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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무협
2013.08.04 20:23

아인 17-(1)

조회 수 2991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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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거리는 한산했다. 리셉션에 방 열쇠를 돌려줄 때도 안내원은 아무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다. 혹시라도 안내원이 경찰을 부를 까봐 걱정했던 두 사람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왔다. 유리가 쓰고 있는 캡을 더욱 눌러쓰며 물었다.


"정말 의심하지 않았을까?"

"의심했다면 경찰이 없을 만한 길을 알려줄 리가 없지."


그들은 마음 속으로나마 사방에 경찰이 검문을 하고 있어 여행길이 어려울 거라며, 대장간으로 가는 뒷길을 알려준 안내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살짝 팔짱도 꼈기에 (셀로가 심하게 거부 반응을 보였기에 사실은 굉장히 어색하게 보였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단순히 산책을 즐기는 커플로 보였을 것이다. 두 사람은 최대한 인기척을 없애며 도시 동쪽에 위치한 산업지구로 걸음을 옮겼다. 안내원이 알려준 길은 건물들 사이에 난 좁은 길로, 간혹 건물 안에 사는 주민들의 대화가 다 들릴 정도의 폭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경찰의 모습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호텔을 떠난 지 몇 분 되지 않아 대장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7시가 겨우 넘은 시각이라 그런지 대장간 내부에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높이는 9미터 정도에 가로가 20미터에 가까운, 약간 조화롭지 못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건물에는 거의 1층 높이에 가까운 철문이 붙어있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철판을 대문 두드려 만든 것 같은 대문은, 문의 범주에 넣기엔 언어도단이 될 것만 같은 것이었다. 그 앞에서 유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주먹을 쥐고 문을 두드렸다.


퉁퉁퉁!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직 문을 안 열었나? 셀로가 확인 차 옆에 나있는 창문으로 흘깃 보니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분명히 사람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는 다시 한 번 두드려보라는 듯 살짝 눈짓을 보냈다. 지가 할 것이지. 살짝 투덜거리던 유리가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리려고 할 때였다.


저기 옆에 벨을 누르고 안쪽에서 허락을 받아야 해요. 아직 정식 영업시간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입구 근처 펌프로 물을 깃던 젊은 청년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기름 때가 잔뜩 묻은 앞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유리를 보고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요즘엔 사장님께서 중요한 설계도를 많이 취급하시거든요. 그래서 도난 방지를 위한 절차에요.”    


곧 그들은 그 청년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 안은 밖에서 본 것보다 휠씬 넓었다. 옆으로 긴 만큼 뒤로도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 안에는 여러 개의 공방이 있었다. 길이가 15미터는 될 중앙 통로를 따라 좌우로 4개씩 있는 공방들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쇳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화르륵 하는 불을 떼는 소리와 물을 붓는 소리, 그리고 리드미컬한 기계소리 역시 건물 안을 울리고 있었다. 중앙 통로를 지나면서 청년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다고요?”


유리는 막고 있던 귀를 살짝 떼면서 대답했다.


무기 수리를 의뢰하려고요.”


그 말에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타노리 님을 만나셔야 하겠네요.”


잠시 후, 유리와 셀로는 청년의 안내에 따라 무기전문가를 만날 수 있었다. 공방들이 있는 1층이 아닌 2층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만난 타노리는 흔히 대장장이를 연상할 때 떠오르는 수염 기른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불타오르는 화로 대신 사무실에서나 볼만한 긴 원목 책상이 있었고, 땀에 젖은 작업복 대신 깔끔한 정장을 입었으며, 책상 위에는 망치와 모루 대신 만년필이 있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을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올린 그는 마치 손자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것만 같은 선한 눈빛으로 그들을 돌아 보며 말했다.


"검을 고치러 왔단 말이죠?"

"네에."


유리는 약간 못 미더운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그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대장장이라고 하니 좀 그렇죠?”


예상치 못한 발언에 유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공방에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여긴 뭐랄까……”

, 제가 대장장이라고 했을 때, 바로 믿는 사람이 바보겠지요. 여긴 서류작업이나 도면을 만드는 곳이고 공방은 아래 층에 있습니다. 대장장이라는 직업은 쇠를 다루는 것만큼이나 종이와 친해져야 하거든요?”


그의 말을 반영하듯 문을 제외한 모든 벽은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이 높은 책꽂이들로 정복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책꽂이들에는 수많은 책자와 파일들이 진한 잉크 냄새를 풍기며 꽂혀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 색 등등, 마치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타노리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 살짝 기대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물건을 보여주시겠어요?”


그 말에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부러진 검을 꺼내 책상 위에 풀어 놓았다. 처음에는 느긋하던 그의 눈빛은 유리가 보자기를 풀기 시작하자 점점 이채로움을 더해갔다. 그는 손을 뻗어 부러진 도검의 손잡이를 잡아 들며 중얼거렸다.


"이건 저 위의 무기상이 팔던 데얀 산 곡도군요. 날의 상태를 보아하니 산 지 며칠 된 것 같지는 않군요."

", 기억하세요?"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정품 데얀 산 곡도는 이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어서 기억하고 있죠. 이 정도 품질이면 한 자루에 480에서 530베라 정도 할 겁니다. 그 집 주인은 바가지는 안 씌우니까요. 그런데......"


그는 부러진 단면과 조각을 맞춰보며 말 끝을 흐렸다. 잠깐을 그렇게 고민하던 그는 도검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침 일찍부터 오신 분들에게 할 말은 아닙니다만, 이건 수리가 불가능 할 겁니다."

"네에?"


그 말에 유리가 경악하며 외쳤다.


"수리가 불가능 하다니요! 그냥 녹여서 붙이면 안 되요?"


그 말에 타노리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 일반 검이라면 가능한 방법이지만, 데얀 산 곡도는 그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돼요. 데얀의 대장장이들은 곡도를 만들 때 특별히 제련한 철을 넓게 편 다음 돌돌 말듯이 접어서 제련을 하거든요. 그러면 더욱 질기고 날카로운 도검을 만들 수 있다고 하네요. 문제는 깨졌을 경우인데, 데얀 산 도검은 휘거나 이가 잘 빠지진 않지만 대신 재수가 없으면 이렇게 깨져버리죠."

"다시 붙이면 안되나요?"


그 말에 타노리는 어깨를 들썩하며 대답했다.


"깨진 도자기를 접착제로 붙인 다고 깨진 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임시방편은 될 수 있겠지만 중심도 어긋나고 강도도 약해질 텐데......아마 줄로 묶어서 쓰는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텐데 말입니다."


가히 사형 선고와도 비슷한 말이었기에 유리의 어깨는 축 늘어졌고, 셀로는 더 이상 시간 낭비할필요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어쩔 수가 없네요.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고개를 한 번 꾸벅 한 다음, 기운이 빠져있는 유리에게 가자고 손짓을 하려 할 때, 타노리가 급하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 아직 가지 마세요. 물론 이걸 복원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제가 다른 제안을 하고 싶군요.”


다른 제안이라는 말에 푹 숙여져 있던 유리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녀는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물었다.


정말이요? 방법이 있어요?”


타노리는 씩 웃으며 설명했다.


, 검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고, 일단은 제가 이 부러진 도검은 240 베라에 살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싶군요."


천국으로 치솟을 것 같던 그녀의 기분이 다시 땅으로 푹 꺼졌다.


"에엑? 겨우 반값이잖아요!"


그 말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셀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반값이나 받겠다는 거야. 부러진 칼 도막에 240 베라나 준다는데 감사하다고 해야지."


그 말을 타노리가 받았다.


"뭐 안 파시겠다면 저야 상관없습니다. 저는 데얀의 철을 일반보다 싼 가격에 구입할 기회를 잃는 것일 뿐이지만 아가씨는 쓰지도 못할 도검만 갖고 다닐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미소 지으며 눈썹을 까딱까딱 올리는 타노리의 모습은 대장장이보다 흡사 장사꾼에 가까웠다. 아주 잠깐의 고민을 마친 그녀는 에잇 하며 부러진 도검을 책상 위에 뿌리듯 던졌다.


"알았어요, 알았어. 계산이나 정확히 해줘요!"


타노리는 바로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가죽 지갑에서 50 베라 짜리 지폐 네 장과 20 베라 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고, 유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 자신의 지갑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그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계약이 성립되었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인은 듣고 있지 않았다. 마침 넌 네 편이니 저 아저씨 편이니, 등등의 말로 셀로를 고문하던 아인에게 향한 손을 민망하게 거둘 뿐이었다. 아인의 잔소리가 빨리 끝날 것 같지는 않았기에, 할 일이 없어진 타노리는 부러진 검을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검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단조로운 어투로 질문했다.


"뭐 개인적인 의문이긴 합니다만, 어쩌다가 부러진 거죠? 웬만큼 단단한 몬스터를 베지 않거나 바위를 정면으로 내려치지 않는 이상은 이렇게 까진 안 될 텐데요? 혹시 불가사리를 만나셨습니까?”


불가사리는 흡사 코가 짧은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몬스터다. 평소에는 순하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주변의 있는 모든 것을 때려부수거나 먹어 치우며, 그 피부는 무쇠처럼 단단하다. 다만 신기한 것은 이 무서울 것이 없는 생물이 바로 불에는 굉장히 약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가사리가 많이 서식하는 지역에서는, 간혹 먹이를 찾으려 마을에 내려오는 불가사리를 막기 위해 마을 주변에 수로를 파고 그 안에 기름을 넣어 언제든 불을 붙일 수 있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유리의 검을 부순 존재는 불가사리보다 더욱 강력한 존재였다. 그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셀로를 가리켰다.


얘랑 싸우다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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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싸움에 검이 부러지는 남녀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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