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 정부는, 다양한 결혼만찬에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의 질과 종류에 관한 세밀한 부분까지 법으로 규정하였다.
오찬은 최대 세 번의 상차림으로 제한되었다. 첫 번째 쟁반(vassoio)에는 한 가지 종류의 고기를 최대 6립브라(시에나에서 통용되던 무게의 단위 : 1립브라 = 12온스)까지만 담아야 했다. 삶은 쇠고기, 삶은 수탉고기, 삶은 숫양고기 또는 삶은 새끼염소 고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삶은 고기를 담은 쟁반에는 값이 비싸지 않은 돼지고기가 첨가될 수 있었다.
그 다음의 인치소리움(incisorium : 요리된 고기를 잘라 담아 놓은 그릇/역주)은 불에 구운 고기로 국한되었으며 보통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부위의 고기가 올랐다. 그러나 한 접시의 요리로 간주되는 숫양, 숫오리, 혹은 암오리 요리는 예외였다.
한 쟁반은 의무적으로 2명에게 배당되었지만,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의 수가 홀수일 경우 한 사람은 혼자서 인치소리움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최대 40명으로 제한된 손님들을 위해 20개의 쟁반이 준비되었으며, 그 이외에 집안의 여성을 위한 음식접시가 추가되었다.
우무 또는 젤리, 소스 그리고 중세의 요리법으로 만든 혼합소스는 집주인과 특히 요리사의 요구에 따라, 최대 세 가지 종류의 고기를 양념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중세음식에 관해 간단하게 고찰해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중략) 규정적인 성격의 기록문헌은 - 돈나이오 법령을 예로 들 수 있다 - 상세한 내용은 관습대로라고 언급하고 있다.
닭, 오리, 식용수탉, 원앙새 들은 중세식탁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비교적 값이 싼 돼지고기는 상당히 확산되었다. 끓이거나 불에 익힌 고기들은 수많은 소스들(이 중 제일 많이 이용도니 것은 시고 달콤한 맛의 소스였다)과 함께 자주 식탁에 등장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기요리 중 주된 요리법은 치비에로(civiero), 즉 야생짐승의 고기를 요리할 때 사용하는 소스 또는 요리 방식이었다.
야생고기나 다른 종류의 고기들은 계란의 노른자, 수프, 레몬즙, 소금과 후추 그리고 양념으로 만든 고깃국물로 맛을 내었다. 충분한 고기, 특히 불에 익힌 고기의 충분한 소비는, 식탁 사용에 있어서의 관습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되는 중세 초기부터 확인되었다. 식탁에 참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침대에 누워서 식사를 하지 않고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맛볼 수 있도록 식탁에 곧게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중세의 또 다른 전형적인 음식들은 - 이에 대해서는 오리지널 문헌기록이 남아있다 - 젤리(gelatine), 파테(pates : 잘게 자른 고기를 양념하여 익힌 후에 식혀서 먹는 요리), 그리고 익힌 음식과 건조된 음식들이었다. 파스타(pasta)와 젤리 속에는, 원할 경우 생선, 콩, 과일, 치즈 등과 같이 모든 것을 넣을 수 있었지만, 특히 향료로 조리된 여러 종류의 고기가 이용되었다. 가장 고급으로 그리고 가장 널리 소비된 소프트 케이크(dolce)는 -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법령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 단맛의 아몬드, 가루설탕과 장미물을 주된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중세과자인 마르차파네(marzapane)였다.>
(앞에 이어) 삶거나 끓인 고기가 식탁에 오른 후에는 일반적으로 설탕·달걀·밀가루·호두의 아몬드를 섞어서 만든 과자가 준비되었는데, 이 과자는 상당히 값비싼 요리였기 때문에 그 자체가 세 번째의 식탁을 구성하였다.
오찬의 시작과 마지막에는 집주인에 따라 사탕과자, 당과 혹은 설탕에 절인 과자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과일이, 마지막으로는 치알다(밀가루·우유·달걀 등을 섞어서 얇게 빚어 살짝 구운 과자/역주)와 오늘날의 결혼케이크와 같은 빵(castella pamparigiorum)이 식탁에 올랐다.
연회 불변의 공식
프장 연회에서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는 연대기 작가들의 주위를 끌지 못했다. 이 연회의 독창성은 음식이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교 세계를 위해 벌인 선전에 있었던 것이다.
단지 48가지 요리가 나왔으며, 구운 고기들은 푸른 천과 금빛 천들로 덮인 수레들로 실어날랐다는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다. 48가지 요리가 나왔다면, 그 요리들은 그 요리들은 다섯 코스로 나뉘어 9-10가지씩 나왔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로는 요리들이 순차적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중세에는 한꺼번에 식탁에 올랐다. 한 코스의 요리들이 끝나면 상을 치우고 다음 코스의 요리들을 내오는 식이었다. 회식자 각자가 모든 요리를 다 맛볼 수는 없었으며, 자기 자리에서 손이 닿는 것들밖에 먹을 수 없었으니, 그 범위는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음식을 차리기 쉽도록 식탁의 안족에만 앉았으며, 가장 좋은 요리들은 주변석 주위, 대개는 가운데에 놓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식탁 끝에 앉은 사람들은 한 가지 요리밖에는 손이 닿지 않았다.
중세 연회의 격식은 늘상 같았다. '앙트레'라고 불리는 첫번째 코스는 일종의 입맛 돋우기로, 그르나슈 포도주와 함께 과자나 과일이 나왔다. 과일로는 사과·무화과·앵두·자두·오디·포도 등이 계절에 따라 나왔고, 송아지고기나 새고기로 만든 파이가 나올 때도 있었다. 앙트레로 나오는 과일들은 크게 애호되었으며, 그 시대의 의학적 처방에 따라 달라졌다.
두번째 코스부터는 중세 식사의 관례대로 세 가지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즉 소스나 스프, 구운 고기나 생선이나 새고기, 그리고 후식으로 간단히 곡식이나 '끈끈한' 쌀을 끓인 것, 아니면 금가루로 그린 장식이 있는 색색의 젤리들이나 다소간에 먹을 수 있는 건축물 모양의 음식들이 나왔다. 프장 연회 때에는 한 코스 전체가 수레에 실어나른 구운 고기들로만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송아지고기·양고기·염소고기 등을 통째로 아니면 속을 넣고 다시 모양을 맞추어 구운 것과, 사슴이나 멧돼지처럼 큰 사냥 짐승들의 고기, 속을 넣고 달걀을 발라 금빛으로 구운 거위, 닭 또는 새끼돼지 등의 고기, 작은 새들이나 멧비둘기·황새·공작·해오라기·고니·가마우지 등의 고기들이 있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나중에 열거한 새들은 흔히 고귀한 새로 알려진 것들로, 거죽을 벗긴 후 꼬치에 꿰어 굽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죽이 살에서 떨어지게끔 어깨 부위에 대롱을 넣어 공기를 불어넣은 다음, 배를 가르고 거죽을 벗겨냈다.
목과 머리 주위에는 깃털을 다 남겨두었고, 꼬치에 굽는 동안 불에 타지 않게 조심하였으며 발들도 마찬가지였다. 새가 다 구워지면 거죽을 다시 입혔으니, 막대기로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금은으로 부리와 발을 칠하면 마치 날아가다가 잡힌 듯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 모든 고기들과 함께 식초나 신포도즙을 섞은, 향이 진한 소스를 작은 컵에 담아 따로 내게 마련이었다. 소스들은 부담이 적었으니, 양념으로 노른자나 빵의 속살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시고 맵고 향이 진한 것이었다. 기름도 밀가루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선택되는 요리들은 첫번째 사회 범주, 즉 사회적 위계의 정상에 위치한 귀족들의 범주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고귀한 본성 때문에 그들은 채소(파·무)처럼 땅에서 나는 식품은 먹지 않았으니, 그런 식품은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과일들은 앵두나 자두처럼 높이 달려 하늘과 이웃한 것으로, 이런 과일들은 15세기에 큰 인기를 누렸다. 입맛을 결정하는 이런 상승논리 때문에, 영주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소의 고기를 먹지 않았으니, 쇠고기는 자신들의 고상한 위장에는 잘 소화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송아지나 어린 짐승들의 고기밖에는 먹지 않았으며, 그들의 구미에 가장 잘 맞는 것은 하늘에 사는 새들의 고기였다.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큰 사냥 짐승들의 고기는, 기사도 소설들을 유행시켰던 지난날의 신화적인 기사들의 구미를 모방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 모든 요리에는 여러 가지 포도주가 곁들여졌으므로, 위에 매우 부담을 주고 불균형한 식사가 되었다. 프장 연회에는 분명 가장 좋은 부르고뉴 특산 포도주와 그 못지않게 이름 높은 강한 포도주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 다음 후식으로는 설탕에 절인 과일들, 당의를 입힌 견과류, 말린 과일들, 과자, 플랑, 고기만두, 튀김 요리 등이 나왔다. 프랑스에서 단 음식을 좋아하게 된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사탕수수는 약으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프장 연회에서는 다른 모든 연회들에서 그랬듯이, 이런 후식들에 이어 두 가지 코스가 더 나왔으니 이포크라스와 고프레나 와플처럼 바삭바삭한 과자들을 내는 '소르티'와, 식탁을 치운 뒤 마지막으로 포도주와 소화용 향신료나 당의 입힌 견과류를 즐기는 '부트 오르'가 있었다. 이 마지막 코스는 손님들이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식탁과 벤티들이 치워지기를 기다려, 선 채로 부트 오르를 먹는 것이었다. 그럴 때 몇 개 되지 않는 좌석들은 지체 높은 회식자들과 부인네들에게만 주어졌다. 그것은 부르고뉴 공작의 회식자들이 비록 모두 귀족이었다 해도 엄연히 신분의 차등과 위계질서가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최후의 만찬을 상기시키다
연회란 강한 종교적 상징성을 띤 공동 식사이다. 그것은 최후의 만찬, 즉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신 마지막 식사를 상기시킨다. 회식자들이 벤치에 앉는 것이나, 두 사람 앞에 대접 하나와 잔 하나밖에 놓지 않는 것은 이러한 나눔의 평등성을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그 점에 있어서도 15세기의 물질 문명은 각 사람 앞에 대접과 잔을 놓을 만한 여유는 있었지만, 그것은 나눔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었을 터이다. 대접에는 수프나 소스를 담아 각자의 수저로 떠먹었다.
음식을 나누기 위한 식기가 따로 없었으므로 회식자들은 각기 자기 칼로 고기에서 제 몫을 잘라다가, 손으로 트랑슈아르(접시 대용으로 쓰이는, 두껍고 네모지게 자른 큰 흑빵 조각) 위에 옮겨 놓고 먹었다.
트랑슈아르는 먹지 않았고, 식사 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식사용 나이프는 남자 회식자들이 가져와서, 그들이 부인네들의 고기를 썰어주는 것이 상례였다. 단지 공작과 귀빈석에 자리한 대영주들만이 대접과 잔을 각자 따로 쓸 수 있었다. 그들의 음식은 뚜껑을 덮어 날랐는데, 이는 음식이 식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동시에 독약 넣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들은 독을 만나면 색이 변한다고 알려져 있던 뱀의 혀나 일각수(실제로는 일각 돌고래)의 뿔로 독이 들지 않았는지를 확인한 연후에야 음식을 입에 댔다. 독약에 대한 두려움은 영주들이 허겁지겁 음식에 달려드는 것을 막음으로써 위신을 높이는 효과도 있었다. 프랑스 왕 샤를 7세는 결코 연회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고, 선량한 필리프는 맛만 보았다고 알려져있다. 한편 이 권력자들은 고기를 직접 자르지 않았으며, 고기 자르는 기사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고기를 썰었으며, 이 또한 그들의 식탐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음식은 오른손으로 먹었고, 손과 입을 식탁보자락에 닦았다. 대개 두 갈래로 되어 있었던 포크는 10세기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17세기초 이전에는 음식을 먹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 프랑스 왕 샤를 5세는 아홉 개의 황금 나이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고기 자르는 기사가 그에게 고기를 집어줄 때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포도주는 식탁 위에 두지 않았고, 회식자들은 직접 술을 따르는 대신 하인을 불러 잔을 채우게 했다.
구이들이 나올 때마다
1399년 웨스트민스터에서 거향된 헨리 4세의 대관식에 뒤따른 연회의 메뉴도 남아 있다. 이 연회에서는 모든 요리가 구이 요리들로 이루어졌다. 가령 첫번째 코스로는 수탉 가슴살에 후추를 뿌린 것, 거위 간과 함께 백포도주를 곁들여 익힌 토끼 고기, 멧돼지 머리를 구워 다시 짜맞춘 것, 구운 고기 조각, 고니, 거세한 수탉, 왜가리, 롬바르디아식 고기 파이, 철갑상어, 그리고 앙트르메를 구경하기에 앞서 커다란 꼬치 요리들이 나왔다. 두번재 코스로는 사슴이나 멧돼지 젤리, 속을 넣은 새끼돼지, 공작, 황새, 구운 사슴이나 멧돼지, 토끼, 해오라기, 노르스름하게 구운 암탉, 커다란 고기 파이, 수탉 가슴살 튀김, 롬바르디아식 육포, 그리고 앙트르메로는 뜻밖에 구경거리가 준비되었다.
세번째이자 마지막인 코스로는 설탕에 절인 마르멜로와 여러 가지 새들, 가령 백로·자고새·비둘기·메추라기·멧도요 등등, 그리고 어린 토끼, 오렌지, 가금류의 가슴살을 저민 것, 달걀찜, 튀김, 단 과자, 작은 파이 등이 나왔고, 마지막 앙트르메에 앞서 백합 꽃병들이 돌려졌다.
오찬은 최대 세 번의 상차림으로 제한되었다. 첫 번째 쟁반(vassoio)에는 한 가지 종류의 고기를 최대 6립브라(시에나에서 통용되던 무게의 단위 : 1립브라 = 12온스)까지만 담아야 했다. 삶은 쇠고기, 삶은 수탉고기, 삶은 숫양고기 또는 삶은 새끼염소 고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삶은 고기를 담은 쟁반에는 값이 비싸지 않은 돼지고기가 첨가될 수 있었다.
그 다음의 인치소리움(incisorium : 요리된 고기를 잘라 담아 놓은 그릇/역주)은 불에 구운 고기로 국한되었으며 보통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부위의 고기가 올랐다. 그러나 한 접시의 요리로 간주되는 숫양, 숫오리, 혹은 암오리 요리는 예외였다.
한 쟁반은 의무적으로 2명에게 배당되었지만,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의 수가 홀수일 경우 한 사람은 혼자서 인치소리움을 독차지 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최대 40명으로 제한된 손님들을 위해 20개의 쟁반이 준비되었으며, 그 이외에 집안의 여성을 위한 음식접시가 추가되었다.
우무 또는 젤리, 소스 그리고 중세의 요리법으로 만든 혼합소스는 집주인과 특히 요리사의 요구에 따라, 최대 세 가지 종류의 고기를 양념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중세음식에 관해 간단하게 고찰해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중략) 규정적인 성격의 기록문헌은 - 돈나이오 법령을 예로 들 수 있다 - 상세한 내용은 관습대로라고 언급하고 있다.
닭, 오리, 식용수탉, 원앙새 들은 중세식탁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비교적 값이 싼 돼지고기는 상당히 확산되었다. 끓이거나 불에 익힌 고기들은 수많은 소스들(이 중 제일 많이 이용도니 것은 시고 달콤한 맛의 소스였다)과 함께 자주 식탁에 등장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기요리 중 주된 요리법은 치비에로(civiero), 즉 야생짐승의 고기를 요리할 때 사용하는 소스 또는 요리 방식이었다.
야생고기나 다른 종류의 고기들은 계란의 노른자, 수프, 레몬즙, 소금과 후추 그리고 양념으로 만든 고깃국물로 맛을 내었다. 충분한 고기, 특히 불에 익힌 고기의 충분한 소비는, 식탁 사용에 있어서의 관습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되는 중세 초기부터 확인되었다. 식탁에 참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침대에 누워서 식사를 하지 않고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맛볼 수 있도록 식탁에 곧게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중세의 또 다른 전형적인 음식들은 - 이에 대해서는 오리지널 문헌기록이 남아있다 - 젤리(gelatine), 파테(pates : 잘게 자른 고기를 양념하여 익힌 후에 식혀서 먹는 요리), 그리고 익힌 음식과 건조된 음식들이었다. 파스타(pasta)와 젤리 속에는, 원할 경우 생선, 콩, 과일, 치즈 등과 같이 모든 것을 넣을 수 있었지만, 특히 향료로 조리된 여러 종류의 고기가 이용되었다. 가장 고급으로 그리고 가장 널리 소비된 소프트 케이크(dolce)는 -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법령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 단맛의 아몬드, 가루설탕과 장미물을 주된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중세과자인 마르차파네(marzapane)였다.>
(앞에 이어) 삶거나 끓인 고기가 식탁에 오른 후에는 일반적으로 설탕·달걀·밀가루·호두의 아몬드를 섞어서 만든 과자가 준비되었는데, 이 과자는 상당히 값비싼 요리였기 때문에 그 자체가 세 번째의 식탁을 구성하였다.
오찬의 시작과 마지막에는 집주인에 따라 사탕과자, 당과 혹은 설탕에 절인 과자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과일이, 마지막으로는 치알다(밀가루·우유·달걀 등을 섞어서 얇게 빚어 살짝 구운 과자/역주)와 오늘날의 결혼케이크와 같은 빵(castella pamparigiorum)이 식탁에 올랐다.
연회 불변의 공식
프장 연회에서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는 연대기 작가들의 주위를 끌지 못했다. 이 연회의 독창성은 음식이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교 세계를 위해 벌인 선전에 있었던 것이다.
단지 48가지 요리가 나왔으며, 구운 고기들은 푸른 천과 금빛 천들로 덮인 수레들로 실어날랐다는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다. 48가지 요리가 나왔다면, 그 요리들은 그 요리들은 다섯 코스로 나뉘어 9-10가지씩 나왔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로는 요리들이 순차적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중세에는 한꺼번에 식탁에 올랐다. 한 코스의 요리들이 끝나면 상을 치우고 다음 코스의 요리들을 내오는 식이었다. 회식자 각자가 모든 요리를 다 맛볼 수는 없었으며, 자기 자리에서 손이 닿는 것들밖에 먹을 수 없었으니, 그 범위는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음식을 차리기 쉽도록 식탁의 안족에만 앉았으며, 가장 좋은 요리들은 주변석 주위, 대개는 가운데에 놓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식탁 끝에 앉은 사람들은 한 가지 요리밖에는 손이 닿지 않았다.
중세 연회의 격식은 늘상 같았다. '앙트레'라고 불리는 첫번째 코스는 일종의 입맛 돋우기로, 그르나슈 포도주와 함께 과자나 과일이 나왔다. 과일로는 사과·무화과·앵두·자두·오디·포도 등이 계절에 따라 나왔고, 송아지고기나 새고기로 만든 파이가 나올 때도 있었다. 앙트레로 나오는 과일들은 크게 애호되었으며, 그 시대의 의학적 처방에 따라 달라졌다.
두번째 코스부터는 중세 식사의 관례대로 세 가지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즉 소스나 스프, 구운 고기나 생선이나 새고기, 그리고 후식으로 간단히 곡식이나 '끈끈한' 쌀을 끓인 것, 아니면 금가루로 그린 장식이 있는 색색의 젤리들이나 다소간에 먹을 수 있는 건축물 모양의 음식들이 나왔다. 프장 연회 때에는 한 코스 전체가 수레에 실어나른 구운 고기들로만 이루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송아지고기·양고기·염소고기 등을 통째로 아니면 속을 넣고 다시 모양을 맞추어 구운 것과, 사슴이나 멧돼지처럼 큰 사냥 짐승들의 고기, 속을 넣고 달걀을 발라 금빛으로 구운 거위, 닭 또는 새끼돼지 등의 고기, 작은 새들이나 멧비둘기·황새·공작·해오라기·고니·가마우지 등의 고기들이 있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나중에 열거한 새들은 흔히 고귀한 새로 알려진 것들로, 거죽을 벗긴 후 꼬치에 꿰어 굽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죽이 살에서 떨어지게끔 어깨 부위에 대롱을 넣어 공기를 불어넣은 다음, 배를 가르고 거죽을 벗겨냈다.
목과 머리 주위에는 깃털을 다 남겨두었고, 꼬치에 굽는 동안 불에 타지 않게 조심하였으며 발들도 마찬가지였다. 새가 다 구워지면 거죽을 다시 입혔으니, 막대기로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금은으로 부리와 발을 칠하면 마치 날아가다가 잡힌 듯이 보이는 것이었다.
이 모든 고기들과 함께 식초나 신포도즙을 섞은, 향이 진한 소스를 작은 컵에 담아 따로 내게 마련이었다. 소스들은 부담이 적었으니, 양념으로 노른자나 빵의 속살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시고 맵고 향이 진한 것이었다. 기름도 밀가루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선택되는 요리들은 첫번째 사회 범주, 즉 사회적 위계의 정상에 위치한 귀족들의 범주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고귀한 본성 때문에 그들은 채소(파·무)처럼 땅에서 나는 식품은 먹지 않았으니, 그런 식품은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과일들은 앵두나 자두처럼 높이 달려 하늘과 이웃한 것으로, 이런 과일들은 15세기에 큰 인기를 누렸다. 입맛을 결정하는 이런 상승논리 때문에, 영주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소의 고기를 먹지 않았으니, 쇠고기는 자신들의 고상한 위장에는 잘 소화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송아지나 어린 짐승들의 고기밖에는 먹지 않았으며, 그들의 구미에 가장 잘 맞는 것은 하늘에 사는 새들의 고기였다.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큰 사냥 짐승들의 고기는, 기사도 소설들을 유행시켰던 지난날의 신화적인 기사들의 구미를 모방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 모든 요리에는 여러 가지 포도주가 곁들여졌으므로, 위에 매우 부담을 주고 불균형한 식사가 되었다. 프장 연회에는 분명 가장 좋은 부르고뉴 특산 포도주와 그 못지않게 이름 높은 강한 포도주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 다음 후식으로는 설탕에 절인 과일들, 당의를 입힌 견과류, 말린 과일들, 과자, 플랑, 고기만두, 튀김 요리 등이 나왔다. 프랑스에서 단 음식을 좋아하게 된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사탕수수는 약으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프장 연회에서는 다른 모든 연회들에서 그랬듯이, 이런 후식들에 이어 두 가지 코스가 더 나왔으니 이포크라스와 고프레나 와플처럼 바삭바삭한 과자들을 내는 '소르티'와, 식탁을 치운 뒤 마지막으로 포도주와 소화용 향신료나 당의 입힌 견과류를 즐기는 '부트 오르'가 있었다. 이 마지막 코스는 손님들이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식탁과 벤티들이 치워지기를 기다려, 선 채로 부트 오르를 먹는 것이었다. 그럴 때 몇 개 되지 않는 좌석들은 지체 높은 회식자들과 부인네들에게만 주어졌다. 그것은 부르고뉴 공작의 회식자들이 비록 모두 귀족이었다 해도 엄연히 신분의 차등과 위계질서가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최후의 만찬을 상기시키다
연회란 강한 종교적 상징성을 띤 공동 식사이다. 그것은 최후의 만찬, 즉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신 마지막 식사를 상기시킨다. 회식자들이 벤치에 앉는 것이나, 두 사람 앞에 대접 하나와 잔 하나밖에 놓지 않는 것은 이러한 나눔의 평등성을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그 점에 있어서도 15세기의 물질 문명은 각 사람 앞에 대접과 잔을 놓을 만한 여유는 있었지만, 그것은 나눔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었을 터이다. 대접에는 수프나 소스를 담아 각자의 수저로 떠먹었다.
음식을 나누기 위한 식기가 따로 없었으므로 회식자들은 각기 자기 칼로 고기에서 제 몫을 잘라다가, 손으로 트랑슈아르(접시 대용으로 쓰이는, 두껍고 네모지게 자른 큰 흑빵 조각) 위에 옮겨 놓고 먹었다.
트랑슈아르는 먹지 않았고, 식사 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식사용 나이프는 남자 회식자들이 가져와서, 그들이 부인네들의 고기를 썰어주는 것이 상례였다. 단지 공작과 귀빈석에 자리한 대영주들만이 대접과 잔을 각자 따로 쓸 수 있었다. 그들의 음식은 뚜껑을 덮어 날랐는데, 이는 음식이 식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동시에 독약 넣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들은 독을 만나면 색이 변한다고 알려져 있던 뱀의 혀나 일각수(실제로는 일각 돌고래)의 뿔로 독이 들지 않았는지를 확인한 연후에야 음식을 입에 댔다. 독약에 대한 두려움은 영주들이 허겁지겁 음식에 달려드는 것을 막음으로써 위신을 높이는 효과도 있었다. 프랑스 왕 샤를 7세는 결코 연회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고, 선량한 필리프는 맛만 보았다고 알려져있다. 한편 이 권력자들은 고기를 직접 자르지 않았으며, 고기 자르는 기사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고기를 썰었으며, 이 또한 그들의 식탐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음식은 오른손으로 먹었고, 손과 입을 식탁보자락에 닦았다. 대개 두 갈래로 되어 있었던 포크는 10세기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17세기초 이전에는 음식을 먹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 프랑스 왕 샤를 5세는 아홉 개의 황금 나이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고기 자르는 기사가 그에게 고기를 집어줄 때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포도주는 식탁 위에 두지 않았고, 회식자들은 직접 술을 따르는 대신 하인을 불러 잔을 채우게 했다.
구이들이 나올 때마다
1399년 웨스트민스터에서 거향된 헨리 4세의 대관식에 뒤따른 연회의 메뉴도 남아 있다. 이 연회에서는 모든 요리가 구이 요리들로 이루어졌다. 가령 첫번째 코스로는 수탉 가슴살에 후추를 뿌린 것, 거위 간과 함께 백포도주를 곁들여 익힌 토끼 고기, 멧돼지 머리를 구워 다시 짜맞춘 것, 구운 고기 조각, 고니, 거세한 수탉, 왜가리, 롬바르디아식 고기 파이, 철갑상어, 그리고 앙트르메를 구경하기에 앞서 커다란 꼬치 요리들이 나왔다. 두번재 코스로는 사슴이나 멧돼지 젤리, 속을 넣은 새끼돼지, 공작, 황새, 구운 사슴이나 멧돼지, 토끼, 해오라기, 노르스름하게 구운 암탉, 커다란 고기 파이, 수탉 가슴살 튀김, 롬바르디아식 육포, 그리고 앙트르메로는 뜻밖에 구경거리가 준비되었다.
세번째이자 마지막인 코스로는 설탕에 절인 마르멜로와 여러 가지 새들, 가령 백로·자고새·비둘기·메추라기·멧도요 등등, 그리고 어린 토끼, 오렌지, 가금류의 가슴살을 저민 것, 달걀찜, 튀김, 단 과자, 작은 파이 등이 나왔고, 마지막 앙트르메에 앞서 백합 꽃병들이 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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