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어떠신가요?”
뺨의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입 안 가득 죽을 머금고 있던 참이었다.
애들이 찾고 있던, 그리고 간부부터가 썩어버린 이 집단에서 유일하게 말과 설득이 통하는 그녀가 날 찾아온 것이었다.
다르마에 대한 서술, 발목까지 내려갈 정도로 기른 머리카락은 깨끗함과 아름다움의 미트카의 머릿결과 같이 검게 빛났고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과 눈은 그 존재만으로도 시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바다와 같은 깊은 생각이, 뱃속에는 두둑한 배짱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그녀와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녀의 숨겨진 매력이기도 했다.
다만 외견상 보이는 나이가 고작 15살 정도이기 때문에 얕잡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슈피치르 변경지역을 떠돌아다니던 중엔 그 모습 하나로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한 일이 있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꽤 충격이었던 것인지 그 이후로 있는 대외적인 협상에선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그 때문에 언변이 어느 정도 괜찮은 편인 내가 죽어라 고생하고 있지만.)
뭐, 아무튼 간에 그녀 자체는 굉장히 똑똑하고 성숙한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파나히를 제외한, 아니 우파나히 마저도 통제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옷차림새는 꽤 이상했다.
다른 간부 녀석들과 같은 검은색 롱코트와 그 안으로 보이는 하늘색의 원피스와 군용부츠. 라는 이상한 조합. 일체의 장신구도 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왼쪽 귀에 달려 있는 귀걸이만큼은 씻을 때도 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거 또 어디서 봤더라…
“뭐, 입안이 조금 아프지만.”
사실 참을 수 없을 만큼 뺨 안쪽이 아팠지만.
“비야파다한테 맞았다고 들었습니다만…사실이었군요.”
비야파다 녀석이 순순히 실토할 일은 없으니 말한 건 두바카 녀석인가? 아니면 쿠쿠카? 일러바치기 좋아하는 걸 보면 마차리 일지도 모르겠군. 뭐, 이쯤에서 일러두는 게 좋으려나?
“유쾌하진 않았어.”
“이게다 제 불찰입니다.”
그녀가 나를 향해 공손히 머리를 숙이는 모습에 가슴이 떨렸다.
어떤 권력자가 자신의 머리를 이렇게 까지 쉽게 숙이던가. 이 집단-방황하는 배 최고의 권력자가 단순히 같은 간부의 실수를 용서받기 위해 하잘 것 없는 기록관에서 고개를 숙였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뭐,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고 이스키에게 요즘 들어 검소해진다고 말해주겠어? 아무래도 말하기가 좀 껄끄럽거든.”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내 곁에 앉아 배급받은 죽을 가볍고도 유연한 손놀림으로 떠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솟아올랐다.
“아깝다…”
“예?”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깝다. 그래, 단순히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는 좋은 혈통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녀 자신이 말하기로는 부모님들은 일 때문에 따로 산다고 했고 오빠는 여행 중 이라던가.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지만 여자에게 과거지사를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겠지. 그렇고말고.
“그나저나…요즘 잘 되가냐?”
“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미안하지만 나도 왜 이런 소릴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당황했을 때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 까? 아…그건가.
“우파나히랑.”
“아…그건가요…?”
약간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이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마 소녀의 연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겠지. 흠…나도 참 악취미로군. 이런 거나 한번 보자고 다르마를 곤란하게 하다니 쳇, 고치든가 해야지.
“일단은 우리 모두가 정착할 때까지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기대와 실망이 한데 뒤섞인 담담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매력적이면서도 또 덧없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난 그것이 정말 좋은 얼굴이라고 서술할 것이다.
“현명하군.”
“감사합니다.”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들의 운명에 관여할 권리도, 생각도, 의지도 없다. 그저 그들의 결정에 대한 가벼운 생각만을 내뱉어 줄 뿐이니까. 아무리 운명과 우연의 관장하는 신인 이로트라라고 할지라도 이들의 운명에 인위적인 개입은 불가능 할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한낱 운명보다 강하다. 확실히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 말을 한 진의를 들여다보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운명의 저울질에 사라지지만 진정한 사랑은 죽음까지도 역전 시키는 힘이 있다. 라는 것이겠지. 적어도 몇몇의 문학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글을 쓸 것이다. 정말로 그런지는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모르겠지만.
“뭐, 선택은 너희들이 하는 거니까.”
“폴로터 씨 답군요.”
나답다고? 나다운 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이 아가씨는 그런 중요한 소리를 함부로 내뱉는 것 같다. 이 아가씨야. 그런 건 함부로 내뱉어서 좋을 게 없어. 그런 건 사람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제대로 된 사람이나 하는 소리니까.
“그런 말은 조심하는 게 좋아. 사람마다 그런 소릴 듣고 좋아할 사람이 있고 싫어할 사람이 있으니까. 더군다나 넌 원래 나이보다 꽤 어리게 보인다고. 어린 사람이 그런 소릴 하면 화내는 사람도 있고 동년배들은 애늙은이 취급한단 말이다.”
“폴로터 씨가 화내실 건 아니잖아요.”
“하긴…그것도 그런가.”
아는 것에 대해서는 화를 내겠지만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니까 화낼 여력이 되지 않는다. 정확히 찍은 건가? 아니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일까? 흠. 언제 한 번 이 아가씨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데 이거 기회라는 게 잘 찾아오지 않는군.
아픈 부분을 참아가며 죽을 입속으로 쑤셔 넣고는 그대로 뒤로 누워버렸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지만 알게 뭐냐. 내가 귀찮은데. 그렇게 한참을 있자니 사막에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만큼은 내 눈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것을 봤다는 식으로 잔뜩 구겨진 얼굴이었을 테니까.
“별이 좋죠?”
미안하지만 차마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
난 그저 달들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동쪽으로 기울어진 순서대로 카유르, 위트, 수리안, 나타.(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그 비슷하게 불리고 있다.) 이 네 개의 달은 각기 다른 것들을 상징하고 또한 많은 시인들과 문학가들의 영혼을 훔쳤었다.
그런 식으로 수백,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나를 포함한 몇몇은 생각했다. 왜 죽은 흙덩어리를 상대로 영혼의 교감을 나누고 또 그걸 가지고 글이나 시를 써야 하는 거지? 거기다 다른 이들에게 그것들은 단순히 날짜나 날씨를 판별하는 계측 기구에 불과하지 않나? 라고 말이다.
누군가들에게는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상대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날짜와 날씨를 알아보는 기구, 그리고 나 같은 녀석들에게는 그냥 빛나는 흙덩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난 그것들을 짜증나는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그런지 좀 더 원한이 담긴 눈을 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 다르마의 시각은 달랐다.
그녀는 은은하게 내려쬐는 달빛보다는 그 주변에서 빛나는 별들을 보고 있었다.
도량의 차이인가 인격의 차이인가 교육의 차이인가…이 아가씨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세세한 부분에 능하다.
“그런가.”
차마 안보고 있었다는 말은 대놓고 할 수가 없었지만 살짝 대화가 끊기는 것이 가볍게 미소 지은 모양이다. 이 아가씨. 내 생각은 죄다 꿰뚫어보고 있다.
“그런 거죠.”
“문학적으로 따지면 별들과 달들의 관계는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가 않아.”
“절반 정도는 간단하잖아요? 개인적으론 별 쪽이 간단하면 좋겠어요.”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둘을 섞어 놓으면 혼돈적이라는 느낌이라서 어느 한쪽이 간단하다 고는 말 못해.”
“별들은 별들이고 달들은 달들이잖아요. 버섯죽에 있는 버섯과 쌀이랄까요? 섞으면 섞이고 맛도 좋아지지만 골라내려면 얼마든지 골라 낼 수 있으니까요.”
이 여자…아니, 이 아가씨가 수백 년을 끌고 왔던 문학적 난제를 한순간에 때려 부쉈다.
아니, 정확하게 하자면 이미 부서지기는 옛날에 부서졌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깨질 문제는 아니야. 도대체 이 아가씨가 무엇을 어디부터 보고 있는 거지…
“아…그…”
“누님~! 장작 다 패왔습니다~”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내 말을 끊어버렸다.
내 글에 손이나 대는 지저분한 녀석. 보기도 싫다. 쳇,
짜증나니 그만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돌아누워 버렸다. 완전히 잠자는 모습이잖나 이거. 쳇, 이러다 잠들면 입 돌아갈 것 같은데 말이지. 돌아가기만 해봐라 마키 녀석한테서 지독한 약을 얻어다 니가 먹을 밥에 넣어 줄 테니까.
“수고 하셨어요. 그걸 저기 쌓고 불을 지펴 주세요.”
“알겠습니다! 쿠쿠카, 가자.”
“크크크 여전히 다르마 한텐 반항할 생각을 못하는 군.”
지저분한 녀석 다음에는 커다란 녀석인가? 미치겠군.
“시, 시끄러워! 누님은 우리들의 우상이니까!”
“우리들? 누구들이냐 그건.”
“…몰라도 되니까 빨리 일이나 하자.”
“하아…결국 힘쓰는 건 내 일이군.”
“이 가느다란 팔을 봐라! 그런 걸 들게 생겼는지.”
“알았으니까 비켜, 무겁다고 이거.”
“두 분 다 힘내 주세요.”
“예~ 누님!”
“으이구…이 바보…”
머릿속에서 대충 그려지긴 한다. 쿠쿠카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에서 나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운 것이 장작으로 쓸 통나무를 제대로 패지도 않고 장작이랍시고 가져왔겠지. 아마 두바카 녀석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고 이 아가씨는 능력 되는 데로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니까 그런 걸 봐도 아무런 소리도 안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으로 그려봐도 실제로 보는 것 같은 현실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야가 안 닿는 곳에서 들리는 건 전부 시답잖은 소리로 들릴 만큼 난 상상을 불신하게 되어버린 걸까? 나도 늙어버린 건가 아니면 꿈이라는 걸 상실해 버린 걸까.
바보 같다.
먹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별에 별 생각이 다 난다.
솔직히 말해 어떻게 하면 이 녀석들의 생활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까 하는 것보단 내일 밥은 뭘까 하는 생각이 더 절실하다.
언제고 이런 죽이 아니라 고기반찬에 고봉 밥해서 먹을 날이 올까. 정착한다면 그게 가능할까? 아니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힘들다. 힘들어.
“주무시나요?”
“아니, 아직은. 그리고 잠은 이미 많이 잤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내일 저스에서 사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려도 될까요?”
“꽤 갑작스럽네.”
“까먹고 있었어요.”
이렇게 당당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여자도 얼마 없겠지.
하지만 그 솔직함이 좋다.
“나 혼자서 되려나…”
“이스키 씨를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 녀석은 빼고.”
“그럼 마키 씨를…”
“그 녀석도 안 돼. 독차를 내줄 순 없잖아.”
가만 생각하니 간부라는 놈들 중에 도대체 쓸 만한 녀석들이 없다.
이스키는 말투가 이상하고 마키는 가끔 손님에게도 약을 탄 차를 대접한다. 쿠쿠카나 비야파다, 팔라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편하게 구는데다가 두바카 녀석은 장난기가 너무 심하고 너무 떠들어 댄다.
그렇다고 다르마가 나서지도 않을 테니 남은 건 마차리나 우파나히 정도인가.
아니다. 그 녀석들이랑 같이 할 바에야 그냥 온자 하는 게 나아.
“앞으론 지도자 육성이라는 거에 신경 쓰지 그래? 나라고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니까.”
“에이~우리 중에서는 제일 오래 사실 분이.”
하긴, 그러려나.
본래 내 종족은 수명이라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천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이 타고난 능력이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기 위해선 시간을 들여가면서 조금씩 능력을 키우는 수밖엔 없겠지. 피곤하다 이런 것도.
“혼자서 해야 하나…”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종이를 좀 더 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종이. 다른 이들에게는 없어도 그만인 것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이다. 이를테면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 아가씨 점점 영악해져 가는 군. 아니, 숙련됐다고 해야 하나? 이런 상태로 쭉 성장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점점 사람 부리는 방식이 좋아지는데.”
“어머, 그거 칭찬인가요?”
“글쎄…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아, 시작했나 보네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인 것은 밝은 불길이었다.
아까 전 쿠쿠카가 들고 왔을 터인 굵은 나무기둥이 타오르는 모습은 그 타오른다는 행위자체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중심은 붉게 타오르지만 그 가장자리는 덧없이 사라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최선을 다해 타오르는 때문이 아닐까?
그 정열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한동안 그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어둠은 내려앉았나!”
두바카 녀석이 노래를 부른다. 하! 완전히 음치로군. 여기까지 그 시끄러운 목소리가 다 들리다니. 끔찍한 일이다. 이런 운치 있는 밤에 저런 돼지 멱따는 소릴 들어야 한다니 이건 저주가 분명하다.
뺨의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입 안 가득 죽을 머금고 있던 참이었다.
애들이 찾고 있던, 그리고 간부부터가 썩어버린 이 집단에서 유일하게 말과 설득이 통하는 그녀가 날 찾아온 것이었다.
다르마에 대한 서술, 발목까지 내려갈 정도로 기른 머리카락은 깨끗함과 아름다움의 미트카의 머릿결과 같이 검게 빛났고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과 눈은 그 존재만으로도 시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바다와 같은 깊은 생각이, 뱃속에는 두둑한 배짱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그녀와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녀의 숨겨진 매력이기도 했다.
다만 외견상 보이는 나이가 고작 15살 정도이기 때문에 얕잡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슈피치르 변경지역을 떠돌아다니던 중엔 그 모습 하나로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한 일이 있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꽤 충격이었던 것인지 그 이후로 있는 대외적인 협상에선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그 때문에 언변이 어느 정도 괜찮은 편인 내가 죽어라 고생하고 있지만.)
뭐, 아무튼 간에 그녀 자체는 굉장히 똑똑하고 성숙한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파나히를 제외한, 아니 우파나히 마저도 통제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옷차림새는 꽤 이상했다.
다른 간부 녀석들과 같은 검은색 롱코트와 그 안으로 보이는 하늘색의 원피스와 군용부츠. 라는 이상한 조합. 일체의 장신구도 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왼쪽 귀에 달려 있는 귀걸이만큼은 씻을 때도 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거 또 어디서 봤더라…
“뭐, 입안이 조금 아프지만.”
사실 참을 수 없을 만큼 뺨 안쪽이 아팠지만.
“비야파다한테 맞았다고 들었습니다만…사실이었군요.”
비야파다 녀석이 순순히 실토할 일은 없으니 말한 건 두바카 녀석인가? 아니면 쿠쿠카? 일러바치기 좋아하는 걸 보면 마차리 일지도 모르겠군. 뭐, 이쯤에서 일러두는 게 좋으려나?
“유쾌하진 않았어.”
“이게다 제 불찰입니다.”
그녀가 나를 향해 공손히 머리를 숙이는 모습에 가슴이 떨렸다.
어떤 권력자가 자신의 머리를 이렇게 까지 쉽게 숙이던가. 이 집단-방황하는 배 최고의 권력자가 단순히 같은 간부의 실수를 용서받기 위해 하잘 것 없는 기록관에서 고개를 숙였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뭐,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고 이스키에게 요즘 들어 검소해진다고 말해주겠어? 아무래도 말하기가 좀 껄끄럽거든.”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내 곁에 앉아 배급받은 죽을 가볍고도 유연한 손놀림으로 떠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솟아올랐다.
“아깝다…”
“예?”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깝다. 그래, 단순히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는 좋은 혈통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녀 자신이 말하기로는 부모님들은 일 때문에 따로 산다고 했고 오빠는 여행 중 이라던가.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지만 여자에게 과거지사를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겠지. 그렇고말고.
“그나저나…요즘 잘 되가냐?”
“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미안하지만 나도 왜 이런 소릴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당황했을 때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 까? 아…그건가.
“우파나히랑.”
“아…그건가요…?”
약간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이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마 소녀의 연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겠지. 흠…나도 참 악취미로군. 이런 거나 한번 보자고 다르마를 곤란하게 하다니 쳇, 고치든가 해야지.
“일단은 우리 모두가 정착할 때까지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기대와 실망이 한데 뒤섞인 담담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매력적이면서도 또 덧없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난 그것이 정말 좋은 얼굴이라고 서술할 것이다.
“현명하군.”
“감사합니다.”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그들의 운명에 관여할 권리도, 생각도, 의지도 없다. 그저 그들의 결정에 대한 가벼운 생각만을 내뱉어 줄 뿐이니까. 아무리 운명과 우연의 관장하는 신인 이로트라라고 할지라도 이들의 운명에 인위적인 개입은 불가능 할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한낱 운명보다 강하다. 확실히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 말을 한 진의를 들여다보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운명의 저울질에 사라지지만 진정한 사랑은 죽음까지도 역전 시키는 힘이 있다. 라는 것이겠지. 적어도 몇몇의 문학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글을 쓸 것이다. 정말로 그런지는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모르겠지만.
“뭐, 선택은 너희들이 하는 거니까.”
“폴로터 씨 답군요.”
나답다고? 나다운 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이 아가씨는 그런 중요한 소리를 함부로 내뱉는 것 같다. 이 아가씨야. 그런 건 함부로 내뱉어서 좋을 게 없어. 그런 건 사람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제대로 된 사람이나 하는 소리니까.
“그런 말은 조심하는 게 좋아. 사람마다 그런 소릴 듣고 좋아할 사람이 있고 싫어할 사람이 있으니까. 더군다나 넌 원래 나이보다 꽤 어리게 보인다고. 어린 사람이 그런 소릴 하면 화내는 사람도 있고 동년배들은 애늙은이 취급한단 말이다.”
“폴로터 씨가 화내실 건 아니잖아요.”
“하긴…그것도 그런가.”
아는 것에 대해서는 화를 내겠지만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니까 화낼 여력이 되지 않는다. 정확히 찍은 건가? 아니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일까? 흠. 언제 한 번 이 아가씨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데 이거 기회라는 게 잘 찾아오지 않는군.
아픈 부분을 참아가며 죽을 입속으로 쑤셔 넣고는 그대로 뒤로 누워버렸다.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지만 알게 뭐냐. 내가 귀찮은데. 그렇게 한참을 있자니 사막에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만큼은 내 눈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것을 봤다는 식으로 잔뜩 구겨진 얼굴이었을 테니까.
“별이 좋죠?”
미안하지만 차마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
난 그저 달들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동쪽으로 기울어진 순서대로 카유르, 위트, 수리안, 나타.(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그 비슷하게 불리고 있다.) 이 네 개의 달은 각기 다른 것들을 상징하고 또한 많은 시인들과 문학가들의 영혼을 훔쳤었다.
그런 식으로 수백,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나를 포함한 몇몇은 생각했다. 왜 죽은 흙덩어리를 상대로 영혼의 교감을 나누고 또 그걸 가지고 글이나 시를 써야 하는 거지? 거기다 다른 이들에게 그것들은 단순히 날짜나 날씨를 판별하는 계측 기구에 불과하지 않나? 라고 말이다.
누군가들에게는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상대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날짜와 날씨를 알아보는 기구, 그리고 나 같은 녀석들에게는 그냥 빛나는 흙덩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난 그것들을 짜증나는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그런지 좀 더 원한이 담긴 눈을 하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 다르마의 시각은 달랐다.
그녀는 은은하게 내려쬐는 달빛보다는 그 주변에서 빛나는 별들을 보고 있었다.
도량의 차이인가 인격의 차이인가 교육의 차이인가…이 아가씨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세세한 부분에 능하다.
“그런가.”
차마 안보고 있었다는 말은 대놓고 할 수가 없었지만 살짝 대화가 끊기는 것이 가볍게 미소 지은 모양이다. 이 아가씨. 내 생각은 죄다 꿰뚫어보고 있다.
“그런 거죠.”
“문학적으로 따지면 별들과 달들의 관계는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가 않아.”
“절반 정도는 간단하잖아요? 개인적으론 별 쪽이 간단하면 좋겠어요.”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둘을 섞어 놓으면 혼돈적이라는 느낌이라서 어느 한쪽이 간단하다 고는 말 못해.”
“별들은 별들이고 달들은 달들이잖아요. 버섯죽에 있는 버섯과 쌀이랄까요? 섞으면 섞이고 맛도 좋아지지만 골라내려면 얼마든지 골라 낼 수 있으니까요.”
이 여자…아니, 이 아가씨가 수백 년을 끌고 왔던 문학적 난제를 한순간에 때려 부쉈다.
아니, 정확하게 하자면 이미 부서지기는 옛날에 부서졌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깨질 문제는 아니야. 도대체 이 아가씨가 무엇을 어디부터 보고 있는 거지…
“아…그…”
“누님~! 장작 다 패왔습니다~”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내 말을 끊어버렸다.
내 글에 손이나 대는 지저분한 녀석. 보기도 싫다. 쳇,
짜증나니 그만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돌아누워 버렸다. 완전히 잠자는 모습이잖나 이거. 쳇, 이러다 잠들면 입 돌아갈 것 같은데 말이지. 돌아가기만 해봐라 마키 녀석한테서 지독한 약을 얻어다 니가 먹을 밥에 넣어 줄 테니까.
“수고 하셨어요. 그걸 저기 쌓고 불을 지펴 주세요.”
“알겠습니다! 쿠쿠카, 가자.”
“크크크 여전히 다르마 한텐 반항할 생각을 못하는 군.”
지저분한 녀석 다음에는 커다란 녀석인가? 미치겠군.
“시, 시끄러워! 누님은 우리들의 우상이니까!”
“우리들? 누구들이냐 그건.”
“…몰라도 되니까 빨리 일이나 하자.”
“하아…결국 힘쓰는 건 내 일이군.”
“이 가느다란 팔을 봐라! 그런 걸 들게 생겼는지.”
“알았으니까 비켜, 무겁다고 이거.”
“두 분 다 힘내 주세요.”
“예~ 누님!”
“으이구…이 바보…”
머릿속에서 대충 그려지긴 한다. 쿠쿠카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에서 나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운 것이 장작으로 쓸 통나무를 제대로 패지도 않고 장작이랍시고 가져왔겠지. 아마 두바카 녀석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고 이 아가씨는 능력 되는 데로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니까 그런 걸 봐도 아무런 소리도 안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머릿속으로 그려봐도 실제로 보는 것 같은 현실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야가 안 닿는 곳에서 들리는 건 전부 시답잖은 소리로 들릴 만큼 난 상상을 불신하게 되어버린 걸까? 나도 늙어버린 건가 아니면 꿈이라는 걸 상실해 버린 걸까.
바보 같다.
먹고 가만히 누워 있자니 별에 별 생각이 다 난다.
솔직히 말해 어떻게 하면 이 녀석들의 생활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까 하는 것보단 내일 밥은 뭘까 하는 생각이 더 절실하다.
언제고 이런 죽이 아니라 고기반찬에 고봉 밥해서 먹을 날이 올까. 정착한다면 그게 가능할까? 아니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힘들다. 힘들어.
“주무시나요?”
“아니, 아직은. 그리고 잠은 이미 많이 잤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내일 저스에서 사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려도 될까요?”
“꽤 갑작스럽네.”
“까먹고 있었어요.”
이렇게 당당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여자도 얼마 없겠지.
하지만 그 솔직함이 좋다.
“나 혼자서 되려나…”
“이스키 씨를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 녀석은 빼고.”
“그럼 마키 씨를…”
“그 녀석도 안 돼. 독차를 내줄 순 없잖아.”
가만 생각하니 간부라는 놈들 중에 도대체 쓸 만한 녀석들이 없다.
이스키는 말투가 이상하고 마키는 가끔 손님에게도 약을 탄 차를 대접한다. 쿠쿠카나 비야파다, 팔라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편하게 구는데다가 두바카 녀석은 장난기가 너무 심하고 너무 떠들어 댄다.
그렇다고 다르마가 나서지도 않을 테니 남은 건 마차리나 우파나히 정도인가.
아니다. 그 녀석들이랑 같이 할 바에야 그냥 온자 하는 게 나아.
“앞으론 지도자 육성이라는 거에 신경 쓰지 그래? 나라고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니까.”
“에이~우리 중에서는 제일 오래 사실 분이.”
하긴, 그러려나.
본래 내 종족은 수명이라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천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이 타고난 능력이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기 위해선 시간을 들여가면서 조금씩 능력을 키우는 수밖엔 없겠지. 피곤하다 이런 것도.
“혼자서 해야 하나…”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종이를 좀 더 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종이. 다른 이들에게는 없어도 그만인 것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이다. 이를테면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 아가씨 점점 영악해져 가는 군. 아니, 숙련됐다고 해야 하나? 이런 상태로 쭉 성장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점점 사람 부리는 방식이 좋아지는데.”
“어머, 그거 칭찬인가요?”
“글쎄…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아, 시작했나 보네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인 것은 밝은 불길이었다.
아까 전 쿠쿠카가 들고 왔을 터인 굵은 나무기둥이 타오르는 모습은 그 타오른다는 행위자체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중심은 붉게 타오르지만 그 가장자리는 덧없이 사라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최선을 다해 타오르는 때문이 아닐까?
그 정열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한동안 그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어둠은 내려앉았나!”
두바카 녀석이 노래를 부른다. 하! 완전히 음치로군. 여기까지 그 시끄러운 목소리가 다 들리다니. 끔찍한 일이다. 이런 운치 있는 밤에 저런 돼지 멱따는 소릴 들어야 한다니 이건 저주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