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도피의 끝-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고양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고양이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했다. 그래서인지, 고양이는 될 수 있으면 집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식사때마다 훌쩍 사라지는 것이나, 이런 저런 일이 있을때마다 어느정도 도움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아는가, 라는 것은 둘째치고, 어디에서 나타나는 걸까. 아니, 그보다 일단 10년 이상 살고있었다.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동물병원 앞에만 가면 굉장히 싫어해서 팔을 긁고 도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머리가 좋은건지,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고양이었다.
그래도 다른 고양이를 기를 수 없던 것은 첫사랑의 추억 때문일까. 기억하기 싫은 때는 굉장히 많았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동생이 실종되었을 때, 친척의 사업이 망해서 다시 거리로 쫓겨났을 때. 생각해보면 정말 기구한 인생이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나를 버리면서까지 도망쳤지만 그다지 잘 정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없어서 더 야박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나. 그래도 그 정도는 감수해 주셔야지.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갖고있지 않은데.
나는 죽었다. 10년 전에, 한국의 고시원에 마음을 두고왔다. 그래도 그 기억을 원망하지 못하는 것은, 그 기억덕분에 이겨낼 수 있던 난관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 시절로 돌아갈수는 없지만, 사람은 현재보다는 추억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사람의 평균적인 사랑기간은 2년 6개월. 그 이후부터는 인간관계에 '사랑'보다는 '추억'이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어디에선가 보았다. 3류 가십 잡지라고 해도, 그건 분명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사랑하고 있어, 김민혁."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내가 고치지 못한 버릇 중에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것 같았다.
비록 죽은 껍질 뿐이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동시에 원망하고 있었다. 굉장할 정도의 모순이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만일 그때 한국에 남았다면 나는 이제서야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바보같은 일은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윽."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발작적으로 주머니에서 진통제를 꺼내 물도 없이 씹어먹었다. 정신을 아찔하게 할 정도로 또렷한 쓴 맛이 비강을 타고 머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쓴맛이 없어질때 즈음, 통증은 극히 일부만 남아서 잔류해 있었다.
'10년 후에, 공항에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2시간 전에는 뉴욕의 할렘가에 있었다.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하면 10년 전의 재탕을 하고있었다. 왜냐하면 캐나다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나에게 돈이라고는 갖고있던 10달러 지폐가 전부였다.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또 그놈의 부모들이 사업에 손을 댔기 때문이었다. 결국 집은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엄마는 싸구려 스너프비디오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아마 동생도 그럴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본 1000개 가량의 비디오에는 동생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되었어야 했지만, 아버지라는 작자가 책임감을 느꼈는지 모든 장기가 해체되어서 나는 어떻게인가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다. 끝까지 모르는 사람과 자고싶지는 않다는 일념으로 버티며 스너프비디오의 조수역을 했고, 스트립쇼의 주역으로 무대에 서서 40만 달러라는 거금을 갚았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회에 복귀하고 싶었으나, 이미 나는 유명인이었다. 8년만에 40만 달러라는 거금을 갚기 위해 난 다른 사람과 자는 것을 빼고 전부 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자 나는 레스토랑 하나도 취직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꺾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돈을 모았고,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에 사기를 당해서 몽땅 말아먹었다. 그게... 내가 볼때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쪽에서는 나를 부리기 쉬운 봉으로 본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개털이 되어 뉴욕의 환락가로 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문득 고양이가 울었다. 10일 전에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9일 전에는 나를 할퀴기 시작했고, 8일 전에는 결국 나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기억해냈다.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한 번 변했고, 달력의 10자리 수가 한 번 바뀌었다. 그리고 사람은 더 많이 변했다. 나는 죽었고, 김민혁은 죽은 채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있을지도 모르지. 원만한 가정을 꾸리고, 나와 했던 약속 따위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선불제 핸드폰인데, 사실 요금은 천 원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고시원의 침대 밑에 굴러다니던 핸드폰이었는데, 버리기가 귀찮았던 것인지 김민혁은 그냥 갖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간힘을 쓴 끝에 내 원래 핸드폰에 있던 음성메시지를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 기계치인 내가 보기에 그건 세기의 발전이었다. 지금 다시 해보라고 하면 못할 정도로. 9년이나 지난 일이고, 또 핸드폰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10년 동안 이 선불제 핸드폰을 배놓고 다른 핸드폰을 쓴 적이 없었다. 원래 며칠 남지 않았던 내 핸드폰은 로밍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곧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돌아가기는 개뿔. 두만강 건너갈 뻔 했다가 다시 넘어왔구만.
김민혁이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내 사정을 이야기하면 뭐라고 할까. 걸레? 미친년? 쓰레기? 그런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슬픈것은, 내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민혁을 바라보며 말할 것이다. '왜 날 버렸어?'라고.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만일 그 때 내가 캐나다로 가지 않았다면,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원만하게 끝났을 것을.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현기증이 나면서 손이 떨려왔다. 크리스마스까지 약 10분 남짓. 만나자고 하면 대부분 만남의 광장이니까, 그 한 구석에서 3시간 동안 앉아있었다.
오면, 어쩔까. 욕을 한 바가지 뒤집어씌워서 울리는 것부터 시작할까? 왜 왔냐고 닥달하며 '이 빌어먹을 자식아'라고 소리쳐서 기를 죽이고 시작할까? 아니면 멱살을 잡고 때려서 눕혀놓고 말을 들어볼까? 어쨌든 난 곱게 대화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신 때문에 난 여기까지 망가졌다고, 일단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양지은, 맞지?"
이미 텅 비어버린 공항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저 정문 너머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밖에는 이미 가로등밖에 없었고, 달은 부질없게도 반달인데다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참이라 그다지 밝지 않았다. 부서질 것 같이 흐릿한 수은등 때문에 그림자가 일렁이며 이쪽으로 오고있다는 것을 알렸다. 청소하는 직원도 사라진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작은 소리였음에 분명하지만 공항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 안되겠어. 나 진짜로 좋아하나봐.
김민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알았다. 이 남자는, 10년전 그대로, 나와 같이 마음이 죽은채로 살고있다고. 여기에 있는 것은 껍질 뿐이니까, 아무리 설득하고, 협박해도 바뀌는 것은 껍질 뿐이지 그 본질과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원망할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김민혁이 왜 과거에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억지로라도 시니컬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겠지. 그 눈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도 그 만큼 망가졌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어지간히 부서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넌 여기까지 부서졌어'라고 선고받은 것 같아서 참을수가 없었다.
"안녕."
정신을 차리자, 나는 김민혁에게 달라붙어서 울고있었다. 김민혁은 내 머리에 손을 올리려다가 그만 두었다. 만일 손을 올렸으면 난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날 10년 전에 버렸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권리로 날 위로하겠다는 거야...! 진짜로 위로해주고 싶었다면, 나를 떠나지 말았어야지...!
대화는 없었다. 행동도 없었다. 그저 김민혁은 나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시간 가까이 울고나서 향한 곳은 10년 전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역 앞에 있어서 24시간 했던, 그 패스트푸드점. 여전히 손님이 와도 심야시간에 오면 눈치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말이지만, 택시를 타고 왔다. 김민혁은 아직 자신의 차를 마련한 것 같지 않았다.
"감회가 새롭네."
"아직 답을 듣지 못했는데. 당신, 진짜 양지은 맞아?"
"응."
김민혁은 그제서야 약간 긴장을 풀며 외투를 벗었다.
정말 변하지 않았다. 그 검은색 오리털 외투도 그렇고, 검은색 일색인 옷차림도 그렇고, 눌러쓴 갈색 모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많이 변했네."
김민혁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10년이니까."
"미안해. 그때 보내지 말았어야 했구나."
김민혁은 콜라를 빨대로 마시면서 말했다. 나는 시차 때문인지 식욕이 전혀 없어서 햄버거를 잡았다가 다시 놓았다. 왜일까. 미국에 팔려갔을 때는 햄버거만이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았는데.
"원망하지, 나를?"
"응."
하지만 그런 마음은 김민혁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햇살에 눈이 녹듯이 사라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10년 전의 김민혁은 굉장히 믿음직했으니까? 그때의 김민혁은 냉철했지만 내게 친절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나를 도와준다고 단정지은 것일까?
"미안해."
항상 김민혁은 과도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 정도 사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항상, 항상 후회했던 일이다. 10년 전에, 그 비행기를 타지 말 것을. 그래서, 만일 김민혁이 내게 사과한다면 어떻게든 말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었다.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응."
김민혁은 그 죽은 것 같이 공허한 눈동자를 나에게 돌리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날 다시 돌려놔. 10년 전에, 그 비행기를 타기 전의 양지은으로."
내 말에 김민혁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라도 괜찮냐? 그냥 여기서 때려 죽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데."
"때려 죽인다면 기분만 풀리지 현실적인 이득은 없어."
김민혁도 햄버거를 먹을 생각이 없는지 포장을 뜯다가 다시 싸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럼... 오겠어? 도피의 끝까지."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이미 내겐 일상이야. 너무 오래되어서."
"서로... 너무 오래 도피한 것 같네."
"그럼, 상황에 맞설거야?"
"아니. 이미 이건 내 삶의 방식이야. 수험생이 시험보기 하루전에 공부방식을 바꾸는 짓은 하지 않겠지."
밖에 나오자 찬 바람이 뺨을 후려갈겼다. 그래도 따뜻했다. 이 고향이라면, 적어도 한 명 정도 의지할 사람은 있겠지.
"저기, 김민혁."
"응?"
"나를 도와줬던 네 번째 이유는 뭐야?"
"글쎄.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원미영이 전화를 했을 때, 그때는 내가 한국에서 쓰던 휴대폰에 대한 요금을 낼 수 있을 수준의 소득이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고, 그 이후로 나는 휴대폰이라는 것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라고 하면, 10년 전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타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김민혁의 말이 맞았다. 가족들의 사업욕은 한 번 정도 말아먹는 것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갖고있지 않다. 몸도, 마음도, 미래도, 과거도, 현재도, 가족도, 돈도, 명예도, 지식도, 학력도, 인맥도, 행복도, 절망도, 불행도, 증오도, 애정도,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마음도 내가 갖고있지 않다. 원인은 말할것도 없이 그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왜 비행기를 탔을까.
사회적 통념에 현혹된 것이다. 가족은 뭉쳐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런 싸구려 대중매체가 전하는 말에 세뇌되어서 나는 그릇된 결정을 내렸다. 좀 더 신중하게, 목적을 생각해야 했다.
가족을 만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때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면 행복했을까? 행복했을 것이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장식만 잘 해 놓아서 겉보기에 좋아보이는 패는 사실 꽝이었다. 아니, 꽝일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보장된 행복을 버리는 것 자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가. 차라리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언젠가 김민혁을 만나지 않더라도 현선우라는 조력자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언젠가 김민혁은 만났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나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김민혁을 믿고 비행기를 탔던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선택을 권유한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아니, 질 수 없었다. 이 인생은 내 것이고, 그 선택은 내가 한 것이고, 따라서 책임을 공유할수는 없기에.
이 이야기를 듣고있는 당신, 행복을 원하는가? 물론 나는 행복이 뭔지 잊어버려서, 정확한 조언을 해주기는 힘들다.
다만 그대, 불행을 피하고 싶다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삐를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말라.
SOLITUDE (고독) - Ella wheeler wilcox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땅에선 환희는 빌려야만 하고,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득하니까.
노래하라, 언덕들이 응답하리라.
탄식하라, 허공에 흩어지고 말리라.
메아리들은 즐거운 소리에 춤을 추지만
너의 근심은 외면하리라.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그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너의 고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그들을 다 잃고 말 것이다.
네가 주는 달콤한 술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을 한탄할 때는 너 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주리라, 세상이 너를 외면할 것이다.
성공하여 베풀라, 그것이 너의 삶을 도와주리라.
하지만 아무도 죽음은 막지 못한다.
즐거움의 방들엔 여유가 있어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는 한 줄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고양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고양이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했다. 그래서인지, 고양이는 될 수 있으면 집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식사때마다 훌쩍 사라지는 것이나, 이런 저런 일이 있을때마다 어느정도 도움을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아는가, 라는 것은 둘째치고, 어디에서 나타나는 걸까. 아니, 그보다 일단 10년 이상 살고있었다.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동물병원 앞에만 가면 굉장히 싫어해서 팔을 긁고 도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머리가 좋은건지,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고양이었다.
그래도 다른 고양이를 기를 수 없던 것은 첫사랑의 추억 때문일까. 기억하기 싫은 때는 굉장히 많았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동생이 실종되었을 때, 친척의 사업이 망해서 다시 거리로 쫓겨났을 때. 생각해보면 정말 기구한 인생이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나를 버리면서까지 도망쳤지만 그다지 잘 정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없어서 더 야박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나. 그래도 그 정도는 감수해 주셔야지.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갖고있지 않은데.
나는 죽었다. 10년 전에, 한국의 고시원에 마음을 두고왔다. 그래도 그 기억을 원망하지 못하는 것은, 그 기억덕분에 이겨낼 수 있던 난관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 시절로 돌아갈수는 없지만, 사람은 현재보다는 추억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사람의 평균적인 사랑기간은 2년 6개월. 그 이후부터는 인간관계에 '사랑'보다는 '추억'이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어디에선가 보았다. 3류 가십 잡지라고 해도, 그건 분명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사랑하고 있어, 김민혁."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내가 고치지 못한 버릇 중에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것 같았다.
비록 죽은 껍질 뿐이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동시에 원망하고 있었다. 굉장할 정도의 모순이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만일 그때 한국에 남았다면 나는 이제서야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바보같은 일은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윽."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발작적으로 주머니에서 진통제를 꺼내 물도 없이 씹어먹었다. 정신을 아찔하게 할 정도로 또렷한 쓴 맛이 비강을 타고 머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쓴맛이 없어질때 즈음, 통증은 극히 일부만 남아서 잔류해 있었다.
'10년 후에, 공항에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2시간 전에는 뉴욕의 할렘가에 있었다.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하면 10년 전의 재탕을 하고있었다. 왜냐하면 캐나다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나에게 돈이라고는 갖고있던 10달러 지폐가 전부였다.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또 그놈의 부모들이 사업에 손을 댔기 때문이었다. 결국 집은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엄마는 싸구려 스너프비디오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아마 동생도 그럴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본 1000개 가량의 비디오에는 동생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원래대로라면 그렇게 되었어야 했지만, 아버지라는 작자가 책임감을 느꼈는지 모든 장기가 해체되어서 나는 어떻게인가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다. 끝까지 모르는 사람과 자고싶지는 않다는 일념으로 버티며 스너프비디오의 조수역을 했고, 스트립쇼의 주역으로 무대에 서서 40만 달러라는 거금을 갚았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회에 복귀하고 싶었으나, 이미 나는 유명인이었다. 8년만에 40만 달러라는 거금을 갚기 위해 난 다른 사람과 자는 것을 빼고 전부 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자 나는 레스토랑 하나도 취직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꺾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돈을 모았고,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에 사기를 당해서 몽땅 말아먹었다. 그게... 내가 볼때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쪽에서는 나를 부리기 쉬운 봉으로 본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개털이 되어 뉴욕의 환락가로 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문득 고양이가 울었다. 10일 전에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9일 전에는 나를 할퀴기 시작했고, 8일 전에는 결국 나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기억해냈다.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한 번 변했고, 달력의 10자리 수가 한 번 바뀌었다. 그리고 사람은 더 많이 변했다. 나는 죽었고, 김민혁은 죽은 채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있을지도 모르지. 원만한 가정을 꾸리고, 나와 했던 약속 따위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선불제 핸드폰인데, 사실 요금은 천 원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고시원의 침대 밑에 굴러다니던 핸드폰이었는데, 버리기가 귀찮았던 것인지 김민혁은 그냥 갖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간힘을 쓴 끝에 내 원래 핸드폰에 있던 음성메시지를 옮기는 데에 성공했다. 기계치인 내가 보기에 그건 세기의 발전이었다. 지금 다시 해보라고 하면 못할 정도로. 9년이나 지난 일이고, 또 핸드폰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10년 동안 이 선불제 핸드폰을 배놓고 다른 핸드폰을 쓴 적이 없었다. 원래 며칠 남지 않았던 내 핸드폰은 로밍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곧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돌아가기는 개뿔. 두만강 건너갈 뻔 했다가 다시 넘어왔구만.
김민혁이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내 사정을 이야기하면 뭐라고 할까. 걸레? 미친년? 쓰레기? 그런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슬픈것은, 내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민혁을 바라보며 말할 것이다. '왜 날 버렸어?'라고.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만일 그 때 내가 캐나다로 가지 않았다면,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원만하게 끝났을 것을.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었는지 현기증이 나면서 손이 떨려왔다. 크리스마스까지 약 10분 남짓. 만나자고 하면 대부분 만남의 광장이니까, 그 한 구석에서 3시간 동안 앉아있었다.
오면, 어쩔까. 욕을 한 바가지 뒤집어씌워서 울리는 것부터 시작할까? 왜 왔냐고 닥달하며 '이 빌어먹을 자식아'라고 소리쳐서 기를 죽이고 시작할까? 아니면 멱살을 잡고 때려서 눕혀놓고 말을 들어볼까? 어쨌든 난 곱게 대화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신 때문에 난 여기까지 망가졌다고, 일단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양지은, 맞지?"
이미 텅 비어버린 공항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저 정문 너머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밖에는 이미 가로등밖에 없었고, 달은 부질없게도 반달인데다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참이라 그다지 밝지 않았다. 부서질 것 같이 흐릿한 수은등 때문에 그림자가 일렁이며 이쪽으로 오고있다는 것을 알렸다. 청소하는 직원도 사라진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작은 소리였음에 분명하지만 공항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 안되겠어. 나 진짜로 좋아하나봐.
김민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알았다. 이 남자는, 10년전 그대로, 나와 같이 마음이 죽은채로 살고있다고. 여기에 있는 것은 껍질 뿐이니까, 아무리 설득하고, 협박해도 바뀌는 것은 껍질 뿐이지 그 본질과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을 원망할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김민혁이 왜 과거에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억지로라도 시니컬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겠지. 그 눈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도 그 만큼 망가졌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어지간히 부서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넌 여기까지 부서졌어'라고 선고받은 것 같아서 참을수가 없었다.
"안녕."
정신을 차리자, 나는 김민혁에게 달라붙어서 울고있었다. 김민혁은 내 머리에 손을 올리려다가 그만 두었다. 만일 손을 올렸으면 난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날 10년 전에 버렸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권리로 날 위로하겠다는 거야...! 진짜로 위로해주고 싶었다면, 나를 떠나지 말았어야지...!
대화는 없었다. 행동도 없었다. 그저 김민혁은 나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시간 가까이 울고나서 향한 곳은 10년 전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패스트푸드점이었다. 역 앞에 있어서 24시간 했던, 그 패스트푸드점. 여전히 손님이 와도 심야시간에 오면 눈치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말이지만, 택시를 타고 왔다. 김민혁은 아직 자신의 차를 마련한 것 같지 않았다.
"감회가 새롭네."
"아직 답을 듣지 못했는데. 당신, 진짜 양지은 맞아?"
"응."
김민혁은 그제서야 약간 긴장을 풀며 외투를 벗었다.
정말 변하지 않았다. 그 검은색 오리털 외투도 그렇고, 검은색 일색인 옷차림도 그렇고, 눌러쓴 갈색 모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많이 변했네."
김민혁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10년이니까."
"미안해. 그때 보내지 말았어야 했구나."
김민혁은 콜라를 빨대로 마시면서 말했다. 나는 시차 때문인지 식욕이 전혀 없어서 햄버거를 잡았다가 다시 놓았다. 왜일까. 미국에 팔려갔을 때는 햄버거만이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았는데.
"원망하지, 나를?"
"응."
하지만 그런 마음은 김민혁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햇살에 눈이 녹듯이 사라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10년 전의 김민혁은 굉장히 믿음직했으니까? 그때의 김민혁은 냉철했지만 내게 친절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나를 도와준다고 단정지은 것일까?
"미안해."
항상 김민혁은 과도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 정도 사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항상, 항상 후회했던 일이다. 10년 전에, 그 비행기를 타지 말 것을. 그래서, 만일 김민혁이 내게 사과한다면 어떻게든 말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었다.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응."
김민혁은 그 죽은 것 같이 공허한 눈동자를 나에게 돌리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그럼 날 다시 돌려놔. 10년 전에, 그 비행기를 타기 전의 양지은으로."
내 말에 김민혁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라도 괜찮냐? 그냥 여기서 때려 죽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데."
"때려 죽인다면 기분만 풀리지 현실적인 이득은 없어."
김민혁도 햄버거를 먹을 생각이 없는지 포장을 뜯다가 다시 싸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럼... 오겠어? 도피의 끝까지."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이미 내겐 일상이야. 너무 오래되어서."
"서로... 너무 오래 도피한 것 같네."
"그럼, 상황에 맞설거야?"
"아니. 이미 이건 내 삶의 방식이야. 수험생이 시험보기 하루전에 공부방식을 바꾸는 짓은 하지 않겠지."
밖에 나오자 찬 바람이 뺨을 후려갈겼다. 그래도 따뜻했다. 이 고향이라면, 적어도 한 명 정도 의지할 사람은 있겠지.
"저기, 김민혁."
"응?"
"나를 도와줬던 네 번째 이유는 뭐야?"
"글쎄. 남들보다 아주 약간 더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원미영이 전화를 했을 때, 그때는 내가 한국에서 쓰던 휴대폰에 대한 요금을 낼 수 있을 수준의 소득이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고, 그 이후로 나는 휴대폰이라는 것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실수라고 하면, 10년 전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타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김민혁의 말이 맞았다. 가족들의 사업욕은 한 번 정도 말아먹는 것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갖고있지 않다. 몸도, 마음도, 미래도, 과거도, 현재도, 가족도, 돈도, 명예도, 지식도, 학력도, 인맥도, 행복도, 절망도, 불행도, 증오도, 애정도,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 마음도 내가 갖고있지 않다. 원인은 말할것도 없이 그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왜 비행기를 탔을까.
사회적 통념에 현혹된 것이다. 가족은 뭉쳐있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런 싸구려 대중매체가 전하는 말에 세뇌되어서 나는 그릇된 결정을 내렸다. 좀 더 신중하게, 목적을 생각해야 했다.
가족을 만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때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면 행복했을까? 행복했을 것이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장식만 잘 해 놓아서 겉보기에 좋아보이는 패는 사실 꽝이었다. 아니, 꽝일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보장된 행복을 버리는 것 자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가. 차라리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언젠가 김민혁을 만나지 않더라도 현선우라는 조력자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언젠가 김민혁은 만났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나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김민혁을 믿고 비행기를 탔던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선택을 권유한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아니, 질 수 없었다. 이 인생은 내 것이고, 그 선택은 내가 한 것이고, 따라서 책임을 공유할수는 없기에.
이 이야기를 듣고있는 당신, 행복을 원하는가? 물론 나는 행복이 뭔지 잊어버려서, 정확한 조언을 해주기는 힘들다.
다만 그대, 불행을 피하고 싶다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삐를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말라.
SOLITUDE (고독) - Ella wheeler wilcox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땅에선 환희는 빌려야만 하고,
고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득하니까.
노래하라, 언덕들이 응답하리라.
탄식하라, 허공에 흩어지고 말리라.
메아리들은 즐거운 소리에 춤을 추지만
너의 근심은 외면하리라.
기뻐하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슬퍼하라, 그들은 너를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너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너의 고통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친구들이 늘어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그들을 다 잃고 말 것이다.
네가 주는 달콤한 술은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을 한탄할 때는 너 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축제를 열라, 그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나리라.
굶주리라, 세상이 너를 외면할 것이다.
성공하여 베풀라, 그것이 너의 삶을 도와주리라.
하지만 아무도 죽음은 막지 못한다.
즐거움의 방들엔 여유가 있어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는 한 줄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