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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지 않은 채, 신물을 사용하고 쭉 정신을 잃은 상태로 아크의 간호를 받던 그녀의 몸에서 뜨거운 열이 끌어 오르며 푸른빛이 에워싸였다. 그리고 그녀의 변화에 서서히 죽어가던 밴시가 반응을 보이며 허공에 떠올랐다.

“실비! 왜 그래?
  정신 좀 차려봐!!”

그들의 거친 아우성에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그녀의 또 다른 정신(각성을 바라는 신녀)은 오로지 허공에 떠 있는 밴시만을 직시한 채, 거울이 쥐어져있던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그러자 거울의 빛을 받은 밴시는 원래의 모습 즉, 라이칸스롭으로 돌아오더니 그의 심장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보석을 끌어당겼다. 모두들 그녀의 이상한 행동에 어이없이 바라보기 그지없었지만 단 한사람, 테츠 그만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Nice catch."

그는 거울이 빨아들이려던 보석을 중간에서 가로채며 알렌들에게서 거리를 둔 채, 물러섰다. 거의 내뺄 심산으로 보였는데 그가 왜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 갈필도 못 잡는 듯 무심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의 강행돌파는 뜻밖의 인물의 등장으로 인해 쉽게 이루어 질 수 없었다. 고요히 실비의 몸을 에워싸던 푸른빛은 섬광탄(閃光綻)을 쏘아 터뜨리듯이 한 순간에 모두의 눈을 봉쇄하며 신전을 가득 채웠다.

번 - 쩍。

「모두들, 눈을 뜨세요. 저는 신의 의지를 모시는 신의 무녀 실비아.
   부르기 불편하시다면 예전 그대로 ‘실비’ 라 부르셔도 됩니다.」

안개 숲의 저주 때의 1차적인 각성과 달리 실비의 앳된 여린 심성이 남아있는 듯한 2차 각성을 보이며 신녀로써의 후광(後光)을 보였다. 내심 일류저가의 사정을 알고 있던 카슈는 별로 놀래는 기색은 없었지만 알렌을 비롯한 일행들은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에 얼어버렸다. 뒷걸음치기 바빴던 그 또한 난데없는 인물의 등장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는지 그녀의 시선이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때마침 잘됐네요. 거기 빨간 머리 오빠!
   알렌님한테 ‘Full moon’... 아니, 성스러운 영혼이 담긴 에르텔(Ertel)을
   돌려주셨으면 하는데요?」
“성스러운 영혼이 담긴...”
“에르텔??”
“서, 설마. 그..그게 ‘Full moon’이라는 보석?!”

모두들 알쏭달쏭한 말만 해대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는데 키라는 오직 ‘Full moon’의 정체성에만 연연했다. 영혼이고 에르텔이고 뭐든 간에 어떻게 생긴 보석인지 궁금함을 못 참는 그녀는 알렌을 빌미로 씰룩대었다.

“이봐, 당신.
  그 에르텔 어쩌고저쩌고 그거 신의 의지를 받는 신녀님이 알렌한테 넘기
  라고   하잖아~
  설마하니 신조차도 우습게 아는 그런 막나가는 놈이 아니겠지?”
“이거, 오늘 여러 번 섭섭하군요. 레이디.
  만약 제가 막나가는 사람이라면 어떠실련지 매 . 우 궁금합니다만?”

그녀의 의도하는 바와 달리 그는 아주 가볍게 되받아치며 수중에 넣은 에르텔을 넘겨 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일행을 등쳐(?)먹어 에르텔을 건네받으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혼자 씩씩거리더니 무대포로 돌진하려는데 하늘거리는 빛의 여울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시, 신녀님?!”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들으시는 오빠로군요!
   영혼은 영혼을 알아보는 법.
   알렌님, 이쪽으로 오세요.」

유독 다른 이들과 달리 그에게만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그녀를 보며 미적대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니 어쩔 수 없이 테츠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에 있던 보석은 그와 마주치자 자진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아귀에 있을 때만해도 무형(無形)의 형태를 가졌던 에르텔은 빠르게 변형했다.

마치 은망울에 맺힌 이슬처럼 투명한 반짝임.
장미의 우아함에 도취되어 자지러진 꽃잎들.
그 중앙에는 무언가에 반응하듯 붉은 홍조(紅藻)를 띄는 작은 진동(振動).

두근
두근 두근.

‘뭐지, 이 기분은...?’

                                 ◆

「우리 오빠, 왜 또 괴롭히는 거야!」
「오빠, 괜찮아?」
「오..오빠. 숨 막혀.. 사, 살려줘... .」

아득히 봉쇄된 기억 속으로 그리우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리움이 그의 마음을 적시며 애타게 자신을 애도했다.

주 - 르륵..
뚝, 뚝。

“아... 아 - 악!!”
“아, 알렌 군. 왜 그러는가!”
“알렌, 왜 울어?!”
“형. 어디아파??”
“알렌 님!”

뜬금없이 눈물을 호소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자 모두들 도통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리더답게 모두를 잘 이끌어 주었는데 이런 참담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유는 신녀와 저 공중부양(?)을 보이는 에르텔이라는 보석고의 연관성이 필히 보였다. 알렌에 의해 아수라장이 된 일행들 사이로 신녀가 비집고 들어오며 그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졌다.

「알렌 님. 에르텔의 성스러운 영혼과의 관계는 저 또한 모릅니다.
   하지만 이로써, 신의 의지는 확실해졌습니다.
   부디 슬픔을 거두세요, 영혼의 언약자님.」

신녀 또한 신의 의지를 확인하여 그를 주인으로 모실 뿐, 그의 또 다른 이의 어둠, 그리고 잃어버린 슬픔의 크기를 알 순 없었다.

“..가지..가지마. 나, 날 두고 가지마. 세레나!!”

펑 -
까-악!

상승세를 타고 최상승에 다다른 그의 슬픔이 울분을 토하듯 그의 감정이 그대로 전승된 분노의 정령, 퓨리(Fury)가 나타나 폭발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분노의 여파로 아무런 방비책이 없었던 그들은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으윽.. 알렌이 제정신이 아닌가봐!”
“크-윽. 그런 거 같네, 키라 양.”
“아무래도 저 에르텔이라는 보석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시, 신녀님. 먼저 에르텔부터 잠재우는 게...! 신녀님?!”

정신을 금새 차릴 수 있었던 그들과 달리 공격의 여파에 멀찍이 나가 떨어져버린 신녀와 아크는 나란히 구석저편에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있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 한 에르텔을 잠재울 수 없었고 알렌 그 또한 진정시킬 여력이 없었다.

“이..이제 어떡해, 크리스!!”
“키라! 쥬얼리로 신녀님 쪽을 부탁할게.
  에르텔쪽은 카슈 님과 내가 맡을게!”
“에~엣?! 나보고 하란 말이야?
  치유계열 쥬얼리는 이제 딱 한사람 분뿐인데...”
“키라!!”

평상시와 달리 격해진 그의 말투에 그녀는 말똥말똥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 움찔거리며 신녀에게로 다가갔다. 그에 의해 마녀의 색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던 카슈는 내심 놀란 눈치로 크리스를 다시 보았다. 그녀를 전적으로 믿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공중에 떠있는 에르텔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조, 조금만 더...!!”

덥석.

- 에르텔, 에르텔 포획. 임무완료.
“로, 로젤리아?!”
“Very good, 로젤리아!
  고맙게 받겠습니다, 아름다운 엘프님.
  그럼 실례~”

어이없게 그의 로젤리아가 한 템포 빨리 에르텔을 낚아채어 그와 함께 재빠르게 구멍 뚫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물론, 로젤리아의 변신능력으로 하늘을 요람하게 비행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이, 이런. 제길!”

                                    ◆

“휴~ 어쩔 수 없지. 다 살자고 하는 짓이니...
  나중에 왕창 뜯어 주겠어, 크리스!”

유달리 치유계열의 신성마법의 효능을 가진 쥬얼리를 많이 인첸트 할 수 없었던 키라는 아까운 소비에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면서도 실비 때처럼 똑같이 치료마법을 행했다.

「으..으음, 키라언니?」
“이제 정신이 드시나요, 신 . 녀 . 님~?”
「하하... 그냥 실비라 부르셔도..!! 참 이럴 때가 아니지요!
   에르텔은? 알렌 님은??」
“... 그, 그게 말이지..”

보는 대로 로젤리아에게 선수를 빼앗겨 자취를 감춰버린 에르텔에 대한 허탈함에 그는 주저앉아 버렸고 알렌은 작은 돌무더기에 깔려 정신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네요. 우선, 제 거울을 통해 일리아드 공국으
   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알렌 님도 정신이 드셔야 앞으로의 상황에 대
   처할 수 있을테니 말이에요...」
“앞으로의 상황에 대책?!”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미로 같은 말에 고뇌에 빠지는 동안 실비아는 이미 거울로 터널같이 생긴 게이트를 열었다.

「빨리 오세요. 키라언니-
   계속 그러고 있으면 나두고 갈 거예요~」
“자, 잠시만 기다려~ 실비!!”

..
...
.....
“촌장! 보석은 대체 언제 올릴껀가!!”

순간 찔끔하는 히스 마을 촌장.

‘이, 이것들. 꿀꺽한 거 아냐?!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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