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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무협
2013.08.21 19:17

아인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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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드렛 형사만 남고, 자네들은 잠시 나가주게. 아무래도 개인 면담이 좀 필요하겠어.”

그 말에 경찰 둘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경례를 붙이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간이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반대로 혼자 남게 된 메드렛은 살얼음판은 걷는 기분이었다. 그는 부 본부장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상사일 때부터 그의 잔소리와 훈계를 빙자한 화풀이를 받은 지 근 20년이 되었으니까. 당시 30대의 성실했던 선배는 지금 50대의 부 본부장이 되어있고, 자신은 출세보다는 월급 인상에 더 관심이 많은 40대 초반의 베테랑 형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메드렛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의 선배는 자신의 후배가 자신의 능력을 제일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고, 메드렛이 일을 처리할 때마다 합당한 보상을 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반이 잔소리와 화풀이를 그만뒀다는 뜻은 아니기에, 메드렛은 이번엔 과연 몇 분이나 갈까, 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어딜 상사 앞에서 시계를 힐끔거리나?”

다반이 담배를 완전히 끄며 말하자 메드렛이 움찔했다.

, 죄송합니다. 부 본부장님. 단지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빨리 현장에 합류해서……”

됐어. 어차피 길게 끌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는 컵에 들어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쓴 액체가 담뱃진으로 덮여있는 그의 목을 깨끗하게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몇 번 목을 푼 뒤, 마치 하늘에 구름이 지나간다는 어투로 말했다.

자넨 지금 이 시간부터 무기한 직분 해제야.”

에엑! 지금 절 자르시겠다는 겁니까? 분명 제 잘못도 있긴 했지만 그건 제 능력의 범주를 넘어가는 초자연적인 일로…….”

거기까지 말했을 때, 다반이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알아. 자네의 능력은 범인 추적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그런 초자연적인 일은 저 상아탑의 마법사들이나 신경 쓸 일이지.”

그러면 어쩌서…….”

"본부님과의 내기에 200베라 걸었었거든.”

?”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대답에 메드렛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반은 주머니에서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자네의 2주 치 주급이지. 이걸 뺏기면 난 아내한테 맞아 죽을 지도 몰라. , 과장하지 말라고? 그래, 반죽음 정도에서 끝날 수도 있지. 하지만 부 본부이나 되는 놈이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서 출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요즘 거기가 좀 이상해.”

?”

메드렛이 눈을 질끈 감으며 오늘은 계속 멍청한 대답 밖에 못하는 것 같군, 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다반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진 멍하기만 했던 형사의 눈에도 총기가 돌아왔다. 다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의식하듯 일부러 기지개를 펴며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요즘 들어서 머리가 좀 아프더라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나도 휴가를 좀 가지고는 싶은데 이미 연차를 다 써버렸거든? 무급 휴가를 받겠다고 하면 아내한테 혼날 것 같아서 말이지.”

, 그거야 어쩔 수 없군요. 그러게 연차 좀 아껴 쓰시라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근데 머리가 어떻게 아픈데 그렇습니까?”

? 자네 의학에도 소질이 있었나?”

메드렛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자신의 상관의 연기에 대충 발을 맞춰주기로 한 것이다.

응급조치 이외엔 아무 것도 모르는 저지만, 그래도 형사 짬밥 먹은 지도 벌써 20년 입니다. 그 동안 만난 검시관한 해도 수 십인데, 혹시라도 모르니 한 번 이야기 해 보시죠?”

그 말에 다반이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냥 몸이랑 머리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자네들한테 보고 받은 것을 분명히 어딘가에 적어뒀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이 안 난 적도 있고. 생각하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프더란 말이지. , 치매는 아니니 좋아하지마. 이번에 받은 종합검진에서는 아무 것도 안 나왔으니까.”

, 한 마디 조언을 드리자면 커피랑 흡연을 좀 줄이시라는 것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 역시 돌팔이로군. 괜찮아, 최근 3년 동안 날 진단한 의사들도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진 않더군. 그냥 이리저리 여행이나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라고만 하지. 한 놈은 나한테 엘칸의 유적지 등을 한 번 돌아보면서 약수나 마셔보면 어떻겠냐고 하더군. 자신도 그렇게 해서 편두통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면서 말이지. 자네 생각은 어때?”

, 부 본부장님의 부족한 지적 감각을 채워주기에는 충분할 것 같은데요?”

뭐야, 이 자식아?”

부하한테 이 자식이라뇨. 여긴 여전히 공적인 자리입니다?”

사적인 자리로 만들어주리? 당장 사직서 내 이 자식아.”

공적인 자리에서도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부 본부장님의 마음 씀씀이는 하늘과도 같으십니다.”

그런 시 덥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메드렛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위 쪽과 이 쪽 사이에 스파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 그런데, 최근 3년 동안 유적지?’

사실 경찰은 최근 3 년 동안 이상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엘칸에 있는 여러 고대 유적지나 신전 등에서 일하는 학자들이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출입이 잦다며 경찰에게 경비를 요청한 것이었다. 사실 그런 것은 사설 경비대가 나서야 할 일이었지만 무기 사용 및 신원 확보 등등 법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들로써는 뾰쪽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경찰 측에서는 안 그래도 부족한 인원을 유적지 경비에나 쓸 수가 없다며 극구 반대했다. 대신 마침 그 회의에 있었던 다반이 유적지와 신전 등이 나라의 소유라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며 군대에게 부탁해보라는 암시를 넣었던 덕택에 현재 군대와 학자들은 2년 여 동안 끝나지 않는 법적 분쟁을 하고 있다. 메드렛은 그 날 마침 다반을 수행 했었기에 그 일을 기억해 낸 것이다. 물론 그 날 이후로 군 측에서는 다반의 이름만 나오면 이를 간다는 말도 덤으로 들었다.

그렇지. 그런 일들이 있긴 했어. 그런데 이거랑 그 일이랑 무슨 상관……잠깐. 신전이라고?’

어제 놓쳤던 그 여자도 신전에서 경비원에게 잡혔다는 사실이 문뜩 떠오르자 메드렛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두 남자의 시선이 공중에서 만났다. 다반은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연기를 계속했다.

아무튼 그 마법을 썼다는 두 남녀를 잡으면 내 두통의 이유가 조금은 해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더군.”

그 말에 메드렛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그럼 두통약이라도 처방 받으시던지요. 제가 가서 가져 사올까요?”

,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겠지.”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만년필을 들어 종이에 뭔가를 휙휙 써 내려갔다. 일필휘지로 뭔가를 써내려 간 그는 마지막에 서명을 한 다음, 그것을 메드렛에게 건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은 메드렛이 의구심 섞인 눈으로 다반을 바라봤다.

이건 뭡니까?”

자네 20년 근속 특별 휴가. 갔다 오는 김에 내 두통약도 좀 처방 받아오면 좋겠군.”

휴가는 이미 지난 달에 받았는데요?

난 준 기억 없어. 아마 연차로 나갔을 거야. 이게 진짜지.”

에엑? 그때 부 본부님께서 허가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올해 연차는 겨우 일주일 밖에 안 남았었다고요!”

, 원래 공무 하나 처리하는데 한 달 정도가 걸리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 아직도 모르나? 아무튼 이게 진짜니, 어서 경찰청으로 돌아가 내 비서를 만나게. 그가 나머지 서류를 처리 해줄 거야.”

그는 한숨과 함께 편지를 자켓 안 주머니에 고이 집어 넣으며 말했다.

, 아무튼 감사합니다. 지금 나가보면 되죠?”

다반이 커피를 홀짝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 잠깐.”

대충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메드렛을 불러 세운 다반이 느긋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까 까먹고 넘어간 건데 말이야. 내가 어디에 200 베라를 걸었는지 아나?

당시엔 그 여자의 입을 열게 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던 메드렛이 알 리가 없었다. 고개를 젓는 그를 보며 다반이 말했다.

자네가 이름을 알아낸다 에 걸었지. 범인들이 잡히기 전까지 그 내기는 끝나지 않으니까, 좀 더 기대를 가져도 괜찮을 것 같군. 알았으면 어서 가봐.”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는 의자를 돌려 벽에 걸린 보고서를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드렛은 한 동안 묵묵히 그의 상관의 뒷모습을 보다가,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한 번 붙이고는 단호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반면, 뒤돌아 앉은 다반의 얼굴엔 희미한, 그러나 그 의미가 분명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취조를 받던 처녀는 간이 취조실이 보이는 사거리의 모퉁이에서 툴툴거리며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 받았던 치욕 아닌 치욕을 생각하면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남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던 장소가 이곳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더욱 짜증나는 일은 아직 그녀가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찰들이 그녀를 다시 연행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보호 차원에서 군인 한 사람이 그녀의 옆에 서서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증명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데이트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초조하게 도시 광장에 있는 시계를 보고 있는데, 마침 간이 취조실에서 좀 전에 자신을 비하(?)하던 두 명의 경찰관들이 서둘러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옆에 있는 군인이 보지 않는 사이, 점잖지 못한 손짓을 날렸다. 그렇게 분풀이를 한 그녀는 다시 그녀의 그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거리의 오가는 사람들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

순간 자신의 시야에 하얀 캡을 쓴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비슷한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에다가 자신보다 키가 좀 크고 볼륨감도 괜찮은……

그녀는 순간적으로 옆에 있던 군인을 부르려다가, 헛웃음을 지으며 그만 두었다.

설마 테러리스트가 도시 한 복판을 돌아다닐까?’

그녀는 설마 하며 다시 그 여자를 봤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 사이로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가게 안으로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여자는 겨우 몇 초 만에 자신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그런 건 경찰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리고 다시 시계탑을 보며 오늘따라 약속에 늦는 그녀의 애인은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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