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
빈 방을 지키고 있다.
한 달 전까지 이 방에 머물고 있었던 사람은 한 여자였다. 그 사람에게는 반
드시 따라가야 하는 미사어구가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연인으로서 사랑하고 싶은 너
이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당신이며, 내 마음의 반을 비워두고 그 안에 담
아두고 싶은 사람이 바로 너야.’
그런 여자가 이 방에 머물렀다가 떠나갔다. 그녀가 그리워 남아있는 추억
을 되짚어보고자 이곳에 들어오면 저절로 코끝이 찡해진다. 방에는 빨간 꽃
송이가 피어오른 동백나무를 심은 화분 하나가 창문 근처 바닥에 놓여있
다. 동백은 그녀가 좋아하던 꽃이었다. 눈가에 괜한 물이 고인 까닭은 향기
때문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겨울의 냉대를 이
겨내는 동백꽃은 향기가 없으니까.
왜 동백꽃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내가 첫눈에 반해버렸던 그 신비
로운 미소를 만면에 띠우며 대답했었다.
‘동백은 온전히 자신의 자태만으로 사람들의 앞에 나서잖아. 난 그 당당함
이 좋더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설령 부족하더라도 사람들의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
다던 그녀는 결국 한 달 전에 이 방에서 나갔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나와의 관계보다 자신의 꿈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그래도 나는 이 방을 지키고 있다. 그녀와의 추억으
로 도배된 벽을 마주하고, 그녀가 남긴 꽃을 돌보며, 아직 방바닥에 남아있
는 온기를 의식적으로 착각하면서 방문을 열어놓고 기다린다.
그녀가 아니다. 그녀가 이 방에 머물기 훨씬 전부터 살아왔던 원래 주인에
게서 이제 돌아가겠으니 기다려달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 벌써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분명히 싫었으면서도 싫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나를 배려하여 스스로 바깥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그는 아직도 자
신이 머물 자리를 찾아 이 세상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돌
아올 때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가 빙긋 웃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 벽지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아려한
추억이 아픔이 되어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나는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내
손으로는 이 방을 새로 꾸미지 못한다. 그녀가 머물렀던 장소이기에 손끝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충분히 추억을 되짚고 나는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고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방을 막아버린다
진정으로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내 반쪽. 그녀가 잠깐 머물다가 갈 손님인줄
도 모르고 언제쯤 돌아오면 된다는 약속조차 하지 않고 매정하게 내쫓아버
렸던 내 마음의 절반. 녀석이 긴 방황을 끝내고 다시 원래부터 있어야했었
던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이 방은 불침이다.
마르지 않는 시멘트 위로 계지(季指)로 글씨를 새겨놓는다.
「빈 방 없음」
빈 방을 지키고 있다.
한 달 전까지 이 방에 머물고 있었던 사람은 한 여자였다. 그 사람에게는 반
드시 따라가야 하는 미사어구가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연인으로서 사랑하고 싶은 너
이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당신이며, 내 마음의 반을 비워두고 그 안에 담
아두고 싶은 사람이 바로 너야.’
그런 여자가 이 방에 머물렀다가 떠나갔다. 그녀가 그리워 남아있는 추억
을 되짚어보고자 이곳에 들어오면 저절로 코끝이 찡해진다. 방에는 빨간 꽃
송이가 피어오른 동백나무를 심은 화분 하나가 창문 근처 바닥에 놓여있
다. 동백은 그녀가 좋아하던 꽃이었다. 눈가에 괜한 물이 고인 까닭은 향기
때문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겨울의 냉대를 이
겨내는 동백꽃은 향기가 없으니까.
왜 동백꽃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내가 첫눈에 반해버렸던 그 신비
로운 미소를 만면에 띠우며 대답했었다.
‘동백은 온전히 자신의 자태만으로 사람들의 앞에 나서잖아. 난 그 당당함
이 좋더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설령 부족하더라도 사람들의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
다던 그녀는 결국 한 달 전에 이 방에서 나갔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나와의 관계보다 자신의 꿈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그래도 나는 이 방을 지키고 있다. 그녀와의 추억으
로 도배된 벽을 마주하고, 그녀가 남긴 꽃을 돌보며, 아직 방바닥에 남아있
는 온기를 의식적으로 착각하면서 방문을 열어놓고 기다린다.
그녀가 아니다. 그녀가 이 방에 머물기 훨씬 전부터 살아왔던 원래 주인에
게서 이제 돌아가겠으니 기다려달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데 벌써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분명히 싫었으면서도 싫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나를 배려하여 스스로 바깥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그는 아직도 자
신이 머물 자리를 찾아 이 세상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돌
아올 때가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가 빙긋 웃고 있는 얼굴이 그려진 벽지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아려한
추억이 아픔이 되어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나는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내
손으로는 이 방을 새로 꾸미지 못한다. 그녀가 머물렀던 장소이기에 손끝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충분히 추억을 되짚고 나는 방에서 나왔다.
문을 닫고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방을 막아버린다
진정으로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내 반쪽. 그녀가 잠깐 머물다가 갈 손님인줄
도 모르고 언제쯤 돌아오면 된다는 약속조차 하지 않고 매정하게 내쫓아버
렸던 내 마음의 절반. 녀석이 긴 방황을 끝내고 다시 원래부터 있어야했었
던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이 방은 불침이다.
마르지 않는 시멘트 위로 계지(季指)로 글씨를 새겨놓는다.
「빈 방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