아마 두 세 번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실험해 본 적은 없지만…….얘, 아인? 넌 어떻게 생각하니?”
순간 여섯 개의 눈동자가 전광석화처럼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낀 아인은 당혹감을
느꼈다. 한 쌍 이상의 눈동자를 대면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
만 대답은 해야 하기에 당황은 잠시 접고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에 빠지더니 손가락 세
개를 피며 대답했다.
“준비 동작만 충분하다면 열 번 중에 세 번 정도는 비슷한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쉐리안이 다시 에리아에게 물었다.
“저 애,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니? 내일 당장이라도?”
그 질문에 에리아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여러 면으로 봤을 때,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
니지만 연습과 실전은 확실히 다른 것이니까. 에리아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결코 아인이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거나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살짝 주저하는 그녀를 보며 쉐리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괜찮아. 베리아도 실전에서 써먹기에는 아직 부족하니까. 하지만…….”
아인과 베리아를 한 번씩 쓱 훑어본 뒤, 쉐리안이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 2년, 못해도 3년 안에 지금의 두 배의 역량을 발휘하게 만들어야 해. 그것도 실전에서.”
그 말에 에리아의 눈썹이 팔자를 그렸다.
“무슨 말이지? 쉽게 설명 좀 해줘. 갑자기 촉박하게 구는 이유가 뭐야?”
그 말에 쉐리안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답게 냉소가 섞인, 일그러진 미소였지만 그 균열에
선 왠지 모를 따뜻함이 스며 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별 일이네. 보통 그런 질문을 했던 건 내 쪽인데 말이야. 아무튼 네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쉐리안이 못 먹는 것을 내뱉듯 말했다.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저주 받을 망령들이 말이지.”
그 말에 에리아의 얼굴은 충격으로 굳었다. 물론 그 말의 무게를 알 리가 없는 두 명의
소녀는 눈만 끔뻑거리며 자신의 스승들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에덴의 추종자……들을 말하는 거야?”
그 말은 생기 없이, 마치 밀랍처럼 굳어진 에리아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쉐리안 역시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뱉듯이 말했다.
“레미레스.”
‘레미레스……?’
분위기 상 아무 것도 말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스승의 부서질 것 같은 얼굴은
아인과 베리아에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것만 같
던 그녀들이 아니었다. 실바람에 날리는 거미줄이 나뭇잎에 닿는 것처럼, 쉐리안의 말
이 이어졌다.
“봉인 이후로 수 백 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젠장.
에르킨의 말대로라면, 지금 봉인을 풀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해. 물론 우리들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 녀석들에겐 큰 장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저기 사부.”
간신히 유지되던 침묵은 베리아에 의해 깨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어색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주저하며 질문했다.
“분위기가 안 좋은 것은 알겠는데요, 우리한테도 레미레스가 뭔지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까나요?”
쉐리안이 눈치도 없는 것, 이라고 한 마디 지분거리려던 찰나, 에리아가 손을 들어 그녀를
막으며 대신 대답해 주었다.
“예전 언어로 하늘을 바라는 자라는 뜻. 에덴의 피에서 태어난, 오직 에덴만을 추종하는 집
단이야. 겉으로는 인간들과 구분이 힘들지만 인간이라는 범주에 넣기에는 너무 강한 녀석
들이지.”
용기를 얻은 베리아가 다시 질문했다.
“얼마나 강한데요?”
“아마 지금의 너희로서는 겨우 이길 수 있는 정도, 혹은 비기는 정도 일까나? 예전에는 이런
녀석들이 수 백에 달했지. 요즘에야 몇 되지도 않겠지만.”
그 대답에 두 제자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급격히 어두워지는 둘의 얼굴을 본 쉐리안이 코웃
음을 치며 말을 받았다.
“죽도록 수행하라는 말은 이때 쓰라고 있는 거야. 알았으면 내일부터 죽도록 실전연습 시작하도록.”
그때 아인이 손을 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스승님들이 나서서 레미레스를 없애주면 안돼요? 제약 때문에 에덴은 죽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머지를 없애주시면 좀더 수월하지 않……”
에리아가 당황하며 그녀의 말을 막으려 할 때, 쉐리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인의
말을 끊었다.
“와, 대박!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니, 흰둥이가 말을 안 해준 거라고 해야 하나?”
“아, 아니 그게…….”
쉐리안이 당황하며 끼어드는 에리아를 막아서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너도 언젠가는 알아야 하는 사실이니까 내가 말해줄게. 흰둥이 너는 방해할 생각하지마.
이걸 말해주지 않은 것은 온전히 네 책임이니까.”
흔히 보기 힘든 그녀의 단호함에 뭔가를 말하려던 에리아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가볍
게 아랫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인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너희를 도와줄 수 없어.”
옆에 서있는 에리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런 그녀를 무시하듯, 쉐리안의 말은 계속됐다.
“우리도 너희를 도와주고는 싶지, 당연히. 그런데 이런 생각 안 해봤니? 우리가 나서면
될 일을 왜 굳이 너희를 시켜야만 하는지? 너희가 실패하면 우린 아마 우릴 죽이려 드는
에덴을 피해 이런 공간들 사이를 도망 다녀야 할 텐데?”
“그야, 스승님께서 여러분은 서로를 죽이지 못한다고…….”
“맞아, 사실이야. 우린 서로를 죽이지 못해. 그 점에는 이의가 없어. 그런데 말이야, 그것보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롱?”
우스꽝스럽게 말을 마친 쉐리안은 그 자리에서 가볍게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며 말했다. 마치
공연 중의 광대와 같은 몸놀림이었다.
“우리가 이 싸움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가 뭐냐고? 우리는 우리가 살 수 있는 영역 밖으로
나갈 수가 없거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니? 어째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인간들이 발견
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어째서 단 한 번도 에리아가 너를 데리고 바깥 세상으로 나간 적이
없는지.”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만큼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니야.’
아인의 심중에 자신에 대한 작은 의구심 한 송이가 피어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쉐리
안의 설명은 계속됐다.
“에덴의 마지막 저주 때문에 우리는 이런 차원의 틈에 갇혀서 식량도 이동 마법으로 가져와야
해. 물론 영혼 상태로는 그나마 한정된 시간 속을 이동할 수는 있지만, 유령이 때려봤자 아프진
않잖니?”
아인은 정신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그런 것이 아냐. 단지…….’
“너야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워낙 착해 빠져서 네가 말을 해주던 안 해주던 잘 따라왔겠지만,
이제부턴 그런 마음가짐으로 행동하면…….”
“그게 아니에요. 단지…….”
아인이 타인의 말을 끊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여섯 개의 눈동자가 아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녀는
부담감을 느꼈으나, 이미 쏟아지기 시작한 말을 담을 수는 없었다.
“가끔 하루가 끝나고 목욕을 할 때, 스승님이 먼 하늘을 보면서 슬픈 눈빛을 할 때가 있
었어요. 그때만큼은 뭐라 말을 걸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왠지, 상처를 건들 것 같아서. 그
럴 것 같아서 물어보지 못했어요.”
====
“아인은 착한 아이 같군.”
포도 한 알을 입에 넣고 돌리는 바람에 발음이 살짝 샜으나 알아 듣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쉐리안은 또 한 알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한 것도 이해는 간다만, 음.”
뭔가를 말하려던 쉐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살짝 주저하다가, 처음에 못했던 말이 결국 튀어나왔다.
“미안해. 네가 해야 할 말을 내가 해버려서.”
에리아가 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별 말씀을. 나도 눈치만 보고 있었어. 오히려 네가 해서 막히지 않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었
던 것 같아.”
석양이 떨어진다. 하늘에 붉은 빛이 한 곳으로 모이는 광경은, 이곳이 차원에 틈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다. 스승들이 마루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아인
과 베리아는 옷을 벗고 온천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남자는 친해지기 위해 목욕을 같이 하지만 여자
들은 친해지지 않으면 목욕을 같이 하지 않는 다는 옛말이 있다. 그 말에 따르면 지금 두 여인은
최소한 우정을 쌓을 포석을 마련한 것이다.
쪼르륵
맑은 소리와 함께 술이 쟁반 위에 놓인 술잔으로 빨려 들어간다. 술이 잔의 막바지까지 차오를
무렵, 술 따르기를 멈춘 아인이 물 위에 떠있는 쟁반을 베리아 쪽으로 밀었다. 마치 한 마리의
백조가 호수 위를 나아가듯, 베리아의 손길이 술잔에 닿을 때까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천
위를 천천히 헤엄쳐 갔다. 그녀가 여유로운 손놀림으로 술잔을 들어 올리자 아인의 잔이 다가와
입을 맞췄다.
쨍.
그리고 둘은 각자의 술잔에 입을 맞추었다.
“하아.”
깊은 한숨과도 같은 감탄사를 내며 베리안이 말했다.
“와, 이거 너무 좋다. 우리도 온천을 만들자고 사부한테 권해야겠는데?”
“음. 네 사부님 성격에 온천을 파는 건 네 몫이 될 것 같아.”
아인은 몸을 살짝 뉘며 코멘트를 날렸고, 베리아는 딱히 반박을 말을 찾지 못했다.
술잔을 다시 쟁반 위로 올려놓으며 그녀가 물었다.
“넌 왜 이 일에 동참하게 된 거야?”
“음?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질문하자 베리아가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설명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 말이야. 단지 세계를 구하고 싶다, 뭐 그런 이유는 아닐 거 아냐?”
“아, 아마 세계를 구하고 싶다는 이유가 맞을 걸?”
“……”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것 같아 굳은 베리아의 표정에 아인이 급하게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아, 아니. 난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기억이 다 사라졌거든? 음, 무슨 큰 배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죽기 직전에 스승님이 내 영혼을 이동시켜서 다시 살렸나 봐. 그래서 특별히
무슨 목표 의식도 없고 그래, 사실은.”
아인은 자신과 베리아의 술잔에 술을 조금 더 따르며 물었다.
“그러는 넌 목표가 뭐니?”
그 질문에 베리아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그녀는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대답했다.
“거래했거든.”
아인의 눈이 휘둥그래 졌다.
“거래?”
베리아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 어느 때보다 평범했고 평화로웠던 날, 자신의
마을 앞 바다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기둥.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신의 가족까지
앗아간 그 것. 그때를 떠올리자 베리아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녀의 표정
변화를 본 아인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 그래서 무슨 거래를 했는데?”
간단했다. 베리아가 에덴을 죽이는 것을 도와주면 쉐리안이 그 기둥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결과를 장담하기도 어려운 일에다가 일의 위험도를 따지면
그리 공정한 거래는 아니었지만 베리아가 그 제안을 허락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사부가 나타났으니까. 내가 있는 곳에.”
“뭐? 그게 무슨……아아? 아? 아아아아!”
이상한 감탄사였지만 아인은 완벽하게 이해한 듯 했다. 에덴의 저주 때문에 사부들은
‘영역’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곳이 ‘영역화’된 것을 의
미한다. 잠시 중단됐던 베리아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사부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더라고. 아마 그 탑이 나타남으로써 영역화가 된 것 같다고
하긴 했는데……”
당시 탑을 오르는 것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베리아를 만난 후, 몇 분 뒤, 그녀의
몸이 점차 투명화가 되면서 쉐리안의 ‘영역’으로 강제 이동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베리아를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과 쉐리안의 노련함 덕분이었다.
“아무튼, 난 에덴이라는 작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단지,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발판일 뿐이지.”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가 왠지 부럽기도 한 아인이였다. 둘은 그로부터 석양의 끄트머
리가 밤의 사각지대로 사라질 때까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었다. 외향적인 베리아와
약간은 내성적인 아인의 성격은,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잘 맞는 것 같았다. 그
런 둘에 대한 쉐리안의 간단한 평 한 마디.
“쪼끄만 것들이 온천에 눌러 앉아서 술이나 마시는 꼴 하고는.”
그 말에 에리아가 킥, 웃으며 대꾸했다.
“저래도 내년이면 23살이야. 조금만 있으면 우리 간섭 따위는 무시해도 될만한 나이란
말이지. 음음. 나야 몇 살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긴 하지. 뭐, 이 안에서는 계절이 변하
는 것도 느끼기 힘들긴 하지만.”
“헹. 나이를 세는 것조차 귀찮아 졌나 보지?”
“난 귀찮아진 것뿐이지만 넌 세기가 싫어진 것 아니니?”
정말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여기서 뭐라고 해 봤자 자기만 우스워질 거라 생각한 그녀는
혀를 차며 마루 위에 드러누웠다. 한가롭게 떠다니는 구름이 점점 밤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구름의 흰 색은 점점 선명해져 가는 것 역시 사실이다. 구
름은 바람에 의해, 그리고 공기의 저항에 의해 이리저리 모습을 변형시켰다. 처음엔 그냥 뭉뚝한
찰흙 같던 것이 이제 제법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고기에서 나비로, 나비에서 여우, 그리고 여우에서……
“아, 그러고 보니!”
누워있던 쉐리안이 뭔가가 생각났는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 여우에서 에리아가
떠올랐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튕기며 질문했다.
“흰둥이, 그건 그렇고 넌 아인에게 어떤 능력을 줄거니?”
-----------------
아인편 분량이 한회 남았네요 잇힝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