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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17세기 말부터 해적들의 활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1700년에서 1730년까지 해적의 황금기(golden age of piracy)를 맞게 된다.  특히 카리브 해, 미국 동부해안, 인도양, 아프리카 서해안을 해적들이 순회하면서 주요 트레이드 루트에서 상선을 약탈했다.  이 시기에 해적활동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프랑스와 영국간의 긴 전쟁이 끝나 많은 수의 선원들이 직장을 잃게 되어 해적으로 직업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럽 각국 식민지에서의 강력한 정부의 부재는 이들 식민지에서 해적들이 활동하는 데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식민지 주민의 일부는 해적과의 거래로 부를 축척했으나, 해적들의 약탈의 결과로 식민지와 유럽 대륙간의 교역이 타격을 받고, 식민지에서 물건 값이 급등해 유럽 각국의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이에 각 식민지 정부에서는 차차 해적들을 토벌해 나가기 시작했고, 더 이상 해적을 방치할 수 없었던 유럽국가의 해군이 해적들을 토벌하기 시작하면서 1730년에 이르러 대부분의 해적이 토벌당하고, 해적의 황금기는 막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 시기를 전후에 활동한 해적을 지칭하는 말로는 버커니어(buccaneer), 해적(pirate), 사략함대(privateers), 등이 있었는데 버커니어는 17세기 중반, 신대륙의 스페인 함대를 목표로 한 프랑스와 영국의 약탈자를 지칭하는 말로 이들은 합법적인 해적과 불법적인 해적 중간 정도의 입장에 있는 해적들로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된 스페인 정부에서 본격적인 토벌을 시작하면서 사라진 이들이었다.  사략함대는 자국과 전쟁 중에 있는 적국의 함선을 약탈할 수 있는 위임장을 받은 해적인데, 합법적인 해적이었고, 이들이 나중에 완전한 해적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적은 국적을 상관하지 않고 아무 함선이나 약탈한 불법적인 약탈자들을 지칭했다.



2.해적 선원:


가. 해적의 구성

17세기와 18세기 해적활동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의 해적의 대부분은 사략선, 상선, 전선 등에서 경험을 쌓은 선원 출신이었으며, 대부분의 해적이 영국이나 신대륙 출신의 선원들로 구성됐다.  18세기 해적의 대부분은 20대였으며, 평균연령은 27세 정도로 젊은 편이었는데 이는 범선의 선원으로 활동하려면 체력과, 힘, 민첩성을 겸비해야 돼, 나이든 선원이 견뎌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해적의 대부분이 많은 수의 흑인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해적 선장이었던 발톨로뮤 로버츠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그가 속해있던 해적선에 180명의 백인과 48명의 흑인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그의 배가 서아프리카에서 영국 왕실해군에 붙잡혔을 때는 187명의 백인과 75명의 흑인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 흑인들의 역할은 주로 해적들의 노예로 부려졌던 것으로 보이며, 오랫동안 백인 해적들과 동승한 흑인 해적들 대부분은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있다.

나. 동기

상선이 해적에게 포획됐을 때 그 상선의 선원들 중 보조선원은 살해되거나, 배에서 버려졌고 정식선원은 강제로 해적에 편입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유명한 해적 중에는 이렇게 해적 생활을 시작한 이가 많았다.  혹은 사략선의 선원들이 해적으로 변신하는 것이 두 번째로 흔한 경우였다.  전쟁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막대한 이익은 많은 사람들을 사략선에 승선하게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 실업자가 된 사략선의 선원들은 신대륙이나 카리브 해로 이동해 해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적은 잡히면 사형이고,  수명도 짧았으나, 실업자가 된 사략선의 선원들은 거지나, 도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에 많은 수의 선원들이 해적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해적의 길을 택했다.

해적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약탈물이 선원들에게 골고루 분배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적 생활에서의 어려운 육체노동과 전투의 위험, 좁은 선내에서의 불편한 생활, 나쁜 음식과 썩은 물, 부족한 식량, 각종 질병이 해적의 목숨을 위협했다.  이 시기의 해적의 절반은 각종 질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적은 막대한 돈을 기대할 수 있었기에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선원들이 해적의 길을 걸었다.  



3.해적의 전투방식:

해적의 전투는 사냥물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는데, 일반적인 해적 슬루프 선의 망루에서는 최상의 조건일 때 최대 35km 의 거리를 볼 수 있었다.  해군의 선단은 다수의 선박을 일렬로 나열시켜 넓은 지역의 수색이 가능했으나, 해적들의 대부분은 한 척 만의 배를 소유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만을 살필 수 있었다.  두 척 이상의 배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나머지 배도 수색에 참가시켜 좀 더 넓은 지역을 탐색할 수 있게 했는데, 밤이나 날씨가 나쁜 날에는 탐색이 거의 불가능했다.  해적은 재빨리 멀리 떨어져 있는 배의 종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는데, 전선은 최대한 빨리 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는 포착된 전선이 해적을 토벌하러 온 토벌단의 일부이거나, 전투선단의 일부일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해적은 보통 주요 무역 루트를 따라 약탈을 했으며, 특히 바하마 지역에서 약탈을 즐겼는데, 이는 좁은 플로리다 해협이 근처에 있어 전세가 불리할 경우, 플로리다 해협으로 도망가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쿠바와 히스파니올라 사이의 윈드워드 해협, 마다가스카르 근처, 서아프리카 해안, 신대륙의 바다에서도 특히 해적 활동이 많았다.  계절에 따라서도 해적은 주요 활동 무대를 바꿨는데, 겨울에는 카리브 해를, 여름에는 대서양을 무대로 활동을 펼쳤다.  

일단 목표물을 포착하면, 그 선박의 무장정도, 선원 수, 스피드, 항해성능, 그 배 선장의 자질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이 요소들은 목표물을 장시간의 추격 없이 쉽게 제압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했다.   목표물을 빨리 따라잡기 위해서 해적들은 작고 빠른 슬루프(sloop)나 스쿠너(schooner) 등의 함선을 선호했다.  사냥물에 접근하기 위해서 속임수도 많이 썼는데, 거짓 깃발을 사용하는 방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대개, 해적 깃발을 쓰지 않고 국기를 걸어, 상대 함선을 안심시킨 다음 접근하는 방식을 많이 썼다. 해적선의 포구를 캔버스로 덮거나 짐을 실어 상선으로 위장하는 방법, 여자 승무원을 태워 상대함선을 안심시키고 접근하는 방식 등이 많이 애용했다.  상선도 나름대로의 위장전술을 써 해적을 속이려고 했는데, 가장 흔한 방법으로는 상선에 가짜 포문을 그려 넣음으로서 전선처럼 꾸며서 해적이 감히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많이 썼다.  

일단 대포 사정거리 내로 해적선이 접근하면, 해적선은 위장을 벗겨내고 확성기를 통해 요구조건을 전달했다.  상대방이 저항을 할 경우에 해적은 상대함선의 선원들을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고 모조리 살해했기 때문에, 이러한 위협으로 상대에게 공포감을 고조시키는 게   해적의 가장 큰 무기였다.  대개 해적의 요구 조건은 보트를 내려 해적이 약탈하기 좋게 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상대방 함선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을 경우, 해적은 선원의 일부를 강제로 끌고 가고, 배의 무장을 압수하고, 쓸만한 화물은 모조리 압수한 다음, 선장과 남은 선원들을 놔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대방이 싸우기로 결정했을 경우, 포격전으로 할지 백병전으로 승부를 볼지를 결정했는데, 포격전을 하면 목표 함선이 손상을 입을 위험이 많기 때문에, 대개는 상대 함선으로 난입해 백병전으로 승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저항을 선택한 선박은 패배할 경우 모조리 죽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다.  포격전을 선택하건 백병전을 선택하건, 전투의 승패에는 선원의 경험과 숙련도, 얼마나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가. 포격전:

17세기 말에 들어 청동으로 만든 대포 대신 주조로 만든 철포가 생산되면서 대포의 생산단가가 하락해, 바다에서 대포의 사용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 시기의 가장 흔한 해적선이었던 슬루프나 스쿠너 등의 소형선에서 가장 널리 쓰인 대포는 4파운드 포로, 최대 1000야드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었다.  좀더 대형선을 몰고 다녔던 해적인, 발톨로뮤 로버츠의 기함 Royal Fortune 호 같은 경우에는 4문의 12파운드 포, 20문의 8파운드 포와 다수의 4파운드 포, 6파운드 포를 장비했다.  

17세기의 해전은 양 함선이 뱃전의 대포를 서로 쏘다가 적함이 회복불능의 타격을 받거나 항복을 거부하면, 승자 측에서 적함으로 건너가 백병전으로 끝장을 보는 식이었다.  해적들은 보통, 뱃전의 대포를 발사한 다음 발사 시에 발생한 연기로 시야가 가려지는 틈을 타서 적함에 접근, 압도적인 머릿수를 앞세워서 백병전으로 승부를 봤다.  대개 해적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종류의 포탄을 썼는데, 장거리에서는 구형탄 (Round Shot,  둥근모양의 철탄)을 발사해 상대함의 선체를 노리고, 좀 더 접근한 거리에서는 사슬탄 (chain shot,  포탄 두 개를 쇠사슬로 묶은 형태의 포탄.  주로 범장을 끊어내는데 사용됨)으로 상대함의 범장을 파괴하거나 돛을 잘라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백병전에 들어가기 전에 포도탄 (Grape shot,  통에 여러 개의 쇠구슬이 차 있는 형태의 포탄으로, 폭발하면서, 안에 들은 쇠구슬이 퍼지면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형식의 탄,  일종의 산탄)을 발사해 상대방의 선원들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주는 것을 노렸다.    


나. 백병전:

양 배가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접근하면 백병전이 시작되었는데, 보통 갈고리를 적함에 던져 양쪽의 배를 붙이는데, 범장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한꺼번에 많은 병력이 건너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양 함의 선미를 붙게 갈고리로 잡아당기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해적이 상대함으로 건너가면, 백병전이 시작됐는데, 이때 사용된 무기는 머스켓, 나팔총, 피스톨등의 총기류와 검, 커틀라스, 파이크, 도끼, 밧줄걸이 등의 무기가 사용됐다.  해적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무기는 수류탄으로, 1718년 해적선과 슬루프선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해적들이 다수의 수류탄을 던져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총기류 중에서는 피스톨이 그 휴대성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무기였다.  악명 높았던 해적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는 세 쌍의 피스톨과, 검, 나이프를 지니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해적들은 대개 비단줄로 피스톨을 고정시켜 난전 중에 피스톨을 잃어버리지 않게 했다.  머스켓도 해적이 쓰던 총 중에 하나지만, 더 널리 쓰였던 것은 나팔총(blunderbusses)으로  이 총은 바늘이나 쇳조각을 발사해 퍼지게 하는 일종의 산탄총이었다.  접근전 무기로는 커틀라스가 많이 쓰였는데, 좁은 공간에서는 사용이 힘들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저렴하고, 강력한 베기 공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해적들에게 애용됐다.  선장이나 장교들은 스몰 소드를 애용했는데, 찌르기를 위주로 한 이 검은 좁은 공간에서는 매우 유용했으나, 넓은 공간에서는 매우 불리한 무기였다.  거의 모든 해적들이 나이프를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었으며, 나이프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4. 해적 소굴:


‘해적의 황금기’  동안 여러 군데에 해적 기지가 들어서, 해적선을 수리하고, 전리품을 분배하며, 추적자로부터 숨는 등의 목적을 수행했다.  해적 기지의 이상적인 조건은, 첫째, 주요교역 루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하며, 둘째, 상대방이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에 위치해야 하고, 셋째, 약탈품을 쉽게 처분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해야 했다.  
  



5.  해적선

해적선은 상선에 비해 많은 선원이 탑승했기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잘 무장하고 있어야 했으며, 쉽게 적의 추격을 떨쳐내기 위해 스피드가 중요했다.  해적선은 약탈한 배 중 해적선에 적합한 배를 해적선으로 개조시키는 게 보통이었다.  혹은 사략선으로 활동하던 배가 해적선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있었다.  해적들은 계속 배를 바꾸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나, 바톨로뮤 로버츠처럼 여러 번 배를 바꾸는 경우도(보통 좀 더 강한 배로) 드물지 않았다.

해적은 보통 슬루프(sloops), 브리간틴(brigantine), 스쿠너(schooner) 등의 작고 빠른 소형범선을 선호했다.  특히, 카리브 해에서 건조된 슬루프는 이상적인 해적선으로 각광받았다.  일부 해적들은 좀 더 적재 공간이 많은 대형선을 선호하기도 했으나, 소형선은 기동성이 좋고, 대형선이 들어올 수 없는 얕은 바다로 도망치기가 유용한데다, 비교적 쉽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해적선으로 이상적이었다.  

일반 상선을 해적선으로 개조할 때는, 칸막이를 다 뜯어내고, 상부구조물을 모조리 철거해 좀 더 많은 대포를 실을 수 있게 하고, 때로는 선체에 구멍을 내 대포 몇 개를 추가 할 수 있도록 하고, 목재를 보강해 대포 발사시의 충격에 견딜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뱃전에 다수의 스위블 건 (swivel gun, 한 사람이 조작할 수 있는 소형포로 대개 대인용으로 쓰인 회전 포)을 달았다.    


가. 슬루프(Sloops):

슬루프는 1본 마스트(single-masted, 돛대 하나)에 선체에 비해 거대한 돛을 단 소형선으로 속도와 조작성이 우수한 선박이었다.  슬루프의 낮은 홀수와 날렵한 선체는 이 배를 훌륭한 소형 해적선으로 만들었다.  이 배는 종돛선으로 뒤에 메인세일(main sail, 주돛)과 앞에 포어세일(fore sail, 앞 돛)을 달았다.  

일반적인 해적 슬루프는 최대 75명의 선원과 14문의 대포를 실을 수 있었다.  특히 자메이카에서는 튼튼하고 빠르고 성능이 우수한 슬루프를 생산하기로 유명했는데, 레드 시더(red cedar, 삼나무의 일종)로 건조해 불그스름한 색깔이 특징이었다.  또한, 버뮤다는 우수한 슬루프와 스쿠너 선으로 유명했다.  커터는 슬루프와 비슷한 종류의 배로, 1본 마스트에 종돛을 달고 포어세일(fore sail, 앞돛)과 삼각돛을 단 배였다.  때로는 여기에 사각돛을 추가해서 달기도 했다.  커터는 주로 식민지 정부나 해군에서 해적선을 상대하는 선박으로 널리 쓰였다.  


나. 스쿠너(Schooner):

슬루프의 변형으로 18세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선박이다.  스쿠너는 두 개의 돛대에 각각 종돛을 단 선박이었다.  스쿠너는 선체가 낮아 수심이 얕은 바다와 해안가에서 활동하기 편하고, 긴 선체와 선체에 비해 거대한 돛을 달아 뛰어난 스피드를 자랑했다.  스쿠너는 최대 11노트로 항해할 수 있었다.  해적 스쿠너는 적재량 100톤 정도의 선박으로, 75명의 선원과 8문의 대포를 실을 수 있었다.  스쿠너는 해적이 사용하기에는 항해 거리가 짧아서, 자주 항구에 들러 물과 식량을 보급하거나 타 선박을 약탈해 식량을 자주 보충해야 했다.


다.  브리간틴(Brigantine):

브리간틴은 주 돛대에는 종돛과 메인세일(main sail, 주돛), 톱세일(top sail,  윗돛, 돛대 제일 위에 달린 사각돛)을 단 배로 풍향에 상관없이 쉽게 항해할 수 있는 배였다.  브리간틴은 길이 24미터, 적재량 150톤가량의 배로 최대 100명의 선원과 12문의 대포를 실었다.  
브리간틴과 비슷한 배로는 브리그(brig)와 스노우(snow)가 있었는데, 이 중 스노우는 해적 활동이 많은 지역에서 순찰선으로 애용됐다.  


라.  3본 마스트 선(Three-masted vessels, 횡돛선):

3본 마스트 선은 3개의 돛대에 완전하게 범장을 한 선박으로 머천트 쉽(merchant ship)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해적 대부분이 사용한 소형선 보다 스피드는 떨어지나, 튼튼하고,  많은 대포를 실을 수 있으며, 슬루프보다 훨씬 많은 선원이 탑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3본 마스트 선은 오랜 기간 바다에 머무를 수 있었다.  발톨로뮤 로버츠나 찰스 베인(Charles Vane)등의 해적 선장은 3본 마스트 선을 선호했다.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의 해적선 Queen Anne's Revenge 호는 3본 마스트의 구(舊)노예선을 40문의 대포를 장착한 해적선으로 개조시킨 배였다.  일반적인 상선은 적재량 300톤에 16문 이하의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등급이 있는 전선은 전부 3본 마스트 선이었는데 6급함은 12~24문의 대포를 장착했다. 5급함 프리깃은 40문의 대포를 장착해 보통 해적선보다 압도적인 무장을 지녔다.  로버츠의 Royal Fortune 호나 티치의 Queen Anne's Revenge 호등의 대형 해적선은 5급함 정도의 무장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6.해적의 규율:


보통 해적은 무법자의 삶을 산 이들로 여겨지나 이들도 나름대로의 규칙을 따르면서 살았다.  18세기의 해적은 민주주의에 가까운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해적선은 대부분 해적 선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규칙이 정해졌다.  해적은 다수결에 따라 약탈품의 분배, 해적이 지켜야만 하는 규칙과 처벌 등을 결정하고 선장이나 간부 등을 선출했다.  해적의 규율은 해적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상선이나 해군선박의 규율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해적은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규율을 기록으로 남겼다.  상선의 선원들이 해적이 될 경우,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들만의 규율을 정해 기록하는 것이었다.  17세기 말 버커니어 들은 해적활동을 시작하기 전 계약서를 만들어 근무조건, 사망이나 부상 시의 보상, 약탈품의 분배 조건 등을 결정했다. 이 계약서는 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었다. 17세기 말 버커니어가 쇠퇴하고 해적의 전성기가 오면서 해적의 규율은 법적인 효력을 잃은 문서로 변한다.  

선장(captain)은 다수결로 선원들이 선출했고 선장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선원들은 선장을 새로 뽑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해적 선장은 전투시에 해군 선장이나 상선의 선장처럼 절대명령권을 가지고 있었다.  선장은 부하가 명령을 불복종 할 시, 그 부하를 즉결 처형시킬 권한이 있었다.  

보급감(quartermaster)은 선장과 함께 선원들에 의해 선출된 직위로 부선장의 역할을 맡은 직위였다.  보급감은 전투가 없을 때 배의 운영을 총괄하고, 전리품의 분배, 탈취한 선박의 활용여부(태울 것인가,  빼앗을 것인가  등등)를 결정했다.  전리품은 일단 보급감이  관리를 하고, 항해가 끝난 다음에 보급감이 전리품을 나누는 작업을 총괄했다. 해적은 선장의 독단을 막기 위해서 배의 권력을 선장과 보급감으로 나눴고 선장처럼 보급감도 다수결에 의해 쫓겨 날 수 있었다.  

선장 밑의 간부들은 선장이나 선장과 보급감이 임명을 했다.  항해사는 항해를 총괄하는 간부로 해적선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대개 해적 중 항해사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갑판장은 배에서의 작업, 선박의 유지, 항해도구(돛, 키 등등)의 관리 등의 임무를 총괄했다.  포수장은 포수와 배의 무기를 관리했다.  이 외에 돛제작자, 목수장등의 간부가 있었고 대형선일 경우 의사가 탑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리품은 해적이 여러 척의 배를 가지고 있을 경우, 전리품을 각 배의 선원 수에 따라 여러 척에 나누어 실었다.(예를 들어 해적선이 두 척이고 한 척은 선원이 50명, 나머지는 100명일 경우 전리품을 각각 1:2의 비율로 나누는 식으로...)  이렇게 전리품을 여러 배에 나눠 실은 것은 해적선 한 척이 소실되더라도 전리품 전체가 사라지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항해가 끝나면 전리품을 전 선원에게 나누어 줬는데, 부상당한 해적은 부상정도에 따라 전리품을 좀 더 적게 받았다.  해적은 보통 선장 및 간부들이 일반선원의 2배 정도를 가지고 일반선원은 각각 간부 몫의 반 정도의 전리품을 나누어 가졌다,  왕실 해군에서는 선장이  전리품의 4분의 1 까지 독식할 수 있었다. ‘해적 황금기’에 해적이 약탈한 물품은 설탕, 담배, 옷감, 럼주 등의 운반하기 힘든 물품이 대부분이어서 대개 조그만 항구나 미리 약속한 장소에서 중개인을 통해 전리품을 매각했다.  그런 다음 보급감이 전리품을 판매한 돈을 각 해적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리품의 매각이 불가능하면 약탈품을 그 자리에서 분배하기도 했다.  럼주 같은 주류는 대부분 그 자리에서 바로 나누어 가졌다.  

해적 규율의 대부분은 구성원 간의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적의 규율은 성교, 싸움, 도박, 음주 등의 행위를 규제했다.  그러나 해적이 술을 마시면 항상 싸움이 자주 일어나, 이를 규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에드워드 티치 같은 악명 높은 해적 선장도 해적들을 규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을 정도였다.


출처 : 라니안 판타지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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