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분 전. 대장간에서 나온 유리와 셀로는 일단 뒷골목을 통해 도시 중심가의 근처까지 나갔다. 여기까지는 다른 길이 없었다. 기차를 타러 역으로 가던지, 아니면 배를 타러 항구로 가던지 중심가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교차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음엔 경찰서라는 더욱 더 큰 관문이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다른 길을 통해서 갈수도 있었지만 모두 돌아가는 길이었고, 무엇보다 도시 전역에 경찰들과 군인들이 깔려 있었기에, 오히려 중심가와 경찰서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상대의 맹점을 찌르게 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사각 지대에서 시가지를 관찰하던 유리가 중얼거렸다.
"이야 생각보다 보는 눈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해, 자기야?"
그녀의 말대로 시가지는 수 천의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식당과 여러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이 널려있었던 것이다. 셀로는 턱을 어루만지며 말을 받았다.
"어차피 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으니까 널 버리고 가면 되겠군. 너야 무단침입만 인정하면 벌금 조금 내고 바로 풀려날 걸?"
“네가 날 탈옥시킨 건?”
“그냥 내가 사람을 잘 못 봤었다고 잡아떼.”
단조롭게 말하는 셀로를 흘겨보며 유리는 자신들이 지나갈 길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셀로의 몽타주는 전혀 배포되지 않았으니까. 검을 착용하고 적갈색 머리를 한 건장한 남자임, 이라는 너무나 포괄적인 설명서만 거리에 배포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신의 얼굴만 팔리기 된 유리가 그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쏘아붙였다.
"이제 와서 날 버리기야? 확 소리질러 버릴까 보다."
"농담이냐 농담."
과연 농담이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유리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녀는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뭐, 기척을 줄기고 사람들 사이를 걷는 일쯤이야 별 것 아니야. 네가 경찰들의 시선을 차단만 잘해준다면.”
“뭐, 실패해봤자 네가 잡혀가기 밖에 더 하겠어?”
어깨를 으쓱거리며 셀로가 얄미운지 유리가 그의 팔뚝을 꼬집으며 대답했다.
“내가 잡혀가면 네 비니는 꼭 벗기고 잡혀갈 테니 알아서 해.”
“네, 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사실 잡히는 건 그리 두렵지 않았다. 힘으로 경찰들과 군인들을 제압하는 일이야 그들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도시 내의 모든 공권력과 싸우며 탈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면 엘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자신들의 이름에 현상금이 붙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다닐 여행길은 더욱 더 힘들어질 것이다. 셀로는 흠, 하는 소리를 내며 낮게 중얼거렸다.
“좋아, 타이밍만 잘 잡자. 저기 건물이 보이지? 아마 경찰들이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곳 일거야. 좀 전에 어떤 여자가 잡혀 들어가는 걸 봤어.”
그 말에 유리가 헉 하며 그를 돌아봤다.
“자기, 벌써부터 딴 유심히 여자를 지켜본 거야? 실망이야!”
“……셋 하면 출발한다. 하나, 둘……셋!”
그의 카운트가 끝나자 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따라 붙은 셀로가 경찰들과 군인들의 시선을 적절하게 커버해주며 보조를 맞췄다. 유리의 왼쪽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볼까 싶으면 셀로는 자연스럽게 스텝을 밟으며 그녀의 왼쪽으로 가 시선을 차단한다. 주변의 사람들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리 지그를 추는 것과 같았다. 처음 맞춰 본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둘의 호흡은, 수많은 군중 속에서 마치 나뭇잎이 강물을 떠내려가듯 자연스럽게 그들을 시가지의 끝으로 밀어주는 역할을 했다. 시가지가 끝날 무렵에 큰 모퉁이를 하나 돌자 새로운 길이 나왔다. 시가지보단 넓지도 않고 사람도 많이 없는 한산한 길이었지만, 진정한 시험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그들 앞 쪽에는 반파된 경찰서와 그 잔해를 치우는 수많은 인부들이 있었다. 단순히 장비를 나르는 사람들을 비롯해 중장비를 이용해 흙을 파내거나 큰 파편을 잘게 부수는 기술자들까지 합하면 어림잡아도 50명은 될 법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셀로의 생각대로 경찰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셀로는 비니를 다시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뭐, 하던 대로 해보고, 안되면 한 판 붙는 거지, 뭐.”
마치 공원에 산책을 가자는 것과 비슷한 말투였다. 유리는 그런 그의 신경이 부럽기도 했다. 유리도 물리적인 충돌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 했다. 아주 잠깐 동안 주변을 관찰한 그들은 눈으로 신호를 주고 받은 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경찰서에선 어젯밤에 있었던 소동 탓에 수많은 파일에서 떨어져 나온 서류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나풀거리며 서 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올해 일을 시작한 말단들은 그 모든 서류들을 모아 정리하고 그것들이 원래 있었던 장소를 찾아 일일이 끼워 넣어야 했다. 그리고 그 말단들에게 메드렛은 언제나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의 행동력과 형사의 감 하나만큼은 웬만한 경력을 가진 형사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날카로웠으니까. 그러나 그의 그런 역사도 오늘로써 깨질 것 같다. 그가 사랑해마지 않는 후배들은 오늘 입사 이후 최악의 날, 아니 최악의 날로부터의 두 번째 날을 맞이 하고 있었다. 메드렛이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계단을 내려오자 겁을 먹은 여자 신입들은 서류를 들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먹은 채, 도망가기에 바빴고, 메드렛의 앞에 서있던 이들은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서류를 든 채 그 자리에 나뒹굴었다. 경찰이 된지 약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후배를 밀어 넘어뜨리자 수 백 장은 족히 될만한 종이들이 눈처럼 흩뿌려졌다.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그것을 응시하던 청년의 손을 덥석 잡으며 메드렛이 말한다.
“지금 당장, 지원이 가능한 사람이 서 내에 있나?”
그러나 청년은 그 표정을 유지한 체 고개만 도리도리 저을 뿐이다. 경찰청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현장에서 무의미한 수색만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메드렛은 혀를 쯧 차며 다시 계단을 내달렸다. 곧이어 아래 층에서도 비명소리와 종이더미가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지만, 메드렛이 사과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정문을 거의 부수듯이 하며 나간 메드렛은 저 멀리 그가 찾는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는 외쳤다.
“꼼짝 마!”
그의 애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미 둘의 모습은, 마치 아침 안개처럼 그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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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이라고 말해야 함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