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뺀 모든 건물이 부서지고, 무너져 버렸지만 피난되었던 건장한 청년들을 비롯해 상태가 괜찮은 병사들을 선출해 마을 복구 작업에 투입시켰다.
뚝딱. 뚝딱.
“좀 더, 좀 더 밑으로...어이! 조심해~”
그리고 성안은 많은 부상을 당한 병사며 기사들을 알타히 신관과 그의 제자들이 치료하기에 한창이었다.
성을 감싸던 둥근 보호막 덕택에 어느 정도 또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일리아드 공국.
최초로 발명한 마력이 담긴 인첸트 쥬얼리(Encharn jewelry)의 제조술을 가졌던 카인드와 카슈의 부친, 카알 일라이져.
그가 남긴 인첸트 쥬얼리。
아버지에 비해 능력이 떨어졌던 카인드는 오직 신성(神聖)마법을 고집하여 알타히 신관과 함께 신성보호마법의 마력이 담긴 홀리(Holy) 쥬얼리 계열의 라파즈 라즐리(Lapis lazuli)를 제조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보석에 능력에 반해 사리삼욕(私利三欲)을 일삼는 자들의 시비가 여러차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버지의 유산 중 대부분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그 중, 제일 중요한 문서를 하나 도둑맞고 말았었다.
그 문서란,
홀리 쥬얼리로써 만이 아닌 다른 마력을 담아 쓸 수 있도록 제조된 응용법이 담긴 금술서(禁術書)。
악용될까 겁이 났던 카알도 아들들과 세상모두를 위해 비밀리에 숨겨 놓았는데 그것이 그날 밤에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카인드의 일리아드 공국의 왕으로써 즉위실날 ―
...
.....
“...하. 폐하!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시옵니까?”
그가 과거의 상념에 빠져있을 때, 알타히는 그의 명령을 받들어 카슈들을 알현실로 데리고 왔었다. 마법통신구를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상서가 수도의 이다이오스 제국에 황제 페하께 보고가 되었던 카인드는 이다이오스 제국의 황제 다엔, 그의 확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통신이 올 시간이 다 되자 모두를 알타히로 하여금 부르게 한 것이었다.
“아 아 - 왔는가, 카슈..그리고 중급 정령사 알렌 군.”
카슈의 활약은 이미 예상되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정령의 등장으로 그는 일라이드에서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인재부족현상을 겪고 있던 일라이드에서는 아무런 소속이 없으며 넓은 세상에 나온 지는 얼마 안 된 떠돌이라도 그의 빛나는 외모와 더불어 중급 정령사임에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그는 그를 떠보려는 듯 한 의도를 보상과 함께 넌지시 던져보기로 했다.
“알렌 군. 그대의 도움과 활약상에 감사의 뜻으로 500,000젤의 상
금을 내리는 바이오. 그리고... ..”
500,000젤.
민간이 한 가족이 반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다.
후환 상금을 받을 생각으로 결코 그들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우러나오는 본심과 아크와 실비 그리고, 카슈 이들의 연속된 만남의 인연의 끈이 알렌을 놓아주지 않은 듯 했다.
솔직히 상금도 부담스럽다 느낀 알렌이었는데 뭔가 더 남은 듯 한 그의 말투에 염려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렌 군. 크나큰 은혜의 뜻으로 일리아드와 뜻을 함께하지
않겠는가?!”
알렌의 염려는 적중했다.
앞으로 여러 곳을 떠돌게 될 귀한 능력자인 그를 먼저 선수치고 싶은 마음과 세월의 흐름과 다르게 기울어가는 일리아드의 권세(權勢)를 붙들고자 함의 영입권유였다.
그는 그런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었다.
과거의 알렌도 ‘권세’라는 두 자에 휘둘림을 당했기에 지금은 발을 떼고 싶었다.
“황공하옵니다만, 폐하. 거두어 주십사 하옵니다.
저는 바라지도 안을뿐더러, 이미 원한 것을 얻어 싸옵니다.”
“원한 것을 얻었다?!”
카인드는 마땅한 것과 제안의 두 가자의 상을 하사함에도 이미 물려처버린 그에게 가득할 두 손이 비었는데 얻었다니, 원한 것을 얻었다니 궁금한 기색이 돌았다.
“네, 폐하. 그것은 인연(夤緣).
저와 폐하를 비롯한 일리아드의 인연이라는 끈이옵니다.”
진실이 빼어난 채, 묻혔던 진리(眞理)가 드러났다.
예고(豫告)도...예언(豫言)도...예상(豫想)도 할 수 없었던 만남.
만남이 있기에 인연이 생기고 인연이 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다.
“허-허. 이거 아무래도 폐하께서 알렌 군에게 한방 먹은 듯 싶습니다.”
“카인드 형님. 승복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평소에 찾아 볼 수 없는 카슈의 장난 섞인 말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카인드를 알현하는 자리엔 그의 왼손인 알타히 신관밖에 없을뿐더러, 알렌도 이미 그들의 관계를 알기에 카슈는 가벼이 그의 호칭을 바꿀 수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금한다면야 문제 될 법도 없기에 카인드도 친밀하게 느껴지는 호칭을 카슈에게서 듣고 싶었다.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자리에서야 들을 수 있는 카슈의 반 농담 소리에 카인드는 가볍게 생각을 접을 수 있을 듯 했다.
“인연이라... 잘 알겠네, 알렌 군.”
카슈 덕분이라 할까?
더 이상 알렌의 영입건은 논쟁이 될 수 없었다.
***** *****
삐릿. 삐릿.
통신구에서 상대방의 대화를 청하는 알림메세지가 울렸다.
어둠만 자아내던 통신구에서는 누군가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이다이오스 제국의 공작, 카인드 일라이져.
다엔 황제 폐하께 인사드리옵니다.”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의 뒤를 잇달아 모두들 무릎을 꿇었다.
“모두, 일어나라.
흠흠. 그대가 올린 상서에 관해서 말인데...카인드 공작.”
“예, 황제 폐하.”
“아직..아직. 별 뚜렷한 점이 없어 보인 듯 하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제국에서 긴급회의를 열 생각이네.
그러니 내 기별을 보내겠네. 그럼...”
제 말만 하고 사라져버리는 다엔.
뭐가 그리도 급한지 뚝 끈기는 듯 통신을 단절되어 버렸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라...
보름..아,아니... ..한 달?
이다이오스 제국까지의 여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기별은 언제 올지 몰랐고 일라이져 마을의 복구는 보름이 걸릴 예정이었다.
그동안 아무래도 이 땅의 주인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
“카슈!”
“네, 넷. 카인드 형님.”
“네가 먼저 출발하거라.
난 보름 뒤에 출정하겠다!”
그는 그의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군말 없이 동료들을 데리고 알현실을 나섰다. 그리고 알현실의 문이 열리자 두 작은 인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왔다.
“아크..실비?!”
“저희도..저희도 따라 갈래요!”
“..얘들아, 거긴 아이들이 갈 곳...”
“알아요, 카슈 삼촌!
걱정 마세요. 위험하든...심심하든... 상관없어요~
그렇지요, 알렌 형?!”
아이들은 알렌을 앞세워 넘어가보자는 작전인 듯 했다.
또 그들은 알렌을 자신들의 보호자로 재 채용했다. 이제 카슈들에게도 실력을 인정받았으니 무서울 게 없는 오누이였다.
물론, 카슈도 그를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들한텐 힘든 여정이며 그에게 다시 도움을 받는다니 미안해졌다.
“그럼. 저도 껴도 될런지요, 카슈 씨?
이번에도 좀 긴 여정이 될지 모르겠지만요?!”
“아..알렌 군.”
카슈의 이래저래한 마음을 결정하려드는 그의 결정타적인 질문이 날아오자, 이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동행을 허락해줘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이따금 그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카인드 입에서 떨어졌다.
“조카들을 데리고 가거라, 카슈!”
“혀..형님,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카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알렌 군 과의 인연은 아직...아직, 끝나지 않은 듯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