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얍!”
제법 절도 있는 기합과 함께 아인의 앙증맞은 주먹이 가상의 상대가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곳에 떨어졌다. 물론 아무 것도 없었기에 누군
가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넘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웅 하는 바람 소리만은 무시할 수 없었다. 에리아가 가르쳐준
데로 왼발을 앞으로 향하게 허리에 힘을 주며 휘두르니 확실히 꿀밤보다
는 봐줄 만 했다. 그러나 에리아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예의 펑퍼짐한 옷을 입고 느긋하게 옆으로 누운 채로 문 옆 마루에서 포
도를 먹던 에리아가 한 마디 했다.
“너무 쓸데없는 동작이 많아. 말 했잖니. 싸움은 멋 부리고 하는 게 아니야.
효율적이고 똑똑하게 싸워야 한다고. 나한테 오는 대미지는 최소화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최대한의 대미지를 주는 것이 싸움의 정석이라고 하셨죠? 알
아요, 알아. 근데 전 지금 배운 대로 하고 있다고요. 정 불만이 있으시면, 그렇
게 있지만 말고 한 번만 다시 보여주세요, 네?”
“뭐, 우리 사랑하는 제자가 말한다면야.”
그렇게 말하고는 에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와 아인 옆에 섰다.
그녀는 양 발을 가지런하게 모으고 양 팔을 늘어뜨렸다.
“잘 봐.”
그리고 양 손바닥이 하늘을 보게 한 다음 팔을 뒤로 접었다. 그리고는 주먹을
쥐더니 오른 손과 왼 발을, 왼 손과 오른 발을 연달아 내밀며 정권 지르기를 했
다. 아무런 기합도, 심지어는 바람을 가르는 큰 소리도 없이 그냥 간결한 지르기
였다. 에리아가 다시 팔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봤지?”
“제가 한 거랑 똑같잖아요.”
“달라.”
“똑같아요.”
“네 움직임에는 너무 쓸데없는 동작이 많다니까.”
“그러니까, 어떻게요?”
왠지 짧은 시간 내에 언쟁이 끝날 것 같지 않자 에리아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정권 지르기만 1000 번 반복하렴. 그럼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효과는 탁월했다. 아인은 당장 머리를 조아렸고, 다시 몇 번의 언쟁과 협상이
오고 간 끝에 400 번으로 타협을 보았다. 아인이 왠지 손해를 본 것 같다는 기
분을 느끼며 정권 지르기에 돌입하자 에리아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포도를
먹으며 생각했다.
‘확실히 균형은 잘 잡혔는데 말이야.’
약간의 감탄이었다. 실제로 아인의 잠재력은 에리아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물론 천재의 개념까지는 아니었지만 몸의 균형을 잡거나 힘을 배분하는 것 자체
로만 보자면 1 년 이상의 시간을 번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원래 대로라면 외 나무 걷기만 죽어라 시키려고 했는데.’
아쉬움과 기쁨이 반반씩 섞인 푸념 아닌 푸념이었다. 에리아가 포도 씨를 뱉어 사기
그릇에 넣은 다음 말했다.
“얘, 아인아.”
하지만 아인은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과 집중은 오직 자신의 주먹이 뻗는 한 점
만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집중력도 나쁘진 않아.’
에리아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불렀다.
“제자!’
그제서야 아인의 주먹을 멈추었다. 숨을 고르며 아인이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너, 지금 숨을 헐떡거리지?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아서야. 필요한 근육만 움직이
는 법을 배우렴. 아무튼 내가 부른 이유는 그게 아니라.”
그녀는 아인에게 좀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나, 나랑 대련하자.”
순간 아인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제가 뭘 잘못한 게 있나요?”
“아니 없어. 뭐 굳이 있다면 등산하면서 날 마녀라고 한 것? 우후후.”
“그건 또 언제 들었어요? 아니, 설마 그럼 제가 그 고생을 할 때 다 듣고 있
으면서 모른 척 했던 거에요?”
다시 몇 번의 언쟁과 협상. 겨우 예전의 감정을 정리한 다음, 대화가 계속되었다.
“뭐, 아무튼 내가 설마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너랑 대련을 하겠니? 이렇게 배우다간
네가 언제 싸움에 눈을 뜰 지 몰라서 그런 거야. 실전에서 밖에 배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죽는 법을 지금 배울 필요는 없잖아요!”
“에이. 내가 설마 그럴까?”
“하다못해 일주일만 더 연습하고 하면 안돼요? 어제부터
배운 건 정권 지르기 밖에 없어요!”
“아니, 걱정하지마. 너보고 뭘 하라는 건 아니니까. 넌 단지 내가 공격하는 것을 보고 피
하기만 하면 돼.”
“결국 샌드백이 되라는 말이잖아욧!”
사지를 휘두르면서 뒤로 물러나는 아인을 보며 에리아가 웃었다. 남자들이 보면 단번
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천사의 미소였지만 아인에게는 그것이 도저히 천사의 것으로는 보
이지 않았다.
‘저건 악마의 미소야!’
일단 저 미소가 보이면 타협하던가, 따르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지난 몇 달 동안 아인
은 너무나 절실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에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오른 손
바닥을 내밀었다. 그곳엔 상처 하나 없는, 너무나 깨끗한 오른 손이 있었다.
“전 손금 같은 거 볼 줄 몰라요.”
아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에리아가 쿡쿡 거리면서 대답했다.
“나도 손금은 볼 줄 몰라. 그런 게 아니라 난 오른 손이랑 발만 쓴다는 말이야. 넌 정말
내 오른 쪽을 보고 피하기만 하면 돼. 기회가 되면 공격을 해도 좋고 말이야. 어떠니?”
하지만 아인을 설득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았다. 결국 에리아는 다른 협상안을 내놓아야만 했다.
“그럼, 만약 네가 내 공격을 다섯 번만 피하면 내가 일주일 동안 밥이랑 빨래 다 할게.
만약 나한테 한 번이라도 공격이 성공하면 한 달 동안. 이건 어떠니?”
그래도 불리하다고 말하려던 아인은 목구멍까지 나오던 말을 삼키고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다. 더욱이나 한 손뿐이라면 피할 가능성도 높고
잘만하면 에리아의 얼굴에 한 방 먹여줄 수도 있다……
“그럼 좋아요!”
“그래?”
순간 에리아의 미소를 본 아인은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
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에리아는 이미 펑퍼짐한 겉옷을 벗고 있었다. 그러
자 허벅지를 간신히 덮는 짧은 검은 바지와 상체에 쫙 달라붙는 회색 민소매 옷이 들어났
다. 항상 몸 전체를 가리는 옷을 입고 있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의 몸은 운동을 한
사람의 것처럼 울룩불룩한 근육 선은 없었다. 오히려 가녀린 여인의 것에 가깝다고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군살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약간의 낭비도 없는 탄탄
한 근육으로 뭉친 몸이었다. 팔을 몇 번 휘젓고 발목을 중심으로 각 다리를 흔들기만 했을
뿐인데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연하게 각이 보이는 복근을 푸는 것으로 느긋하게
준비 운동을 마무리한 에리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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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아는 반전있는 여자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