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과 함께 거대한 물줄기가 배 좌우로 솟아 올랐다. 물줄기에 따라 배가 좌우로 기우뚱하면서 피칭을 시작했고, 세라 버스 함장은 속으로 온갖 욕을 시작했다.
“조타수! 풍하 방향으로 타기 돌려! 스타포드 고정해라!”
함장의 명령에 자기 몸뚱마한 타륜을 잡고 있던 조타수는 끙,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힘껏 우측으로 타륜을 돌렸다. 소리는 안들리지만 팽그르르 돌아가는 느낌과 함께 배가 우측으로 기울어졌다.
펑, 펑!
“제기랄, 미친 놈들이 포는 죽어라 쏘는 구만!”
이건 대 실수였다. 혹시나해서 호위대도 대동하지 않고 나온 것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함장은 우울한 눈빛으로 육지가 보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평선 너머로 육지가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함장은 함교로 뛰어들어와 부질없는 짓을 시작했다. 해도를 펼쳐 들고 콤파스로 현재의 장소와 육지까지의 거리, 도착 예정 시간을 계산했지만 그런다고 속도가 안 나는 배가 빨라질리는 없다. 결국 해도를 꾸겨버렸다.
“심각한 상황인가요?”
“보면 몰……, 맙소사! 공주님!”
함장은 하마터면 콤퍼스를 던져버린 자신을 생각했다. 분명 소름이 돋았어, 라고 중얼거리면서 함장은 소리쳤다.
“공주님! 여기 계실 곳이 못됩니다! 어서 격실로 들어가세요!”
“토할 것 같아서 바람좀 쐬러 왔어요.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배가 갑자기 너무 흔들려서 떨어졌어요. 멀미가 나요.”
이 나라가 자랑하는 미모의 재원, 에코 공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에 반해 대조적으로 입술은 너무 새빨개서 하마터면 함장은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릴 뻔 했다. 저 분은 공주님이야, 라고 함장은 속으로 외치면서 말했다.
“그래도, 공주님! 안에 계시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합니다!”
함장의 말에 공주는 보이지도 않는 함미쪽으로 슬쩍 쳐다봤다. 우울한 표정이었지만 아무도 표정을 지적할 순 없었다.
“곧 죽는 건가요?”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세요, 공주님! 제가 기필코 육지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펑! 분명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배 좌현 지근거리에서 폭탄이 떨어지면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 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법 거리가 있던 폭탄이 배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물기둥은 그대로 함교를 쓸어 버렸고 공주와 함장, 조타수는 순식간에 바닷물을 뒤집어 썼다.
“정 함미 선박 네 척 발견! 거리 4마일! 거리 점점 ……!”
콰직, 소리와 함께 돛에 올라가있던 견시의 말이 삼켜졌다. 포탄이 돛을 관통하면서 돛은 그대로 우측으로 쓰러지며 바다에 빠져 버렸다. 견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다로 쓸려 들어가 버렸고, 배가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물결에 흔적도 없이 파묻혀 버렸다. 평상시라면 배를 돌려서 구조자 구출을 할 텐데 지금은 그럴 겨를도 없었다.
첫 번째 명중타가 나왔다는 것은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개새끼들, 측정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하는 구만! 화약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까?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함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린 공주에게 다시 들어가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배가 갑자기 붕 뜨더니 거칠게 롤링을 시작했다. 순간 몸이 위로 살짝 뜨나 싶더니 강한 중력의 힘에 의해 급격히 아래로 내려꽃아졌다. 공주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아 버렸고, 함장도 비틀거리며 겨우 해도대를 붙잡고 넘어지지 않았다.
“함장님! 타륜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방금 그 롤링으로 타륜이 망가진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조타수! 비상 타기로 빨리 뛰어!”
조타수는 복명복창도 잊은 채 부리나케 뛰어서 함미로 내려갔다. 함미 아래쪽 비밀 공간에는 만약을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비상 타기가 있었다. 설마 이 상황에서 쓰게 될 줄이야. 함장은 브릿지로 뛰어 가서 재빨리 노를 살펴 봤다. 예상대로였다. 어떤 노인지 모르겠지만 멈춰섰는지 한쪽이 엉켜 있었다. 덕분에 속도를 받지 못한 배는 파도를 그대로 들이 받으면서 롤링을 시작한 거였다.
함장은 속에서 온갖 욕들을 생각해냈고, 실제로 뱉을 뻔했다. 순전히 뱉지 않은 것은 공주가 있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 순간 그 모든 욕들이 밖으로 나오려고 해서 순간적으로 잼(jam)이 발생한 것이 더 컸다.
함장은 공주도 내팽개쳐주고 재빨리 갑판으로 뛰어가 갑판 아래 해치를 거칠게 열었다.
“노예장, 이 개새끼야! 똑바로 안해! 다 죽고 싶어! 어!”
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예장은 끙차 소리를 내며 노예 하나를 밖으로 끄집어 냈다. 노예는 탈진한 듯 기절해있었고 한쪽 팔뚝은 근육이 터졌는지 시뻘개져 있었다. 노예장은 폭발할 것 같은 함장을 보더니 소리쳤다.
“함장님! 노예가 기절했습니다! 노예가……없습니다!”
“개새끼야! 너라도 저어! 죽기 싫으면!”
노예장은 자신의 이름이 언제부터 개새끼가 됐는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바로 뛰어 들어갔다. 함장은 해치를 거칠게 닫으면서 소리쳤다.
“포술장!”
브릿지에서 측거의를 들고 함미에서 쫓아오는 선박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있던 포술장은 재빨리 뛰어왔다.
“당장 있는 모든 대포들을 함미로 집결시켜! 빨리!”
“네? 4인치 포 밖에 없는데요? 4인치 포로는 거리가 도무지…….”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 수 있게 됐나, 포술장! 빨리 집결 안 시켜!”
“네!”
포술장은 함장의 명령에 대답하고는 갑판으로 다시 뛰어갔다. 돛을 정리하고, 혹여나 있을 전투를 대비하고 있던 갑판요원들 몇을 불러서 나사로 고정되어 있던 포들을 분해하고 함미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함장님! 준비 다 됐습니다.”
“쏴!”
“네?”
“병신새끼야! 이제는 귀까지 멀었나! 쏘라고! 조준따윈 필요 없이! 그냥 발사해! 대포알 다 바닥날때까지!”
포술장은 자신의 어디가 병신인지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발사 명령만 외칠 뿐이었다. 세라 버스 함은 4인치포를 함미를 향해 발사하기 시작했다.
“어랍쇼?”
망원경으로 모든 상황을 여유있게 관전하던 찰리는 멍한 소리를 냈다. 자신의 눈이 보고 있는 광경이 참 괴이했다. 세라 버스 함이 대포를 쏘고 있네? 물론 그 대포알은 자신들의 배 한참 앞에서 떨어져 물기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시야 교란도 못 내는데.
“저것들 포 쏘고 있는데요?”
세라 버스 함과 줄루 함과의 거리는 4마일. 4인치로는 고작해야 2마일이 한계 일 텐데. 찰리는 속으로 계산이 안 맞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도망치려고 하는 군.”
줄루 함을 책임지고 있던 오스카는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도망이요?”
“저쪽 함장이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야. 문제는 타이밍이지만. 조금 더 일찍 했다면 모를까 이미 늦었지.”
“네?”
“속도다. 간단한 작용 반작용의 결과지. 찰리, 육지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지?”
“에……지금 대충 20마일 정도 남아 있네요. 지금 속도라면 육상 포의 한계 거리인 16마일 전까지는 따라 잡을 것 같습니다. 대략 1시간 내지 2시간? 길어야 2시간이겠네요.”
“확실히 주의를 두어라. 귀한 고객이니까.”
“두 말하면 입 아프지 않겠습니까. 더 빨리 갈 수도 있습니다. 아래 노예장이 좀 고생해야 겠지만요.”
찰리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무어가 그리 웃긴지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럴 필욘 없겠지. 이대로 쫓아간다. 그리고 견시 확실히 해. 세라 버스 함 한척이니까 따라가지만 만에 하나 군함이 나타나면 바로 도망쳐야 하니까.”
“알겠습니다요.”
찰리는 말을 남기고 함교를 빠져 나갔다. 오스카는 저 멀리 앞에 보이는 세라 버스 함을 보면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것을 보니 공주가 타고 있긴 있는 모양이군. 따라 잡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이제는 공주를 이 배에 어떻게 태워야 할지 고민해야 하나.
오스카는 손으로 턱을 괴었다. 뱃사람들은 의외로 순진하고 고지식한 부분이 있어 여자를 배에 태우는 걸 죽어라고 싫어한다. 지금은 어마어마한 보물이 있다고 믿어서 신나며 쫓아가지만 정작 목적을 알면 어떻게 변할까? 자신이 있기 때문에 쉽게 거부는 못하겠지만…….
오스카의 머릿속에서 이 전투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어떻게 하면 공주를 이 배로 쉽게 끌고 들어올지 그걸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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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예전에 바다이야기라는 가제로 글을 올린 적이 있었지요.
1회로 끝나고 안 적었지만...
그거 한번 리메이크 해봤습니다.
1회밖에 안되니까요..(쿨럭)
그런데 어째 예전에 적었던 글이 더 박진감있는 것 같은
착각이...아니, 느낌이 드네요;;;
글을 영 어떻게 써야 하는지
워낙 오랜 기간 손을 놓고 있었더니 감이 안 잡히네요.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