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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6 20:44

아인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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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끼익……쿵…….쿵……


무거운 쇠사슬이 톱니바퀴를 돌리는 듯한 소리 같다.

차가운 땅 속, 넓이가 수천 제곱 미터는 될 법한 넓은 공간을 비추고 있는 것은 직경이 15미터는 될 법한 얼음이었다.

정확히는 얼음 가운데에 있는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였다. 옷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지만 매끈하게 단련된 근육은 마치 제련된 갑옷을 입은 듯 하다. 약간의 푸른 빛이 도는 그의 머리는 일부러 민 것 같았다. 그러나 고개를 품 안에 묻고 있어서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끼익…….끼익……쿵…….

그때 톱니바퀴가 힘을 잃고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된 것처럼 얼음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태양처럼 밝은 빛은 잠깐이나마 동공(洞空)을 한 치의 그림자도 없이 환하게 비추었고, 그에 따라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순식간에 들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둘레가 10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톱니바퀴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쇠사슬이었다.

톱니바퀴의 이빨 하나하나가 2층짜리 건물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했고, 그에 따라 쇠사슬, 혹은 체인에 가까운 그것 역시 고래도 붙잡아 둘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튼튼했다. 다만 세월을 이기지 못한 흔적 역시 존재했다. 어떻게 부러졌는지 가늠도 하기 버겁지만, 톱니바퀴는 이빨이 하나 부러져 있었고 체인 역시 거의 전체에 녹이 슬어있었다.

크기를 배제하면 일반 기계장치의 부품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겠지만, 희한하게도 그것들은 그 어떤 장치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허공에 떠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법칙에 위배되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장면이었지만 잠시 후에 얼음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나타난 남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그 빛과 얼음이 사라지고 난 다음 찾아온 어둠은 그 모든 것을 감춰버렸다. 하지만 남자의 푸른 안광은 어느 한 곳을 강렬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 아래 부분, 그러니까 입이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곳에서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백 년 만인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치고는 특이하게 억양이 건조했다.

“벌써 선택한 이들이 있군. 성질도 급하지.”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나도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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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던진 돌멩이가 풍덩 하더니 자신에게 물을 뒤집어 씌운 것 같은 느낌. 차갑고 찝찝하지만 왠지 모르게 싫지는 않은 그런 기분.

아인과의 만남을 회상하던 에리아는 문득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그때 배가 침몰하지 않았어도 아인을 데리고 왔을까?

수 천 년을 살아온 그녀지만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사실에는 너무나 고맙다.

에리아는 자는 아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면서도 훌쩍거리는 그녀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옷이 눈물로 젖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지금 자신의 무릎을 배고 누워있는 소녀의 몸은 17세였지만 정신은 13세 소녀 그대로였다.

자신과는 달리 정신이 너무나 연약했던 인간이었기에 모든 순서는 조심스러워야 했다. 때문에 이곳까지 오기 위해서는 거의 5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기억에 예상치 못한 공백이 있는 것도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벌써 아인이 잠든 지 6시간이 넘었다. 오후 3시 정도였고 햇살은 그들이 있는 방을 적당히 달구고 있었다. 그때 아인이 눈을 떴다.


“우웅?”

이상한 소리를 내며 눈을 뜬 그녀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배고파…….”

뜬금 없는 말에 에리아가 킥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된 아인이 당황해 하면서 말했다.

“저 그렇게 많이 안 먹어요!”
“누가 뭐라니?”
“그래도……”

당황해 하는 그녀를 보며 에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넌 놀리기가 정말 쉽구나? 괜찮으니까 가서 세수 한 번 하고 오렴. 예쁜 얼굴이 다 망가지잖니.”
“네에…….”

힘없이 대답한 아인은 뒤뜰에 있는 세면장으로 향했다. 뒤뜰로 나가자 어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있었다. 집 앞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산들이 병풍처럼 서있는 것은 비슷했으나 집 뒤 쪽으로 약 10미터 뒤에는 깎아 내린 듯한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힐끗 내려다보니 낮인데도 불구하고 아래 쪽으로는 산 중턱에 생긴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중간 중간에 잡목이 있기는 했지만 거의 직각에 가까운 경사 탓에 바로 자라질 못해서 뿌리가 다 보일 정도였다.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낀 아인은 서둘러 세면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최악이야.’

얼굴에 찬 물을 끼얹자 그제서야 생각이 정리되며 이 곳의 지리가 머리 속에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그 전까지는 이곳이 산 속에 갇힌 분지일 것이라 생각 했었지만, 오히려 이것도 낮은 산 봉우리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다만 이런 조경을 구성하기 위해선 먼저 위쪽을 편편하게 깎아야 할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선 필요한 자재도 옮겨야 할 것이고…….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인은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이 곳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인공적으로 이런 곳을 만들기 위해선 아마 수 백 명이 몇 달을 매달려야 겨우 편편하게 땅을 깎고 초목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상하기도 힘들 양의 폭발물도 필요할 것이다.

‘제때 말리지 못해서 실제로 큰 도시 몇 개를 쓸어버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오늘 아침 에리아가 해준 이야기가 점점 현실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도시 몇 개를 식후 운동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존재다. 몇 년을 살았는지 짐작도 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알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을 다른 별로 이동시킬 수도 있는 존재다.

그리고 지금 그 중에 한 명이 자신을 그런 존재 중 가장 강할 것이 분명한 자와 싸우게 만들려고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차가운 물을 아무리 얼굴에 끼얹어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운동이라고는 거의 해본 적도 없는 내가? 무기라고는 식사용 나이프 밖에 쥐어본 적이 없는 내가? 그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도망칠까?’

그러나 이곳은 사방이 절벽으로 막힌 곳이다. 아인에게는 절벽을 내려갈 재주도, 도구도 없었다. 필사적으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아마 절반도 못 가서 잡히고 말 것이다. 아마 하늘을 나는 법을 깨우치기 전까진 이 곳에서 달아나긴 불가능할 것이다. 그때 에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씻었니?”
“네! 다 씻었어요.”

그녀는 서둘러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아니야. 분명 대책이 있으니 날 여기로 대리고 왔겠지. 나라도 나 같은 애는 데리고 오지 않을 거야.’

비록 이틀 남짓이었지만 에리아가 그녀에게 보여준 기품 있고 지혜로운 말씨와 진심 어린 행동들에게서 얻은 나름대로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잠시 뒤, 에리아가 머뭇거리던 끝에 꺼낸 말은 가희 충격적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진 왔는데, 막상 어떻게 단련시켜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네.”
“그,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여기.”

자신은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하는 에리아를 보며 아인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아니, 오늘 아침에 에리아 씨 해준 말대로 도시 몇 개를 그냥 날려버리는, 제 정신이 붙어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사람하고 싸우라고 했으면서,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무책임하다니. 널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 게 누구라고 생각하니?”
“의식주 해결하고 제 목숨이 같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하지. 의식주를 해결 못하면 넌 죽잖아. 너희들은 허약해서 문제라니까.”
“그게 아니라아…….”

아인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지만 에리아는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히 지금 이대로 널 그런 놈하고 붙일 수는 없지. 걱정하지마, 네 정신을 옮겨오면서 신체 시간을 느리게 설정했기 때문에 20년이 지나도 넌 몇 살 먹지 않은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런 것을 떠나서 제가 수십 년 동안 수련을 한다고 해도 그런 사람한테 상처 하나 입힐 수 있겠냐고요!”
“응.”

너무나 당연하게 말했고,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기에 아인은 다시 한 번 되물어야 했다.

“뭐라고 하셨어요?”
“가능하다고.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이길 수도 있게 내가 만들어줄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하는 에리아를 보며 아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알아챈 듯 에리아가 예의 사람 좋은 포근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너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를 가르쳐 줄 테니까 걱정하지마. 나한테도 널 여기까지 데려온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있고, 또 비록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널 사랑했던 사람들도 아마 네가 여기서 행복하기를 바랄 테니까.”

아침에 언뜻 들었던 말이지만, 지금 다시 들으니 아인에게 알 수 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아인은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에리아의 말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죽고 싶을 정도로 고생을 하긴 해야 할거야. 에이, 걱정하지마. 설마 정말 죽기야 하겠어? 인간의 몸은 은근히 튼튼하다고.”
‘조금 전에 우리가 너무 약하다고 했거든요?’

앞으로의 생활이 눈에 보이는 듯 해, 아인은 그 자리에 그냥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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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love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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