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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20:01

아인 6-(1)

조회 수 1594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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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길은 생각보다는 거칠지 않았다. 경사도 완만했고 길이 미끄럽지도 않았다. 다만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닌 듯, 길이 좁고 잡목에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앞과 아래쪽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 좀 힘들었다.

사실 산짐승이 다니는 길인지도 헷갈리는 것이 지금까지 수 시간 산행을 했음에도 생명체의 기책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혹 가다가 높은 고음의 비명 같은 바람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산 어딘가에 바람구멍이 있는 것일까? 아인이 수 백 미터의 산길을 올라오는 중에는 그 흔한 개미 새끼 한 마리 만나지 못했다. 아인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섰다. 지팡이처럼 쓰던 부러진 나뭇가지의 끝은 이미 상당히 닳아있었다.

그녀는 몸을 근처에 있는 나무에 기대며 하늘을 봤다. 수 시간을 등반했지만 아직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하늘을 뒤덮은 구름 때문에 시간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오전에 에리아의 집을 떠났으니 막 점심을 넘긴 것 같다고 예상할 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살짝 허기가 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인은 등에 울러 맨 배낭에서 찐 감자 하나를 꺼내 껍질 벗기고는 한 입 배어 물었다. 이미 식은 지 오래 됐지만 아직까진 먹을 만 했다. 부드러운 감자의 속살을 최대한 오래 느끼기 위해 노력하며 아인은 어째서 일이 이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상황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침 식사 시간, 오늘부터 수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들은 아인은 예전에 자신이 무술이나 수행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도 확신이 없었지만 기억은 하고 있었다. 지식의 습득과정은 기억에 없지만 지식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뇌 어딘가에 박아둔 기억에 의하면 무술 수행은 뼈를 깎는 듯한 고행과 훈련의 반복, 그리고 몸을 만들기 위한 극단적으로 절제된 식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우울했다. 그렇기에 에리아가 전날처럼 성대한 아침 식사를 차렸어도 이것이 마지막 만찬일 것 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식사는 전날과는 달리 별 다른 대화가 오가진 않았고, 에리아는 아인에게 이유가 뭔지 물어봐야 했다. 잠시 동안 머뭇거리던 아인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고, 아인의 그런 걱정을 들은 에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몸을 단련하려면 최고로 좋은 음식으로 영양 보충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덕분에 우울했던 아침식사는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뀔 수 있었다. 잠시 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문가에 앉아 바람을 쐬는 아인을 보던 에리아가 말했다.

“자, 그럼 가볼까?”
“오, 이제 수행이 시작되는 건가요? 에리아 씨?”

아인은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에리아가 손가락으로 아인의 이마를 살짝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인아, 내가 뭐라고 부르라고 했지?”
“깜박했네요.“

아인은 한 번 쏙 내밀더니 말을 이었다.

“스승님, 어떤 것부터 배우나요? 무술? 검술?”
“에이, 첫날부터 그렇게 격한 운동을 할 수는 없잖아? 일단 간단하게 몸을 풀 겸해서 색다른 프로그램을 준비해 놨지.”
“네? 그럼 혹시 체조나 뭐 그런 것을…….”

약간 헷갈린 다는 듯 던진 질문에 에리아는 생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인은 그 미소가 너무나 불안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에리아의 분홍빛 입술이 열렸다가 닫히자 아인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잘 못 들은 것 같아요. 방금 등산 비슷한 단어를 듣기는 했는데……”
“응, 맞아. 등산.”
“등산이라면, 산 타는 거요?”

아인의 경악에 비해 에리아는 차분했다.

“별로 어려울 것 없지? 그냥 산을 오르기만 하면 돼. 아령을 들 필요도 없고 동굴 속에 틀어 박혀서 마법 수행을 할 필요도 없어. 참 쉽지?”
“그, 그래도! 힘들잖아요! 여기 산들이 얼마나 높은데! 또 길을 잃으면 어쩌라고요?”
“걱정할 것 없어. 제일 낮은 산을 오를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렴.”

그래도 아인이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격한 반응을 보이자 에리아가 눈썹을 살짝 들어올리며 장난기 섞인 미소를 날렸다.

“그럼 정말 죽기 살기로 무술을 배워보겠니?”

순간 에리아와의 대화가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날아왔다.

‘제때 말리지 못해서 실제로 큰 도시 몇 개를 쓸어버리기는 했지만…….’

때문에 아인은 살짝 수그러들 수 밖에 없었다.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넌 지금 뭘 하기에는 기초체력이 너무나 부족해. 또 등산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 몸의 모든 근육을 골고루 쓰기 위한 방법으로 등산만큼 좋은 운동은 찾기 힘들어. 또 이 주변에 널린 게 산인데 뭣 하러 다른 운동을 애써 찾아 하겠니? 그리고…….”

그때, 말을 하던 도중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더니 소매로 입을 막았다.

“에츄.”

다소곳이 재채기를 한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누가 내 말을 하는 것 같네.”

왠지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 같았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터라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에리아는 다시 아인에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자, 그럼 옷부터 갈아입어야지?”

그러고는 방 한 켠에 준비해둔 옷과 신발을 꺼내주었다. 그 물건들을 받아 든 아인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것들을 차례로 훑어 보았다. 모두 아인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돌로 된 바닥에 굴러도 찢어지거나 늘어날 것 같지 않은 두껍고 약간 까칠한 검은 천으로 된 바지와 비슷한 소재의 점퍼였다. 점퍼도 주머니가 양쪽 가슴 부분에 하나, 그리고 손을 넣는 부분에도 하나씩 있는 것이 상당히 실용적으로 보였다. 신발도 신기했다. 그저께부터 아인은 이 곳에 떨어진 다음부터 계속 신고 있었던, 얇은 소재로 된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지금 받아 든 신발은 가죽으로 된 표피 안에 두꺼운 패딩이 있었고, 신발의 밑창은 압정도 뚫기 힘들 정도로 두꺼운 고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에리아는 아인에게 양말과 속옷, 그리고 점퍼 안에 받쳐 입을 만한 적당히 얇은 반팔을 주었다.

“밤이 되면 산은 추워지니까, 단단히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겠지?”
“설마, 내일까지 계속 되는 거에요?”

그 말에 에리아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아인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심했지만 에리아의 말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네가 정상에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모레고, 일주일 후고 계속될걸? 말했잖니. 우리에게 시간은 아주 많다고. 아무튼 자, 이건 도시락.”

그러면서 그녀는 할 말을 잃고 어버버 거리는 아인에게 튼튼해 보이는 가죽 배낭을 건네 주었다. 아인은 배낭이 보기보단 상당히 묵직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한 두 끼 정도의 음식이 들어갔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 감이라 생각할 때쯤, 에리아의 확인 사살이 이어졌다.

“잘 분배해서 먹어야 한다? 배가 고파서 조난당하면 힘들 테니까. 수통도 개울이 보일 때마다 채워주는 것 잊지 말고.”

아인은 뭐라고 항의를 했던 것 같지만 에리아가 특별히 설득력 있는 대답을 했던 것 같지도 않다. 그 기억은 희미했으니까. 대신 에리아는 그녀에게 눈을 잠시 감도록 했고, 거센 바람이 몇 초 동안 느껴진 다음 눈을 뜨니 지금 오르고 있는 산의 뿌리 부근이었다는 정도가 오늘 아침 식사 후에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

그 일을 생각하니 알게 모르게 짜증이 났다. 자신도 모르게 힘을 줬는지 지팡이 끝이 부르르 떨리며 끝이 땅에 살짝 박혔다.

그러자 마친 지팡이가 누르고 있던 민들레의 뿌리가 살짝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남은 감자 조각을 서둘러 삼키고는 급히 허리를 굽혔다.

“어머,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랬어. 화내지 말아줘.”

그러고는 손으로 조심스레 뿌리를 다시 땅에 묻어주고는 손으로 흙을 덮었다. 다시 묻은 뿌리 부분을 손으로 팡팡 몇몇 두드리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걷고, 또 걸었을 뿐이다. 가끔씩 배낭에서 수통을 꺼내 한 두 모금 물을 마셨을 뿐이다.

한 두 시간을 더 걷기는 했지만 역시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리가 아파서 쉬는 시간이 점차 짧아진 다는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한 일이었다. 처음에 산을 올라갈 때에는 점심 시간까지 거의 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쉬고 나자 거의 반 시간 마다 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간 개념도 좀 이상해 지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자리에 앉아 쉬면서 아래를 보면 자신이 막대기로 바닥에 그려놓은 그림이 보일 정도의 거리 밖에 걷지 않았거나 하는 것이 그에 해당되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 번도 사람의 손이 닿은 적 없는 것 같은 녹림 때문에 그녀는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하면서 걸었다.

또한 다리에 점점 쌓이는 피로와 반복되는 운동에서 파생된 지루함이 그녀의 생체 시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진짜, 돌아가면 뭐라고 한 마디 해줘야겠어. 맨날 자신한테 불리한 말은 쏙쏙 잘도 빠져나가면서, 나한테는 할 말 다하고. 정상에 올라가면 욕이라도 한 번 해줘야지!’

그렇게 상상 속에서나마 에리아에게 분을 풀고 있던 아인은 갑자기 생각이 번뜩 떠오른 듯이 제 자리에 멈춰 섰다.

‘근데 잠깐만…….’

그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상에 올라가면 또 내려가야 하는 건가?’


확실히 조금 전까진 생각하지도 못했고, 또 에리아도 확언을 해주지 않은 부분이다. 궁금함을 넘어 아찔함까지 느껴진다. 이 거리를 또 다시 내려가라니!

‘다시 돌아가 버릴까?’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는 둘째치고, 너무나도 달콤한 생각이다. 분명 에리아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운운하는 전재조건을 하나도 달지 않았다. 다만 정상에 오라고만 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상에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되거나, 아니면……

“내가 오르지 못해도 자신에겐 상관이 없거나.”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이 가진 차가움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분명 아인은 이제까지 에리아가 한 번도 자신에게 어떠한 조건을 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아직 이름도 듣지 못한, 자신이 싸워야 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에리아는 ‘네가 이기지 못하면’ 이라거나 ‘네가 그를 물리치면’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상당히 긴 세월을 수행에 바쳐야 한다는 말을 할 때도 에리아는 조건을 달지 않았다. 흔히 다른 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벌을 준다며 겁을 주거나 상으로 유혹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장기판 위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아인은 걸음을 다시 옮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로부터 수 십 미터를 더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까먹고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나중에 설명해주기 위해 일부러 생략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오직 에리아 만이 알고 있다. 그러니 답을 알기 위해선 어쨌든 정상에 도달해야만 한다. 뭔가 모순이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상식에 맞는 답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인은 고개를 몇 번 흔들며 이제까지 떠오른 잡생각을 버리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 스승님의 생각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올라가자.”

물론 답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걸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인은 등골을 휘감는 것 같은 서늘한 기분을 떨치려 애쓰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서늘한 느낌이 든 것은 그녀의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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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기내용
음음 즐거운 한 주 되요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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