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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체리는 14세기에 술탄 무라트 1세가 처음으로 설립했으며 1826년에 해체될때까지 거의 450년간 지속되었다.

예니체리는 터키어로 신식 군대를 뜻하는 말이며 이 단어는 처음 예니체리가  오래된 정규군을 교체하려는 목적으로 창설되었음을 보여준다. 예니체리는 그들의 전투 능력과 발칸반도의 기독교 가정에서 징집된 청소년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유명했다. 징집된 소년들은 명백한 술탄의 소유물이었으며 그들은  실질적으로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해야만했다.
    
예니체리들은 엄격한 규칙을 준수하고 자유를 제한당하며 사회의 일반인들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지향해야만 했다. 처음 2세기 동안 이들은 독신을 강요받았지만 나중에는 바뀌게 된다. 예니체리는 자유인의 상징인 턱수염을 기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었다.

창설초기에 예니체리 중에는 죄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1420년경 부터 자신들의 오래된 공동체에서 단절되어 어렸을 때 가정에서 징발되어온 소년들로 부대원들이 구성되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데브시르메라고 불렸다. 이 소년들은 심지어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지역의 정상적인 사회와도 접촉이 금지되었다. 훈련기간 동안 소년들은 술탄을 향해 모든 충성을 다 바치도록 교육받았다. 엄격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예니체리들은 자신들의 충직함을 정당화하고 강화해주기 위해 주어지는 높은 생활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만끽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니체리들은 제국의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강대한 권력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예니체리들은 무력을 사용해 정치에 영향을 끼쳤고 자신들의 이익도 보호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예니체리들은 궁궐내에서 반란행위를 수없이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도야말로 이들이 몰락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게된다. 예니체리의 강력함은 술탄에게 위협이 되었고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예니체리가 패배하자 모든 부대원들은 사형당하거나 추방되었다.

술탄이 예니체리를 제거하고 싶어했던 또 다른 이유는 1574년 경에 20,000명 정도였던 것이 1826년에는 135,000명에 달할정도로 부대의 구성원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이 규모를 유지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 게다가 호사스러운 삶을 유지하게 위해 예니체리 부대원들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재산을 비축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다양한 사업과 장사를 벌였으며 점점 더 사회에 관여하는 일이 많아졌다. 예니체리는 진정으로 제국안의 제국이었다.

예니체리의 창설과 해체

1380년 - 베이 무라트 1세가 데브쉬르메 제도를 실행함으로서 예니체리 부대가 설립되었다.

15세기 - 예니체리가 오스만 제국내에서 강력한 정치적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16세기 - 예니체리 대원에게 결혼이 허락되었으며 심지어 자식들이 무슬림으로 태어났다하더라도 예니체리 부대에 입대시킬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17세기 - 예니체리 부대는 궁궐내의 반란행위를 계속해서 일으키게 된다. 이런 행위는 결국 그들의 종말을 가져오게 된다.


1648년 - 예니체리 부대가 궁궐에 난입해 술탄 이브라힘 1세를 살해한다.

18세기 - 전통적인 데브쉬르메 징병제가 문란해지고 많은 수의 자유인들이 지원하게 되며 그들 중에는 무슬림 가족들 중에 선발된 이들도 끼어있었다.

1820년 - 예니체리 부대가 그리스의 독립전쟁을 진압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니체리는 예전처럼 무적의 부대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1826년 - 예니체리들은 술탄 무라드 4세가 새로운 유럽 방식의 부대를 창설하려는 것을 알고 반란을 일으킨다. 술탄은 전쟁을 선포하고 콘스탄티노플 내에 있는 예니체리의 막사와 지방도시에 포탄세례를 퍼부으면서  전쟁은 막을 내린다. 대부분의 예니체리 대원들은 전사했다. 생존자들 대부분은 사형당했고, 나머지는 추방당했다. 예니체리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복장 - 예니체리들은 45cm 길이의 뵈르크라고 부르는 하얀색 머리 보호대를 쓰고다녔다. 대부분의 부대가 착용하는 뵈르크의 크기는 동일했지만 몇몇 부대에서는 작은 크기의 뵈르크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니체리들의 청색이나 암청색의 치마와 붉거나 노란색의 로브로 만들어진 돌라마라고 부르는 옷을 군복으로 입었다. 장교들은 일년에 두번씩 군복을 지급받았고, 일반 병사들은 일년에 한번씩 군복을 지급받았다. 고급장교의 군화는 붉은색이었고 하급장교의 군화는 검은색이었다. 솔락과 페익(예니체리의 정예부대원들)들은 일반 예니체리와는 다른 군복을 입었다. 그들은 노란색 군복과 청동체 투구를 착용했다. 궁궐경비대인 보스탄지는 바타라라고 부르는 붉은색 머리보호대와 붉은색 로브를 착용했다. 이스탄불에 방문했던 서양인 여행객들은 예니체리들이 모두 자신들의 뵈르크에  괴기스러운 깃털을 머리에 꽂고 행군하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예니체리는 여러개의 다양한 부대로 나누어진다. - 지르힐 네페르 (갑주병사), 투페케치 (머스킷 사수), 오크추 (궁수), 솔락, 페익, 보스탄지 (궁궐경비대). 지르힐 네페르는 작은 철판들로 보강된 사슬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다양한 종류의 검과 전투도끼, 폴 암, 갈고리 창, 메이스, 단검과 작은 원형 방패부터 장방형의 발칸식 방패를 포함한 다양한 무기들을 소지했다. 솔락과 페익은 투구는 착용했지만 결코 갑옷은 입지않았으며, 가다라라고 부르는 미늘창과 단검을 소지하거나 복합궁과 창을 휴대했다.



솔라크 페일의 모습.






투페케치(소총수)의 모습.






오크추(궁수)의 모습과 시위를 푼 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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