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게이트(Agate), 토치(Torch) - ”
황토색에 옅은 갈색무늬를 지닌 달걀형의 쥬얼리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생각보다 가볍(?)게 부서지며 잠시 잠깐의 섬광과 함께 일렁이는 화염을 머금는 횃불이 그녀의 손에 들리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그 순간, 터지는 폭음 소리와 함께 무너져버렸다.
“까아악 - 오늘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야. 난!”
◆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카슈 씨?”
“..무슨 소리 말인가?!”
얼마나 그녀의 목소리가 절규적이었길래 벽 넘어서 알렌에게까지 환청을 울린단 말인가 -
혼자만의 착각이라 느낀 알렌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녀가 없는 틈을 타 자유를 만끽하던 프랜이 갑자기 멈춰 선 채 프랜을 따라 걸어오던 그를 기다렸다. 플랜이 비추는 곳엔 금색으로 바랜 낡은 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그들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플랜마저도 문에 다가가질 못한 채 그의 주위만 맴도는 걸 보니, 저 금색문은 마력 자체를 흡수하는 일종의 마법의 문인 듯싶었다. 마법도 통하질 않고선 정면 돌파는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신전이 많이 낡았기에 큰 마력을 방출했다간 그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다.
“흠..이를 어쩐다?”
“저...삼촌, 카슈 삼촌. 저를 문 앞에 내려다 주세요.”
평상시에는 늘 가만히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꼭 끼어들어 활력소를 만들어 주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여기까지 조카들을 데려온 건 카슈, 그였지만 더 이상 위험한 일에 그녀를 내세우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을 했는 듯 그녀의 부탁을 완고히 거절했다. 그러자 실비는 아등바등 거리며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었다.
“시, 실비. 그..그건!!”
그녀의 손바닥만한 크기로 눈동자를 비추던 아기자기한 손거울.
신성제국의 신녀들만이 지닐 수 있다는 신물(神物).
디비니티(Divinty), 샤인 미러(Shine mirror)。
몸과 마음이 각성하지 못한 신녀 후임은 절대 신물을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 또한 각성한 구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저 자신만만한 태도는 무엇이라 말인가?
놀라움이 영력한 아크의 비명에 그녀의 행동이 터무니없는 짓임을 직시했지만 그녀는 이미 어느새 그의 품안에 떨어진지 오래였었다.
연신 주위를 더듬으며 이윽고, 문 앞에 문을 기대었다. 그리고 손거울을 문을 향해 힘껏 치켜들었다.
‘소녀의 부름에 응답해주세요. 신의 의지를 잇는 거울이여...’
..
...
우웅, 우 -웅.
「신의 무녀여, 그대가 날 불렸는가..?」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그리우면서도 따듯한 목소리.
잊으려고 해도 잊기조차 힘들어서 금새 그녀의 볼에 무색의 액체가 또르르 굴려 떨어졌다.
「어, 어머니!!」
***** *****
「나는 그대가 누군지 모른다.
다만, 신의 거울에 맴도는 나의 영혼이 신녀의 부름에 깨어났을 뿐.」
「그, 그럴수가... ..」
「신의 무녀여, 그대의 영혼은 나의 영혼의 공명(共鳴)에 닿지 못했다.
그것이 무얼 뜻 하는지 아는가?!」
「... ..」
그녀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우물쭈물 거리자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신녀의 뜻이 나의 뜻, 신녀의 바램이 나의 바램.
오직 각성의 시기만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기며 그녀의 울림은 점점 멀어져갔다.
어느새 긴장이 풀려 주자 앉은 그녀의 손아귀에서는 거울이 그녀의 바램을 이행하듯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울의 표면으로부터 하얀 섬광이 일렁이더니 이내, 거울 전체를 휘감으며 빛의 분자(分子)가 거울의 중심부로 모여들었다.
「신녀의 뜻이 나의 뜻, 신녀의 바램이 나의 바램.」
그녀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 영혼 아니, 모든 것을 잊었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한은 어머니는 어머니 일뿐。
어머니의 영혼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거울에 자신의 마음을 실었다.
“나의 뜻은 어머니의 뜻, 나의 바램은 어머니의 바램!”
거울에서 무한에 가까운 빛의 입자(粒子)들이 서로 엉켜들며 문을 향해 발현(發顯)되었다.
◆
「저..저어기. 괘, 괜찮...! 정신 좀 차려 보십시오!!」
흐리멍텅하게 보이는 가느다란 눈 사이로 한 인영이 심하게 고개를 흔들거리는 게 마냥 그녀는 기분이 나빠 왔다. 그리고 점점 머리가 아파오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퍽 -
쿵!
“아야야~ 이제야 정신이 드셨습니까, 아름다운 레이디?!”
“뭐. 내가 한 미모하...!! 그게 아니잖아!
당신, 뭐야 - 사람을 왜 이렇게 흔들어 대! 아구. 목이야~”
그녀의 생색에 반색은커녕,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는 요상한 차림의 그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풀려고 일어서는 그녀를 저지했다.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도 않는데 자신의 행동에 사사건건(事事件件) 관섭을 해대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이런. 이거 섭섭하군요. 다 레이디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건데..후~”
‘뭐. 나를 위해서라고?! 웃기는 군. 이 능구렁이 같은 놈이!’
키라는 가볍게 코웃음 치며 그를 싹 무시하듯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런데, 그 순간。
꽈-꽝!
“앗. 뭐야 이건...?! 배리어(Barrier)?"
그녀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실드(Shield)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배리어는 분명 이 능구렁이 사내가 친 것이 같았지만 왜 이런 것을 준비했는지 좀처럼 이해가지 않았던 그녀는 골이 한 번 더 쑤셔왔다.
뭐, 골이 아픈 근본적인 이유는 저 능구렁이 같이 구는 작자에게 자신이 보호 받았다는 것이 정답에 가까웠지만 곧 벌어질 상황엔 세발의 피였다.
그는 여전히 그녀가 거부하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우선 현실의 위험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레이디?
그래야 나중에 간단한 인사라도 나눌 수 있지요. 후후~”
그가 뭐라하던간에 키라의 얼굴은 그가 손짓하는 방향을 보고는 금새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탐욕스러운 금빛에 아울러 그림자를 등진 채 드러나는 건 살육(殺戮)에 굶주려 광기에 휩싸인 반인반수(半人半獸) 몬스터.
“라..라, 라이칸 스롭(Lycanthrope)!!"
◆
털썩。
“실비, 실비! 눈 좀 떠봐!!”
작열하던 눈부신 빛이 사그라들자 그녀는 모든 힘을 다 소진한 듯, 기절해 버리고 문 앞에는 원을 이루는 빛의 터널이 생성되었다.
“흠 - 아무래도 실비가 길을 열어준 것 같구나. 아크야.”
“저..저걸 실비가 만들었다고요..?!..실비가... ..”
어느 정도 신성제국과 신녀의 관계성을 알고 있었던 카슈였지만 예상 밖의 그녀의 힘에 탄성을 머금지 못했고, 전혀 그럼 지식이 없는 아크 또한 새로운 충격에 휩싸여 실비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둘 다. 언제까지 넋 놓고 있을 건가요?
아크. 실비의 활약을 그렇게 낭비할 참이야?!”
알렌도 그녀의 능력에 놀람에도 불구하고 놓을 뻔 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활약에 보답하기 위해 빛의 터널 쪽으로 한 발작씩 걸어갔다.
“나는.. 나는.. ...!!
쳇. 형만 멋있는 척 다하고 - 같이 가요, 알렌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