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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병인 기사는 중세 특유의 병사였다. 기사는 긴 쇠미늘 셔츠를 걸쳤고,코 보호대가 딸린 뾰족한 원뿔형의 투구를 썼으며,대개 연처럼 생긴 방패를 사용했다. 방패는 위가 둥글고 바닥은 뾰족하며, 세운 높이가 0.9~1.2미터쯤 되었다. 방패에는 장식이 있었지만, 그 무늬는 아직 어떤 문장이라 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기사의 주된 무기는 가벼운 창이었다. 그 창의 손잡이는 2.4~2.7미터에 이르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굵기가 일정했으며, 끝에는 넓적한 쇠촉이 달려 있었다. 창은 사용하지 않을때는 등자에 꽂아두었다. 11세기 중엽, 중세의 칼은 충분히 발전해서 장차 400년동안은 별로 변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었다. 칼은 양날에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졌고, 총 길이는 1.1미터쯤 되었다. 창과 칼 외에도 기사가 안장에 얹고 다니던 무기로는 날이 넓적한 전투용 도끼나 쇠뭉치를 단 철퇴가 있었고, 기사는 기호에 따라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윌리엄은 3000~4000명의 보병을 소집했다. 그들은 창(pike<17세기말까지 보병이 사용>)과 칼로 무장한 보병으로,궁수가 포함되어 있었다.노르만 보병은 잉글랜드의 피르드와는 달리 쇠미늘 셔츠로 몸을 보호했다. 노르만의 활은 1.5미터쯤 되었고, 활을 쏠때는 시위가 가슴까지 잔뜩 당겨졌다. 석궁은 11세기초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다. 1066년 윌리엄 군대의 일부 병사는 석궁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노르만인의 정복에 대한 지식을 전해주는 주된 역사적 자료인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아마포에 수를 놓은 것으로, 길이 70미터에 폭 51센티미터>에는 석궁이 보이지 않는다. 석궁은 예전의 활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석궁은 어떤 새로운 원리를 구현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활에 노포의 원리를 가미해 만든 것이었다.



-십자군원정-

12세기 기사들의 능력은 1066이래 다소 신장되었고, 그들의 방어용 갑옷은 보다 정교해졌다. 쇠미늘 갑옷은 이제 무릎까지 코이프(coif)<머리에서 어깨 위까지 뒤집어쓰는 모자>로 보호했다. 원뿔형 투구는 포트형 투구(pot-helm)로 대체되었다. 새 투구는 꼭대기가 평평한 철제 원통으로 머리 전체를 보호했고, 안면 쪽에 틈이 있어 내다보고 숨숼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말은 특별히 양육된 것으로 군마(destrier)라고 불렀으며, 말 역시 덮개로된 쇠미늘 갑옷으로 보호되었다. 창은 다소 길어졌다. 십자군 타격부대의 주된 장기는 중장기병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집단공격이라기 보다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개인적인 공격이었다. 보병은 진지임무나 포위공격 임무를 담당했다. 가장 중요한 보병은 궁수로, 특히 북부 이탈리아 출신의 용병 석궁수들이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사라센 군대의 주력은 궁기병이었다. 그들은 십자군 기병들보다 가볍게 무장했고, 말은 더 빠르고 몰기가 쉬웠다. 활 외에도 궁기병은 작고 둥근 방패와 짧은 창과 검과 곤봉을 소지했다. 사라센 군대의 가장 큰 문제는 지휘체계가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중세후기>


1250~1350년의 100년 동안은 전쟁의 기술사에 있어서 가장 혁신적인 기간이었다. 기사, 성, 봉건제도는 쇠퇴하고 보병,소총화기,군인의 전문성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전략적으로 볼때 효과적인 무기로 방어할 경우, 적으로 하여금 공격하도록 유인할수만 있다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작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행동도 필요했다. 전술적으로 볼때, 새로운 발사무기가 다른 무기들을 압도하게 되었다. 그런 무기는 급습보다 더 결정적인 승부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결국 이후 600년 동안, 대포는 가장 강력한 전쟁도구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15세기 무렵 대포가 유력한 무기이기는 했지만, 그 발사무기의 충격은 처음 등장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실감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간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하나의 현저한 발달, 즉 보병의 발달에 있다. 창병과 궁수 등 보병은 1000년 동안 전장을 장악해온 중장기병과 힘을 맞겨루어 혁신적인 성취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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