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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무협
2013.06.23 17:58

아인 6-(2)

조회 수 2937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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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감추는 어둠. 모든 것이 숨는 어둠. 그 드넓은 그림자 뒤에 얼마나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한 줌의 빛도 찾기 어려운 암흑 속.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선 그 어떤 소리와 빛도 그의 허락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방향도, 감각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번뜩였다. 어둠을 해치고 나타난 한 쌍의 붉은 눈동자의 시선이 천천히 좌우로 향했다. 어둠은 모든 감각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그 눈동자의 주인이 얼마나 큰지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붉은 눈동자는 좌우로 한참을 움직이다가, 어느 한곳을 응시하듯 멈추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밤을 움직이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택했소이다.”


그리고, 그의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와 함께, 다시 완전한 암흑이 찾아왔다.

---




그로부터 며칠이나 흘렀을까? 일주일이 넘은 것은 확실하다.


아인은 숨을 한 번 몰아 쉬고는 이제는 끝이 닿다 못해 거의 한 뼘이 짧아진 막대기를 근처에 버렸다. 너무 짧아져서 자신의 키와 맞지 않아져 버린 것이다. 평소라면 미안한 말투로, ‘막대기야, 그 동안 고마웠어,’ 라고 한 마디 할 법하지만 아인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이제 무감각해져 버렸다. 확실한 것은 일주일은 넘었다는 것이다. 수 천 미터는 걸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만큼 걸었는지도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주변 풍경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때의 녹림은 3일 정도가 지나자 비교적 키가 낮은 침렵수 숲으로 바뀌었고, 그 후엔 더더욱 키가 낮은 수풀들만 보이더니 이젠 말라가는 나뭇가지 하나 보기 힘든 곳이 되어있었다. 아니, 조금 전 아인이 버린 나뭇가지가 있으니 그 말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아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인의 발이 닿는 주변은 깨진 돌들과 바위, 그리고 습기를 머금어 진흙이 되기 직전의 미끄러운 흙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걸음을 내 딛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틀 정도가 지나니 이것도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근데 갑자기 눈 앞이 흔들흔들 하더니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철썩 하면서 땅에 오른쪽 무릎이 닿았다. ? 하면서 천천히 무릎을 들자, 이번엔 하늘이 보인다. 콩 하면서 뒤통수에 저릿한 아픔이 느껴진다.


내가 왜 이러지?’


상황 파악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힘겹게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배고파.”


생각해보니 어제 아침 이후로 아무 것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조금씩 아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이 줄어드는 속도는 그녀가 정상에 가까워지는 속도보다 휠씬 빨랐던 것이다. 그나마 허리에 매단 수통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작고 큰 개울이 끊임 없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다 먹은 다음부턴 배낭은 짐이 되었고,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식량을 다 먹은 그때로써는 배낭을 들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체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인은 배낭을 버리기 전, 안 쪽 주머니에 손가락 길이만한 붉은 색 보석처럼 생긴 물체를 보기는 했다. 작은 톱니바퀴와 그 옆에 작은 구멍이 보이는 그 물건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톱니바퀴를 손가락으로 굴려보니 돌아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의 용도를 알 수가 없었고, 또 먹을 수도 없었기에 별다른 미련 없이 배낭과 함께 버려버렸다. 그때까지는 고마워, 배낭아,’ 등등 감상적인 말을 할 힘이 조금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혼잣말을 하기에도 힘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인은 자신이 어째서 아직까지도 걷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돌아갈 수가 없어서.’


분명 정답은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는 산 아래로 돌아갈 수가 있다.


돌아갈 거리가 남은 거리보다 기니까.’


물론 자신이 걸은 거리와 아직 남은 거리를 몰랐기에 상당한 논리적 어폐가 있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믿는 수 밖에 없다. 믿는 것에는 돈이나 힘이 들지 않으니까. 물론 그 믿음이 사라졌을 때에 닥칠 정신적 충격은 상당하겠지만. 아인은 흐린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돌아가면 먼저 밥을 먹을 거야. 온천에 몸도 담그고 차랑 과자도 먹어야지.’

그때 갑자기 에리아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서, 아인은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일단 따위부터 한 대 쳐 올려야겠어.’


분명 이것도 어제까진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속이 후련해 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까진 꿈도 못 꿀 행동이겠지만 현재로썬 그보다 더 한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화풀이할 상대는 지금 자신 앞에 없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


죽기 밖에 더 하겠어?’


아인은 이를 악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쉬었더니 다리에 중심이 잡히는 듯 하다. 수통을 들어 입술과 목을 살짝 적셨다. 그러자 정신이 좀 차려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 가늠도 할 수 없는 시간을 걸었다. 실제적으로는 두 세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며칠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걸어야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다. 첫날은 해가 지기 전에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했다. 불을 지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었기에 밤은 너무나 외롭고 불안했다. 낮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 산에 사는 모든 짐승들이 야행성이라면 어떨까, 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만큼 밤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던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너무 일찍 야영을 시작하는 바람에 잠이 잘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극도의 긴장감 역시 불면증에 한몫 했다. 결국 아인은 그 다음 날, 퀭한 눈으로 거의 시체처럼 산을 올라야 했고, 그 날부턴 잠을 자기 위해 말 그대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었다. 그나마 아무런 취침도구 역시 없었기에 야영엔 아무런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과,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점이 행운이었다. 낮이든 밤이든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았으면 아마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못하고 진작에 쓰러졌을 것이다. 어쩌면 에리아의 배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선 후, 뒤를 돌아보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 쉬었다.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그녀의 폐부에 가득 찼을 즈음에 그녀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내가 고생하니까 기분이 좋냐!”


좋냐.….아아아아…….


메아리가 시원하게 허공을 가른다. 하지만 뭔가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그래서 아인은 한 번 더 소리치기로 했다.


야 이 마녀야!”


녀야아….아아……


숨이 찼고, 배도 더 고파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속은 시원했다. 메아리 때문에 그녀가 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지만 (이 부분에서 아인은 자신의 행동을 잠깐이나마 후회했다) 한편으론 그녀가 화가 나서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가능성 역시 떠올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5분이 지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분노에 찬 에리아가 구름을 뚫고 나타나거나, 혹은 불덩이나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질까 싶어 하늘을 봤지만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아인은 결국 발걸음을 다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 저게 뭐지?”


이제까지 알지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가 서있는 위치에서 약 30미터 전방에 무언가가 보였다. 안개가 자욱해서 형태를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바위 같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바위와는 다르게 거대하고 큰 것이다. 아인은 갑자기 몸에 힘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어느새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마치 한 마리의 사슴이 달리는 것처럼 돌들을 밟고, 진흙을 피하면서 열심히 달렸다. 잠시 뒤, 그녀가 그곳에 도달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그곳은 정상인 것 같았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평지였다.


도차아아아아악!”


마지막은 흡사 비명과도 같았다. 아인은 몸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뒤로 누워버렸다. 차가운 진흙이 머리카락에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제 이 고생도 끝이다. 그녀는 상체를 들어올리며 신나게 말했다.


에리 아니, 스승님! 저 왔어요오!”


대답이 없다. 아인은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저 왔다니까요!”


여전히 침묵. 아인의 심중에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부러 밝게, 손으로 나팔을 만들며 외쳤다.


아까 마녀라고 한 것 취소할게요! 저 도착했어요!”


침묵.


그 나이 먹어서 삐치면 어떡해요!”


역시 대답이 없다. 아인은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리아가 삐쳤을까? 아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로 삐칠 정도의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인은 좀 더 걸어가보기로 했다. 마지막에 흥분에 휩싸여 달린 탓인지 다리에 근육통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처음 에리아와 만났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땅이 척박하다는 것과 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저 앞에 뭔가가 보이는 듯했다. 검은 그림자가 안개 뒤에서 손을 흔드는 것 같다. 아인의 마음에 기대감이 벅차 올랐다.


집일까? 아니, 집치고는 너무나 크다. 마치 커다란 궁전 같은…….’


의아해 하며 걸음을 옮기던 아인의 발이 뚝 멈췄다. 그것은 집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곳은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커다란 벽처럼 자신 앞에 버티고 있는 또 하나의 끝이 보이지 않는 비탈길 앞에서, 아인은 말 그대로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이 무너지며 통곡했다.




---

오랜만에 업!!


vincent

  • profile
    상호 2013.06.24 00:04
    어미사자의 교육방식에 절망한 새끼사자의 마음 :)
  • profile
    성원 2013.06.24 18:49
    오 적절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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