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찌는 여름날씨。
엎친데 덮친격으로 특별활동이 그를 혹사시켰다.
“진 선배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기다리다 목 빠져 죽는 줄 알았다고요 - ”
궁도부의 여후배들은 서로 그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거의 앵겨붙은 수준이랄까~?
하지만 그럴수록 그만 곤란해졌다.
남은 남자부원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누가 그렇게 선머슴처럼 생기라 했는가?!
그는 미국인이신 어머니의 미모를 쏙 빼닮아 금발의 머리와 금안의 눈동자를 가져서 교정에서 찾아 볼 수도..아니, 찾아보기도 힘든 인물이었다. 하지만 간혹 장난끼 많은 남학생들이 여자애 같다며 놀리기도 일쑤였다.
그의 혼잡한 상념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침범했다.
“류 진! 집합 안 시키고 무슨 잡념이냐!
그래 가지고 수능은 똑바로 보겠어?!”
특활 마침을 알리는 특활담임의 우렁찬 고함소리였다.
“진아 - 같이 가자~”
애교가 넘치는 낯익은 목소리에 진의 얼굴은 금새 사색이 되었다.
“아..안녕, 예.예림아!”
눈치도 100단 빠른 그녀는 진에게 뽀롱통하게 쏘아 부쳤다.
“뭐야! 그 달갑지 않은 인사는 - 칫!”
“달갑지 않긴~ 아, 아냐 - 안녕. 내일봐!”
그녀의 이름은 한예림.
일명, 공포의 껌딱지.
전교에서 제일로 질기기로 유명한 -
한 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은 진은 황급히 달아나기 바빴다.
“야- 류 진! 달아나봤자 넌 내 손바닥 안이라고, 안!!”
***** *****
“다녀왔습니다.”
철 - 컥。
문만 삐걱거리며 닫힌 소리만 낼 뿐,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각 자의 사업으로 바쁘신 그의 부모님들은 아들의 입국을 허락한 채 한 두 번 전화만 올 뿐,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건 미국식 ‘알렌’ 이라는 이름대신 한국식 ‘류 진’이라고 주어진 두 자의 이름이었다.
그한테 동생이 하나 있었어도 무관심 이었을까?
그렇게 무심한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초인종 벨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삐 - 이 - 꺽.
살며시 대문을 열어 본 진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대문을 닫으려 는데 우편함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우편물이 떨어졌다.
뭔가 싶어 주워든 우편물에는 받는 이의 주소만 적혀있을 뿐, 보내는 이의 주소는 적혀있지 않았다.
주소와 이름을 보니 분명 그의 것이 분명했지만 누가 보낸 것일까?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진은 다급히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그 순간,
빛이 번쩍하며 진은 기절해버렸다.
너무나 눈부신 빛에 상기되었던 진은 빛의 터널 같은 곳에 서 있었다. 상들 리에처럼 호화스런 빛도 아닌, 신비롭다 해야 할까 ―
한 마디로 빛의 영롱함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시선은 곧 다른곳을 향했다.
‘문인가?’
혼자 빼콤이 튀어나온 블록。
호기심이 발동했던 진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딛었다.
드르륵 -
그 블록은 들어가고 진의 뒤에서 벽돌문이 열리는 듯 한 소리가 들렸
다. 그리고 그 벽돌문에선 형형색색(形形色色)의 희귀하게 생긴 것들
이 나와 진의 주위를 맴돌았다.
‘뭐야, 대체! 이것들은!!’
정체불명의 괴물(?)들의 등장에 놀란 진은 마구 손을 휘젓기 바빴다.
‘저..저리가 - 저리가랏말야!’
하지만 진의 손은 괴물(?)들을 내쫓기는 켜녕 그들의 몸을 통과해 헛
손질과 다름이 없었다. 그제야 체념한 진이 주저앉았을 때, 해괴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정령에게 선택된 자여,
자 - 그 책을 펼치거라 ―」
‘정령? 저것들인가? 흠 -
나한테 책이 어디...!!’
어딘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이미 손에는 보지도 못한 책이 놓여져있었다.
책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지자 내심 의문이 드는 그였다.
책과 저 정령이라는 것들과의 연관성은 무엇이며, 왜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 의문의 답을 진이 알 길이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의 외침에 대한 실천이었다.
‘에잇-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그 목소리의 의도대로 책을 펴는 순간, 책은 사라지고 진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 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으며 또다시 스르르 눈이 감겨 벼렸다.
***** *****
띠- 띠띵―
「103호실 보호자분, 보호자분 병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덜 - 컥。
103호실 방문이 벌컥 열며 들어오는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와 진과 동갑으로 보이는 소녀가 그를 반겼다.
“진아!”
3일째 되던 날,
긴 잠에서 드디어 깨어난 진은 영문을 모른 채 그들에게 안겨 두 눈만 동그래졌다.
“그러니까 3일전에 집 앞에 쓰러져있던걸 예림이가 발견해서 담임
선생님께 연락해서 내가 그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는 거야?”
3일 동안 쥐도 새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니 얼이 빠져 믿기지 않는 진이었다. 3일전에 소포에 대한일도, 꿈에 대한 기억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데 진아, 의사 선생님 말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구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퇴원은 모레쯤에 하자구나.”
모레...?
모레쯤이면 진이네 학교의 축제날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이미 얘기가 다 되었던 선생님은 모레 학교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병실에 예림이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뭔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진에게 다가갔다.
“야, 류 진. 이제 내가 너한테 뭐가 되지?!”
묻는 의도를 이미 눈치 챈 진이었지만 내키지 않는 반색을 드러냈다.
“꼭 내 입으로 그걸 말해야 알겠어!
너 앞으로 잘해~ 두고 보겠어!!”
쾅 ―
제 말할껀 다하고 씩씩거리며 그녀는 나가버렸다.
‘으이구 - 저 불여시!’
퇴원 日(일),
혼자서 집에 갈 수 있다는 걸 일부러 낚아 챈 예림이는 ‘생명의 은인’ 이라는 명목아래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첫 번째로 자기와 1일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
그녀에게 이끌려 하루 종일 싸돌아 다녀와 하다니 벌써부터 골이 쑤셔오는 듯 했다.
‘제발,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진아~ 좀 더 놀다 가면 안 될까?”
여름이라서 그런지 해가 길어서 아직 그리 어둡지 않았지만 이미 진의 손목시계는 9시를 가리켰다. 그녀의 칭얼댐에 무심코 걷다보니 평상시에 자주 가지 않던 골목길을 들어서고 말았다.
“진아, 이 길 알아?!”
예림이도 모르는 듯 그에게 날린 질문이었지만 그도 몰랐기에 고개만 내저었다. 그리고 아무생각 없이 좁은 골목길을 반이나 와버린 듯 한 느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가까이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도..도와주세요! 아, 아무도 없어요. 까-악!”
“재수 없게 - 입 닥쳐!
여긴 외진 골목길이라서 한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고~
얌전히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꺼다.”
소리를 죽인 채, 벽에 붙어 빼콤히 쳐다보던 진들이 본 광경은 19세 관람불가의 장면이었다. 제법 예쁜 소녀가 저 배불뚝 아저씨에게 당하는걸 보자니 발을 동동 굴러대는 진이었고 같은 여자로써 안타까움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광경에 예림이는 그를 떠밀어 버렸다.
“류 진, 파이팅!”
한참 분우기 잡던 배불뚝 아저씨를 훼방 놓듯, 웬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기분을 잡쳤던지 가래침을 땅에 뱉었다.
“야, 너 뭐야!
어디서 굴러온 애송이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 할 때 꺼져!!”
배불뚝 아저씨 말대로 ‘네, 알겠습니다.’하고 사라지고 싶었지만 그의 뒤에서 느껴지는 포스(?)에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동안이나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미동이 없자 자신의 말을 개무시 한다고 느낀 그가 재빠르게 진의 멱살을 잡았다.
“내 말이 웃기게 들리냐, 애송이?”
“하 - 하. 하.. 아, 아니오 그게..아니라~ 저..저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은 말대로 꼬이고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리고 ‘이제는 죽었구나.’라는 생각에 매달려 그 동안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쳤다.
그런데,
진의 삶 중 한 부분이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가더니 현재의 시간의 그만 빼고 정지해 버렸다. 그를 패려던 배불뚝 아저씨도 겁을 먹은 채 울먹이던 예쁜 소녀도 그리고 진을 못 잡아먹어 안절부절 거리는 예림이도 신기하게도 얼어붙은 조각상 같았다. 잠시나마 신기함에 혼자 얼이 빠져버렸지만 이내, 일어 날 수 없는 현상에 직시했다.
‘이..이거 꿈일꺼야, 꿈!’
혼자 머리를 부여잡고 혼돈에 휩싸여 드는데 뭔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가 손을 내밀자 그 물체도 그의 관심을 환영하듯 손에 매달렸다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엔 그 물체의 몸을 통과했기에 좀 많이 어설픈 매달리기였다.
“불쌍하게도 주인을 잃어버렸구나...가디언... ..!!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가디언 이라고??
내가 어떻게 이 녀석의 이름을 아는 거지?!”
연속적인 놀라움과 자신에 대한 질의를 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머리가 아파 한참을 버둥대던 진은 갑자기 지침을 호소하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특별활동이 그를 혹사시켰다.
“진 선배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기다리다 목 빠져 죽는 줄 알았다고요 - ”
궁도부의 여후배들은 서로 그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거의 앵겨붙은 수준이랄까~?
하지만 그럴수록 그만 곤란해졌다.
남은 남자부원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누가 그렇게 선머슴처럼 생기라 했는가?!
그는 미국인이신 어머니의 미모를 쏙 빼닮아 금발의 머리와 금안의 눈동자를 가져서 교정에서 찾아 볼 수도..아니, 찾아보기도 힘든 인물이었다. 하지만 간혹 장난끼 많은 남학생들이 여자애 같다며 놀리기도 일쑤였다.
그의 혼잡한 상념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침범했다.
“류 진! 집합 안 시키고 무슨 잡념이냐!
그래 가지고 수능은 똑바로 보겠어?!”
특활 마침을 알리는 특활담임의 우렁찬 고함소리였다.
“진아 - 같이 가자~”
애교가 넘치는 낯익은 목소리에 진의 얼굴은 금새 사색이 되었다.
“아..안녕, 예.예림아!”
눈치도 100단 빠른 그녀는 진에게 뽀롱통하게 쏘아 부쳤다.
“뭐야! 그 달갑지 않은 인사는 - 칫!”
“달갑지 않긴~ 아, 아냐 - 안녕. 내일봐!”
그녀의 이름은 한예림.
일명, 공포의 껌딱지.
전교에서 제일로 질기기로 유명한 -
한 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은 진은 황급히 달아나기 바빴다.
“야- 류 진! 달아나봤자 넌 내 손바닥 안이라고, 안!!”
***** *****
“다녀왔습니다.”
철 - 컥。
문만 삐걱거리며 닫힌 소리만 낼 뿐,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각 자의 사업으로 바쁘신 그의 부모님들은 아들의 입국을 허락한 채 한 두 번 전화만 올 뿐,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건 미국식 ‘알렌’ 이라는 이름대신 한국식 ‘류 진’이라고 주어진 두 자의 이름이었다.
그한테 동생이 하나 있었어도 무관심 이었을까?
그렇게 무심한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초인종 벨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삐 - 이 - 꺽.
살며시 대문을 열어 본 진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대문을 닫으려 는데 우편함에서 둔탁한 소리를 내며 우편물이 떨어졌다.
뭔가 싶어 주워든 우편물에는 받는 이의 주소만 적혀있을 뿐, 보내는 이의 주소는 적혀있지 않았다.
주소와 이름을 보니 분명 그의 것이 분명했지만 누가 보낸 것일까?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진은 다급히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그 순간,
빛이 번쩍하며 진은 기절해버렸다.
너무나 눈부신 빛에 상기되었던 진은 빛의 터널 같은 곳에 서 있었다. 상들 리에처럼 호화스런 빛도 아닌, 신비롭다 해야 할까 ―
한 마디로 빛의 영롱함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시선은 곧 다른곳을 향했다.
‘문인가?’
혼자 빼콤이 튀어나온 블록。
호기심이 발동했던 진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딛었다.
드르륵 -
그 블록은 들어가고 진의 뒤에서 벽돌문이 열리는 듯 한 소리가 들렸
다. 그리고 그 벽돌문에선 형형색색(形形色色)의 희귀하게 생긴 것들
이 나와 진의 주위를 맴돌았다.
‘뭐야, 대체! 이것들은!!’
정체불명의 괴물(?)들의 등장에 놀란 진은 마구 손을 휘젓기 바빴다.
‘저..저리가 - 저리가랏말야!’
하지만 진의 손은 괴물(?)들을 내쫓기는 켜녕 그들의 몸을 통과해 헛
손질과 다름이 없었다. 그제야 체념한 진이 주저앉았을 때, 해괴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정령에게 선택된 자여,
자 - 그 책을 펼치거라 ―」
‘정령? 저것들인가? 흠 -
나한테 책이 어디...!!’
어딘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이미 손에는 보지도 못한 책이 놓여져있었다.
책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지자 내심 의문이 드는 그였다.
책과 저 정령이라는 것들과의 연관성은 무엇이며, 왜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 의문의 답을 진이 알 길이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의 외침에 대한 실천이었다.
‘에잇-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그 목소리의 의도대로 책을 펴는 순간, 책은 사라지고 진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 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으며 또다시 스르르 눈이 감겨 벼렸다.
***** *****
띠- 띠띵―
「103호실 보호자분, 보호자분 병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덜 - 컥。
103호실 방문이 벌컥 열며 들어오는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와 진과 동갑으로 보이는 소녀가 그를 반겼다.
“진아!”
3일째 되던 날,
긴 잠에서 드디어 깨어난 진은 영문을 모른 채 그들에게 안겨 두 눈만 동그래졌다.
“그러니까 3일전에 집 앞에 쓰러져있던걸 예림이가 발견해서 담임
선생님께 연락해서 내가 그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는 거야?”
3일 동안 쥐도 새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니 얼이 빠져 믿기지 않는 진이었다. 3일전에 소포에 대한일도, 꿈에 대한 기억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데 진아, 의사 선생님 말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구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퇴원은 모레쯤에 하자구나.”
모레...?
모레쯤이면 진이네 학교의 축제날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이미 얘기가 다 되었던 선생님은 모레 학교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병실에 예림이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뭔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진에게 다가갔다.
“야, 류 진. 이제 내가 너한테 뭐가 되지?!”
묻는 의도를 이미 눈치 챈 진이었지만 내키지 않는 반색을 드러냈다.
“꼭 내 입으로 그걸 말해야 알겠어!
너 앞으로 잘해~ 두고 보겠어!!”
쾅 ―
제 말할껀 다하고 씩씩거리며 그녀는 나가버렸다.
‘으이구 - 저 불여시!’
퇴원 日(일),
혼자서 집에 갈 수 있다는 걸 일부러 낚아 챈 예림이는 ‘생명의 은인’ 이라는 명목아래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첫 번째로 자기와 1일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
그녀에게 이끌려 하루 종일 싸돌아 다녀와 하다니 벌써부터 골이 쑤셔오는 듯 했다.
‘제발,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진아~ 좀 더 놀다 가면 안 될까?”
여름이라서 그런지 해가 길어서 아직 그리 어둡지 않았지만 이미 진의 손목시계는 9시를 가리켰다. 그녀의 칭얼댐에 무심코 걷다보니 평상시에 자주 가지 않던 골목길을 들어서고 말았다.
“진아, 이 길 알아?!”
예림이도 모르는 듯 그에게 날린 질문이었지만 그도 몰랐기에 고개만 내저었다. 그리고 아무생각 없이 좁은 골목길을 반이나 와버린 듯 한 느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가까이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도..도와주세요! 아, 아무도 없어요. 까-악!”
“재수 없게 - 입 닥쳐!
여긴 외진 골목길이라서 한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고~
얌전히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꺼다.”
소리를 죽인 채, 벽에 붙어 빼콤히 쳐다보던 진들이 본 광경은 19세 관람불가의 장면이었다. 제법 예쁜 소녀가 저 배불뚝 아저씨에게 당하는걸 보자니 발을 동동 굴러대는 진이었고 같은 여자로써 안타까움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광경에 예림이는 그를 떠밀어 버렸다.
“류 진, 파이팅!”
한참 분우기 잡던 배불뚝 아저씨를 훼방 놓듯, 웬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기분을 잡쳤던지 가래침을 땅에 뱉었다.
“야, 너 뭐야!
어디서 굴러온 애송이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말 할 때 꺼져!!”
배불뚝 아저씨 말대로 ‘네, 알겠습니다.’하고 사라지고 싶었지만 그의 뒤에서 느껴지는 포스(?)에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동안이나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미동이 없자 자신의 말을 개무시 한다고 느낀 그가 재빠르게 진의 멱살을 잡았다.
“내 말이 웃기게 들리냐, 애송이?”
“하 - 하. 하.. 아, 아니오 그게..아니라~ 저..저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은 말대로 꼬이고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리고 ‘이제는 죽었구나.’라는 생각에 매달려 그 동안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쳤다.
그런데,
진의 삶 중 한 부분이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가더니 현재의 시간의 그만 빼고 정지해 버렸다. 그를 패려던 배불뚝 아저씨도 겁을 먹은 채 울먹이던 예쁜 소녀도 그리고 진을 못 잡아먹어 안절부절 거리는 예림이도 신기하게도 얼어붙은 조각상 같았다. 잠시나마 신기함에 혼자 얼이 빠져버렸지만 이내, 일어 날 수 없는 현상에 직시했다.
‘이..이거 꿈일꺼야, 꿈!’
혼자 머리를 부여잡고 혼돈에 휩싸여 드는데 뭔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가 손을 내밀자 그 물체도 그의 관심을 환영하듯 손에 매달렸다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기엔 그 물체의 몸을 통과했기에 좀 많이 어설픈 매달리기였다.
“불쌍하게도 주인을 잃어버렸구나...가디언... ..!!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가디언 이라고??
내가 어떻게 이 녀석의 이름을 아는 거지?!”
연속적인 놀라움과 자신에 대한 질의를 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머리가 아파 한참을 버둥대던 진은 갑자기 지침을 호소하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