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거기 잘 지켜! 특히 금발의 미청년.
저 녀석은 엘프만큼이나 값어치가 세다구~
남색을 즐기는 고귀하신 귀족들께는 아주 최상급이지 - 클클클.”
모닥불이 튀는 소리와 여러 사람이 왁자찌걸 대는 소란스러움에 그는 몸을 움찔대며 정신이 들었다.
‘으..으음. 여긴 대체 어디지? 난 분명히 죽었었는데...
그렇다면!! 그 때 저승사자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건가!’
그는 이 세계 「델피니움」을 통틀어 3번째로 천재성을 드러낸 푸른 마탑의 주인 알렌시아。
다른 마탑주와는 달리 태어나자마자 정령에게 선택되었던 이 소년은 18살에 상급정령술에 입문하여 20살이 되던 해에 ‘정령마도사’라 불리는 마탑주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던 몇몇의 마탑의 마도사들이 어둠의 거래를 이용하여 생각지도 못하게 어둠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명계에서 염라대왕과 맞닥들인 그는, 명부첩에서 제외 될 수 있었다. 원래부터 명이 길은 그였는데 한 사신의 착오로 명줄이 끊어지는 큰 실수가 범해져 버린 이상 이에 염라대왕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그 주어진 기회가...!
“루크님, 금발 녀석이 깨어났는뎁쇼?”
덩치가 산만해 보이는 녀석이 포로(?)같이 잡힌 사람들 사이로 튀어나갔다. 그도 포로(?)같이 손과 몸이 밧줄로 칭칭 감긴 채, 묶여 있었다.
‘흠. 포로라기엔 너무 눈에 띄는 사람들인데...
그 참, 금발이라는 건 또 누굴 말하는 건지.. .’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보통체격에 날렵한 눈매를 가진 아저씨뻘로 보였던 루크는 갑자기 손을 내밀더니 그의 턱에 손을 괴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나~ 금발의 미청년?
팔리기 전에 이름 하나는 듣고 싶은데, 후후?”
‘지..지금 나보고 뭐,뭐라 그런 거야!
내가 언제부터 금발에 잘나가는 인물이었던 거지?’
지금 그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보다 그런 사실이 중요한 것인지 성격하나는 정말 태평스러웠다.
“어 - 이. 벙어리냐? 아쉬운 걸~”
그가 별 엉뚱한 도태에 빠진 걸 구해(?)주는 루크의 또 다른 질문에 그는 원점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저..저는 알레입니다. 여긴 어디고,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그의 이름을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루크였지만 다음으로 이어졌던 뻔 한 질문에는 상쾌하지 못했다.
루카들에게 잡히는 사람들의 수천 번의 똑같은 질문。
“이런. 이런 아직 분위기 파악도 못했나~
저기 저 인물값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 떠오르는 게 없나?”
세상물정이 어둡기 보다는 알렌의 외모가 바뀌기 전까지 이런 일은 전혀 없었기에 도통 짐작을 하지 못했다.
‘이 녀석, 가출한 귀족가의 철부지 도련님이려나~
아니면 엉뚱하게 그지없는 바보?
뭐 - 나랑은 그다지 상관없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천막을 나서는데 웬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 *****
이럇 - 이럇!
어두울대로 어두워진 숲에서 웬 마부가 급하게 마차를 몰았다.
“아저씨, 좀 천천히 몰면 안 될까요?!
제 동생이 많이 불편해 보여요...”
“아, 아니야 아크오빠. 나..난 괜찮아...”
마차가 심하게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내내 감추며 그의 여동생은 내색치 않았다.
“조금만 참으십쇼. 오늘 안으로 마을에 들어가야 안전합니다요.”
이 숲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던 마부는 최대속력으로 나아갔지만 그의 조급함은 죽음을 재촉하는 지름길이었다.
“으 - 커억!”
“아저씨!!”
숲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가 그의 심장에 명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 둘 씩 산적패 같이 생긴 사람들이 나오더니 마차 주위를 포위해 버렸다.
“오..오빠, 무슨 일이야?!”
“아..아무것도 아니야. 안에 꼼작 말고 가만히 있어, 알겠지?”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 분명한데 알 길이 없었던 그녀는 오빠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살벌한 도적 무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심한 이상 그는 당차게 마차 안에서 나왔다.
"오호~ 제법 쓸 만하게 생긴 녀석인데요, 루크님?!”
그도 그의 말에 동의하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당신들이 워.원하는 건 여기 없어요!
그..그러니까 - 저희들을 그냥 보내줘요...”
일반 보물만 노리는 도적무리인 줄로만 알았던지라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당돌히 맞섰다.
“이런. 이런~ 돈이 없으면 몸값이라도 지불 해 · 야 · 지?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나 보군. 크크~”
!!
몸값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처사였다.
거기다 상대방은 한명 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단 한마디의 실수로 동생마저 위기에 직면해 버렸다.
‘그렇다고 마냥 당할 이 아크님이 아니지!
일류저의 이름을 걸고 실비를 지킨다 ―!’
챠 - 릉.
오직 동생하나만은 지켜야 한다는 일념아래 허리춤에 칼을 뽑아 자세를 잡았다. 다 큰 어른도 무서워하는 도적 떼들을 이런 꼬마아이가 상대를 하겠다니 그들은 코웃음 쳤다.
“큭큭큭. 용기하는 가상하군. 허나, 말 안 듣는 애는 매로 다스려야지~
얘들아. 잡아들여라!”
명령이 떨어지게 무섭게 그들은 각자 무기를 뽑아들었다.
순간, 그의 표정은 공포심으로 일그러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대 그 때,
누군가 달려 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오빠 저희 오빠만이라도 사,살려주세요..흑흑.
저만이라도 안 되나요..?”
“시..실비!!”
귀여우면서도 앙증맞게 생긴 소녀가 갑자기 마차 안에서 튀어나오자 더욱 더 군침이 돌던 도적무리들은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얘들아, 둘 다 잡아들여라!”
완전히 실비의 부탁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공포심에 눈물범벅이 된 실비를 감싸며 아크는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 *****
“윌 오브 윈드 (Will of wind)."
외침과 함께 거센 바람이 도적떼들을 튕겨내었다.
“으윽 - ”
“아구구, 허리야!”
그는 부하들이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에 의해 사정없이 사방으로 내동댕이 쳐대자, 놀라움과 흥분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아니, 네 녀석은!!
네 녀석이 어..어떻게 여길 ―!”
몇분전만해도 밧줄에 꽁꽁 묶인 채, 심문 받았던 금발의 미청년이 난데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자신의 부하들을 섬멸시키더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방심은 금물(禁物)!
겉으로 보기에도 얼굴만 상급이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귀족티가 물씬 풍기는 부잣집 도련님이라 확정 짓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이미 루크의 생각과 달리 과거의 자신인 알렌으로서의 능력을 자각한 그는 호랑이새끼를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오..오빠. 아크 오빠...콜록..콜록.”
“꼬마야, 이제 괜찮아. 네 동생이 괴로워하는데...
그만 놓아줘도 되지 않을까?”
실비를 꼬옥 감싸 안은 채, 겁먹은 강아지 새끼마냥 움츠려 있던 아크는 귓가를 맴도는 부드러운 미성에 눈이 트이자 눈부신 빛에 작열했다.
황금물결처럼 일렁이는 길게 늘어뜨린 금발머리.
금발머리와 맞물린 듯이 금빛을 발하는 금안(金鞍)의 눈동자.
어딘가 화려하면서도 귀족티가 나는 준수한 외모.
실비를 움켜잡았던 손이 절로 풀릴 정도로 아크는 얼이 빠져 있었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실비는 주위에서 아무런 미동이 없자 불안감을 느꼈다.
“오빠? 아크..오빠??”
그녀가 주위를 연신 더듬거리자 그녀의 불편함을 눈치 챈 알렌은 급히 아크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아 - 아야야~ 아프잖아요!”
“그럼 아프지. 간지럽겠냐?
네 동생... 네 동생의 안색이 않 좋아 보이는데...”
아크의 뒤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리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아크는 실비의 손을 잡아주었다.
“오,오빠. 무사한 거구나. 훌쩍..훌쩍.”
“응. 방금 저 분이...아 , 보이질 않아서 모르겠구나..”
천사 같은 외모의 그를 보여 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절실로 밀려들었다. 실비는 맥 빠진 그의 목소리에 동요하듯 두 손을 올리더니 살며시 알렌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음... 상냥하고 아름다운 분이네요 그쵸, 아크오빠?!”
만지는 것만으로도 단숨에 알아버리자 알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아크는 기쁘면서도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아크와 실비의 모친도 태어날 때부터는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녀가 세상을 하직하자마자 실비의 눈은 봉인 되 듯 세상을 바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친밀히 다가온 익숙으로 만진다거나 느낌으로써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실비의 안타까운 사정으로 인해 좀 뒤숭숭한 분위기이면서도 왠지 모를 따듯함, 오누이의 애정(愛情)이라고 해야 될까?
그윽함이 느껴지는데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이..이것들이 -
가, 감히 날 무시해!
죽어랏―!”
한참 쥐 죽은 듯이 있다 싶더니 자신이 그들에게 소외된 인간이라는 사실에 부각 되었던지 고르지도 못한 이를 부득 갈며 돌진했다.
“까 - 악!”
“실프(Sylph)!!”
녹색을 띈 1m정도에 물에 둘러싸인 작은 요정이 한 번 더 바람의 장벽을 형성했다.
“저..정령?!”
자신의 부하를 몰살한 범인을 그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그였지만 부하들과 마찬가지 신세를 모면 할 순 없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됨을 알리 듯 알렌이 정령소환을 해제했다. 그리고 아크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알렌의 팔에 매달리며 두 눈이 초롱초롱 해졌다.
“와~ 형아, 정령사 였구나!”
“형 - 아??”
“앗, 죄송해요. 초면에...그래도 형아라고 부르면 안..될까요?”
그가 쩔쩔매면서도 귀여운 외모로 버둥대자, 알렌은 피식하고 웃음 질했다.
“그..그럼 승낙한 거에요! 헤헤 -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라니 뭐야, 더 있는 거냐?!”
“헤헤-
다음마을까지만이라도 저희 호위꾼이 되어주세요―
물론 공짜는 아니고요. 수당은 넉넉히 드릴게요, 네?!
아,,안될까요~?!”
산 넘어 산이라더니 도적 패의 손에서 벗어나자 이제는 아이들의 호위꾼?!
이제 막 제 2의 인생이 시작 된 참이었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은 법。
가진 것도 돈도 없겠다―
“내 이름은 알렌시아, 알렌이라 부르도록 해.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의 제 2의 삶이 그들과 함께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