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소울(Holy soul)
그리고...
공명하는 영혼의 언약자.
라이칸스롭의 오랜 전투에 지침을 호소하기는커녕 키라는 서슴없이 알렌과 관련된 일을 캐물었다.
빛(Light)도 아니며 어둠(Dark)도 아닌, 선(善)도 아니하며 악(惡)도 아니한 태초(太初)에 만물(萬物)이 사리분별에 휘말리기 전 어떠한 이념체도 가지지 않는 무(無).
무념체의 그것은 세월의 흐름에 하나의 무를 이룬 입자를 생성하여 7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져 인간 세상에 뿌려졌다. 그의 영혼이 깃든 7개의 조각들은 왜곡에 사로잡힌 이들과 사리사욕에 갇힌 이들, 그리고 능욕(凌辱)에 치닫힌 이에 먼 산을 바라보는 듯 한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세상은 멸망을 요구했다.
신(神)과 마(魔)의 성마전(聖魔戰).
어느 쪽도 굽힐 줄도 모른 채, 파괴만을 일삼는 전쟁을 초래했다.
하늘은.....하늘은 노했다.
「정말, 정말 어리석도다 ― 만물의 산물(産物)들이여!!」
그의 분노에 천지가 갈라지고 땅 속의 깊숙이 숨어서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던 그의 영혼들도 깨어났다.
이것이 다 하늘의 계시였을까?
그의 영혼들은 하나의 축이 되는 형태를 이루며 하늘의 부름에 새로이 태어났다.
하늘의 사자(使者)이며 빛의 성녀인 초대 신의 무녀 에르테시아.
모든 마력의 근원체.
태초의 힘을 가진 그녀는 신의 입장에서 암흑을 징벌(懲罰)했다.
하늘의 뜻을 다 전이한 그녀.
그녀의 육체는 온데간데없이 증발하고 7개의 조각만이 다시 흩어졌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키라언니.
하늘의 장난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에르텔은 새로운 인격체
를 가진 생명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 ..」
◆
「인사하렴. 이제 네 가족이 될 알렌오빠란다.」
「아...안녕합떼요.(안녕하세요) 안넨(알렌)옵빠. 헤헤~
저, 저는 세네스(세레스)라고 해요...」
「… ….」
내성적이었던 그와 양볼이 발그레 진체 수줍은 듯 한 미소를 가진 그녀의 첫 만남이었다.
。。
。。。
“세레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에 힘껏 매달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을 뜨니 한 눈에 보이는 건 화려한 이채로 간질 나게 도배된 벽지와 황실, 귀족 등의 침실을 방불케 만드는 장식들.
그리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보랏빛 머릿결을 가진 미모의 소녀가 그의 시야를 집중시켰다.
“#*%&$※\£∝¡¿(알렌 괜찮아?)”
이색적인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소녀가 전혀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쓰자 그는 대꾸할 수조차 없었다. 알렌이 어색하게 머뭇거리자 걱정이 되었던 키라는 살며시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처음 보는 미모의 여성이 자연스럽게 접촉(?)을 하자 놀란 그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뒤로 물러섰다.
“아아- 저느으 괘나자나아요.(하하- 저는 괜찮아요)
그너너어데에 어기가 어디즈?(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그녀도 마찬가지로 그의 한국식본토 발음에 문맥상 이음조차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주일전만 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정신이 들자마자 의사소통부터 안 된다니 기가차서 영문을 몰라 하던 그녀는 냅다 방문을 차고 나갔다. 그 역시 그녀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 볼 뿐이었다.
삐꺽
끼이 - 익.
‘쟤는 또 누구야?
웬 아저씨에...! 세상에나~ 무, 무슨 귀가? 사람은 맞으려나?!’
잠든척하며 실눈을 뜬 채 웬 꼬맹이와 차례대로 들어오는 사람들 중 크리스의 귀와 외모에 속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2시간 전에 정신없이 방안은 뛰쳐나간 그녀였다. 그들은 나란히 그의 주위에 선 채로 어두운 눈길로 알렌을 쳐다보았다.
“¥¢Å∂∫※∩?%&$(정말 그걸로 괜찮은 건가 키라 양?!)”
“∞∀℉‰¤◐∮◑¿!(걱정 마시라니깐 그러시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두 사람은 속삭이더니 뭔가 결심한 눈빛을 보이며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또다시 자연스레 다가온 그녀의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내심 가슴이 뛰었다. 말조차 통하지 않아서 인지라 일주일전에 번번히 대시해오던 그녀도 그가 손길을 뿌리치지 않자 속으로는 기쁨이 싹트었다. 이렇게 지금은 서로의 속사정도 몰랐지만 곧 그의 손가락에 끼어준 선물은 그녀에게서 불행한 소식을 안겨주었다.
‘반지?! 뭐, 뭐야 대체 무슨 의미야!’
“아..알렌, 혹시... 제 말이 들리나요??”
“알렌 군?”
“알렌 형...”
사방에서 그를 향해 한 단어만 퍼부었다. 그 단어는 분명, 그가 미국에 거주할 때 쓰던 네임(Name)이었는데 난데없이 초면에 사람들에게 듣게 되다니 난감했다.
“저, 저기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아시나요?
그리고 여긴 대체 어디죠?!”
“아, 알렌??”
◆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앙증맞고 똘똘한 아크와 실비의 만남
마검사 카슈와 같이 한 헤츨링과 싸움
도도섹시한 마녀 키라와 격식을 겸비한 엘프 크리스 그들과 경쟁하면서 타도한 ‘Full moon' 사건.
그 어떤 것도 그의 입에서 들을 수 없었다.
“카슈님, 아무래도 알렌님은 기억상실증... 인 것 같습니다.”
“에-? 크리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흐 - 음. 키라 양, 크리스 군의 말도 일리가 있네.
허나, 기억상실증이라면 어떻게 이상한 언어를 쓰는 건가?”
“그...그건. 휴 -”
이래저래 종합적으로 확고한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그들은 그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며 혼란에 휩싸였다.
“흠흠.”
“카, 카인드 폐하..!”
“그래. 알렌 군은 이제 좀 괜찮은가, 카슈?”
사태가 좀 정리가 되면 형님께 아뢰려고 했던 그는 슬그머니 카인드 앞에서 얼쩡거리며 문을 향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카, 카슈.. 이게 무슨...”
“죄..죄송합니다, 형님!
그럼. 크리스 군 뒤를 잘 부탁하네 ―”
철컥-
탁.
그리고 카인드는 그의 서재에서 알렌의 안타까운 사실에 한탄했다. 알렌일행이 떠난 지 보름 되던 날, 제국 측에서 소집 일정이 정해졌으니 2주안으로 성 내로 들어오라는 기별이 닿았었다. 시간의 빠듯함을 느낀 그로서는 최대한 빨리 전서구를 날려 보냈었는데 아닌 밤에 홍두깨랄 까나?!
알렌일행은 전서구도 받지 못한 채, 귀환한 것이었다.
모두들 큰 전쟁을 치른 듯 만신창이가 엉망인 채로 지쳐보였고 그나마 멀쩡할 거라 여긴 알렌조차도 정신을 잃은 채 부축을 받고 있었다.
“형님. 알렌 군 상태도 그렇고... 지금 당장 출발하기엔 이미 시간이..”
“흠.. 제국까지 열흘 안에 도착하려면 시간도 빠듯할 터이고...
다른 방도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다, 다른 방도라니요. 형님?!”
“네가 말한 키라 양과 단 둘이 할 말이 있구나.”
“혀, 형님! 서..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