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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7 19:05

아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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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역시 화려했다. 쌀밥과 간단한 반찬 몇 가지. 그리고 싱싱한 연어 회와 채소가 더없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더해줬다.

어제와 같이 뒤뜰에서 설거지를 마친 두 사람은 찬장에 그릇을 집어 넣고 방 안에 마주 앉았다.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약간 늦은 오전의 햇살이 기분 좋게 방 안을 물들이고 있었고 저 멀리 산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폭포 소리가 바람과 섞여 들어왔다. 에리아는 아인 앞에는 찻잔을 놓고 자기 앞에는 미약한 연기가 올라오는 장죽과 청 옥으로 만든 듯한 재떨이를 놓았다. 아인이 호호 불면서 찻잔에 입술을 갖다 대자 에리아가 말했다.  

“그 차는 그냥 마시기엔 살짝 밋밋해. 대신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이 사이로 숨을 들이쉬면서 마시는 거야. 한 번 해봐.”

아인은 그녀가 시킨 대로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숨을 약간 들여 마셔봤다. 그러자 밋밋하던 차 향이 확 살아나면서 입 안에 펼쳐졌다. 아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감탄했다.

“와! 정말 맛있어요! 마치 입 안에 꽃이 피는 느낌이에요!”
“후후. 너한테도 삶을 즐기는 소소한 방법들을 하나씩 가르쳐 줄게. 다도나 물건을 보는 법 등등. 여자에겐 꼭 필요한 것들이지.”

아인은 그녀의 장죽을 눈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담배도요?”
“원한다면.”
“술은요?”
“나랑 생활하려면 필수지.”
“헤에.”

에리아는 시원하게 대답한 다음 연기를 한 번 뿜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 속에는 다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는 왜 이런 걸 가르쳐 주는지부터 물어봐야 정상 아닌가? 역시 세뇌가 이상하게 되어버린 건……’

에리아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밝게 말머리를 열었다.

“자, 그러면 이제 이야기를 해보자.”

그 말에 아인은 열심히 듣겠다는 태도를 몸소 보여주듯이 허리를 똑바로 하면서 찻잔을 내려 놓았다. 하지만 에리아가 당장 입을 떼진 않았다.

대신 에리아는 물부리를 입술로 돌리면서 생각했다. 이 소녀에게 설명하는 것이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는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뭐,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이야기해줄게. 이 언니에게는6명의 친구……혹은 이웃이 있어. 모두 사이가 좋다고 하긴 어렵지. 사실 친구라 하기도 뭐하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얼굴 보면서 사는 관계가 전부야. 물론 친한 한 두 명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세리카라 불리는 세계에 살았지. 부모님, 혹은 그 윗대부터 살았고, 가족, 친구, 친척도 꽤 많은 편이었던 걸로 기억해. 아름다웠어. 기계문명도 있었고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런 충돌도 없고 영원히 평화로울 것만 같은 그런 세상이었지.”
“이 곳과는 다른 곳인가요?”

에리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좀 많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해. 산도 있고 바다도 있지. 사람도 있고.”
“그럼 에리아 씨는…….”
“응. 나도 이곳 사람이 아니야 너처럼. 하지만 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이것도 내 본 모습이 아니니까. 우리 종족은 너희들처럼 겉모습이나 능력에서 통일성이 없어.”

아인이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그럼 사람이…….”
“사람에 대한 포괄적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정의와는 다른 것 같구나. 좀 놀랐니?”
“아니요.”

아인이 작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아서요. 우선 어제 제가 깨어났던 곳은 안개와 이슬로 젖어 있었어요. 몇 걸음만 걸어도 발목까지 젖을 정도로. 하지만 에리아 씨는 하나도 젖지 않았어요. 무슨 뜻일까요? 자, 장기판 위에서 생각을 해보죠. 첫 째, 그 자리에 계속 있었는데 내가 못 봤다? 아니요. 안개가 아무리 자욱했어도, 또 제가 아무리 정신이 없었어도 그 넓은 벌판에서 사람을 놓쳤을 리가 없어요. 어디 숨을 장소도 마땅치 않은 걸요? 그럼 답은 하나에요.”

아인은 검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거에요. 물론 이렇게 고립된 장소에서 보기 힘든 식단도 한몫 하기도 했지만요.”

논리 정연한 답이었다. 그래서 에리아는 순수하게 감탄하기로 했다.

“정확해. 놀라워. 이야기 하기가 수월해 졌구나. 음.”

에리아의 시선이 문 밖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미 과거로 향해있는 듯 하다. 과거로 던져진 하나에 낚시 줄에 건져 올려지는 추억 방울 하나. 하지만 물고기가 그러하듯 그 추억은 현실로 나아오는 것을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듯 하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게. 어디까지 이야기 했더라? 아, 그래. 세키라. 이렇게 보여도 우린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어. 넌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근데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옛날에 어떤 한 명이 말했어. 난 이 세계가 귀찮아. 너무 무료해. 언제까지 이런 곳에 박혀 살만큼 우리가 약하지도 않잖아? 난 떠나겠어. 그리고 그에게 동조하는 몇 명과 함께 떠나버렸지. 어떻게 떠나는 지는 묻지 말아줘. 나도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개념이니까. 나중에 생각나게 되면 가르쳐 줄게. 우리 말로 하면 그냥 날아갔다고 표현하긴 하는데, 사실 이런 이들이 드문 것도 아니야. 오히려 장려하는 편에 가깝다고 하더라. 우리처럼 강대한 종족이 한 곳에 뭉쳐 살면 싸우게 되는 건 다반사거든. 우리야 어려서 몰랐지만, 사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 차라리 종족 번식을 위해 떠나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지. 아무튼 아까 말한 6명의 친구 기억하지? 나를 포함해서 7명도 떠나기로 결심했어. 사실 나야 애인 따라서 소풍 가는 기분으로 따라간 거지만. 그렇게 보지마. 그때는 어렸다고. 흠흠. 그렇게 세리카를 떠난 우린 정처 없이 날았어. 어떤 세계로 가게 될까라는, 뭐 그런 설렘도 없진 않았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리는 이 별에 정착했지.”

정신 없이 이야기에 몰입하던 아인이 물었다.

“이 세계는 어디죠?”
“여기 사는 인간들에 의하면 라콘이라 불리는 별이야. 네가 살던 별에선 점처럼 보이는 곳이지.”
“제가 살던 곳은 어디죠?”
“여기서 점처럼 보이는 곳. 이건 조금만 이따가 이야기 해줄게. 지금부터가 중요하거든.”

아인은 입을 닫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아는 장죽의 연기를 한 번 마시며 말을 이었다.

“이곳 생활도 처음엔 괜찮았어. 이 별 인간들에게 은근히 높임 받으면서 재미도 보고, 이리저리 여행도 다니고. 이 별이 상당히 크거든. 너나 내가 살던 곳에 비하면 몇 배나 더 큰 별이야. 뭐 그렇게 그럭저럭 살던 차에 한 녀석……그러니까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된 에덴이라는 자가 갑자기 난데없이 말했어.”

에리아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 세계를 부숴버리겠다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에 잠깐의 정적이 맴돌았다. 물방울 하나만 떨어져도 깨질 것 같은 정적을 깬 것은 아인의 긴장된 목소리였다.

“그 분이 그 정도로……힘이 센가요?”
“설마.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한 다고 해도 이곳의 인간들을 모두 쓸어버리려면 상당히 오래 걸릴걸? 아, 뭐 제때 말리지 못해서 실제로 큰 도시 몇 개를 쓸어버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그의 말에 동조할 리가 없잖아? 설득도 해보고, 협박도 해봤어. 근데 설득이란 상대방의 생각이나 목적, 동기를 알 때 가능 효과적인데 우린 에덴의 생각, 목적, 동기를 하나도 모른 상태였기에 설득은 먹히지도 않았어. 협박? 협박은 상대가 잃을 것이 있을 때나 통하는 거야. 그는, 적어도 우리의 보기엔,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었어.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였지. 우린 마법으로 녀석을 강제적 봉인했어. 우리가 일대일로는 이기기가 힘들 정도로 강한 자였지만 우리 6명의 힘을 이길 수야 없었거든. 우리 중 가장 마법에 능통한 자가 약 300 년 정도의 봉인을 예측했어. 그 사이에 우린 녀석이 그렇게 결심하게 된 생각, 동기, 목적을 알기 위해 백방을 돌아다니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지. 우리는 모두 칩거하거나 방랑하거나 자포자기했어. 그래도 이 세계를 떠나진 않은 이유는 아마 이곳이 맘에 들어서 일거야. 이미 우리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런데 뭐가 문제 인가요?”

에리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는 장죽을 들지 않은 왼손을 쫙 펴며 말했다.

“그 봉인의 시간이 앞으로 20년 정도 밖에 남지 않았어.”
“그럼 다시 봉인하거나…….”
“그 녀석이 같은 방법이 당할 정도로 아둔하진 않아. 설득하거나, 죽이는 방법 밖에는 없어, 현재로썬.”
“그럼 후자를……..”
“그게 사실 불가능해. 아까 말하는 것을 까먹었는데, 우리는 세리카를 떠날 때 맹세의 뜻으로 서로의 피를 섞은 술을 마셔. 그리고 그 술을 마시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해지지. 공멸을 피하기 위한 멋진 방법이지?”

에리아가 눈을 감았다.

“우리가 원래 웬만해선 죽지도 못하는 생물이긴 하지만 그 술을 마신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맨 정신으로는 보지 못할 정도야. 아무리 공격해도, 사지가 떨어지고 머리가 터져도 다시 재생돼. 끝이 없겠지.”

아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리아 씨의 말투가 꼭……그 장면을 보신 것 같네요?”

에리아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흘렀다.

“잠깐이지만 정말 맨 정신으로는 못 보겠더라. 내가 싸운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 전투 이후, 그 녀석은 그 충격으로 몇 백 년 동안 칩거에 들어갔어. 그 뒤에 들어갔던 녀석들 말 들어보면 참 살벌하더라. 들어가자마자 칼을 들고 죽일 듯이 쫓아내었다고 하더군. 그나마 친했던 나도 처음 몇 년 동안은 목이 날아갈 것을 각오해야 겨우 만날 정도였었지. 아무튼 그 일이 있은 후에 우리는 비교적 최근에 결정했어. 뭐, 간단한 거야. 우리가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에 대비해서 에덴을 이길 수 있는 제자를 하나씩 키워서 대적하기로. 우리가 가진 지혜와 힘을 이어받은 몸과 정신을 가진 인간을.”
“그게……..”

그때까지 아인을 외면하고 있던 에리아가 처음으로 아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지긋이 말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너야, 아인.”

아인의 눈동자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에리아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이제 와서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아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왜 하필 저를…….”

에리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아. 하지만 사과도 않겠어. 물론 어제 만난 사이긴 하지만 네가 나에게 약간의 호의라도 갖고 있다면 이것 하나만은 믿어줘.”

에리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만약 네가 그곳에 있었다면 넌 더욱 더 괴로웠을 것이라는 것만은.”

아인의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투명해서 저 밑까지 보이는 마음을 가진 아인. 하지만 그렇기에 에리아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다. 그 투명한 밑바닥엔 무엇이 잠들어 있을까? 약간의 상처에도 눈물을 보일 연약한 소녀일까, 아니면 그를 죽일 괴물일까?

“제……기억은 어떻게 된 거죠?”
“부분적으로는 사라졌어. 네가 이 별로 소환될 때 나타나는 증상일거야. 잔인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네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어. 미안해.”
“제 부모님은…….”

아인이 말하는 음절 하나하나에 아픔이 가득했다. 에리아의 입술이 닿자, 장죽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더는 나도 마음이 아파서 말은 못해주겠다. 하지만 이것까지 말해줄게. 내가 널 소환했을 때는 너와 가족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난 뒤야. 널 살리기 위해서……아니, 그 배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널 만날 일도 없었겠지. 내가 왜 그랬을까? 네가 죽어도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널 만난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어. 사실 아직도 그래.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에리아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확고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널 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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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는 느낌은 제 은행잔고를 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군용

모두 건필하세요!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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