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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8 15:53

아인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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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인은 기지개를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일찍 자서 그런지 아직 해가 뜬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창 밖을 보니 전날 아침처럼 장막을 두른 것 같은 두꺼운 안개는 없었다. 다만 창문에 친 얇은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새벽의 색깔, 즉 연보라 색과 연주황색,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 천 가지 빛들 만이 차가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오늘은 비도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었다. 그녀가 덮고 있던 두꺼운 이불에는 한 쌍의 청둥오리가 수놓아져 있었다. 생명력이 없는 두 쌍의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는 것 같아 서늘한 마음에 눈을 돌리자 그 옆에는 에리아가 잠들어 있었다.
연분홍 색의 가운을 입고 가슴에 손을 가지런하게 모으고 자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의 기억이 너무나 불분명 했고 잠들었던 기억도 희미했다. 아마 자신이 먼저 잠들고 에리아가 이불을 펴준 듯 하다.

‘자다가 몸부림을 치진 않았을까?’

하지만 그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부엌이 딸려있는 원룸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큰 구조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좀 떨어져서 자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인은 간단하게 이불과 베개를 정리하고 에리아가 깨지 않게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기름칠이 잘 되어있는 문은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차갑다고 하기엔 포근한 새벽 공기였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발도 신지 않고 돌 계단에 앉은 그녀의 눈 앞에는 어제와 봤던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부드러운 풀이 깔려있는 넓은 평원은 새벽 이슬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고, 그녀가 따먹으려고 했던 나무 열매들은 어제와 동일하게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달려있었다. 하지만, 어제와는 달리 두꺼운 안개가 없었기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우와, 우와 우와아아아아………”

그녀가 그런 탄성을 지을 만큼 높은 산들이었다. 아니, 그런 산들이 이어진 산맥에 가까웠다. 세월에 의해 정상이 날카로운 단검처럼 벼려진 산도 있었고, 그 보다는 평평한 정상을 가진 산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마치 거인처럼 보이는 거대한 산 몇 개가 있었다. 분명 그녀의 몇 십 배는 될만한 크기의 기암괴석들이 마치 여드름처럼 보일 정도의 거산들은 마치 그녀가 있는 평원을 둘러싸고 있는 형세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지리적인 측면에서야 상당히 멀겠지만, 그 거대한 높이들은 그녀의 시각으로 하여금 마치 산들이 바로 앞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녀의 정면에 있는 산은 넓이가 수십 미터는 될만한 폭포를 정상에서 산의 뿌리까지 쏟아내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물이 생기는지 궁금할 정도의 방대하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산은 폭포에서 생긴 안개 때문에 실루엣만 간신히 보일 정도였지만,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태양 빛이 닿아 마치 산 전체가 불타는 연기에 둘러싸인 것 같기도 했다. 또한 그녀의 우측에 있는 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생명력이라고는 거의 보기 힘든 바위 산이었고, 좌측에 있는 산은 그와는 반대로 수 십 가지의 초록색에 물들어 있었다. 초록색과 청록색 사이, 그리고 초록색과 연두색 사이에 있는 모든 초록색의 종류를 모아 놓은 것 같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집 뒤쪽으로도 비슷한 산이 하나 더 있었다. 아마 이 평원이 작은 산의 꼭대기인 것 같았다.

“아름답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인이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에리아가 하반신을 이불 속에 덮은 채로 그녀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느긋하게 정리하며 에리아가 키득거렸다.

“그렇게 크게 대답할 필요는 없어.”

아인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그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이에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음. 넌 좋은 꿈 꿨니?”

아인이 어깨를 들썩하며 대답했다.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요.”

에리아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무척이나 피곤했었나 보네. 어제 저녁도 안 먹고 잤잖니.”

그녀가 문지방을 넘어 아인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아인은 자리를 내주기 위해 옆으로 살짝 엉덩이를 움직이며 말했다.

“하루 한 끼 안 먹는다고 죽진 않잖아요.”

그 말에 에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 점심을 그렇게 비워놓고 그런 말을 하면 안되지. 설거지도 거의 필요 없던 걸?”

아인은 머쓱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마디도 안 지시는군.’

그러나 농이 섞인 지분거림이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대신 아인은 어제부터 궁금했단 질문을 하나씩 꺼내놓기로 결정했다.

“에리아 씨, 이곳은 어디죠?”

대답은 빨랐다.

“몰라.”

아인의 왼쪽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악의나 짜증 때문이라기 보단 의구심을 느낄 때 나오는 버릇 같았다.

“지리적인 이름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말해줘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하신 건가요?”

“후훗. 넌 똑똑하구나. 둘 다 맞아. 난 여기 지명을 모르고, 또 네가 알 수도 없을 테니까. 난 여길 그냥 집이라 부르지.”
“헤, 편하네요. 그럼 이 이름도 모르는 장소에 제가 어떻게 있는지, 설명해 주실 수는 있나요?”
“음.”

에리아는 오른 검지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며 뜸을 들였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가 친구에게 자신만 아는 비밀을 감추고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놀랄까라고 고민하는 듯 했다. 잠깐의 고민을 끝낸 에리아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아인의 눈꼬리가 다시 한 번 올라갔다.

“알긴 아신다는 말씀이네요?”
“당연하지. 아인. 사실 나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거든.”
“아니, 그냥 대충이라도 알려주시면 같이 추리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보의 공유가 그리 나쁘지는 않…….뭐라고요?”

말의 끝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때문에 에리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야 했다.

“목청도 좋다, 야.”
“아, 죄송해요. 놀라셨…….아니,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조금 전에 절 뭐하고 부르셨죠?”
“아인.”
“그게 제 이름인가요?”
“그래.”

뭔가 중요한 대화 같았지만 정보의 공유는 너무나 빨랐다. 때문에 뒤이어서 오는 충격이나 놀람은 거의 없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면 대답해줄 건가요?”
“이것도 역시 나중에.”

에리아는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침 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인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거 한 번 좋은 이유네요.”

아인은 한 번 크게 웃고는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등을 바라보는 에리아의 얼굴엔 한 점의 미소도 없었다. 대신 미안함과 난처함이 가득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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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필하세요:)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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