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그게! 완전 음치잖아.”
“그만 두지 못해!”
“그 명곡을 그딴 식으로 부르면 쓰나!”
아무리 두바카 녀석이 간부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귀는 정확하다.
완전히 쪽박을 뒤집어쓰다 못해 깨버린 두바카는 그새 기가 죽어버린 것인지 잠잠해졌다. 뭐, 며칠 지나면 다시 노래를 부르겠지.
밤은 깊어갔지만 불꽃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고 사람들의 열기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악기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닌 수십 개의 현악기가 울리는 소리.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들에 대한 서술, 달과 불꽃에 취한 가녀린 무희의 춤사위와 삶의 괴로움에 찌든 우악스런 사내들의 악기연주가 어울리는 밤. 가만히 보고 듣고 있자니 그건 그 나름대로 그들을 상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엄청난 거리를 움직이면서 많은 여자들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때로는 자신의 품안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죽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빈 젖을 빠는 아이를 달래기도 해야 했다. 서술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을 난 구태여 서술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들을 엄청난 절망에 빠졌다는 것 정도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취하는 것이었다. 고통에 취하기도, 또 절망에 취하기도 하면서 슬픔을 이기고자 했다. 달과 불꽃에 취하는 것도 같은 이치겠지.
그리고 남자들이라고 해서 고통 받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 그녀들과 아이들을 지켜야 했던 그들은 간부들이 적을 상대하는 동안 활로를 열어야 했고 한순간의 판단실수로 인해 많은 가족들이 죽어나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시체를 채 수습하지도 못하고 떠났었다. 그러기에 남자들은 조금이라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연주를 하곤 했다. 마치 먼저 간 이들을 애도하듯이 말이다.
그런 시련을 겪고 살아남은 그들에게는 자격이 있다. 이 여유를 만끽할 자격이 있다!
뭐, 그들이 뭘 하던 간에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보다는 훨씬 더 충실하게 시간을 활용하고 있겠지. 좋다. 오늘은 더 이상의 서술은 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놀아라.
춤을 춰도 좋고, 노래도 불러도 좋고, 죽뿐이지만 그것으로 배를 불려도 좋다. 연인과 은밀한 시간을 가져도 좋고 노래와 춤의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도 좋겠지. 이건 하늘이 주는 여유니까 즐기는 게 좋을 거다.
“다들 즐거워 보여요.”
다르마는 차분한 눈길로 불꽃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이 자리한 곳을 보았지만 내가 보는 것과 그녀가 보는 것이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를테면 하늘을 보고 있더라도 구름을 보고 있는 것과 대기를 보고 있다는 것 정도의 차이랄까. 뭐, 그 정도로 심한 차이는 아니겠지만 그녀의 시각이라는 것은 제 아무리 몇 십 년 동안 같이 행동하더라도 읽기 힘들 테지. 이건 이거 나름대로 힘들다.
“그런가.”
“생각 외로 무심하시네요.”
“이런 건 꽤 오래 전부터 봐왔으니까.”
“이만큼 떠들썩한 것도 많이 보셨나요?”
“이거보다 몇 십 배는 더 성대한 축제도 꽤 봐왔지. 스무 번 이상으론 세리는 걸 잊었지만.”
사실 다 기억하고 있다. 처음의 축제도 마지막의 축제도. 모르는 건 단순히 숫자라는 것이겠지.
“우리도 그런 축제를 할 수 있을까요?”
“뭐, 노력한다면 못할 건 없다고 보는데.”
이런 걸 일반론이라고 하나? 낙관적이라고 하나?
뭐.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난 이 녀석들이 하려는 대책 없는 일에 기대를 걸어버린 것 같으니까. 나도 참 많이 물러졌군.
“찾았다!”
“언니~이야기 해주세요!”
“누나, 오늘도 재밌는 얘기 해줘!”
아까 전에 다르마를 찾으러 갔던 꼬맹이들이었다.
팔이 묵직해 보이는 녀석이 라낙, 미끈해 보이는 녀석이 니아파, 파이프 머리가 이니, 변화시킨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고 있는 녀석이 카일 이었던가. 개성이 진한데다 항상 몰려다니니 지루할 일은 없을 것 같은 조합이다.
그러고 보니 카일 녀석 혼자면 꽤 침울한 표정이다. 무슨 일 있었던 건가? 뭐, 난 관여하기 귀찮으니까 넘어가자. 다르마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카일은 무슨 일 있었니?”
“이스키 누나가 우리 잡아두려고 했어…”
카일 녀석이 그 말을 하자마자 애들 표정이 죄다 눅눅해진 김 마냥 늘어져버렸다.
다르마는 뭔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을 잘 살펴보면 꽤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다른 사람을 또 몰라도 다르마라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분명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난 니들을 이해한다. 이해해! 절대적으로 이해한다! 세상이 너희들을 버릴 지라도 그것만은 내가 믿어주마!
“아저씨 표정이 이상해. 변태 같아…”
“변태가 뭐야?”
“우으…”
어이, 이니. 난 니 녀석이 똥오줌 지릴 때부터 널 봐왔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하잖냐. 라낙 이 녀석, 이상한 거에 관심 가지지마! 그리고 니아파. 넌 또 왜 울상인 거냐! 난 아무 짓도 안했다고!
“흐음~아저씨 변태였어?”
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보는 거냐 카일!
왜 날 변태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무리 며칠째 수염을 안 깎았다곤 하지만, 비야파다한테 맞아서 뺨이 부풀었다곤 하지만! 다르마가 날 보면서 쓴 웃음을 짓고 있다곤 하지만! 난 변태가 아니야! 잠깐, 왜 말을 안 하는 거냐 다르마. 왜 부정하지 않는 거냐?!
“이니. 그런 건 어디서 들은 거냐…”
“엄마가 아저씨 보고 가끔 그렇게 말 해. 변태라고.”
…피올리나…난 니가 엄마이름 부르면서 눈물 콧물 질질 흘릴 때부터 봐왔다…이렇게 날 배신하겠다는 거냐?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니 녀석의 치부에 대해 적나라하게 서술 해주마!
“저기…폴로터 씨? 리스벨라 어로 변태라는 단어가 있나요?”
리스벨라 어? 흠…그러고 보니…
피올리아에 대한 서술…이라고 하기 전에 더 이상의 서술은 없다고 결심했었는데 흠…이래서 생각만으론 안 된다는 건가…아무튼 그녀에 대한 서술, 순수한 리스벨라 혈통인 그녀는 한때 초목의 쉼터에서 잘 나가던 아가씨였다. 나이는 대략 252살 정도로 리스벨라들 사이에서는 꽤 어린 편이었지만 사근사근한 말투하며 정갈한 몸가짐이 다른 리스벨라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기에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그 녀석과 피를 섞고 이스키를 낳게 된 이후로 다른 리스벨라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 모양이다. 결국 이스키를 데리고 꽤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 방황하는 배에 합류한 모양이다. 초목의 쉼터에 있을 때는 꽤 면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뭐 서먹서먹하니 껄끄럽다는 수준이다.
뭐, 한 인격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은 질색이니까 그동안 있었던 일은 묻고 싶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이스키랑 리스벨라 어로 말하곤 했으니까 이것도 그거려나?
“이니. 원문을 말해 줘.”
“원문?”
“흠…그러니까 니 엄마가 말했던 문장을 전부 말해달라는 거지.”
“음…그러니까…이시…이시르바르케일 변태아르누 폴로터.”
꽤 지역적인 사투리가 많이 섞인 문장이다. 샤르벤쥬르 어 중에서도 특히 리스벨라 어의 경우는 지역적으로 언어의 차이가 심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초목의 쉼터 출신인 피올리나 녀석이 이정도로 말이 심하게 비틀어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뭐, 이 녀석이 그 뜻을 알리가 없겠지.
안 그러고선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솔직히 그게 뭔 말인지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리스벨라 어는 모르는 걸.”
알건 모르건 지나치게 당당하다. 이래서 꼬맹이들이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리스벨라 어를 모른다니…자기 언니랑 엄마는 자주 쓸 텐데? 뭐야, 안 가르쳐준 건가…피올리나 녀석도 생각 외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군.
“변태아르누가 아니라 벼티아르누라고 하는 거다 이 바보야.”
피올리나의 구멍 숭숭 뚫린 교육과 이 꼬맹이의 당돌함에 어이가 없어서 그만 한 대 치고 말았다. 뭐, 그냥 딱밤 한 대니까 이스키가 날 죽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
“으씨! 아프잖아! 분명히 변태아르누라고 했어!”
“벼티아르누가 표준음이니까 처음 배울 때는 이걸로 배우는 게 좋아.”
“내가 왜 그걸 배워야 하는데!”
“왜 배워야 하냐고?”
어린애를 다루는 건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어렵다고 할 수 있겠지. 뭐, 나도 아주 옛날에는 저랬을 때가 있었겠지만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데다가 이렇게 되도 안하게 성장한 걸 보면 저 정도까지 철이 없었던 건 아니었겠지. 아마도. 그래, 아마도.
“니 녀석의 혈관에 흐르는 피의 절반 정도는 리스벨라니까. 종족의 문화와 언어는 기본 소양이다. 뭐, 예절분야는 선택사항이지만. 숙녀가 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겠지.”
대꾸도 안 하는 군.
뭐, 더 깊게 찌르려면 찌를 수 있지만 놀리는 건 한 녀석으로 충분하다.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놀리는 것도 힘들고 의심받기 쉬우니까 말이지.
“으…공부는 이스키 언니만으로도 충분한데…”
“특히 니 엄마랑 난 인연이 있으니까 가르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실 내가 심심한 거지만.
애들은 어떻게 보면 다루기 쉬울 때도 있다. 특히 자기가 어른이라고 여기는 꼬맹이들은 어른으로써 갖춰야할 소양이라는 걸 일러주면 대부분 필사적으로 쫒아오려다가 쓰러져 버리기 때문에 데리고 노는 재미도 있다. 뭐, 성격파탄자가 안 되면 좋으련만.
“엄마는 그런 소리 안했어.”
“아아~이래서 바보란.”
“뭐야!?”
걸려들었다.
후후후…낚시로 표현하자면 손맛이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리고 손맛이 느껴진 이상 줄을 가만히 둘 순 없다. 당겨야 할 때는 당기고 풀어야 할 때는 풀어야 월척을 낚을 수 있는 거니까.
“이래서 설명을 안 하면 이해를 못해요. 잘 들어. 리스벨라 어로. 그러니까 이시르바르케일. 표준음은 이실바두케 지만 뭐, 지역에 따라서 이실바르케인, 이실바둔, 이시르바르르게일, 이시르두나케일 등등이 있는 것 같지만 뜻하는 건 하나뿐이다. 영원히. 라는 뜻이지. 그리고 니가 말한 변태아르누의 표준음은 아까 말했듯이 벼티아르누 고 지역에 따라서 베일아르누, 베리브아르누, 페티아르주, 페테엘라누 등등이 있지. 뭐, 뜻은 대충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랑 기억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나뉘는데 피올리나 녀석이 날 사랑하는 건 아닐 테니 두 가지 뜻을 조합하면…”
뭔가 맞장구나 감탄이 없어서 그만 말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내 생각에도 내가 장황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부러 말까지 끊었는데 왜 말들이 없는 거냐? 거기다 왜 시선이 다른 데로 가있는 거야?
혹시 내 뒤에…그래…내 뒤로군…이거 전형적인 공포물 노선인데 말이지. 쳇, 너무 주절거린 탓에 발걸음도 느끼지 못한 건가? 나도 물러졌군.
“시리아르르 벨라트아라 케루타. 비라네스키안. 크르르벨라슈 케루타 엘로바둔 에쇼타파세 벼티아르누 크라세크루나즈 피하세루나 카샤르미르단.”
무뚝뚝한 여자의 목소리와 복잡한 샤르벤쥬르 혼합어.
지금 뒤를 돌아보면 도자기 인형 같은 새하얀 얼굴이 나타나겠지. 그리고 그 도자기 인형 같은 새하얀 얼굴에 문신 같은 핏줄은 잔뜩 세우고서 날 노려보겠지…그래, 그렇겠지.
“입이 험한 걸?”
대꾸는 했지만 돌아보긴 싫다…
샤르벤쥬르 혼합어가 어렵긴 하지만 네 가지 말을 다 알고 있다면 해석하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쳇, 생긴 거랑 다르게 입이 험해…아니, 다른 녀석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막하는 건가? 보기보다 성격 나쁜 여자네.
샤르벤쥬르 혼합어에 대한 서술, 샤르벤쥬르 혼합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샤르벤쥬르라는 작자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방황하는 배의 구성원 1/5이 이 샤르벤쥬르라는 작자들의 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건 이들이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족들이기 때문이다. 이 샤르벤쥬르란 초목의 리스벨라, 땅의 에드리안, 하늘의 미르, 물의 아퀴로낙으로 나뉘며 이 땅과 이 행성을 수호하기 위해 이 행성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전승된다. 이들은 원래 고유한 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혼합어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 결국 수백 년에 걸친 회의 끝에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문자라는 걸로 기록하는 역사가 없었던 녀석들의 혼합어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몇몇의 사람들이 그걸 수집해서 기록해 놓은 게 다다.
내 뒤에 있는 녀석이 어디서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관심도 없어!) 네 갈래로 분화된 언어에 모두 정통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건 분명하다.
“두억시니 로덴 팔키스는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눈을 보고 말해!”
평소의 그녀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격양된 음성이다. 아니, 로덴 팔키스라는 녀석이 말할 때 이런 투로 말한 것이겠지. 근데 내가 뭔 짓을 했다고 이렇게 화를 내는 거냐?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어? 이거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약점이라도 잡히는 거 아냐? 젠장, 쉽게 쉽게 넘어가자!
“춥지 않니? 모닥불 근처에 가서 이야기 들려줄게.”
“빨리빨리!”
“아저씨 안녕.”
“우으…”
다르마…이 아가씨는 알아서 피하는 구나…현명하다고 할지 아니면 처세에 능하다고 할지…카일, 이스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봤구나. 이니, 왜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거냐? 니 녀석은 그런 녀석이 아니잖아. 그리고 니아파, 넌 또 왜 울상인데? 라낙, 음흉한 표정 짓지 마!
“돌아.”
“또 뭐냐 꼬맹이.”
돌자마자, 아니 돌려고 자세를 잡는 순간 새하얀 얼굴이 눈앞까지 쫒아왔다.
그녀의 은색 눈동자가 마치 뱀의 그것처럼 희번덕거리면서 내 눈을 쏘아보았다.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난 기억나는 게 없는데 왜 이러는 거지? 알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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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충고부탁드립니다.
“그만 두지 못해!”
“그 명곡을 그딴 식으로 부르면 쓰나!”
아무리 두바카 녀석이 간부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귀는 정확하다.
완전히 쪽박을 뒤집어쓰다 못해 깨버린 두바카는 그새 기가 죽어버린 것인지 잠잠해졌다. 뭐, 며칠 지나면 다시 노래를 부르겠지.
밤은 깊어갔지만 불꽃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고 사람들의 열기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악기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닌 수십 개의 현악기가 울리는 소리.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그들에 대한 서술, 달과 불꽃에 취한 가녀린 무희의 춤사위와 삶의 괴로움에 찌든 우악스런 사내들의 악기연주가 어울리는 밤. 가만히 보고 듣고 있자니 그건 그 나름대로 그들을 상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엄청난 거리를 움직이면서 많은 여자들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때로는 자신의 품안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죽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빈 젖을 빠는 아이를 달래기도 해야 했다. 서술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을 난 구태여 서술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들을 엄청난 절망에 빠졌다는 것 정도밖에는 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취하는 것이었다. 고통에 취하기도, 또 절망에 취하기도 하면서 슬픔을 이기고자 했다. 달과 불꽃에 취하는 것도 같은 이치겠지.
그리고 남자들이라고 해서 고통 받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 그녀들과 아이들을 지켜야 했던 그들은 간부들이 적을 상대하는 동안 활로를 열어야 했고 한순간의 판단실수로 인해 많은 가족들이 죽어나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시체를 채 수습하지도 못하고 떠났었다. 그러기에 남자들은 조금이라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연주를 하곤 했다. 마치 먼저 간 이들을 애도하듯이 말이다.
그런 시련을 겪고 살아남은 그들에게는 자격이 있다. 이 여유를 만끽할 자격이 있다!
뭐, 그들이 뭘 하던 간에 나 같은 어중이떠중이보다는 훨씬 더 충실하게 시간을 활용하고 있겠지. 좋다. 오늘은 더 이상의 서술은 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놀아라.
춤을 춰도 좋고, 노래도 불러도 좋고, 죽뿐이지만 그것으로 배를 불려도 좋다. 연인과 은밀한 시간을 가져도 좋고 노래와 춤의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도 좋겠지. 이건 하늘이 주는 여유니까 즐기는 게 좋을 거다.
“다들 즐거워 보여요.”
다르마는 차분한 눈길로 불꽃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이 자리한 곳을 보았지만 내가 보는 것과 그녀가 보는 것이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를테면 하늘을 보고 있더라도 구름을 보고 있는 것과 대기를 보고 있다는 것 정도의 차이랄까. 뭐, 그 정도로 심한 차이는 아니겠지만 그녀의 시각이라는 것은 제 아무리 몇 십 년 동안 같이 행동하더라도 읽기 힘들 테지. 이건 이거 나름대로 힘들다.
“그런가.”
“생각 외로 무심하시네요.”
“이런 건 꽤 오래 전부터 봐왔으니까.”
“이만큼 떠들썩한 것도 많이 보셨나요?”
“이거보다 몇 십 배는 더 성대한 축제도 꽤 봐왔지. 스무 번 이상으론 세리는 걸 잊었지만.”
사실 다 기억하고 있다. 처음의 축제도 마지막의 축제도. 모르는 건 단순히 숫자라는 것이겠지.
“우리도 그런 축제를 할 수 있을까요?”
“뭐, 노력한다면 못할 건 없다고 보는데.”
이런 걸 일반론이라고 하나? 낙관적이라고 하나?
뭐.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난 이 녀석들이 하려는 대책 없는 일에 기대를 걸어버린 것 같으니까. 나도 참 많이 물러졌군.
“찾았다!”
“언니~이야기 해주세요!”
“누나, 오늘도 재밌는 얘기 해줘!”
아까 전에 다르마를 찾으러 갔던 꼬맹이들이었다.
팔이 묵직해 보이는 녀석이 라낙, 미끈해 보이는 녀석이 니아파, 파이프 머리가 이니, 변화시킨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고 있는 녀석이 카일 이었던가. 개성이 진한데다 항상 몰려다니니 지루할 일은 없을 것 같은 조합이다.
그러고 보니 카일 녀석 혼자면 꽤 침울한 표정이다. 무슨 일 있었던 건가? 뭐, 난 관여하기 귀찮으니까 넘어가자. 다르마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카일은 무슨 일 있었니?”
“이스키 누나가 우리 잡아두려고 했어…”
카일 녀석이 그 말을 하자마자 애들 표정이 죄다 눅눅해진 김 마냥 늘어져버렸다.
다르마는 뭔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을 잘 살펴보면 꽤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다른 사람을 또 몰라도 다르마라면 이해하지 못하겠지…분명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난 니들을 이해한다. 이해해! 절대적으로 이해한다! 세상이 너희들을 버릴 지라도 그것만은 내가 믿어주마!
“아저씨 표정이 이상해. 변태 같아…”
“변태가 뭐야?”
“우으…”
어이, 이니. 난 니 녀석이 똥오줌 지릴 때부터 널 봐왔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하잖냐. 라낙 이 녀석, 이상한 거에 관심 가지지마! 그리고 니아파. 넌 또 왜 울상인 거냐! 난 아무 짓도 안했다고!
“흐음~아저씨 변태였어?”
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보는 거냐 카일!
왜 날 변태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무리 며칠째 수염을 안 깎았다곤 하지만, 비야파다한테 맞아서 뺨이 부풀었다곤 하지만! 다르마가 날 보면서 쓴 웃음을 짓고 있다곤 하지만! 난 변태가 아니야! 잠깐, 왜 말을 안 하는 거냐 다르마. 왜 부정하지 않는 거냐?!
“이니. 그런 건 어디서 들은 거냐…”
“엄마가 아저씨 보고 가끔 그렇게 말 해. 변태라고.”
…피올리나…난 니가 엄마이름 부르면서 눈물 콧물 질질 흘릴 때부터 봐왔다…이렇게 날 배신하겠다는 거냐?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니 녀석의 치부에 대해 적나라하게 서술 해주마!
“저기…폴로터 씨? 리스벨라 어로 변태라는 단어가 있나요?”
리스벨라 어? 흠…그러고 보니…
피올리아에 대한 서술…이라고 하기 전에 더 이상의 서술은 없다고 결심했었는데 흠…이래서 생각만으론 안 된다는 건가…아무튼 그녀에 대한 서술, 순수한 리스벨라 혈통인 그녀는 한때 초목의 쉼터에서 잘 나가던 아가씨였다. 나이는 대략 252살 정도로 리스벨라들 사이에서는 꽤 어린 편이었지만 사근사근한 말투하며 정갈한 몸가짐이 다른 리스벨라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기에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그 녀석과 피를 섞고 이스키를 낳게 된 이후로 다른 리스벨라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 모양이다. 결국 이스키를 데리고 꽤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 방황하는 배에 합류한 모양이다. 초목의 쉼터에 있을 때는 꽤 면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뭐 서먹서먹하니 껄끄럽다는 수준이다.
뭐, 한 인격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은 질색이니까 그동안 있었던 일은 묻고 싶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씩 이스키랑 리스벨라 어로 말하곤 했으니까 이것도 그거려나?
“이니. 원문을 말해 줘.”
“원문?”
“흠…그러니까 니 엄마가 말했던 문장을 전부 말해달라는 거지.”
“음…그러니까…이시…이시르바르케일 변태아르누 폴로터.”
꽤 지역적인 사투리가 많이 섞인 문장이다. 샤르벤쥬르 어 중에서도 특히 리스벨라 어의 경우는 지역적으로 언어의 차이가 심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초목의 쉼터 출신인 피올리나 녀석이 이정도로 말이 심하게 비틀어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뭐, 이 녀석이 그 뜻을 알리가 없겠지.
안 그러고선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솔직히 그게 뭔 말인지 모르지?”
“당연히 모르지. 리스벨라 어는 모르는 걸.”
알건 모르건 지나치게 당당하다. 이래서 꼬맹이들이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리스벨라 어를 모른다니…자기 언니랑 엄마는 자주 쓸 텐데? 뭐야, 안 가르쳐준 건가…피올리나 녀석도 생각 외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군.
“변태아르누가 아니라 벼티아르누라고 하는 거다 이 바보야.”
피올리나의 구멍 숭숭 뚫린 교육과 이 꼬맹이의 당돌함에 어이가 없어서 그만 한 대 치고 말았다. 뭐, 그냥 딱밤 한 대니까 이스키가 날 죽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
“으씨! 아프잖아! 분명히 변태아르누라고 했어!”
“벼티아르누가 표준음이니까 처음 배울 때는 이걸로 배우는 게 좋아.”
“내가 왜 그걸 배워야 하는데!”
“왜 배워야 하냐고?”
어린애를 다루는 건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어렵다고 할 수 있겠지. 뭐, 나도 아주 옛날에는 저랬을 때가 있었겠지만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데다가 이렇게 되도 안하게 성장한 걸 보면 저 정도까지 철이 없었던 건 아니었겠지. 아마도. 그래, 아마도.
“니 녀석의 혈관에 흐르는 피의 절반 정도는 리스벨라니까. 종족의 문화와 언어는 기본 소양이다. 뭐, 예절분야는 선택사항이지만. 숙녀가 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겠지.”
대꾸도 안 하는 군.
뭐, 더 깊게 찌르려면 찌를 수 있지만 놀리는 건 한 녀석으로 충분하다.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놀리는 것도 힘들고 의심받기 쉬우니까 말이지.
“으…공부는 이스키 언니만으로도 충분한데…”
“특히 니 엄마랑 난 인연이 있으니까 가르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실 내가 심심한 거지만.
애들은 어떻게 보면 다루기 쉬울 때도 있다. 특히 자기가 어른이라고 여기는 꼬맹이들은 어른으로써 갖춰야할 소양이라는 걸 일러주면 대부분 필사적으로 쫒아오려다가 쓰러져 버리기 때문에 데리고 노는 재미도 있다. 뭐, 성격파탄자가 안 되면 좋으련만.
“엄마는 그런 소리 안했어.”
“아아~이래서 바보란.”
“뭐야!?”
걸려들었다.
후후후…낚시로 표현하자면 손맛이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리고 손맛이 느껴진 이상 줄을 가만히 둘 순 없다. 당겨야 할 때는 당기고 풀어야 할 때는 풀어야 월척을 낚을 수 있는 거니까.
“이래서 설명을 안 하면 이해를 못해요. 잘 들어. 리스벨라 어로. 그러니까 이시르바르케일. 표준음은 이실바두케 지만 뭐, 지역에 따라서 이실바르케인, 이실바둔, 이시르바르르게일, 이시르두나케일 등등이 있는 것 같지만 뜻하는 건 하나뿐이다. 영원히. 라는 뜻이지. 그리고 니가 말한 변태아르누의 표준음은 아까 말했듯이 벼티아르누 고 지역에 따라서 베일아르누, 베리브아르누, 페티아르주, 페테엘라누 등등이 있지. 뭐, 뜻은 대충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랑 기억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나뉘는데 피올리나 녀석이 날 사랑하는 건 아닐 테니 두 가지 뜻을 조합하면…”
뭔가 맞장구나 감탄이 없어서 그만 말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내 생각에도 내가 장황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부러 말까지 끊었는데 왜 말들이 없는 거냐? 거기다 왜 시선이 다른 데로 가있는 거야?
혹시 내 뒤에…그래…내 뒤로군…이거 전형적인 공포물 노선인데 말이지. 쳇, 너무 주절거린 탓에 발걸음도 느끼지 못한 건가? 나도 물러졌군.
“시리아르르 벨라트아라 케루타. 비라네스키안. 크르르벨라슈 케루타 엘로바둔 에쇼타파세 벼티아르누 크라세크루나즈 피하세루나 카샤르미르단.”
무뚝뚝한 여자의 목소리와 복잡한 샤르벤쥬르 혼합어.
지금 뒤를 돌아보면 도자기 인형 같은 새하얀 얼굴이 나타나겠지. 그리고 그 도자기 인형 같은 새하얀 얼굴에 문신 같은 핏줄은 잔뜩 세우고서 날 노려보겠지…그래, 그렇겠지.
“입이 험한 걸?”
대꾸는 했지만 돌아보긴 싫다…
샤르벤쥬르 혼합어가 어렵긴 하지만 네 가지 말을 다 알고 있다면 해석하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쳇, 생긴 거랑 다르게 입이 험해…아니, 다른 녀석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고 막하는 건가? 보기보다 성격 나쁜 여자네.
샤르벤쥬르 혼합어에 대한 서술, 샤르벤쥬르 혼합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샤르벤쥬르라는 작자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방황하는 배의 구성원 1/5이 이 샤르벤쥬르라는 작자들의 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건 이들이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족들이기 때문이다. 이 샤르벤쥬르란 초목의 리스벨라, 땅의 에드리안, 하늘의 미르, 물의 아퀴로낙으로 나뉘며 이 땅과 이 행성을 수호하기 위해 이 행성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전승된다. 이들은 원래 고유한 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혼합어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 결국 수백 년에 걸친 회의 끝에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문자라는 걸로 기록하는 역사가 없었던 녀석들의 혼합어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몇몇의 사람들이 그걸 수집해서 기록해 놓은 게 다다.
내 뒤에 있는 녀석이 어디서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관심도 없어!) 네 갈래로 분화된 언어에 모두 정통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건 분명하다.
“두억시니 로덴 팔키스는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눈을 보고 말해!”
평소의 그녀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격양된 음성이다. 아니, 로덴 팔키스라는 녀석이 말할 때 이런 투로 말한 것이겠지. 근데 내가 뭔 짓을 했다고 이렇게 화를 내는 거냐?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어? 이거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약점이라도 잡히는 거 아냐? 젠장, 쉽게 쉽게 넘어가자!
“춥지 않니? 모닥불 근처에 가서 이야기 들려줄게.”
“빨리빨리!”
“아저씨 안녕.”
“우으…”
다르마…이 아가씨는 알아서 피하는 구나…현명하다고 할지 아니면 처세에 능하다고 할지…카일, 이스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봤구나. 이니, 왜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거냐? 니 녀석은 그런 녀석이 아니잖아. 그리고 니아파, 넌 또 왜 울상인데? 라낙, 음흉한 표정 짓지 마!
“돌아.”
“또 뭐냐 꼬맹이.”
돌자마자, 아니 돌려고 자세를 잡는 순간 새하얀 얼굴이 눈앞까지 쫒아왔다.
그녀의 은색 눈동자가 마치 뱀의 그것처럼 희번덕거리면서 내 눈을 쏘아보았다.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난 기억나는 게 없는데 왜 이러는 거지? 알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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