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정령사라는 것을 안 이후로, 그녀의 행동은 180° 달라졌다. 크리스가 존경하는 카슈의 정체가 마검사라고 밝혀짐에는 냉담했던 그녀가 그에게선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능력은 그에겐 덤일 뿐이었고 그의 외관이 그녀를 면밀주도(綿密周到)하게끔 만들게 된 경위였다.
그와 맞먹는 미모를 가진 크리스였지만 서도 그도 알렌에게 왠지 모르게 끌어당기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알렌 님. 물의 정령이 뭔가 발견한 것 같은데요?”
“자, 잠시 만요. 크리스 씨.”
표독(慓毒)스럽게 잡고 늘어지는 키라와 엉겁결에 그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싸움에 휘말려 그는 거의 기진맥진(氣盡脈盡) 상태를 보였다.
“알렌 형은 우리, 우리 보호자란 말이에요!
아줌마는 끼어들지 말아요 -”
“아, 아 . 줌 . 마 라고!!
얘네들이 뭔가 잊 . 었. 는. 가 본데~ 호호호.
배 안의 일을 설마 잊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그건...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요!”
쟁탈의 주요원인은 그녀와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크리스에게로 향했다.
헉 헉-
“괜찮으십니까, 알렌 님?!
키라가 워낙에 좀 익살스러운 성격이든지라...”
“괘, 괜찮습니다. 크리스 씨.
저런 성격의 여자는 익숙하니까요. 하하..”
“네 - 에?”
익숙하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버거워 곤경에 처한 인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낯 두꺼운 대사를 읊을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크리스였다.
그의 또 다른 영혼이 고동치는 것일까?
“그것보다 크리스 씨.
원래 그렇지 않은 거라면 키라 양과 똑같이 대우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님’자 좀 빼주시면 어떨련지요?”
카슈에겐 ‘님’이라 칭하는 바는 이해가갔지만 그에게도 물론이고 아이들에게까지 불편한 호칭을 붙이니 좀처럼 이해가지 않는 엘프였다. 그리고 키라에게만 호칭을 붙이지 않으며 오히려 반말까지 하지 않는가 -
“하하, 불편하셨습니까?
제가 워낙에 낯을 가려서 그러니 이해해 주십시오.
뭐. 알렌 님이 원하신다면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둘의 입담(立談)이 끝나가는 듯 보이자, 어느새 다가왔던지 카슈가 끼어들었다.
“참 나. 자네들, 언제까지 날 허수아비 취급할 생각인가?
저기 얼빠진 인간들도 정령의 호된 물벼락에 정신 차린 듯 하니 이제 이
신전 안으로 들어갔으면 하네만?!”
사막의 모래바람에 뿌옇게 흐려져 가려졌던 신전이 모습을 점차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
“아직도 화났어? 모두 가버렸는데...”
“쳇. 내가 뭐 알렌을 잡아먹기라도 한데~
웃기는 꼬맹이들이야, 쳇! 안 그래, 크리스?”
“하하...”
“뭐야, 너도 걔네들이랑 같은 생각이야?! 어이가 없어서~
야. 크리스 한 대맞고 대답할래? 안 맞고 대답할래??”
‘안 맞고 대답 안하면 안 될까. 키라?’
아이들이 얼마나 그녀를 약 올렸기에 자신의 화도 못이기는 그녀의 등쌀에 처참히 크리스는 본심과 다르게 승복해야만 했다.
5분 전,
꽤나 신전이 낡아서 그런지 천장에서는 돌 부스러기들이 떨어지고 안은 캄캄했다. 횃불은 커녕 마법사도 없는 상황, 모두의 눈치를 살핀 알렌이 빛의 정령을 불러들였다.
“아이, 귀여워라~ 꼭 작은 도깨비불 요정 같네! 이리 오렴~”
그의 손에서 빛의 정령 ‘프 ․ 랜(프라이어즈 랜턴)’을 낚아 채려는 듯이 손을 내밀었지만 프랜은 거부반응을 보이며 카슈가 안고 있는 실비의 손 안으로 도망쳤다.
“풉...!”
“푸, 푸하하 - 얘가 뭘 알긴 아나 보네요. 아 . 줌 . 마?!”
“뭐, 뭐야. 웃지 마!!
알렌. 쟤 보고 뭐라 했어!”
프랜의 따듯함에 잠이 깬 실비가 그 대신 말문을 열었다.
“키라 언니, 그러면..그러면은 알렌 오빠한테 미움 받을 꺼에요.”
“흠흠.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키라 양?”
제대로 된 실비와 카슈의 합세공격에 그녀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까무러치게 될 K . O 승의 사건은 아직 남아있었음을 그녀는 짐작치 못했다.
◆
신전안의 길은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구렁텅이를 연상케 했다.
Deepen.... Utterly deepen.. Slowly.
푸더덕~
“까 - 악! 알렌~”
박쥐무리가 프랜의 강력한 빛에 놀라 어둠에서 알렌들을 향해 날라 올랐다.
조금은 놀랠법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괜스레 오버하며 알렌의 팔에 붙어 떨어질 줄 몰라 했다.
“키라 양?!
박쥐 떼들이 이미 사라졌는데 떨어져 주셨으면 하는데요?”
“자..잠시만 이러면 안 될까요~?
나, 난 벌레나 동물은 딱 질색이라고요!”
모두에게 악랄하고 사악하다고 불리는 마녀가 고작 한낱 작은 생물에 불가한 것들을 무서워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연기는 주연배우 감인데...쩝.
나중에 다 뽀록날 꺼 뻔 한데 왜 저리 사서 고생이냐, 키라 넌...휴~’
그의 한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방금 전 아이들의 비웃음에 대한 복수의 쾌거를 보이 듯, 속으론 자지러졌다.
◆
주인은 그리웠지만 그의 앞에 악착같이 붙어있는 마녀 때문에 프랜은 계속 실비 손안에 맴돌았고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안고 있는 카슈가 앞장을 섰다.
“알렌 군. 잠시 멈추서 보게나.”
“카슈 씨?”
쭉 외길로 나있던 길은 카슈의 앞에 두 길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럴 경우, 한쪽 길은 분명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터.
그렇다고 해도 100/1에 해당하는 편법으로 옳은 길로 생각되는 길을 채택할 수 없는 거니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립된 지식, 편애하는 오른쪽 길.
그것도 중요한 이 순간엔 편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건 -
“가위 바위 보!!”
“야호! 아줌마. 얼른 저리로 가세요~ 키득키득.”
6명이서 동시에 가위 바위 보를 외친 결과, 그녀의 운은 하늘의 노여움을 산 듯, 결코 운이 나쁜 이상은 나오지 않는 확률이 나와 버렸다.
“키라. 가자~ 우리 둘이 묵이니까.....음,
역시나 오른쪽이지?”
그녀는 그의 말을 듣는 채 마는 채 하며 삐쳤던지 벽에 기대어 알렌일행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어디 두 . 고 . 보 . 자. 괘씸한 꼬맹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