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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무협
2013.07.13 19:01

아인 12

조회 수 3435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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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흩어지는 추억들 사이로 그대가 보이네요.

깨지고 부서진 기억을 뒤지면 내 손엔 상처가 생기겠지요.

하지만 그 상처마저도 내겐 아름다운 훈장이 되고

당신을 때때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의 샘물이 될 것 같아요.

다른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내 자신을 설득하지 못해도,

난 이 기억들을 소중히 생각할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해도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니까요.

 

2년 후.


에리아의 집은 여전히 똑같았다. 바람이 지나간 길에 때때로 비가 오고

햇빛이 났다가, 밤이 온다. 해가 지면 세 개의 달들이 떠오르고, 그들이 매

일 모양을 바꾸며 하늘을 떠돌면 그 떨어진 빛 조각들이 모여 별이 된다. 두 

명의 여인이 밤낮으로 시간을 보내던 공간은 둘의, 그리고 이 장소를 채우는 

모든 존재들의 추억으로 물들어 있다. 비록 오늘 한 명이 이 공간을 떠나더라도

한 번 물든 추억의 물감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떠나야 하는 날, 아인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 때문에 일찍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날, 에리아에게 능력을 전수받는 과정에서 느낀 피로감 때문에 일찍 

잠이 든 탓이었다. 능력을 받았다고 해서 근육 량이 늘거나 눈이 하나가 더 생기거나 

하진 않았다

허나 굳이 어제와 다른 점을 찾자면 짧아진 머리카락이다. 거의 허리에 닿았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제 어깨뼈를 겨우 넘길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어제의 일 

때문은 아니다. 단지 여행에 긴 머리카락은 불편하리라는 생각 때문에, 머리를 

자르는 것을 결사반대 했던 에리아를 설득해 다듬은 것이다.


이별의 순간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에리아는 상을 차리고 아인은 식사 후 설거지를 

맡아 한다.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지만 오늘 이후에 있을 일이나 내일, 혹은 먼 

미래의 일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침을 먹고 차를 한 잔 마시니 비가 내린다. 비가 촉

촉히 내릴 때면 둘은 온천에 들어가 간식이나 술 등을 나누며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20대 여성들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크게 넘어가지 않는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또 하나의 추억이라는 과실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 내리는 비는 

그리 환영 받지 못하는 손님이었다. 아인은 내리는 비를 잠시 봉안 바라보다가 옷을 

챙겨 입었다. 문득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 날도 비가 왔었지

당시 몸만 소녀였지 정신은 아이와 다름 없던 그녀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고독과 두려

움이었다. 덕분에 비가 내릴 때면 그때의 쓰라린 감정이 심장 속으로 스며드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다.


에리아가 준비해준 의상은 지금까지 입던 편한 운동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아인은 

회색 반팔 셔츠 위에 소매와 팔꿈치에 갈색 가죽을 덧댄 남색의 두꺼운 겉옷을 걸쳤다

에리아는 아인과 어울릴 것이라며 분홍색을 권했지만 아인은 일언지하에 그것을 거절하

고 남색을 골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쉽게 더러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밤에 눈에 띄

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에리아는 살짝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번엔 새하얀 가죽바지를 권했다. 아인의 아름다운 다리 굴곡에 정말 잘 어울릴 것이라고

했지만 아인은 짙은 갈색의 바지를 고르며 에리아를 실망시켰다. 결국 둘은 약 한 시간에 

걸쳐 토론 아닌 토론을 하게 되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에리아가 아인을 이긴 적은 그리 많

지 않다. 당당하게 전리품을 몸에 걸침으로써 승리를 선언한 아인은 배낭을 맸다. 앞으로의 

여정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가방이었다. 돈이나 옷 등은 공간 마법진을 사용해 아인의 

주머니와 연동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읏차, 라는 기합과 함께 배낭을 매자 처음 했던 산행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를 생각하면 

배낭을 에리아의 안면에 투척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제 그것은 특별한 기억으로 아인

에게 남아있다. 배낭 안에는 지도와 며칠 분의 여행 식량이 들어있다. 식량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였다. 그 위에는 다른 제자들과 만나야 하는 장소와 날짜가 적혀있었기 때문이었

. 그것들이 잘 들어있는지 다시 한 번 체크한 후, 에리아는 아인에게 하나의 펜던트를 건

네주었다. 그리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사각형 모양의 작은 철제 상자였다. 옆에 경첩이 있

어 안에 작은 반지 정도를 겨우 보관할만한 정도의 장식품이었다. 그러나 에리아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것을 줄 사람은 아니었다. 에리아는 그 안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집어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것을 세카린의 숲으로 가져가렴.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물론 아

인은 그곳이 어딘지도 알지 못했지만 에리아와 생활하며 지도를 보는 것을 포함해 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충분히 배웠기에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다. 다른 애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있으면 들리도록 할게요


아인은 마치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한 말투였고 에리아는 밖에 놀러 나가는 딸을 걱정하

는 엄마의 말투였다. 에리아가 신발을 신는 그녀에게 말했다. 네 능력은 결코 처음부터 적

들에게 알리면 안 되는 거야, 알지? 아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들이,

리고 가끔은 에리아의 소식이 궁금한 손님들이 와서 앉았던 마루에서 아인이 일어났다

배낭을 매고 천천히 걸음을 떼는 그녀의 모습에서 에리아는 과거의 자신을 비춰본다.

때는 나도 저렇게 빛났을까? 다른 동료들과 함께 모성(星母)을 떠날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

랐다. 자신도 당시 연장자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떠났었다. 그때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비췄

을까? 하지만 과거의 기억으로 자신을 투척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녀였기에 추억

은 거기서 멈췄다.


하지만 아인은 걷기 시작한다. 조금씩 약해지는 빗방울 사이로 아인과 에리아가 수련을 했

던 공간이 나온다. 체술과 무기 그리고 마법에 의해 그곳은, 쉐리안의 촌평에 따르자면,

친 소 십 수 마리가 광란의 밤을 보낸 것과 같은 형색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조약하지만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한 묘사이기도 했다. 점잖은 에리아로 하여금 실제로 그렇게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정도였으니까.


수십 걸음을 걸어서 그 곳을 지나칠 때쯤, 어느새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태양이 부

끄럽게 고개를 내민다. 구름이 만든 그림자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자 몽롱한 분위

기가 연출된다. 이것은 아인이 제일 좋아하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 광경을 뇌리에 담으려

노력하면서 아인은 오른 손을 내밀었다. 에리아가 가르쳐준 좌표를 생각하자 하나의 마법

진이 떠올랐다. 처음 마법을 배울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다. 아름다운 

주변 풍경이 기억이라는 책 한 켠에 도장을 찍을 정도의,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연성

은 끝났다. 어느새 오른 손 위에는 에리아와 동일한 무늬의, 분홍빛의 새를 표현하는 것만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마법진 위의 새가 가벼운 날갯짓을 하자 어른 한 명이 지나

갈 수 있는 문이 생겼다. 에리아가 아인을 안아주며 말했다.


몸조심하렴. 이런 고생을 시켜서 미안해.”


그녀의 품에서 아인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이 느껴진다. 에리아의 손가락이 아인의 부드

러운 머리카락을 훑었다. 어제와는 달리 짧아진 기장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이젠 스승이라 부르지 않아도 돼.”


아인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자 에리아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시 언니라 부르렴. 아무래도 넌 날 그렇게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구나.”


아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요.”


아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선물 사올게요! 기대해요.”


그리고, 아주 잠깐의 망설임 끝에 말을 맺었다.


언니!”


에리아 역시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네가 무사히 일을 끝내면 아마 내가 네 쪽으로 가겠지. 그땐 약속한대로 바닷가에서 맛있는 거 사먹자.”


아인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빠져나갔다. 이별은 언제나 준비한 것보다 빠르다.

아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마법진은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듯 소멸되어

갔다. 흔들던 에리아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마법진이 사라지는 쪽으로 

뻗었다.


혹시 내가 지금 손을 내민다면 나도 갈 수 있을까?’


그러다가, 멈췄다. 그녀의 손이 멈춘 사이 마법진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점점 온기를 더하며 스며들어오는 햇빛뿐이었다.


에리아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는 자신에 놀랐다. 마법으로 간간히 훔쳐보는 것으로 요

즘 세상을 배우고 물건을 이리저리 조달해왔지만 여전히 자유를 갈구하는 자신의 모습이

추하다고 생각한 에리아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은 기대해도 되겠지, 아인?”


이윽고 해가 구름을 완전히 밀어내며 기지개를 켰다. 환한 빛이 마루를 덥히는 것을 보며 

에리아는 미소 지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쉐리안이랑 식사를 할까? 그래도 먼저 연락하기는 

좀 그런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 뒤로 오후의 밝은 태양이 환하게 모습을 떠올랐다. 어느새 나타난 구

름 한 점 보기 힘든 푸른 하늘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세상을 향해 힘차게 펼쳐져 나갔다.



====

아인 편 끝났습니다

다음 편은 그냥 13으로 이어져요 (...)

음음 이별은 언제나 준비하는 것보다 빠른 것이 아닙니다

이별은 지구입...


...좋은 주말 되세요!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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