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기본적인 식사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테이크와 빵이다. 특히나 현대의 서구인을 생각하면 스테이크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중세 유럽 사회에서 고기를 제대로 먹을 수 있었던 계층은 소수의 통치자들 뿐이었다. 영국인들이 산업혁명을 성공시키고 소를 계획적으로 방목하기 전까지 일반 민중은 한 달에 고기를 100g도 식탁에 올리기 힘들었다. (1994년 한국인의 육고기 소비량은 한 사람당 하루에 100g 정도 라고 한다)
기실 중세 서구인의 주식은 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빵은 어떠한가. 빵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었던 음식일까? 중세의 빵은 몇가지로 나뉜다. 가난한 사람의 빵, 부자의 빵, 귀족의 빵, 성직자의 빵 이다. 각각의 빵은 주 재료가 달랐다. 즉, 신분과 재산에 따라 하얀 밀가루 빵부터 보리빵, 호밀빵 등으로 식사의 질과 양이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면 중세인들은 빵만 먹고 살았던가? 설마.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이던간에 맛있는 것, 다양한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해왔으며 다양한 색채와 미각을 즐기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의식적(儀式的)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요리란 인간이 살아온 경험과 전통이 어우러진 역사이며 문화의 한 부분이다. 음식 문화를 통해 과거의 흐름을 느껴보도록 하자.
1. 로마 시대의 음식
공화정 시대의 로마인들은 평소에 Prandium 이라 불리는 식사와 저녁 등 하루에 두끼만 먹는 검소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곡물류, 꿀, 포도, 올리브, 계란, 치즈, 와인에 적신 빵 등으로 된 아침식사의 관습이 도입되었다. 점심식사인 Prandium은 가볍게 먹을수 있는 찬 요리였고, 저녁식사는 정찬이었다.
저녁식사는 돼지고기, 송아지고기, 염소고기, 가금류, 생선과 수렵에서 잡은 혼합해산물이 있는 화려한 것으로, 꿀을 바른 과자와 신선한 과일, 말린 과일 등이 곁들여졌다. 이러한 식사 순서에는 향기로운 와인이 곁들여졌으며 종종 공연을 관람하며 그 막간에 먹기도 하였다. 부와 기품의 상징이었던 이러한 식사 문화는 후일 파티나 연회의 기초가 된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로마 시대에서도 특권층의 이야기. 로마의 일반인들이 오래도록 광범위하게 소모한 음식은 죽과 같은 오트밀, 콩, 다양한 종류의 야채, 빵, 그리고 계란이었다. 일상적인 식사에서는 생선과 우유, 치즈, 과일 등을 기본으로 하여, 사냥에서 잡은 동물의 고기를 먹기도 하였다.
2. 중세 초기의 음식
A.D 5세기에는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과 함께 지중해 세계를 장악하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중세 유럽은 암흑기로 돌입한다. 이 시기에 유럽 음식들은 매우 빈약해져서 곡물, 우유, 치즈, 그리고 야채가 주식이 된다.
이 시기에 요리는 수도원이나 교회 근방의 주요 농업 생산지를 통해 근근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1,000년 이후 수도사들로부터 평민들에게 전수되어 그 지방 특유의 요리들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 요리 기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몸에 좋고, 입맛을 돋우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의 개발이었으며, 준비에 들어가는 수고를 줄이고 과일과 야채의 신선함을 살린 것이었다. 빵은 갓 구운 말랑한 것이 아니라, 굳은 채로 먹기도 하고, 영양이 풍부한 수프를 만들어 베이컨을 띄워 먹기도 하였다.
3. 중세 중 후기의 음식
1,200년 경이 되면 봉건제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이 당시에는 상업과 사회적 활동이 재개되고 봉건 영주들의 생활은 풍족해진다. 봉건 영주들은 자주 연회와 파티, 그리고 마상시합을 열었다.
이 시기로부터 음식문화가 차츰 세련되고 화려한 조리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마늘소스로 맛을 낸 구운 고기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아졌으며, 동방으로부터 향신료가 다양으로 수입되어 음식에 다양한 향을 입히기 시작했다.
중세 소스의 주 성분은 식초처럼 신맛을 내는 것이었는데, 때때로 신 오렌지즙이나 레몬즙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향신료를 많이 첨가하여, 신맛과 향신료의 맛이 매우 강했다.
중세의 요리는 재료의 맛과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 '곰고기처럼 보이는 소고기', '송아지 고기같이 만든 철갑 상어고기'처럼 음식의 모양이 내용과 다르게 만들어졌으며, 천연, 인공 재료를 첨가하여 빨강, 보라, 파랑 등 요리에 다양한 색을 입혔다.
향신료 무역은 중세 초기부터 이미 거래가 있었으나, 십자군 원정과 의약품, 요리를 통해 수요가 많아지며 이 시기에 매우 활발해진다. 진기함과 높은 가격의 매력, 육류 및 생선류의 장기 보존, 그리고 음식의 맛을 다양하게 해주는 향신료들의 특성은 귀족들에게 매우 사랑받았다.
이 시기에 정향, 카르다몸, 갈랑가, 육두구 열매 따위가 향신료중 많이 사용되었으며, 고대에 다량으로 소비되던 후추는 별로 사용되지 않게 된다. 후추는 양에 있어서 베네치아 수입 향신료의 3/4를 차지했다. 가격이 싼데다가 쉽게 구할수 있어서 학생, 군인, 죄수 등 돈 없는 사회계층이 사용하는 향신료로 전락해버린 것이었다. 반면, 귀하고 값비싼 향신료인 정향, 육두구 등은 귀족들만이 사용했다.
요리의 80%에 향신료가 들어갔는데, 고기나 생선 요리에 흠뻑 들어가는 것 외에도, 수프나 디저트 따위에도 사용되었다. 디저트 중 하나인 '시럽에 절인 배'의 조리법을 보자.
> 배가 무를 때까지 물에 넣어 끓인다. 배의 껍질을 벗기고 몇 토막으로 자른다.
> 단지 위에 여과천을 씌운 후 그 위에 충분한 양의 육계피를 올려놓고 양질의
> 포도주로 서너번 거른다. 설탕을 많이 넣고 여기에 아니스, 정향, 육두구를 첨
> 가한다. 기호에 따라 대추야자를 잘라 넣거나 코린트산 포도를 넣어도 좋다.
> 이것이 끓기 시작하면 배를 넣는다. 모든 재료가 푹 익을 때까지 둔다. 그런 다
> 음 내용물들이 육계피 색깔로 잘 우러났는지 확인한 후 생강 가루를 충분히 넣
> 는다. 미지근하게 잘 식힌 후 식탁에 내놓는다.
향신료의 사용은 참으로 광범위하여, 와인에 꿀이나 설탕과 향신료를 섞어 마시기도 하였다. 이 당시 조리책들에는 향신료의 섞는 법과 사용순서, 요리에 들어가는 시기에 대해 많은 조언이 실려있었다.
평민들은 파슬리, 꽃박하, 회향, 박하 같은 향초류와 마늘과 양파 등의 구근류 향신료를 사용했다. 이중 마늘과 양파는 그 강한 향을 누그러뜨리는 조리법을 통해 고급요리에도 종종 사용되곤 했다. 마늘 소스는 이 시기에 가장 대중적인 소스중 하나로 육류 요리에 사용되었다.
> 마늘을 준비하여 숯불에 굽는다. 그것을 잘 찧는다.
> 여기에다 빵의 속살, 단맛나는 향신료, 수프 스톡을 넣어 함께 찧은 뒤 살짝 끓여 뜨거울 때 소스로 사용한다.
한편, 이 시기에 치즈는 완전히 일반화되어 고상한 사람들의 연회에 차려지는 요리 중에는 끼지 못할 정도로 흔해져버려 평민들의 주요한 식품이 되었다.
4. 르네상스 시대의 음식
15, 16 세기의 식탁은 매우 풍요로웠다. 이 시기의 음식에는 스프와 굽고 튀기고 삶은 다양한 육류 요리와 고기를 다져넣은 만두류, 생선, 샐러드, 다진 아몬드가 들어간 과자류, 설탕에 절인 과일류가 있었으며, 당시에는 매우 비쌌던 사탕 수수 설탕이 꿀을 대신하여 호사스런 귀족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일반 대중들의 음식은 다양한 종류의 콩과 스프, 오트밀의 주재료인 메밀과 계란, 치즈, 양고기 등으로 여전히 소박하기 이를데 없었다. 채소나 구근류는 가난한 이들의 전유물로, 귀족들의 식단이나 장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채소는 품위있는 귀족들의 요리를 만드는데 넣기에는 너무나 서민적이라고 여겨졌다. 평민들은 귀족들에 비해 동물성 음식을 먹을 기회가 드물었으며, 그들이 먹을수 있는 동물성 음식으로는 치즈와 돼지비계가 으뜸이었다.
설탕은 14세기까지는 약품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츰 귀족들의 식도락과 과시욕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물론 설탕은 매우 비쌌으므로 그것이 없이도 단맛을 내기는 해야 했다. 단맛의 포도주나 말린 과일은 갈색 혹은 검은 색 요리에 쓰였으며, 설탕은 흰 음식에 뿌려 음식 색을 더욱 하얗게 보이도록 하는데 사용되었다.
차츰 설탕이 보급됨에 따라 입맛은 신맛이 덜한 소스와 향신료를 찾게 된다. 15세기에는 유채소스가 개발된다. 뜨거운 색, 혹은 낙타 색이라 불리운 이 소스의 색은 생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전 세기의 소스들에 비해 맛이 한결 순해졌다.
중세 말부터 17세기까지의 이탈리아 요리는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외국에 현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메뉴와 식사 규칙이 정립되었고, 식탁 예절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중요한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개인 식도(食刀)의 사용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포크의 발명이다. 포크의 발명지는 이탈리아로, 뜨거운 라자니아를 먹을 때 손을 데지 않도록 사용하던 끝이 뾰족한 나무 꼬챙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귀족들조차 포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부터이다. 앙리 2세와 결혼하여 과자류와 아이스크림 등을 프랑스에 대중화시킨 카트리느 드 메디치 조차도 고기를 손으로 집어들고 먹었던 것이다. 포크가 개발된 이후, 이탈리아의 귀족들은 곧잘 외국인들을 연회에 초청하여 포크와 나이프를 써서 식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구경시켰다고 한다.
1553년에 있었던 카트리느 드 메디치와 헨리 2세와의 결혼을 통해 향신료의 풍미로 유명했던 메디치가의 조리법이 프랑스 궁중 요리사에게로 전수된다. 이후 파리에는 요리학교가 생겨났으며 많은 요리사들이 배출된다.
수많은 봉건 영지와 교회의 축일은 참으로 많은 대향연의 구실이 되었다. 과도하게 먹고 마시는 전통은 16세기 초의 종교개혁의 각성에서 수그러들줄 몰랐으며,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해 요리에 관한 저서들이 출판되게 되었다.
이 르네상스 시대에 신대륙이 발견되고, 아메리카의 야채들이 유럽에 건너오게 된다. 전분질이 주를 이루는 강낭콩, 감자, 옥수수가 수입되기 시작하고, '인도의 수탉'이라 불리우는 칠면조가 16세기 말부터 폭발적인 인기 식품이 된다.
이 시기에 요리는 단순히 미각을 만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요리인들의 미적 감각을 과시하는 계기도 되었다. '살아있는 새를 집어넣은 파테(파테: 잘게 썬 고기를 양념하여 질그릇에 끓여서 그대로 식혀 먹는 요리)' 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조리법을 한번 보자.
> 파테의 틀을 큼지막하게 만들어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약간 큰 구멍을 밑바닥에 뚫어 놓는다.
> 이 틀에 밀가루를 채워서 아궁이에서 익힌다. 파테의 둘레는 보통 때보다 좀 높아야 한다.
> 다 구워지면 밑의 구멍을 뚫어 밀가루를 도로 끄집어낸다.
> 이와는 별도로 맛있는 속을 가득 넣은 작은 파테를 만들어 잘 익혀 둔다.
> 큰파테의 밑에 뚫어 놓은 구멍 크기와 같도록 만든 이 작은 파테를 큰 파테의 구멍에 끼운다.
> 살아있는 작은 새들을 작은 파테 주위의 공간에 넣을 수 있을만큼 최대한으로많이 집어넣는다.
> 이 작은 새들은 파테를 식탁에 내놓을 무렵에 집어넣어야 한다.
> 연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이 파테를 선보이기 위해 뚜껑을 열 때 작은 새들이 날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 이렇게 해서 참석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 그러나 사람들이 속았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작은 파테를 잘라서 대접한다.
요리는 먹기 전까지 하나의 장식 대상이 되어야 했다. 다양한 색상의 소스로 꾸미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설탕이나 진홍빛 고수 씨앗이 뿌려지기도 했고, 호사로움을 즐기는 영주가 주최하는 향연에는 값비싼 진주가 요리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5. 19세기까지의 음식
17~19세기의 상류층들은 본격적인 식도락에 들어선다. 모든 공적인 행사는 풍부하고 무수히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사치스런 연회에 대한 핑계거리에 불과해졌다.
이 시기는 에티켓과 잘 먹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궁중 귀부인들과 기사들의 살롱문화가 발달되며, 식사 법칙과 관례, 상석의 배치 따위가 예절의 한가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반인들의 요리는 여전히 빵과 야채 스프, 콩, 감자, 양배추 등을 기본으로 하는 검소하고 단조로운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프랑스의 경우 혁명이 일어나기 까지 서민들은 빵과 감자로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다. 혁명 이후, 귀족 사회가 붕괴하자, 귀족들의 개인 소유였던 요리사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레스토랑을 차리게 된다. 혁명을 통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요리들을 서민들도 맛볼수 있게 된 것이다. 1765년 파리 최초의 레스토랑인 '부이용(Bouillon)'을 오픈한 요리사 보빌리에(Beauvilliers) 역시 그러한 요리사 중 하나였다.
모험가들을 통해 많은 상품이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특히 옥수수가 서민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 옥수수는 17세기에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휩쓴 기근동안 폴렌타(Polenta : 보리, 옥수수, 밤가루 등으로 만든 죽)의 기초가 되었다. 폴렌타 죽과 함께 치즈, 계란, 밀가루 등은 고정적인 서민의 음식으로 남게 된다.
이 시기에 유럽에 알려진 것에는 감자와 토마토, 아시아 쌀 등이 있으며, 터키가 원산지인 커피도 수입되었다. 커피는 처음에는 약품으로 사용되었으나, 곧 가장 우아한 장소에서 빠질수 없는 것이 되며, 커피숍이나 카페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음료가 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전까지 매우 고급품이었던 버터를 귀족들의 요리에 사용하게 되고, 곧 유럽 전체로 전파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서양 중세 요리는 기름기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실 버터는 겨우 이 시기가 되어서야 그나마 대중화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동방에서 수입하던 기존 향신료 대신에 에살로뜨(Echalote: 마늘의 일종), 시불(Ciboule: 파의 일종), 엔쵸비(Anchois), 송로버섯(Truffe) 같은 프랑스적인 향료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현대 서구의 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운 소고기 - 스테이크가 대중화 된 것도 이 시기이다.
이 시기 동안 마요네즈, 푸딩, 콘소메, 퓌레, 젤리 등 많은 음식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출처 : 판타지피아
기실 중세 서구인의 주식은 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빵은 어떠한가. 빵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었던 음식일까? 중세의 빵은 몇가지로 나뉜다. 가난한 사람의 빵, 부자의 빵, 귀족의 빵, 성직자의 빵 이다. 각각의 빵은 주 재료가 달랐다. 즉, 신분과 재산에 따라 하얀 밀가루 빵부터 보리빵, 호밀빵 등으로 식사의 질과 양이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면 중세인들은 빵만 먹고 살았던가? 설마.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이던간에 맛있는 것, 다양한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해왔으며 다양한 색채와 미각을 즐기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의식적(儀式的)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요리란 인간이 살아온 경험과 전통이 어우러진 역사이며 문화의 한 부분이다. 음식 문화를 통해 과거의 흐름을 느껴보도록 하자.
1. 로마 시대의 음식
공화정 시대의 로마인들은 평소에 Prandium 이라 불리는 식사와 저녁 등 하루에 두끼만 먹는 검소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곡물류, 꿀, 포도, 올리브, 계란, 치즈, 와인에 적신 빵 등으로 된 아침식사의 관습이 도입되었다. 점심식사인 Prandium은 가볍게 먹을수 있는 찬 요리였고, 저녁식사는 정찬이었다.
저녁식사는 돼지고기, 송아지고기, 염소고기, 가금류, 생선과 수렵에서 잡은 혼합해산물이 있는 화려한 것으로, 꿀을 바른 과자와 신선한 과일, 말린 과일 등이 곁들여졌다. 이러한 식사 순서에는 향기로운 와인이 곁들여졌으며 종종 공연을 관람하며 그 막간에 먹기도 하였다. 부와 기품의 상징이었던 이러한 식사 문화는 후일 파티나 연회의 기초가 된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로마 시대에서도 특권층의 이야기. 로마의 일반인들이 오래도록 광범위하게 소모한 음식은 죽과 같은 오트밀, 콩, 다양한 종류의 야채, 빵, 그리고 계란이었다. 일상적인 식사에서는 생선과 우유, 치즈, 과일 등을 기본으로 하여, 사냥에서 잡은 동물의 고기를 먹기도 하였다.
2. 중세 초기의 음식
A.D 5세기에는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과 함께 지중해 세계를 장악하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중세 유럽은 암흑기로 돌입한다. 이 시기에 유럽 음식들은 매우 빈약해져서 곡물, 우유, 치즈, 그리고 야채가 주식이 된다.
이 시기에 요리는 수도원이나 교회 근방의 주요 농업 생산지를 통해 근근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1,000년 이후 수도사들로부터 평민들에게 전수되어 그 지방 특유의 요리들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 요리 기술의 일반적인 경향은 몸에 좋고, 입맛을 돋우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의 개발이었으며, 준비에 들어가는 수고를 줄이고 과일과 야채의 신선함을 살린 것이었다. 빵은 갓 구운 말랑한 것이 아니라, 굳은 채로 먹기도 하고, 영양이 풍부한 수프를 만들어 베이컨을 띄워 먹기도 하였다.
3. 중세 중 후기의 음식
1,200년 경이 되면 봉건제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이 당시에는 상업과 사회적 활동이 재개되고 봉건 영주들의 생활은 풍족해진다. 봉건 영주들은 자주 연회와 파티, 그리고 마상시합을 열었다.
이 시기로부터 음식문화가 차츰 세련되고 화려한 조리법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마늘소스로 맛을 낸 구운 고기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아졌으며, 동방으로부터 향신료가 다양으로 수입되어 음식에 다양한 향을 입히기 시작했다.
중세 소스의 주 성분은 식초처럼 신맛을 내는 것이었는데, 때때로 신 오렌지즙이나 레몬즙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향신료를 많이 첨가하여, 신맛과 향신료의 맛이 매우 강했다.
중세의 요리는 재료의 맛과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 '곰고기처럼 보이는 소고기', '송아지 고기같이 만든 철갑 상어고기'처럼 음식의 모양이 내용과 다르게 만들어졌으며, 천연, 인공 재료를 첨가하여 빨강, 보라, 파랑 등 요리에 다양한 색을 입혔다.
향신료 무역은 중세 초기부터 이미 거래가 있었으나, 십자군 원정과 의약품, 요리를 통해 수요가 많아지며 이 시기에 매우 활발해진다. 진기함과 높은 가격의 매력, 육류 및 생선류의 장기 보존, 그리고 음식의 맛을 다양하게 해주는 향신료들의 특성은 귀족들에게 매우 사랑받았다.
이 시기에 정향, 카르다몸, 갈랑가, 육두구 열매 따위가 향신료중 많이 사용되었으며, 고대에 다량으로 소비되던 후추는 별로 사용되지 않게 된다. 후추는 양에 있어서 베네치아 수입 향신료의 3/4를 차지했다. 가격이 싼데다가 쉽게 구할수 있어서 학생, 군인, 죄수 등 돈 없는 사회계층이 사용하는 향신료로 전락해버린 것이었다. 반면, 귀하고 값비싼 향신료인 정향, 육두구 등은 귀족들만이 사용했다.
요리의 80%에 향신료가 들어갔는데, 고기나 생선 요리에 흠뻑 들어가는 것 외에도, 수프나 디저트 따위에도 사용되었다. 디저트 중 하나인 '시럽에 절인 배'의 조리법을 보자.
> 배가 무를 때까지 물에 넣어 끓인다. 배의 껍질을 벗기고 몇 토막으로 자른다.
> 단지 위에 여과천을 씌운 후 그 위에 충분한 양의 육계피를 올려놓고 양질의
> 포도주로 서너번 거른다. 설탕을 많이 넣고 여기에 아니스, 정향, 육두구를 첨
> 가한다. 기호에 따라 대추야자를 잘라 넣거나 코린트산 포도를 넣어도 좋다.
> 이것이 끓기 시작하면 배를 넣는다. 모든 재료가 푹 익을 때까지 둔다. 그런 다
> 음 내용물들이 육계피 색깔로 잘 우러났는지 확인한 후 생강 가루를 충분히 넣
> 는다. 미지근하게 잘 식힌 후 식탁에 내놓는다.
향신료의 사용은 참으로 광범위하여, 와인에 꿀이나 설탕과 향신료를 섞어 마시기도 하였다. 이 당시 조리책들에는 향신료의 섞는 법과 사용순서, 요리에 들어가는 시기에 대해 많은 조언이 실려있었다.
평민들은 파슬리, 꽃박하, 회향, 박하 같은 향초류와 마늘과 양파 등의 구근류 향신료를 사용했다. 이중 마늘과 양파는 그 강한 향을 누그러뜨리는 조리법을 통해 고급요리에도 종종 사용되곤 했다. 마늘 소스는 이 시기에 가장 대중적인 소스중 하나로 육류 요리에 사용되었다.
> 마늘을 준비하여 숯불에 굽는다. 그것을 잘 찧는다.
> 여기에다 빵의 속살, 단맛나는 향신료, 수프 스톡을 넣어 함께 찧은 뒤 살짝 끓여 뜨거울 때 소스로 사용한다.
한편, 이 시기에 치즈는 완전히 일반화되어 고상한 사람들의 연회에 차려지는 요리 중에는 끼지 못할 정도로 흔해져버려 평민들의 주요한 식품이 되었다.
4. 르네상스 시대의 음식
15, 16 세기의 식탁은 매우 풍요로웠다. 이 시기의 음식에는 스프와 굽고 튀기고 삶은 다양한 육류 요리와 고기를 다져넣은 만두류, 생선, 샐러드, 다진 아몬드가 들어간 과자류, 설탕에 절인 과일류가 있었으며, 당시에는 매우 비쌌던 사탕 수수 설탕이 꿀을 대신하여 호사스런 귀족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일반 대중들의 음식은 다양한 종류의 콩과 스프, 오트밀의 주재료인 메밀과 계란, 치즈, 양고기 등으로 여전히 소박하기 이를데 없었다. 채소나 구근류는 가난한 이들의 전유물로, 귀족들의 식단이나 장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채소는 품위있는 귀족들의 요리를 만드는데 넣기에는 너무나 서민적이라고 여겨졌다. 평민들은 귀족들에 비해 동물성 음식을 먹을 기회가 드물었으며, 그들이 먹을수 있는 동물성 음식으로는 치즈와 돼지비계가 으뜸이었다.
설탕은 14세기까지는 약품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츰 귀족들의 식도락과 과시욕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물론 설탕은 매우 비쌌으므로 그것이 없이도 단맛을 내기는 해야 했다. 단맛의 포도주나 말린 과일은 갈색 혹은 검은 색 요리에 쓰였으며, 설탕은 흰 음식에 뿌려 음식 색을 더욱 하얗게 보이도록 하는데 사용되었다.
차츰 설탕이 보급됨에 따라 입맛은 신맛이 덜한 소스와 향신료를 찾게 된다. 15세기에는 유채소스가 개발된다. 뜨거운 색, 혹은 낙타 색이라 불리운 이 소스의 색은 생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전 세기의 소스들에 비해 맛이 한결 순해졌다.
중세 말부터 17세기까지의 이탈리아 요리는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외국에 현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메뉴와 식사 규칙이 정립되었고, 식탁 예절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중요한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개인 식도(食刀)의 사용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포크의 발명이다. 포크의 발명지는 이탈리아로, 뜨거운 라자니아를 먹을 때 손을 데지 않도록 사용하던 끝이 뾰족한 나무 꼬챙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귀족들조차 포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부터이다. 앙리 2세와 결혼하여 과자류와 아이스크림 등을 프랑스에 대중화시킨 카트리느 드 메디치 조차도 고기를 손으로 집어들고 먹었던 것이다. 포크가 개발된 이후, 이탈리아의 귀족들은 곧잘 외국인들을 연회에 초청하여 포크와 나이프를 써서 식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구경시켰다고 한다.
1553년에 있었던 카트리느 드 메디치와 헨리 2세와의 결혼을 통해 향신료의 풍미로 유명했던 메디치가의 조리법이 프랑스 궁중 요리사에게로 전수된다. 이후 파리에는 요리학교가 생겨났으며 많은 요리사들이 배출된다.
수많은 봉건 영지와 교회의 축일은 참으로 많은 대향연의 구실이 되었다. 과도하게 먹고 마시는 전통은 16세기 초의 종교개혁의 각성에서 수그러들줄 몰랐으며,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해 요리에 관한 저서들이 출판되게 되었다.
이 르네상스 시대에 신대륙이 발견되고, 아메리카의 야채들이 유럽에 건너오게 된다. 전분질이 주를 이루는 강낭콩, 감자, 옥수수가 수입되기 시작하고, '인도의 수탉'이라 불리우는 칠면조가 16세기 말부터 폭발적인 인기 식품이 된다.
이 시기에 요리는 단순히 미각을 만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요리인들의 미적 감각을 과시하는 계기도 되었다. '살아있는 새를 집어넣은 파테(파테: 잘게 썬 고기를 양념하여 질그릇에 끓여서 그대로 식혀 먹는 요리)' 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조리법을 한번 보자.
> 파테의 틀을 큼지막하게 만들어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약간 큰 구멍을 밑바닥에 뚫어 놓는다.
> 이 틀에 밀가루를 채워서 아궁이에서 익힌다. 파테의 둘레는 보통 때보다 좀 높아야 한다.
> 다 구워지면 밑의 구멍을 뚫어 밀가루를 도로 끄집어낸다.
> 이와는 별도로 맛있는 속을 가득 넣은 작은 파테를 만들어 잘 익혀 둔다.
> 큰파테의 밑에 뚫어 놓은 구멍 크기와 같도록 만든 이 작은 파테를 큰 파테의 구멍에 끼운다.
> 살아있는 작은 새들을 작은 파테 주위의 공간에 넣을 수 있을만큼 최대한으로많이 집어넣는다.
> 이 작은 새들은 파테를 식탁에 내놓을 무렵에 집어넣어야 한다.
> 연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이 파테를 선보이기 위해 뚜껑을 열 때 작은 새들이 날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 이렇게 해서 참석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 그러나 사람들이 속았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작은 파테를 잘라서 대접한다.
요리는 먹기 전까지 하나의 장식 대상이 되어야 했다. 다양한 색상의 소스로 꾸미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설탕이나 진홍빛 고수 씨앗이 뿌려지기도 했고, 호사로움을 즐기는 영주가 주최하는 향연에는 값비싼 진주가 요리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5. 19세기까지의 음식
17~19세기의 상류층들은 본격적인 식도락에 들어선다. 모든 공적인 행사는 풍부하고 무수히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 사치스런 연회에 대한 핑계거리에 불과해졌다.
이 시기는 에티켓과 잘 먹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궁중 귀부인들과 기사들의 살롱문화가 발달되며, 식사 법칙과 관례, 상석의 배치 따위가 예절의 한가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반인들의 요리는 여전히 빵과 야채 스프, 콩, 감자, 양배추 등을 기본으로 하는 검소하고 단조로운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프랑스의 경우 혁명이 일어나기 까지 서민들은 빵과 감자로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다. 혁명 이후, 귀족 사회가 붕괴하자, 귀족들의 개인 소유였던 요리사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레스토랑을 차리게 된다. 혁명을 통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요리들을 서민들도 맛볼수 있게 된 것이다. 1765년 파리 최초의 레스토랑인 '부이용(Bouillon)'을 오픈한 요리사 보빌리에(Beauvilliers) 역시 그러한 요리사 중 하나였다.
모험가들을 통해 많은 상품이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특히 옥수수가 서민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 옥수수는 17세기에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휩쓴 기근동안 폴렌타(Polenta : 보리, 옥수수, 밤가루 등으로 만든 죽)의 기초가 되었다. 폴렌타 죽과 함께 치즈, 계란, 밀가루 등은 고정적인 서민의 음식으로 남게 된다.
이 시기에 유럽에 알려진 것에는 감자와 토마토, 아시아 쌀 등이 있으며, 터키가 원산지인 커피도 수입되었다. 커피는 처음에는 약품으로 사용되었으나, 곧 가장 우아한 장소에서 빠질수 없는 것이 되며, 커피숍이나 카페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음료가 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전까지 매우 고급품이었던 버터를 귀족들의 요리에 사용하게 되고, 곧 유럽 전체로 전파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서양 중세 요리는 기름기가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실 버터는 겨우 이 시기가 되어서야 그나마 대중화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동방에서 수입하던 기존 향신료 대신에 에살로뜨(Echalote: 마늘의 일종), 시불(Ciboule: 파의 일종), 엔쵸비(Anchois), 송로버섯(Truffe) 같은 프랑스적인 향료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현대 서구의 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운 소고기 - 스테이크가 대중화 된 것도 이 시기이다.
이 시기 동안 마요네즈, 푸딩, 콘소메, 퓌레, 젤리 등 많은 음식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출처 : 판타지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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