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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09.07.30 23:20

고양이가 울었다 ~middle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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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part. -도피-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언제나와는 달리 하루 전부터 책상에 머리를 부딫치지 않고도 일어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머리를 부딫치기 직전에 멈추는 것이지만, 그래도 혹은 아주 약간이나마 줄어들어있는 것 같았다. 어제는 내가 책상에 머리를 부딫칠 줄 알고 그 소리에 대비해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내가 멀쩡하자 꽤 의외였는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점점 이 고양이가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 있다고 느끼는 것은 기분탓일까.


3일이 지났다. 그리고 절망스러울 정도로 뼈저리게 김민혁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현실감이 희미했다.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하루 후에 살아있을지, 그 따위 것은 안중에 없었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 현재에 눈을 두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 처방이 굉장히 대단해서, 이렇게 부유하듯이 살아가는 것 뿐인데도 마음이 편안했다.


단점이 있다면 게을러진다는 것 정도. 배가 고프면 봉지라면을 부숴먹는 것으로 식사를 끝내고, 바로 다음 달이면 생활비가 막막한데도 느긋하게 '비가 오니까'라는 핑계로 집안에서 뒹굴거렸다.


전화기는 몇 번 울렸지만, 부모가 없는데다가 보증인도 없어서야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만일 사창가에 들어간다고 해도 지금 같은 마음가짐이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물 속에 있는 것 처럼 하루하루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가 오는 대낮에 켜진 가로등을 보고 생각했다.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생활도 나름 할만 하다고.


될대로 되라지. 이래보여도 여자인데다가 세상에는 여자라고 하면 죽고 못사는 족속들도 꽤 있는 것 같으니까.





큰 게시판에서 열심히 뭔가를 찾고있었다. 왼 손에는 자신의 이름과 숫자가 몇 개 적힌 종이를 들고. 순행식으로 배열된 숫자들을 따라 점점 내려가다보니 내 번호 바로 앞 번호가 맨 아래쪽에 적혀있었다. 다시 위쪽을 보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믿지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다음 열에 적혀있는 번호 중 첫번째 숫자가 자신의 것이기를.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웃었다.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 꿈이라는 것을 꿈 속에서 실감했다.


그것이 슬퍼서 또 울고, 잠에서 깼다.


짐을 꺼내놓다가 살짝 잠이 든 것 같았다. 꿈의 파편만이 머릿속에 남아 혼란스러웠다.


간단 명료하게 말하면 대학에 붙은 것 뿐인데... 이미 꿈 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실감했으니까 나는 합격을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느꼈다는 걸까.


기분이 나빠졌다. 일단 합격을 비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먼저 기분이 나빠졌고, 또 내가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그런 생활을 바라보자 아쉽고 분했다. 다음에 김민혁을 만나면 어떻게 자신이 버린 생활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김민혁이 대답하기 싫다면 그걸로 전부지만, 그런대로 착실하게 대답해줄 것 같았다.


[야옹]


고양이가 울었다.


근 3일 사이에 자세하게 안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이 고양이였다.


검은색인데다가 나를 좋아하고, 과자 부스러기를 비롯해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싫어하며, 비가 오는 밖에 나가도 전혀 젖지 않은 털로 내 방에 들어오는 고양이었다. 종합적으로, 굉장히 불가사의한 생물이었다.


테니스공을 좋아하는 것인지 내가 공을 손에 쥐기만 하면 놀자고 달려드는 것으로 보아 내가 싫지는 않은 모양인데, 꼭 깨울 때에는 내 얼굴에 난 상처를 핥았다. 상처도 꽤 깊게 난 것인지 이미 아물었을 것 같은데도 고양이가 핥으면 피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약간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고양이 덕에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밥은 대체 뭘 먹는 건지, 내 방의 잠긴 창문을 어떻게 여는 것인지, 이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한가지. 이 고양이는 자신을 나와 동격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감인데다가 태도에서 유추하는 것 뿐이니까 100% 지당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나를 좋아하는 것 뿐이지 내 소유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내가 골려줄 작정으로 왔다갔다하면 두 세번만에 질려버려서 내가 이리저리 다니는 것을 웅크리고 멀거니 바라보았다. 거기에 테니스공을 벽에 튀기거나 해서 어지럽게 하면 아예 포기하고 드러 누워버렸다. 일종의 규칙같은 개념이었다. 나는 어떻게 놀아주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 그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고양이는 나를 대해주지 않았다.


2일 정도 전인가, 이 고양이는 사람의 마음과 굉장히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신과 매우 가까웠다. 대부분의 경우 내 편이 되어주고, 어느 정도의 규칙에 맞게 행동하면 응해주었다. 내가 가는 어디에나 있고, 또 어느때는 자기 멋대로이지만 끝내 내게 돌아오는...


이 고양이와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존재라는 것과, 내 마음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내 마음처럼 복잡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라면이 거의 다 떨어지고 있었다. 건너편에 있는 마트에 가서 사면 5개 묶음의 멀티팩 하나에 1200원인가 했었다. 굉장히 싸니까 이번에 갈 때 들 수 있는 만큼 사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돈을 꽤 들고나왔다. 그리고 중대한 사실에 직면했다.


우산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또 하루를 더 방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누워서 양을 세리고 했다. 고양이도 거의 15시간 가까이 자는 내 생활에 익숙해진건지 내가 바닥에 눕자마자 몸을 둥글게 말아서 잘 준비를 했다.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양 세마리, 양 네마리, 양 다섯마리... 원래 이 '양을 세는' 최면법은 영어인 'sheep'과 'sleep'의 철자와 발음이 비슷한 데에서 오는 최면이었다. 그 증거로, 한국인인 내가 양을 약 2만마리 넘게세어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내가 너무 많이 자서 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지만.


대략 23000마리째의 양을 세었을 것이다. 하지만 25000마리를 센 기억은 없으니까 아마 그 사이었을 것이다. 비가 그치기 시작한 것을 창문 너머의 처마가 알려주고 있었다. 슬슬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라면을 사러 갈 생각이었다. 고양이는 옆으로 한 바퀴를 굴러도 일어나지 않으니 그냥 두기로 했다. 분명히 옆으로 구를 때 꼬리가 움찔거렸으니까 가기 귀찮은 것 같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더 따라붙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판단해서 그냥 지갑만 챙겨서 나오기로 했다.


올라오는 길에 비해 내려가는 길은 굉장히 쉬운 쪽에 속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골목이 집으로 가는 골목인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신림동의 뒤편에는 아주 약간씩만 다른 골목들이 수도 없이 존재했다. 얼핏 세어본 것 만으로도 손가락에 발가락을 다 합쳐도 세지 못 할 정도였다. 집을 구할 때에도 주인이 차가 없으면 오지 못한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까, 아마 내가 길치인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1주일동안 생존을 위협받는 환경에 있어도 즉사하지 않는다는 전제만 있다면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어서 올라올 때는 고양이만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척척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내려갈떄의 난이도가 쉽다는 것을 감안해도 꽤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마트에 들린 김에 여러가지 사갈까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돈도 부족할 뿐더러 애초에 필요한 것들이 없었다. 과자같이 사치품은 일단 기각. 식료품은 라면으로 한정시킨다고 했으니 필요한 것이라고 해봐야 난방기 정도인데, 그 빌어먹을 것은 너무 큰데다가 또 전제산을 털어넣어도 못 살 정도로 비쌌다. 거기에 이불도 있어서 입이 돌아갈 정도로 추운 것도 아니었다. 일단 여자니까, 생리용품이라거나 약을 사보려고 했지만, 역시 그만두었다.


생각해보면 두 달 전부터 생리가 멎어있었다. 정신적인 압박인지, 아니면 먹는 것이 갑자기 부실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정하던 주기가 비뚤어졌나보다, 라고 생각할 때 즈음에는 이미 두 번 이상 잠잠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리로 감기에 걸린 것 처럼 몸 상태가 나빠진다면, 정말로 다음 달에는 길거리에서 객사할지도 몰랐다. 의욕도 없는데 능력까지 없어지면 답이 안나올 일이었다.


결국 라면만 30개를 사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무료로 배포하는 종이상자를 주워담았다. 애초에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일을 하고있거나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까 굉장히 한산해보였다. 바꿔말해, 내가 마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현상금이라도 걸린 것 처럼 여러가지 의심을 받고있는 것 같았다. 신경이 날카로워 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글쎄. 저쪽에서 남자들이 나를 힐끗 쳐다보며 서로 귓속말을 하는 정면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라면이 들어있고, 겉에는 감자칩 상표가 인상적으로 붙어있는 종이박스를 들고 산 비탈을 휘적휘적 걸어갔다. 역시 올라가는 길은 꽤 힘들었다. 빗길로 미끄러운데다가 공기가 탁해진 것 같은 느낌을 제외하더라도 일단 걸은 거리가 있으니까 굉장히 힘들었다. 그게, 나는 아직 길을 완전히 알지는 못한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30분 정도 걸은 나는 다시 언덕의 시작부분에 있었다.


그리고 언덕 위쪽에서 반쯤 찢어진 교복치마를 입은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약간 특이한 패션이었다. 걸음걸이도 비틀거리고 있고, 반은 묶여있고, 반은 풀려있는 머리카락도 전체적으로 어떻게 끼워맞추자면 그리 심각해보이지는 않았다. 어젯밤에 술이라도 먹었나보지. 그렇게 생각했다. 종합적으로, 그리 신경쓸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에 나를 바라보면서 접근할 때부터 무의식중에 위험을 느꼈다.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도와주세요."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향해 쓰러졌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못 본척 하고 넘어가기에는 지나다니는 행인이 너무 많은데다가 심하게 머뭇거려서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약 1분 정도 그 자리에 못박혀 있으면서 생각했다. 일단 입고있는 차림이 교복이었다. 아주 집을 나온 사람이 아니라면 교복을 입고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즉, 나와 달리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고, 장래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민혁도 나를 도와주는 이유 중 하나가 미래에 내가 거물이 될지 모르니까, 라고 했다. 일종의 투자, 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입 싹 닦을 정도의 위인이 왜 이런 곳에서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일단 대충 수건으로 얼굴과 옷에 묻은 진흙을 털어주었다. 라면이 든 상자는 결국 식당에 맡겨두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후회했다.


그냥 차라리 119에 전화를 할 걸. 조금만 더 생각하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이미 지나간 버스였다. 후회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이미 이 곳은 차는 커녕 사람도 다니기 힘든 골목이었다. 애초에 주소도 몰랐다.


고양이는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열이 펄펄 나는 이 낯선 사람을 내가 가져온 난로로 착각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러는 건지 어쨌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좋은 의미로 신경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책상 위에서 바닥으로 내려올 때 걸핏하면 누워있는 사람의 머리나 몸 위로 내려왔다. 푹신하다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아파보이는 사람에게 그러는 것은 굉장히 실례라고 생각했다.


종합적으로 얼굴에 상처가 몇 개 생기고 미간에 몇 번인가 주름이 잡혔지만 그래도 고양이는 이렇다할 해는 끼치지 않았다.


문득 생각났다. 거기서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냥 라면박스를 들고와서 고양이와 흐느적거리면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행인이 많거나 주저했다는 것은 전혀 이유가 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할 정도로 나는 치밀한 성격이 되지 못했다. 그저 나는 걱정스러웠다.


내가 한 달 후에 저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방세도 못 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리고, 그리고 길거리에 쓰러져서 아사(餓死). 그리 신빙성 떨어지는 결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놔둘 수 없던 것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내가 베푼 선행이 딱 적절한 시기에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잡생각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일단 쫄딱 젖은 이 사람을 담요로 돌돌 말아서 어떻게든 체온을 유지시켰다. 체온계가 있으면 더 정확히 젤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길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니까 더 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문득 이 사람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갔다.


살인누명을 쓸지도 몰랐다. 이 사람은 굉장히 부유한 집의 딸이라서 경찰과 연줄이 닿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돈에 눈이 멀어서 어떻게든 나에게서 돈을 받아내려고 고소를 취하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지만, 나는 돈이 없으니까 뇌에서 발톱까지 전부 장기매매로 팔려서...


"콜록."


기침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일단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침착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보나마나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일 것이다. 이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가, 가까스로 사귄 친구에게 놀러갔다. 그리고 이 복잡한 골목을 헤메다가 쓰러진 것이다. 그리 신빙성 없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우울해졌다. 괜히 데려온 것 같았다. 그냥 라면이나 부숴먹을걸. 쓸데없는 잡생각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덤으로 방은 너무 좁아서 두 명이 누울수가 없었다. 다리가 살짝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 구석에 다리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쪼그려 앉아있으니 얼마 안가서 쓰러졌던 사람이 눈을 떴다. 고양이는 나보다 그것을 일찍 알아차리고 가만히 있던 꼬리를 위로 치켜올렸다.


"여긴..."


목이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였다. 무슨 쇳소리를 착각한 것으로 생각해서 사람의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 일단 내 고시원인데요."


그 사람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굉장히 힘들어보였다.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굉장히 폐가 되는 장면인 것을 알아챘다.


"아아, 그냥 있어도 돼요. 환자잖아요."


"감사합니다."


굉장히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환자는 절반씩 눈을 감기 시작하더니 이내 잠들어버렸다. 심각하게 아픈 모양이었다.


어쩌는 편이 좋을까. 아는 사람중에서 의사가 있을리 없고, 감기약을 사러 내려가기에는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볼까? '제가 환자를 돌보고 있는데 약이 없어요. 약국에 들러서 종합감기약 하나만 사와주실래요? 아, 저도 제 주소를 모르니까 알아서 찾아와주세요.'


"재미없어."


꼬리털을 손질하던 고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빗줄기는 어느새 굵어질대로 굵어져서 번쩍거리면서 번개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빨리 갔다왔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나도 드러누울 뻔 했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손을 벌릴만한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다시 손 벌린다는 것이 상당히    미안하고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없으니까 남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여보세요... 김민혁?"


[응.]


길게 끄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도 자고있던 것 같았다.


"그게... 나 사람을 주웠는데..."


이 이후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거지? '감기약 사들고 와'라고 말하면 어떻게든 될까?


[그래서 뭐. 장기매매업자한테 넘길테니까 번호 달라고? 충고하는데 넘기는 과정에서 너도 위험하다. 그냥 유흥주점에 팔아넘겨.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다 받는 것 같으니까.]


굉장히 전문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말하는데에 거침이 없는데다가 귀찮다는 듯이 반사적으로 내뱉고있는 것 같은데 관록이 느껴질 정도로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 몇 번인가 팔아본 거 아닐까? 애초에 이런 고시원에 사는 사람이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10만원을 덜컥 내밀리도 없고.


[그럼 됐지?]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고 끊으려 했다.


"아아아, 잠깐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그... 정말정말 미안한데, 아는 의사 있으면 한 명만 소개시켜줄래? 이 사람 정말 많이 아파보여."


[그 근처에 이비인후과... 는 문을 닫았지, 저번달에. 이런. 돈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119에 말하면 되잖아.]


"주소를..."


[아, 그거 또 굉장히 문제되네. 그 언덕길은 구급차도 못 올라가니까.


증상은 어떤데? 숨 넘어가고 있어?]


"아니. 아직. 그런데... 열이 굉장해."


김민혁은 내 말에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렸다.


[나도 얼핏 주워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열이 나면 괜찮아. 아직 몸이 저항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항체나 백혈구나 적혈구... 는 아니고. 어쨌든 몸의 방어체계가 잘 작동해서 체온이 올라가는 거니까 괜찮아. 오히려 떨어지면 저항력 자체가 없다는 것이니까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만... 감기로 죽는 사람도 있잖아. 심각해보인다니까. 방법이 없을까?"


[지금 가고있어. 15분만 기다려. 202호 맞지?]


"응. 문 열어둘게."


그렇게 말하고 문고리를 약간만 돌려서 잠금을 풀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김민혁은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고 있었다.


[그냥 잠궈둬. 노크할테니까. 이전과 같은 일이 있으면 나도 언제까지나 신사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할 것 같거든.]


김민혁이 말하는 '이전 일'이라는 것이 뭔가 생각해내고 멋대로 얼굴이 빨개졌다. 김민혁은 내 모습이 상상되는지 유쾌하게 웃었다.


[아, 그런데 그냥 약국 가서 약 달라고 하면 되는거 아냐? 너도 나한테 지금 약 사달라고 전화하는 거 아냐. 나는 안 사갈거지만.]


"우산이 없어서... 그런데 약을 안 사온다니 무슨 소리야?"


[그 사람 영양상태는 어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겠는데."


[무턱대고 썼다가 약을 못 받아들이고 죽으면?]


"그런 경우가..."


[있어. 있으니까 그래. 뜨거운 레몬티랑 음료수 사가니까 너는 물수건이나 준비해줘.]


있나? 진짜로? 감기로 죽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감기약에 죽었다는 사람은 못 본 것 같은데.


어쨌든 전화를 끊고 수건을 빨러 화장실로 향했다.




"...... 난로?"


김민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오늘 쓰러진 사람은 굉장히 체온이 높았다. 김민혁은 이마에 손을 얹어보고 그런 감상을 말했다.


"사람이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무의식중에 반박했다. 김민혁은 내 말에 신경을 쓴는건지 마는 건지 그저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깨우자. 의사는 아니지만 감기에 대한 것 만큼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이 있거든. 의사한테."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며 검은색 오리털 옷을 벗어두었다. 역시 비가 세차게 오는 것인지 무릎 아래쪽은 한 눈에 보기에도 심하게 젖어있었다.


"그냥 의사한테 데려가는 편이..."


"그럼 종합병원 응급실로 모실걸. 그리고 돈이 없는 우리는 문전박대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까전에 한 말은 뭐야? 감기약으로 죽는다니?"


무의식중에 호기심이 들었기에 말했다. 김민혁은 환자를 흔들어 깨우려다가 내 말에 그만두었다.


"자. 설명해줄게. 너 병원가서 감기약달라고 하면 보통 감기약 뭘 주냐?"


"나는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약. 다섯개 정도."


김민혁은 좋은 동네에 살았다면서 나를 부러워했다.


"어쨌든 다섯개라고 해보자. 어떤 교육방송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중에 감기에 대한 처방으로 알약 10개를 처방하는 장면이 나와.


항생제 두 알, 소염효소제, 항 히스타민제, 진해거담제 세 알, 진해제, 진통소염제, 소화제.


다 필요할까?"


"필요하니까 주겠지."


필요하지 않은데 주면 그게 의사야?


"그래? 유럽에서 미국까지 의학기술이 우리나라보다 더 떨어진 나라를 둘러보는 장면이 그 이후에 나왔는데 말야, 놀랍게도 같은 증상의 환자에 대해서 어떤 약도 처방하지 않았어.


그 말은 즉, 쓸모가 없다는 거지."


김민혁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비관적으로 웃으면서 시선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감기 바이러스는 실제로 2만종이 넘어. 변종까지 합치면 모두 센 기록이 없어. 거기에 독감과 감기는 서로 레몬과 오렌지 같은 관계야. 서로 과일이라는 공통점만 있다 뿐이지 서로 같은 부분은 전혀 없거든.


항생제? 독감의 주된 원인이 세균이 아니라는 것은 60년대에 밝혀진 이야기야. 물론 세균성 감염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 경우는 감염된지 3일도 되지 않아서 합병증이 온대. 그러니까 깨우려고 한건데."


"아... 그래."


"좀 더 설명해주면, 미국에서 실험을 했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그룹과 독한 감기약을 준 그룹,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짜약을 준 그룹을 놓고 어느 쪽이 더 빨리 감기가 낫는지 알아봤어. 결과는 재미있게도 전부 다 똑같이 나았다고 해. 뭐, 지상파 TV에서 하는 말이니까 확실할거고.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덧붙일게.


1969년에서 2006년까지 54명의 어린이가 감기약의 일종인 충혈완화제 복용 후 사망했고, 69명의 어린이가 툭하면 처방해주는 항 히스타민제 복용 후 사망했어.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정청... 이라는 곳에서 발표했고.
감기약 복용 후 긴급치료를 받은 어린이의 수는 7천명이 넘어.


무엇보다... 감기약은 비싸."


그거 또 현실적인 문제구나. 앞에 말한 의학적인 지식같은 것 보다 일단 그 말이 심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니까, 만일 네가 이 사람을 살아있는 채로 두고 싶다면 나는 감기약을 사오지 않을 작정이야. 알아들어?"


"응."


김민혁은 환자를 깨웠다. 그 사람은 사람이 늘어난 것이 신기하지 몇 번인가 눈을 깜박거렸다.


"안녕하세요."


김민혁이 먼저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환자는 어떻게든 일어나서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상황을 모르는 채로 그 소리를 들었다면 나는 아마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양지은. 이 사람 이름이?"


"원미영이라고 해요."


환자는 이름을 모르는 나 대신 대답해주었다. 그런 이름이었구나.


"좋아. 어쨌든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보이니까 원한다면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 줄 수 있어. 솔직히 감기에는 약을 써봤자 낭비라는게 내 지론이지만."


"병원은... 안돼요."


원미영은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참을성 없이 물어보았다.


"어째서요? 그렇게 아픈데."


"실종신고가 되어있어서..."


원미영은 오른손으로 명치를 누르면서 말했다.


"실종신고랑 무슨상관..."


"머리 좀 굴려. 녹슬겠다. 실종신고 되어있으니까 보험처리도 안 될거고, 여차하면 경찰이 달려와서 소년원 행이라고. 못해도 청소년 보호소는 가겠지.


그런데 실종신고... 라고 하면 당신도 가출?"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돌려서 김민혁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김민혁은 당신'도'라고 말했다. 그 말은 즉... 자신도 가출을 해서 여기에 왔다는 것이겠지.


"네. 15일 정도 되었어요."


김민혁은 조용히 코로 길게 숨을 내쉬면서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집에 들어가는 편이..."


"너 같으면 갈 수 있겠... 음. 너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거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고양이가 발바닥을 핥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거에요."


지금까지와는 달리 원미영이 내뱉은 말은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더 쉽게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분노하고 있었다. 마치 여기에 그 대상이 있으면 죽이기라도 할 것 처럼.


"뭐, 그건 당신 마음이고."


김민혁은 그 살의(殺意)에 가까운 뷴노를 간단히 받아넘기며 말했다.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어.


"미안한데...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길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로 아픈 병이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않은 것 같고, 이런 추운 방안에서 있어봐야 나을 병도 낫지 않을 것 같았다. 보통 이 상태라면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방 안에서...


원미영은 내 말에 동의할 수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원미영은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했다.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화내지 말라고. 누가 뭐래도 여기 있는 양지은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말 한번 잘못했다고 화내면 좀 슬프지."


"말을 잘못했다니 무슨..."


"나중에 설명해줄게. 그냥 입 다물고 있어."


김민혁도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어쨌든 이거. 선물이니까 이걸로 좀 봐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캔을 내밀면서 김민혁이 말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 따뜻한 침대에 누워서 가족의 간호를 받는 것이 보통일텐데.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감사..."


원미영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십수번의 기침을 했다. 만약 피만 섞여나왔다면 분명한 폐렴환자일텐데, 그저 감기인지 피가 섞여나오지는 않았다.


"됐어. 거기 싫다는데 등 떠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이 인간은 좀 덜떨어져서 사태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나중에 이야기 해둘테니까 비라도 그치면 가."


이번에는 내가 화났다.


"저기, 김민혁. 여기 내 집인데."


"그래서 내쫓고 싶은거야? 어이, 원미영. 이 집 주인이 너 죽이고 싶대. 가라."


"아니. 그런 것은... 그보다 왜 내 집을 네 것인 양 말하는거냐고."


"아, 그건 미안해. 하지만..."


그렇게 몇 분 동안 티격태격 하고 있으려니 어딘가에서 평온한 숨소리가 들렸다.


"뭐, 본인이 없어졌으니까 이 기회에 말해둘까."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사온 음료수 중 하나를 열었다.


"뭐를?"


김민혁은 의도한 것 처럼 꼿꼿이 앉아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방금 얼마나 상처가 되는 소리를 했는지 알아?""


"방금 전... 이면, 집에 돌아가라는 거?"


"응."


다시 울컥해버릴 것 같았다. 아니, 난 잘못한 것 없는 것 같은데.


"네가 한 말을 나한테 했다면 그 의미는... 나에게 죽으라는 말을 한 것과 비슷할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 말을 김민혁에게 한다면 죽으라는 소리와 같다는 걸까?


"어째서? 보통 사람들이라면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보통이잖아?"


"네가 말하는 '보통'이라는 것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는 거지."


"내가 틀린 말 했어?"


김민혁의 목 근처에 주름이 잡혔다. 아마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의외로 화나는데. 어쨌든 핵심만 말해보자. 네가 보기에 저 사람이랑 나랑 둘 다 '보통'으로 보이냐?"


"보통... 아냐? 조금 아픈 것 같아보이기는 하는데."


그 말이 굉장히 재미있었는지 김민혁은 낮은 소리로 웃었다. 굉장히 기분이 상한 것 같이 이를 악 물고 있어서 약간 무서워보였다. 폭발하기 직전의 폭탄을 콘크리트로 막는 기분이 이럴까. 곧 폭발할 것을 알고, 이러고 있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럴 수 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김민혁은 폭발하기 직전인데도 그저 화를 꾹 누르기만 할 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더 불안했다.


"요점은 이거야. 아무런 사정도 모르고 해결책도 내놓지 않은 상태로 그저 네 일반론만 강요하면 내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어서 진짜 죽을맛이라는 거. 그게 전부지."


이해는 됐다. 그러니까 내 일반론이 문제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는 있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 사정을 모른다고 해도... 그럼 여기에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김민혁은 고개를 돌려서 창 밖을 응시했다. 창 밖에 보이는 처마끝꽈 반대편 집의 회색 벽이 아니라, 그 너머의 하늘을 보는 것 같이 멍해보였다.


"죽는것보다 더 싫은 건 얼마든지 있어. 예를들면... 아무 사정도 모르는 사람에게 일반론을 강요당했을 때?"


"그렇게 싫어? 그래도 가족..."


"내게 있어 가족이라는건,"


김민혁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그 '가족'이라는 말에 반응했는지 순식간에 내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었다.


"그저 피만 섞인 남일 뿐이야."


절실하게 김민혁과 나의 차이를 알려준 한마디였다.


"마음같으면 그 인간들 피를 다 뽑아서 시궁창에 처박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낳아줬잖아."


더 말하려는 김민혁의 말을 끊었다. 그 비뚤어진 사상을 어떻게든 바꿔놓고 싶었다. 굉장히 불안정하고 침울한 사상인 것 같아서 보는 내가 다 안쓰러울 정도였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비틀려있는 것 같았다.


"태어나고 싶다고 한 적 없어."


"그래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하다고 느낀 적은 없어?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감사하라고? 미안하게 됐네. 적어도 내 기억에 행복했던 적은 없어."


"단 한 번도?"


"한 번도. 이렇게 힘든걸 알았다고 하면 난 태어나지 않았을걸."


할 말이 없었다. 믿을 수 없어,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진지한 태도였다. 오기로 말하는 농담을 할 것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리고 행복했었다고 해도 그래. 너는 티끌만한 감동을 얻기위해 축구공만한 위험부담을 감수할래?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그래도 고마워 할 것은 분명히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냐?"


"좀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라고. 너는 너를 괴롭힌 사람이 사탕 하나 던져준다고 해서 '아 고마워'라고 할 수 있겟냐?"


물론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이라기 보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상식이잖아.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콱, 하는 소리와 함께 목에 차가운 손이 닿아있었다. 숨을 쉬기가 곤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김민혁의 반대쪽 손은 주먹을 쥐고 머리까지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나 따위는 정말 간단하게 때려눕힐 수 있을 정도로 분노에 찬 눈빛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일반론은 제발 집어치워. 이 원미영이라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가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사람이야.


...... 목 잡은건 미안해. 불가항력이고, 반사적이었어."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원스럽게 왼손을 내 목에서 떼어주었다. 굉장히 놀라서 솔직히 어떤 말이 오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정확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보통'이라는 개념과 김민혁이 굉장히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네 집을 쓴다고?"


"응."


김민혁이 식권을 내면서 말했다. 비는 진눈깨비가 되어서 날렸다. 그것도 아주 약간 잦아들 무렵, 환자도 나도 변변한 식사를 하지 못했으니까 이전에 김민혁이 준 식권으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럼 어쩔건데? 거기에 있어봤자 환자한테는 치명적이기만 할 걸."


"저... 그래도..."


원미영은 굉장히 미안하다는 얼굴로 식탁을 바라보았다.


"갈 곳이 있다면 가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길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라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


원미영은 말이 없었다. 김민혁은 아직 화가 가시지 않았는지 묘하게 말에 가시가 있었다. 직설적인 화법에다가 장난기가 없어서인지, 계속 이전에 보여주었던 그 공허한 눈빛이 생각났다.


"남이 주는 호의는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대가가 있다면 그건 거래겠지만... 양지은은 모르겠어도 난 대가를 요구한 적은 없어.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


"하지만 너무..."


원미영은 끝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기는 식당이니까 먹는 데에 집중하자고.


아, 그리고 양지은. 일자리가 하나 있는데. 면접 볼래?"


반사적으로 숟가락을 멈추고 김민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물건판매야. 판매하는 물품종류는 장신구계통이고, 차와 티세트도 같이 판매하는 모양이던데. 나는 시간대가 안 맞아서 그만뒀어. 두 명 뽑는다나."


김민혁은 왼쪽 손에 젓가락을 들고 오른손에 숟가락을 들고있었다. 굉장히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양 손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거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한 거 아냐?"


"글쎄. 그렇다고 하면 어떻게 좀 넘겨봐야지. 학교는 집안사정상 휴확했다고 하고, 보호자는... 어쩔까. 시골에 있어서 연락이 힘들다... 는건 주민등록 등본 한 통이면 들켜버리겠지."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 동정이라는게 굉장히 편하면서도 또 불편하거든."


무슨소리야, 그건. 편하면서 불편해?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하다는 말입니까?"


원미영이 말했다. 그리 배가 고프지는 않았는지 많이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정확해. 나 같이 얼굴가죽이 강철로 되어있다면 또 생각해볼 문제겠지만."


"...... 알아들었어. 내일까지 대책을 세워볼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럼 그건 됐고. 언제부터 아팠던거야?"


김민혁이 내 옆에 앉은 원미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미영은 이미 다 먹고 식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반 이상 남은 나에 비하면 굉장히 빨리 먹은 것 같았다.


"대략... 한 주 정도 된 것 같은데요."


"...... 다른 짐은?"


김민혁이 지적하자 그때서야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다른 짐이 없는데다가 옷이라고는 이것 하나 뿐인 것 같았다.


"안... 가져왔는데요."


숟가락을 입가로 가져가려뎐 김민혁은 그 말에 굳어졌다. 나도 충격받았다. 그러니까 즉... 아무 대책도 계획도 없이 뛰쳐나왔다는 것 같았다.


"저런."


김민혁이 자신의 생각을 두 낱말로 표현했다. 정말 간결하지만 정확해보였다.


"어쩌지?"


"글쎄. 나 여자옷은 없는데."


나와 원미영은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동시에 웃어버렸다. 김민혁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웃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 웃는거야?"


김민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하하... 너무 진지해서."


"아, 그러냐. 어쨌든 도와줄 생각이 있으면 옷이라도 좀 나눠주는게 좋을 것 같은데."


"응. 그럴게."





"그러니까, 대책 없이 무작정 뛰쳐나온거죠?"


"네."


김민혁의 방에서 물어보았다. 김민혁은 잠시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좀 사온다고 오자마자 나가버렸다. 의외로 김민혁은 사람을 잘 믿는지도 모르겠다. 돈이고 통장이고 도장이고 다 있는 방에 다른 사람 두 명만 덜렁 남겨놓고 가버렸다. 무방비한 건지, 아니면 그만큼 나를 믿는 건지 잘 모르겠다.


"돌아가는게... 어때요? 그저 이러고 있으면 도피일 뿐이잖아요."


원미영은 딱히 답변을 하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도피였다.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계획도 없이 나왔다는 것이다. 대책 없이 나와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텐데. 그저 도피라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충고했다.


"도피라도 좋아요."


도피를 긍정하는 건가? 그건... 이상해. 그래서야 시간만 헛되이 보내는 거잖아.


"잘못되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뭐라도 좋아요. 그냥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저 시간만 버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이렇게 있고 싶어요?"


내 물음에 대답은 없었다. 그저 원미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뒤통수에 돌이 와서 부딫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좀 그만해라. 질리지도 않냐?"


김민혁이 고양이를 들어서 내 머리를 때린 것이다. 아마 고양이를 안고 온 기억은 없으니까 김민혁이 방 앞에 있는 것을 들고온 것이겠지만, 이거 정말로...


"아파."


진짜로 눈물이 찔금 나올 정도로 아팠다. 고양이가 이렇게 단단할줄은 상상도 못했다. 대체 어디로 때린거지?


"아프라고 했어."


김민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보고있던 원미영도 재미있다는 듯이 한 번 웃었다.


"그럼 어쩌라고. 아무 대책도 가진것도 없이 여기에 있어봐야 그저 도피잖아."


김민혁은 고양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묵묵히 검은색 비닐봉투에 있던 초콜릿바와 페트병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무시하지 말라는 뜻에서 나도 김민혁의 뒤통수를 한 대 치려 했지만 김민혁은 용케 알아채고 피해냈다.


"무시하지마."


"말해도 안 알아듣는 인간한테 말해봐야 헛수고잖냐. 이해해줘."


"그래도 난 이해가 안된다니까?"


"아... 뭐, 그래. 그래도 상관 없어."


"뭐?"


"생각해보면 너를 이해시킬 필요가 있나?"


얼이 빠져서 멍하니 김민혁을 바라보기만 했다. 애초에 상대를 해줄 이유가 없다는데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인간 말은 무시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아."


그래도 뭔가 이상해. 나를 빼놓고 대화가 진행될 수 있나? 애초에 대려온 것은 나인데?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경과야 어찌되었든 지금 전적으로 의지되는 것은 김민혁이었다. 내가 옆에서 돌아가라고 목청이 터져라 외쳐도 나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이런 처사는 무시당한다기보다 내가 쓸모없게 되는 것 같고, 거부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비는 진눈깨비로 바뀐 이후로 계속 진눈깨비가 되어있는지 밖에서는 차가 물을 끌고다니는 소리가 날 뿐 직접적으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빙수가 갈리는 것 같은 소리는 시원하면서도, 겨울이라는 때를 생각하면 의외로 싸늘해지는 소리였다.


어쨌든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르는 척 하면서 묻기로 했다.


"왜 날 이해시킬 필요가 없는데?"


김민혁은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원미영은 김민혁이 준 감기약을 먹더니 침대에 앉아서 벽에 기댄채로 졸고있었다.


"생각해보면 나와 저기있는 원미영이라는 사람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일탈을 의미해. 일상과는 너무 떨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넌 아니잖아. 서로 처지와 상황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유한한 시간을 까먹는건 좋은 짓이..."


"도피를 말하는거냐?'


김민혁이 책을 덮으며 말했다. 드디어 상대해줄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응."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마음이 절반이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이 절반이었다. 그래도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도피가 무턱대고 나쁜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어쨌든 네가 먼저 말해봐. 어째서 도피를 덮어놓고 나쁜거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에게 시간은 유한하고, 또 어찌되었든 직면할 과제라면 빨리 해먹는게 유리하잖아."


의외로 말해놓고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꽤 잘 말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김민혁이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유한해. 직면할 과제인 것도 맞고.


그런데 인간은 기계같지가 않아서, 그 직면할 과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할 수 밖에 없다는거지."


"그러니까 왜..."


"간단해. 마음에 여유가 없거든."


고양이는 김민혁을 거쳐서 바닥에 내려가기는 싫은 것인지 아래쪽을 보며 울기만 할 뿐 내려가지를 못했다. 침대로 뛰기에는 너무 간격이 넓었고, 바닥으로 뛰기에는 너무 높았다.


"여유?"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여유야. 나는... 뭐 지금도 도피중이라고 하면 할 말 없는데, 어쨌든 이 동네에 오고나서 3일 동안 아무것도 안했어."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책상 밑에서 접히는 낚시의자를 꺼내주었다. 등받이가 없어서 약간 불편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런 의자라도 앉아야 할 정도로 이야기가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거든. 내가 왜 여기에 있나 싶기도 하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보면 학교 가려고 뛰어나갈 것 같고. 받아들이지 못했던거지. 알아들어?"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잖아?'


"그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겠냐. 너도 그렇지 않아? 내가 처방법을 알려주기 전까지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힘든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난 잘거야. 내일 비가 안 오면 공사장에 가서 한바탕 뛰어야 할 것 같거든."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침대의 아랫부분과 벽 사이의 작은 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이렇게나 압축될 수 있구나, 하고 놀라며 시계를 바라보자 시침이 11 근처에 있었다. 그 말은....


"저거, 오전 아니었어?"


"비가 와서 아무리 밖이 어두워도 가로등은 보지 않냐, 보통?"


"아."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히 가로등이 켜져있던 것 같기도 했다. 창문을 찾아보았지만 김민혁의 방은 창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름에는 참 더울 것 같았지만, 벽에 걸려있는 에어컨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잘거야? 그럴거면 주인한테 맡겨뒀던 이불 꺼내올게."


김민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혁을 믿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내가 도와주기 시작했던 환자를 지켜주고 싶었다.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그리고 고양이는 방문을 긁고 있었다. 갑갑한 모양인지 나가려고 방문을 열심히 긁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방문이라는 것은 그 정도로 열리면 굉장히 곤란한 물건이라서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나는 팔을 뻗어서 문고리를 돌려주었다. 고양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밖에 생선이라도 떨어져 있는걸까.


창문도 없는 방에서 어떻게 한 눈에 문고리를 알아챘는가, 하면 불이 켜져있기 때문이었다. 어제는 불가피하게 비가 내려서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해도, 일단 조선시대면 서로 애가 있을 정도로 나이가 있는 남녀였다. 같은 방에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정도의 분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민혁은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약간 불쾌한 표정이었지만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켜두면 자신이 혐의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원미영은 계속 취침중이었다. 김민혁이 가져온 약이 얼마나 독했으면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처방전도 없을텐데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참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김민혁은 내가 문을 여는 소리에 눈이 뜨였는지 뒤척거리기 시작했다. 굉장히 예민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몸이 반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자명종은 없어보이는데.


"아, 원미영 말인데."


뒤쪽에서 들린 소리에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김민혁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머리를 긁으면서 일어나고 있었다.


"열은 그다지 높지 않았어. 쓰러진 이유는 오히려 저체온증이나 영양실조같아. 그것도 아니면 과로겠지. 저렇게 죽은듯이 자는 걸 보면."


김민혁은 온도가 올라가 있는 체온계를 흔들어서 수은을 내리며 말했다.


"아, 다행이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민혁은 반투명 유리로 둘러싸인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샤워를 할 생각인지 샤워기의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방문을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고양이는 자신이 할 일을 마쳤는지 다시 들어오려고 방문을 긁고있는 것 같았다. 열어주지 말까, 했지만 이 층에 있는 누군가는 고양이를 싫어할지도 몰랐다. 괜히 피해를 주는 것 보다 이상한 고양이를 껴안고 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김민혁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일탈이라고 했었다. 일상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1년 전이나 지난 지금도 일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서 퓨즈가 교체되니까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까 이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올 것 같았다.


김민혁의 말대로 나도 실제로 그랬지 않는가.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침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침착이라기보다는 그저 내던져놓고 될대로 되라는 식이지만, 가슴이 타들어갈 것 같은 조급함보다는 충분히 나았다.


그만두기로 했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타인의 인생은 타인의 것이다. 타인이 내 충고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내가 굳이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만난지 얼마 안 되었다거나 친하지 않다는 이유가 아니라,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견뎌낸 숙련자가 있었다. 무리하게 이것저것 지시하다가 틀어지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이불을 정리하고 책상 한 구석에 정렬되어 있는 초콜릿들을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기 보다는 그저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의식적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대략 다섯 개 정도를 먹어치우자 약간 현기증이 생겨서 그만먹었다. 얼핏 세어보기에도 20개 넘게 쌓인 양이었다. 다섯개 쯤 먹었다고 화 내지는 않겠지.


"나도 가보면 안돼?"


샤워실에서 막 나온 김민혁에게 말했다. 김민혁은 약간 수가 모자란 초콜릿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오늘 내가 면접을 보게 될 곳도 입사가 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면접을 본 적이 30번은 넘을 것이다. 이번에도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까 일단 이력서를 낼 수 있는 곳은 전부 다 알아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30kg짜리 벽돌을 등에 짊어지고 4층을 다닐 수 있다면."


"할 수 있어."


즉답했다. 30kg이 아니라 내 몸무게의 두 배가 되어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미없는 소리 집어쳐. 오기로 되는 문제가 아냐. 그걸 여섯시간동안 해야하는데?"


"할 수 있다니까?"


김민혁은 바지에 벨트를 매고있었다. 전혀 헐렁한 것 같지 않은 바지였지만 김민혁은 벨트의 끝 구멍까지 단단히 채워두었다.


"아, 그러셔. 됐네요. 과로로 죽을 일 있냐."


김민혁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 할때는 한다니까?"


김민혁은 조용히 서랍을 열어서 뭔가를 꺼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굉장히 건성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걸 노리기로 했다.


"알았어. 그러니까 이력서에 뭐 쓰면 되는데?"


"이름, 주소, 나이, 학력... 아니, 잠깐만. 그만 두라니까?"


김민혁은 반사적으로 말하다가 그만두었다. 김민혁이 말한 대로 노트에 몇 자 끄적거린 뒤 노트를 찢었다.


"이걸로 됐어?"


"재미없는 농담은 집어치워. 그리 좋은일도 아닌데다가 나도 할 수 있으면 깡그리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김민혁은 그렇게 투덜대면서 검은색 오리털 외투를 걸쳤다. 좁은 공간에서 압축되듯이 잔 것이 화근이었는지 김민혁은 굉장히 아픈 표정으로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어서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있었다.


"어쨌든. 붙을지 붙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내 그 말이 굉장히 웃겼는지 김민혁은 몇 번인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아, 그렇지. 뽑힐리가 없구나. 응. 좋아. 이력서 같은거 필요 없으니까 같이 가볼래?"


김민혁이 나오라고 권유하듯이 벽에 걸린 못에서 옷을 꺼내주었다.


"고맙기는 한데... 어째서 안 될 거라고 단정짓는 거야?"


김민혁은 옷을 다시 걸면서 대답해주었다.


"체격이 좋은 순으로 뽑거든."


이거 또 할 말이 없어지는데. 나는 아무리 보아도 미달체중이지.


"그보다 진짜 잘자네. 진짜 과로로 쓰러졌나봐."


원미영은 아직도 한쪽으로 누워서 죽은 듯이 자고있었다.


"누가 잡아가도 모르겠다."


무심결에 말했다. 김민혁은 나가려다가 무릎쪽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작은 동전지갑을 꺼냈다.


"아, 그거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거."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열쇠를 내밀었다. 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있자 김민혁은 아예 내 손에 쥐어주었다.


"저기 시체처럼 자고있는 사람 좀 봐줘."


김민혁을 다시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얼마 전부터 느낀거지만, 이 사람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닐까.


"사람을 너무 믿는 거 아냐?"


김민혁은 시계를 보더니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는지 침대 끝에 주저앉았다. 원미영은 그래도 일어나지 않았다.


"믿고싶어. 아... 뭐, 여기 있는 돈 다 합쳐봤자 5만원밖에 안될거고. 컴퓨터는 메모장 간신히 돌아갈 정도로 구식이니까 돈 안될거야. 그리고..."


김민혁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내 손을 양 손으로 잡았다. 놀란 나는 그 손을 빼려고 당겼다. 하지만 곧 나는 김민혁이 내 손을 잡았다는 것 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부탁할게. 너에게까지 배신당하는 건 싫어."


김민혁은 울고있었다.




원미영은 오후 두 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비나 진눈깨비는 어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다만 하늘이 재떨이의 담뱃재를 긁어보아서 뿌려놓은 것 처럼 흐렸다.


컴퓨터는 전원을 넣고 기다리자 곧 파란 화면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물론 알 리가 없었고, 끝내 전원버튼을 한 번 더 눌러서 꺼버렸다. 김민혁은 의외로 컴퓨터에 강한지도 모르겠다.


뭘 하고있는 걸까. 김민혁은 수입원이 있었다. 거기에 나는 다음달 생활비가 빠듯하지만 김민혁은 그럴 걱정이 없었다. 무료함에 미칠 것 같았다. 며칠째 뭐하는 짓인지.


뭔가 규칙적으로 할 일이 있다면 그것으로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없었으면 했다. 자유시간이 많아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만 죽이며 사는 벌레. 딱 그 짝이 맞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저 살아가기만 할 뿐. 종이로 접은 종이배도 나 보다는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12시 쯤 되어서 원미영을 깨우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깨워서 할 일은 없었고, 서로 주고받을 무언가도 없었다.


책장의 중앙부분에만 차있는 책을 꺼내보기도 했다. 다만, 0.1mm 샤프심으로 보이는 얇은 글씨체로 소설보다 더 많은 양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세 페이지까지 읽다가 정말 집중이 안 되어서 그만두었다.


종합해서, 나는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최근 몇일동안 급격한 환경변화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상당히 커진 것 같다.


[응. 그냥 맡아둬. 나중에 찾아갈게. 그냥 쓰레기통 밑에 처박아 두는 것도 괜찮아. 가져갈지 안 가져갈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김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료해서 미칠 무렵이었다. 김민혁의 목소리가 굉장히 지쳐보인다는 것은 이미 안중에 없었다.


"안..."


김민혁은 돌아오자마자 바닥에 정리되어 있던 이불에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덧붙여, 인사할 새도 없었다.


"안녕."


이불에 파뭍혀서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김민혁이 인사했다.


"안... 안녕."


얼결에 인사해버렸다.


"그런데... 안 쫓아낸다, 너?"


내가 한 말이 아니라, 김민혁이 한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김민혁의 의도를 전혀 모르겠다.


"왜 쫓아내야 하는데? 네 집이잖아?"


"집..."


김민혁은 '집'이라는 한 마디에 숨을 푹 내쉬면서 이불 속으로 말려들어갔다. 하긴, 집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많이 허름했다. 그건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달리 표현할 말은 없었다. 그러니까 김민혁이 회복될 때까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라고. 몇 평 안돼는 방 하나에 세 명. 나 같으면 진작에 쫓아냈을걸."


분명하다. 이 인간... 이렇게 말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엄격히 따지면 이거 성희롱인데.


"아, 재미없었냐? 미안. 피곤하니까 머리가 멍해져서. 근데 고양이는?"


"내가 키우는게 아니니까 나도 모르겠어."


오히려 키워지고 있다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이후로 대화가 없었다. 김민혁은 자는 듯이 엎어져 있다가 몇 분쯤 지나 문득 입을 떼었다.


"아, 그래. 그 녀석이었구나."


신음인지 탄성인지 모를 기묘한 소리로 김민혁이 말했다. 벽에 이마를 대고 자고있는 원미영이 움찔거릴 정도로 거슬리는 소리였다.


"혼잣말이야?"


"어어, 아마도."


김민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머리 쓰지않는 3D업종이니까 학력이고 뭐고 필요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공사판에 뛰어들려고 했다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날에는 지금보다는 꽤 멀쩡한 상태였던 것 같은데.


"그 고양이, 창문 자물쇠 고장난 202호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냐? 왼쪽 발로 능숙하게 창문을 열면서."


"응? 글쎄. 들어오는 장면을 본 기억은 없는데."


"그럼, 그 빌어먹을 녀석, 뺨 핥아서 사람 깨우지 않냐?"


"그런데."


김민혁의 말을 들으니까 뺨의 상처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넘어져서 바닥에 부딫친 것 치고는 꽤 오래가는 상처였다.


"마지막으로, 그 짜증나는 고양이 자식 말인데...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냐?"


...... 설마?


"아, 젠장. 빌어먹을. 그 고양이... 어쨌든 네가 키우는 거 아니니까 내가 잡아먹어도 상관 없는거지?"


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김민혁은 벌떡 일어나서 책장 위에 있던 부탄가스와 버너를 꺼내왔다. 덧붙여 은색의 취사용 냄비도.


"뭐... 하려고?"


"간만의 고기다. 고양이는 허리에 좋다는데... 양념 어떻게 하는지 알아?"


김민혁은 진심이었다. 책상의 구석에 있던 페트병에서 물을 냄비의 반 이상 채워넣고, 휴대용 부탄가스를 흔들어서 잔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굉장히 사악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아... 하지만... 왜? 그리 나쁜 짓은..."


"했어. 적어도 나한테는."


준비를 마친 김민혁은 한 손에 백과사전을 들고 방문 앞에 섰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고양이가 긁고있던 방문을 벌컥 열면서 주먹 두 개는 거뜬히 될 것 같은 두께의 백과사전을 내리쳤다.


야옹, 하고 고양이가 울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고양이의 네 발로 김민혁의 얼굴을 잡고있다는 것이고, 또 김민혁은 고양이를 떼어내려다가 완력으로 떼어내면 자신의 얼굴가죽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민혁은 순식간에 고양이로 된 가면을 쓰고있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풋."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상한 고양이 하나에 굴복해 아무짓도 하지 못하는 꼴이라니. 거기에 조금 마르기는 했어도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사람 아닌가.


"......"


김민혁은 졌다는 듯이 가려지지 않은 왼쪽 눈으로 이불을 찾아갔다. 김민혁이 이불에 엎어지자 고양이는 이불에 닿기 전에 김민혁의 등에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간만에 웃고있었다. 아무래도 얹혀있는 처지라서 소리를 죽이고 어깨를 들썩이는 정도였지만.


"젠장."


몇 분 후 김민혁이 무릎을 끌어당기고 한쪽에 쪼그려 앉아서 내뱉은 소리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서 킥킥거리고 있었다.


"...... 근데 넌 어째 멀쩡해보인다?"


턱에 발톱으로 긁힌 자국이 생긴 김민혁이 말했다.


"응? 뭐가?"


고양이는 미친듯이 웃고있는 나의 무릎에 올라와 웃고있었다. 의자에 앉아있어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지만, 고양이는 느긋하게 하품을 하면서 웅크려 있었다. 김민혁은 내 말을 듣자 고양이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사람차별도 하나, 저 빌어먹을 것?"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김민혁을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고양이는 귀찮다는 듯이 뒷발로 귀를 긁고있었다. 조금 과장되게 긁는 것이, 진짜로 무시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김민혁에게 물어보았다. 김민혁은 정리된 이불에 앉아서 이마에 손을 올렸다.


"저 고양이는 뭐가 그렇게 싫은지 나한테 계속 시비걸더라고. 얼굴을 할퀸다던가, 귀를 깨문다거나, 송곳니로 검지손가락을 문다거나, 비상식량을 물고 간다거나, 책상위를 어지럽힌다거나. 기타등등.


사실, 내가 10만원에 가까운 돈을 들이면서도 이 곳으로 오고싶던 이유중에 가장 큰 것을 들라고 하면 저 고양이겠지."


김민혁의 말을 듣고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멍한 표정으로 김민혁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남녀차별인가?"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고양이는 무시하듯이 고개를 돌리고 누워서 자는 척을 했다.


"젠장. 저 고양이만 없었으면 내 수면시간이 네 시간은 늘어났을텐데 말야."


투덜대는 김민혁을 그냥 두고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전혀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기분탓일까.


"안녕하세요."


그리고 원미영이 일어났다. 오후 세 시쯤 되어서. 이거 또 굉장한 늦잠이다.


"안... 안녕하세요."


사람은 이렇게까지 잘 수 있는 동물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머리 안 아픈가?


"저... 턱에서 피 나는데요."


원미영이 김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자에 앉아있는 내게는 보이지 않을 각도였다. 진짜로 피가 나는 것인지, 나지 않는 것인지 김민혁은 손으로 몇 번 턱을 쓸어주다가 무시해버렸다.


"사소한건 넘어가자고. 그런데 몸은 괜찮..."


김민혁의 말을 고양이가 막았다.


굉장히 사납게 울고있었다. 곧 뛰쳐나갈 듯이 몸을 낮추고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내 다리 위에서 하는 짓이라 약간 따끔할 정도였다.


"어이... 위험해보인다?"


김민혁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뜻은 '위험하니까 치워'정도일까.


김민혁의 충고대로 고양이의 몸을 안아들어 밖에 내놓았다. 문을 닫자 고양이는 맹렬하게 방문을 긁기 시작했다. 원미영은 꽤 충격을 받았는지 멍해져 있었다.


"어떻게 되어먹은..."


"확실해졌네."


김민혁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김민혁을 바라보았다.


"뭐가?"


"저 고양이가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는거."


김민혁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민혁은 입술을 깨물면서 원미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요?"


원미영은 아직 멍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당신, 자신을 싫어하고 있잖아. 안 그래?"


"네?"


갑자기 비약한 대화는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저 고양이가 내게 심하게 대하는 것이랑 당신한테 화내는 것을 생각해봐. 그런데 고양이 주인인 저 인간한테는 친절해. 어째서일까?"


그걸 알리가 있냐.


"주인이니까... 아닌가요?"


원미영은 내가 주인이라는 김민혁의 말을 철썩같이 믿는 것 같았다.


"낙제. 보충수업."


그리고 김민혁 선생님께서는 오답이라고 채점해 주셨다.


"아, 애초에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안되려나? 그럼 뭐... 그냥 알려줄게."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냄비와 버너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가정은 딱 하나야. 저 고양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모습대로 행동한다는 것. 그러면 전부 다 끝나."


"뭐야, 그게. 말도 안돼."


김민혁의 가설에 야유를 보냈다. 원미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몰라? 실제로 일어났던 예시가 여기 있잖아.


어쨌든. 잘 생각해보라고.


일단 양지은 너는... 네가 여기있는 원인은 네게 있지 않잖아. 그러니까 자신을 미워할리가 없지."


그럴지도 몰랐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80% 정도가 부모들이고, 나머지는 빚쟁이들에게 치여서니까.


"그리고 원미영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가장 보편적인 원인이잖아? 집과 부모가 싫어서."


원미영은 잔뜩 인상을 쓴 얼굴로 침대의 한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이상해. 만일 정말로 네 말이 맞다면 미워해야 할 것은 부모님이지 자신이 아니잖아."


김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는 맹렬하게 방문을 긁고 있었다. 원미영은 아직 열이 있는지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맨 처음부터 그랬다면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겠죠."


내 질문에 대답해준 원미영을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아직 꽤 갈라져 있기는 했지만 처음 보았을 때 보다는 더 나아진 듯 했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상적인 부모에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비틀어졌다. 하지만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대답이 안되잖아. 그럼 왜..."


"부모의 욕심에 부응하지 못해서."


두 목소리가 겹쳐졌다. 기세에 눌렸다고 할까, 아니면 너무 마음이 통하는 둘에게 질려버렸다고 할까, 어쨌든 약 1분 동안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간신히 꺼내놓은 한 마디였다. 원미영은 마른 기침을 약간 했고, 김민혁은 아무 변화도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 어쩄든 부모인 이상 자신의 자식이 잘 되리를 바라는게 당연한 거 아냐?"


나는 내가 생각하는 당연한 진리를 말했다. 하지만 김민혁은 재미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누가... 욕심을 부려도 좋다고 했죠?"


"에?"


원미영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얼빠진 소리를 냈다. 당연하잖아. 그 정도의 욕심도 없이 아이를 길렀다가는 분명히 망쳐놓지 않을까.


"아니, 욕심을 갖는 것 까지는 좋아요. 하지만 그것으로 타인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까요?"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부모라는 권위는 자신의 자식을 흔들 수 있는 권리가 되지는 못한다는 거지."


"그럼 말해봐."


좋아. 그 말이 맞다고 가정하자고. 그럼 너희들에게 질문하겠어.


"그렇게 부모님들이 강압적으로 행동했어?"


"응."


김민혁은 즉답했다. 하지만 원미영은 눈을 돌리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내 부모는 처음부터 착각했어. 내 인생을 자신들 마음대로 흔들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런 권한 따위는 없다고 온 몸으로 알려줬던 것 뿐이고."


김민혁의 과거형 말투에 의문을 갖고 질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과거에 있던 일로 치부하는 것에 모순을 느꼈지만, 김민혁은 아마 자신이 일 년 전에 죽었다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럼 어쩌라고? 아이를 '이렇게 키워라'라는 법전이라도 있으면 참 편하겠지만, 그런것이 없으니까 고민하는 것 아냐? 자기 아이가 고생해서 마음 편한 사람이 있겠어?"


"그래서, 너는 부모들이 자신 마음대로 타인의 인생을 흔드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부모들이 휘둘리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자신의 자유야. 하지만 자신이 분명하게 싫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인생을 뒤흔들려 한다면... 그건 지당할까?"


"어른이잖아. 많은 경험을 갖고 조언해줄 수 있잖아. 그럼 너는 부모님들이 단 한번도 옳은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조언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거에요."


김민혁이 주춤거린 사이에 원미영이 끼어들었다. 김민혁은 오른손으로 뒷목을 긁적였다.


"조언이라면, 거절할 권리가 있겠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겠죠."


"하지만... 하지만 부모님이니까 자식을 사랑하고, 그런 마음에서 하는 강압이라면..."


환자라는 것이 꽤 크게 작용했는지 큰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김민혁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자, 처음으로 돌아와버렸네.


전제를 빼먹지 말자고. 나는 그 강압이 싫어. 왜? 내 인생이거든. 실패든 성공이든 하면 내가 하는 거고, 책임도 내가 지는거고.


경험이 많으니까 나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할거라고? 아니. 그건 아니지. 인생이 그리 편한 시스템이 아니어서 말야,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길만 갈 수 있잖아. 즉, 내가 볼 때는 경험이 많다는 것도 좀 우스운 소리라는 거지.


어쨌든 다시 쳇바퀴 돌지 말자고. 아무리 많은 부와 권력이 있고,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고, 어떤 관계에 있더라도..."


김민혁은 다 먹은 초코바의 포장지를 둥글게 말아서 책상 위에 던졌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권리는 없어. 설령 신이라고 해도."


김민혁은 내 생각은 그래, 라고 덧붙였다.


나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고, 김민혁은 곧 나를 끌고 면접을 보러 갔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아주 약간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함박눈처럼 펑펑 쏟아지는 것도 아니라서 쌓일 것 같지는 않았다. 고양이는 언제나처럼 검은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면접은 최악이었다. 일단 후에 통보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아마 분명히 떨어질 것 같았다. 지금까지 60번 이상 떨어진 경력이 있는 내가 하는 말이다. 음. 이건 확실히 떨어진다.


"그런데 괜찮을까?"


돌아오는 길에 김민혁에게 물었다. 고양이는 앞서가다가 걸으며 등 뒤의 나를 쳐다보았다. 목뼈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뭐, 글쎄.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뽑는 것도 아니고. 반은 운이지."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원미영. 혼자 있잖아."


김민혁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약간 걸음이 늦어지더니 머리를 거칠게 흔들면서 재채기를 했다. 음. 이 고양이도 아프기는 한가보다.


"왜?"


"서로 알던 사이였어?"


김민혁이 되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왜 묻는거야?"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고. 누워있었는데 방안에 난입한 괴한의 칼을 맞고 사망했다... 고 해도 별로 상관 없잖아."


너무 매정하잖아, 이 인간.


"그건 그런데... 그래도 걱정 안돼?"


김민혁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 걱정은 하고있어. 내 돈 다 들고 튀지 않을까... 하고."


농담이라는 것은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웃어버렸다. 고양이는 한참 가다가 내 웃는 소리에 다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의외였나보다.


그런데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이 사람 나를 두고 나올때에는 눈물 뚝뚝 흘리면서 부탁했는데, 지금 누워있는 사람은 너무 잘 믿었다. 왠지 모르게 슬퍼지기 시작했다. 나 그렇게나 미움받고 있었나?


"그런데 김민혁."


"듣고있어."


김민혁은 내가 웃는 것에 심통이 났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 말한건 뭐야?"


"응?"


"사람을 믿게 해달라는 거였나? 그거 있잖아."


그 당시에는 당황해서 묻지도 못했는데, 듣고 보면 굉장히 이상한 소리였다.


"그건... 그냥 꿈자리가 사나워서. 그래서 그랬어."


"꿈?"


"응. 예전의 어떤 일이 기억났어. 그것 뿐이야."


"누가... 배신했어?"


김민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별 일 아닌 것을 고민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응. 어떤 빌어먹을 녀석이 있었어. 지금 만나면 문답무용으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구역질나는 녀석이."


김민혁은 쓸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당연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뭐... 지금이랑 비슷해. 불쌍해보여서 데려왔더니 다음날에는 책장의 책부터 옷까지 싹 다 털어갔더라고."


문득, 김민혁이라는 사람에 대해 약간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보란듯이 모르는 사람을 방에 들였다. 아니, 엄격히 말하자면 나는 아는 사람이니까 그리 무관계인 것도 아니겠지만.


"너... 나를 지금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아니. 설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겠다. 김민혁은 아마 사하라 사막에 공중투하를 해도 아마 눈치로 먹고 살 것이다.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얼굴에 쓰여있거나.


"어쨌든 아침에도 말했듯이 집안에 돈은 거의 없어. 지갑도 여기있고... 글쎄. 딱히 돈 될 것은 없는데."


"그럼 다행이기는 한데... 그럼 뭐야, 결국. 나를 믿지는 않았다는 거네."


"그건 아니고. 아마 서울에서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너랑 하나 더 정도 아닐까."


"그래도 믿었으면..."


김민혁은 한숨을 쉬어서 내 말을 막았다.


"솔직히 말하면, 쌓아둘 정도로 돈이 없어. 다음달치 생활비까지밖에 없을걸."


할 말이 없었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곧 날짜가 바뀔 것이었다.


원미영은 오늘도 약을 먹고 잠든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오래 잘 수 있는 건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면, 어떻게 오랫동안 먹지않을 수 있는걸까.


"그런데, 저 약 뭐야?"


알약인데 병에 들어가있고, 거기에 처방전도 없이 가져왔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강한 약이 나온걸까.


"저거? 위약."


"위장약?"


김민혁은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내 말이 그렇게 어이가 없었는지 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 위(僞), 약 약(藥). 가짜약."


아, 그런 뜻이었구나. 난 또 위장약의 효과중에서 이런 효과도 있나 했는데.


"그러면 어디에서 얻은거야?"


김민혁은 잘 기억나지 않는지 다시 손을 멈추고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에... 이름이 뭐였더라. 박... 박... 쩝. 모르겠다.


무면허 의사를 알고있는 사람을 내가 알고있어서. 뭐, 엄밀히 말하면 한다러 걸쳐서 알고있는거지. 그 사람한테 감기약 달라고 하니까 내가 먹을건지 물어보더라고. 아니라고 했더니 가짜약이라고 알려줬어."


"그거 사기..."


"라도 효과는 있잖아. 보다시피."


뭐, 그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근데 그 핸드폰은 언제까지 쓸 수 있는 거야?"


"아마... 2주 정도?"


"저런. 그 안에 일자리 못 찾으면 채용되어도 통보를 못 받을걸?"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 통보를 받으러면 뭔가 연락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이 따끔거려서 내려다보니 고양이가 내 손을 핥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잡고있던 고양이의 다리를 더 세가 움켜잡았는지 고양이가 내 손을 살짝 물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응?"


"방법이 없으면 난 너한테 말하지 않았어. 괜히 다급해져봤자 좋을 거 없어보이니까.


프리페이드(pre-paid) 핸드폰이라고 들어봤어?"


"뭐야, 그건?"


영어인지 불어인지 모를 외국어가 나와버렸다.


"선불제 핸드폰이야. 먼저 쓸 만큼 돈을 내고 그 이상으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어. 추적이 불가능해서 사기꾼들이 많이 악용하지."


추적이라는 말을 듣고 생각났다. 내가 갖고있는 이 핸드폰은 괜찮은걸까?


"잠깐만. 그럼 이 핸드폰은 추적같은 거 안돼?"


김민혁에게 핸드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당연히 가능하지."


"그럼 왜 빚쟁이들이 안 찾아오는 걸까?"


"일단 본인 동의가 있어야 가능해. 그건 뭐 익히 들어봤을 것 같고... 뭐,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라서 말야. 돈과 연줄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걸."


"그럼 왜 안하냐고."


"연줄이 없거나, 아니면 돈이 없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통신사가 제대로 된 통신사거나.


어쨌든 들이닥치지는 않았잖아? 그것만으로도 기뻐하자고."


김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바빠보였다.


"얼마쯤 해?"


"5만원 내면 3만 2천원인가 쓸 수 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정도 가격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미영의 열은 어때?"


김민혁의 말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잠깐 일어서서 원미영의 이마에 손을 짚어보았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첫째날보다는 굉장히 내려가 있었다. 하기야, 하룻동안 거의 죽은듯이 자고 있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분명히 119를 불렀을 것이다.


"많이 내려갔어."


"다행이네."


"다행이지. 그런데... 다 나았으니까 쫓아낼거야?"


"그럴까?"


김민혁은 무신경하게 말했다.


"응, 그래... 아니, 잠깐만. 진짜로?"


"응."


너무 당연하다는 것 같은 김민혁의 태도에 당황해버렸다.


"진짜로?"


"응. 그럴 생각인데. 왜?"


"매정해."


"그래도 할 수 없어. 누구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로 능력있지가 않아서. 너도... 그럴 거 아냐? 나도 어떻게든 하고싶기는 한데, 꿈이나 희망은 돈이 안되더라고."


"그냥... 그냥 여기에 있을 수 있게 해주면 안돼?"


"아. 그것도 생각해봤는데 힘들 것 같아. 내가 또 굉장히 속이 좁아서."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집에서 뭔가가 없어지면 내가 잃어버린게 아니라 남한테 덮어씌울 것 같거든. 그래서 그래."


"핑계로 들리는데."


"아니야. 나라고 혼자 사는게 좋을리가 없잖아."


그때 마침 원미영이 일어났다. 막 날짜가 바뀌려는 때였다. 이제 오늘로 본지 3일째가 되어가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원미영은 언제나처럼 예의바르게 인사를 해 주었다. 김민혁은 원미영을 돌아보지 않고 머리를 긁적였다.


"몸은 좀 어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뜨끔해버렸다. 만일, 내가 원미영은 아직 아프다고 했으면 김민혁은 못 이긴 척 하면서 더 있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을까? 그러면 원미영은 더 여기에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쫓아 낸 건가?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겨우 하루만에 듣는 소리인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아마 목이 많이 상해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곧 쫓겨날 원미영을 생각하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3일동안 계속 뻗어있었는데 악화되면 이상하겠지. 어쨌든 축하해."


"아, 감사합니다."


김민혁은 말 없이 책상의 귀퉁이에 은박지로 포장되어있던 김밥을 내밀었다.


"김밥이야. 먹어둬."


그리고 생각했다. 작별선물 치고는 너무 매정하지 않나.


"먹으면서 들어줘. 앞으로 어쩔거야?"


원미영은 은박지를 찢다가 손을 멈췄다.


"글쎄요.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소개시켜주시면..."


"알고있다면 양지은이 면접을 보러 가는 일은 없었겠지. 어제 밥 먹으면서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서로 잠시 말이 없었다. 김민혁은 그러면서도 키보드에서 손을 떼어놓지 않았다. 나는 원미영을 볼 낯이 없어서 놀고있던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원미영이 엷게 웃으면서 말했다. 살기를 포기한 말기 암 환자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계획은 없었다. 그렇다면...


"집에 돌아가는 건 어때요?"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 물론 김민혁은 더 이상 일반론을 꺼내지 말라고 하겠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것이었다.


"죽는 것 보다 비참한 건 분명히 있어."


김민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미영은 소리없이 김밥을 먹고있었다.


"그래도... 그 비참한 심정은 살아있어야 알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행복한 일... 어쨌든 난 없었지만 있었다고 친다면, 그런 것들을 다 쓰레기처럼 느낄 정도로 죽고 싶은 심정이 될 수도 있다고."


김민혁은 심드렁하게 반론했다.


"하지만... 하지만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좋은 일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반론의 한계는 이것이다. 여기에 모인 사람은 전부 다 '일반'이라는 것과는 꽤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원미영이 힘들게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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