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찌 된 일이에요? 제가…..제가…..”
“응, 맞아. 한 15미터는 넘게 점프했지? 뭐,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해줄게. 그건 그렇고 사과 좀 얼른 따와. 갑자기 더 먹고 싶어졌네.”
“아니, 지금 사과가 중요한 게 아니 라요, 제가 어떻게 이렇게 뛰었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에요?”
“음. 사과 가져오면 이야기 해주지?”
결국 아인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사과를 두 개 딸 수 있었다. 처음엔 힘 조절에
실패해서 너무 높이 뛰거나, 너무 낮게 뛰었지만 몇 번을 반복하자 그럭저럭
높이에 위치한 열매 두 개를 딸 수가 있었다. 사과를 받아 든 에리아는 그 중 하
나를 아인에게 건네주었다. 아인이 허겁지겁 사과를 먹는 것을 보며 에리아가 말
했다.
“일단은 성공인 것 같구나.”
“뭐가요?”
“개조 계획. 아 그렇게 놀라지 마, 부스러기 떨어지잖니.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줘야 할까나? 너도 지금쯤 깨달았을지 모르겠지만, 난 설명에 약해. 예전 애인
과도 이것 때문에 많이 다퉜지.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주기로 하고. 내가 예전에
이야기 해줬지? 널 이곳으로 데리고 올 때 너의 정신을 육체와 분리해서 데리고
온 것. 응, 그래. 다른 녀석들은 어떤 방법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난 좀 전에 말했
다시피 마법에 깊은 조예가 있지 못해. 특히 산 사람을 수십 광년에 걸쳐 이동시키
는 방법은 더더욱. 결국 난 너의 정신을 이곳에서 재조합 할 수 밖에 없었지. 이것
도 쉬운 일은 아니었는지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말이야.”
아인은 이미 사과를 다 먹었다. 아직도 쩝쩝거리는 것을 보니 배가 차진 않은 듯 하다.
결국 에리아는 자신의 사과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아인이 행복해 하는 가운데,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뭐 일단 이 산을 오르기 전의 너의 정신과 육신은 찰흙과도
같았어. 아, 후물거렸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완전하게 굳지 않아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정
해지지 않은 상태랄까? 음. 네가 컴퓨터를 모르니 설명하기가 힘드네. 너도 느꼈을지 모르
겠지만, 이 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야. 너 이 산을 오르면서 산짐승, 아니 개미 한 마리라도
본 적이 있니? 이 산은 마법의 원천이 되는 강한 영기(靈氣)가 잠시도 쉬지 않고 끓어오르는
곳이야. 영기란 네가 말하는 마법을 쓸 수 있게 하는 기운이지. 불을 떼기 위한 장작과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면 돼. 근데 그 영기란 것이 조절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워. 다른 곳은 공기 중
의 영기가 0.001 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이곳은 다른 곳의 수천 배나 농축된 영기가 가
득 찬 곳이야. 일반 생물은 이 곳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터져 죽을 정도로. 하지만 너는 다르지.
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텅 비어있었기 때문에 영기가 몸을 갈가리 찢
는 대신에 네 육체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거든. 아, 어째서 힘들게 산을 올라야 했냐고?
영기가 온 몸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까지 압축돼서 육체와 정신을 이루려면 영육이 극한으로 힘
들어야 해. 네 자아가 잠시 영혼의 뒤편으로 물러나야 하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지금 이곳으로 돌
아와야 하지. 이유는 나중에 말해주도록 할게. 듣기엔 쉬워 보이지만 메커니즘은 상당히 복잡하거
든? 그건 그렇고, 올라오면서 분명 며칠 동안 굶었는데 걸을 수 있었던 적이 있지?”
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적이……있었어요. 분명 배고파 죽을 것 같았는데 항상 걸을 힘은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맞아. 바로 그게 네 몸 안에 영기가 쌓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지. 뭐, 쉽게 결론으로 건너 뛰어 버리
자면, 넌 이곳에 도착했기에 초인에 가까운 된 거야. 육체적 한계를 초월하고 마법도 쓸 수 있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가요?”
에리아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험해 볼래?”
쿵!
아인이 대답할 새도 없이 에리아의 주먹이 아인의 복부를 강타했고, 망치와 모루가 부딪치는 소리
를 내며 아인은 저 멀리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땅에 몇 번을 구르고 나서야 아인은 쑤시는 복부를
잡고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에요? 절 정말 죽일 작정이세요?”
에리아가 주먹을 거둬드리면서 미소 지었다.
“안 죽었잖아? 어디 부러진 데 없니?”
그 말에 아인은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주먹에 강타당한 부분이 좀 쑤시긴 했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내장이 파열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날아온 거리를 보며 에리아에
게 강력히 항의했다. 못해도 20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것이 혹시라도 개조가 끝나지 않았
으면 어떡할 뻔 했느냐, 예전의 자신이라면 온 몸의 뼈가 박살 났을 것이라고 열심히 피력했
다.
하지만 에리아의 견해는 살짝 달랐다.
“아니야, 주먹이 몸을 관통했겠지.”
“……꼭 그렇게 말씀 하셔야 해요?”
그 말에 에리아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또 한 가지 까먹었는데, 넌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몸이 영기로 이루어 지게 되었어
. 무슨 말인고 하니……네 안에 충분한 양의 영기만 지속된다면 웬만한 큰 부상도 금방 나
을 거라는 말이야. 팔이 잘리거나 심장이 관통되어도. 네 팔을 한 번 보겠니?”
에리아는 붕대가 매어져 있는 아인의 오른 팔을 가리켰다. 그리고 아인은 아직 의심이 걷히지
않은 눈길로 붕대를 풀었다. 그러자 새하얀, 아무런 상처도 없는 속살이 보였다. 아인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팔을 이리저리 살폈다.
“상처가 나았네요?”
흉터가 남았을 지도 모르는 긴 상처가 있었던 곳을 쓰다듬던 아인이 중얼거렸다.
“그럼……전 죽지 않는 다는 말인가요?”
“아니, 꼭 그건 아니야. 모아둔 영기가 모자라면 육체의 훼손을 막을 수가 없어. 그럴 때는 누군
가가 네 영혼을 다시 이 곳으로 데리고 와서 재조합을 해야 하는 해. 아, 그럼 불사신이랑 다를
게 뭐냐고? 좀 달라. 만약 영혼이 이곳으로 온다면 넌 다시 육체를 갖겠지. 하지만 그 충격으로
영혼의 기억이 상당부분 사라지게 돼. 지금의 너처럼.”
그 전의 말도 놀라웠지만, 마지막 말은 가슴을 찔렀다. 에리아도 막상 말을 하고 나니 뭔가 미안
해진 모양이다. 아인을 물끄러미 보던 에리아가 손뼉을 한 번 짝 치면서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
했다.
“후훗. 아무튼 얼른 밥 차려 줄 테니 온천에 몸이라도 담그고 있으렴. 피곤도 풀 겸 겸사겸사.”
“좋긴 한데…….바닥이 없어서 너무 불안한걸요? 무섭단 말이에요.”
“물이 올라오는데 무슨 걱정이니? 그래도 정 불안하면, 온천의 가장자리 쪽으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뒀어. 거기에 앉아서 목욕하면 안전할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에리아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인도 한숨을 폭 쉬고는 옷을
벗었다. 아직 뭔가 익숙하지 않은 성인 여자의 몸이 드러났다. 그녀는 떨어진 수건을 줍고 온천에
발을 담그면서 자신의 몸을 한 번 내려다 보았다. 긴 팔다리와 봉긋한 가슴과 굴곡 있는 몸매. 아름
다운 비율이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몸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발목을 물
에 담그나 에리아의 말대로 계단 형식으로 된 돌이 발에 닿았다. 맨들맨들하게 깎아서 앉아 있기엔
불편함이 없었다.
“후우.”
온천은 따뜻했다. 뿌리 쪽에서는 힘차게 솟아나오던 물도 이곳에서는 기분 좋게 다리와 엉덩이
를 두들겨 줄 정도의 압력 밖에는 구사하지 못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아마 이 폭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오늘도 빛 한 줄기 없는 밤을 보내야 했었겠지.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얼굴의 반을
물에 집어 넣었다. 연한 유황 향이 코와 입에 닿았다. 그렇게 눈이랑 귀만 밖에 내놓은 채로, 아인은
굴뚝에서 슬그머니 올라오기 시작하는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하지만……’
지붕 위로 달이 뜨기 시작한다. 산 아래쪽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나도 모르게 집에 왔다고 생각해 버렸어.’
물 안에 들어가있는 입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되는 거겠지?’
그때 집 안에서 에리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인, 빨리 나와서 나 좀 도와주겠니? 국이 끓어 넘치고 있어!”
아인은 작은 한 숨을 한 번 폭 쉬고는 물에서 빠져 나왔다. 수건으로 몸을 한 번 감싼 다음,
그녀가 대답했다.
“금방 갈게요!”
그리고 그녀가 뛰어들어간 자리엔 작은 발자국 만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차가운 달빛 아래
자신의 주인을 찾던 발자국은 잠시 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
운영자님께서 아기다리고 고기다리던 목욕씬
앞으로 몇 개 더 나옴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